1 개요
應氏杯世界職業圍棋錦標賽
Ing Cup/Ying Shibei World Professional Go Championship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
대만의 부호이자 열렬한 바둑 애호가인 고 잉창치(應昌期 - 응창기)씨가 40만 달러라는 거액의 우승 상금을 걸고 1988년 창설한 본격적인 세계기전. 일본은 응씨배 창설 움직임을 보고, 서둘러 전자회사 후지쯔의 후원을 받아 후지쯔배를 만들면서, 최초의 세계 대회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그러나 2011년을 끝으로 후지쯔배는 폐지되었다. 따라서 가장 전통있는 세계 바둑 대회가 응씨배이다.
'잉창치배','잉씨배'라고도 불린다. 4년마다 개최되기 때문에 바둑올림픽 혹은 바둑월드컵이라는 별명도 있다. 타이페이·상해 응창기 바둑교육기금회가 주최 및 후원한다.
조훈현의 세계 제패로 한국바둑의 급성장을 불러온 대회이며, 한국 4천왕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우승한 대회라는 점 등에서 여러 모로 한국 바둑계와 연관이 많은 대회이다.
응씨배의 우승 상금은 40만 달러(약 4억8000만원)다. 전체 상금 규모는115만 달러(약 13억9000만원)다. 상금 규모면에서 가장 큰 대회이다.
2 잉창치
잉창치 (应昌期, 응창기) (1917.10.23~1997.08.27)
당시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관계 때문에 가고 싶어도 고향을 갈 수 없던 잉창지씨는 이렇게 응씨배 결승을 통해서라도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했고 (그렇게 성사된 영파 방문이 잉창지씨 개인에게는 50년 만의 고향 방문이었다.), 응씨배를 바탕으로 양국 간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잉창지씨는 결승 제5국 후 조훈현에게 우승컵을 전달하면서도 시상식 내내 웃음과 미소, 그리고 축하 메세지로 조훈현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주었다.
3 운영 방식
응창치룰이라 불리는 독특한 중국식 바둑룰을 사용한다[1]. 바둑돌 수가 180개씩(바둑판에 돌을 둘 수 있는 점 수는 19²=361이라 여기에 맞춘 것)으로 한정되어 있고, 덤도 일반적인 룰과는 다르다.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하며,바둑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바둑을 끝내고 계가를 할 때 가장 쉬운 계가법[2]이라고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바둑판, 돌 등까지 세트로 구매해야 해서[3] 보급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응씨배에는 판빅(비기는 바둑 = 무승부)이 없다.[4] 응씨배에서 판빅이 등장하거나 응씨룰로 두어 판빅을 만드는 기보를 제출하면 상금으로 5만달러를 준다고 한다[5]. 또한 3시간 30분의 기본 시간을 주고, 초읽기가 없으며 기본 시간을 모두 소비하면 두 집을 대가로 35분간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6]. 세 번까지 연장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도 모두 소비하면 시간패가 된다.
제 2회 대회부터 24명의 기사가 출전 하게 되었다.
8강전을 치른 8명한테 다음 대회 16강전 직행 자격을 주는 방식에서, 2008년 대회부터 결승에 오른 두 사람만 다음 대회 출전자격진출로 변경 되었다.
8강전까지는 단판, 4강전은 2선승제고, 결승은 3선승제인데 일정을 나눠 두 군데에서 진행한다.
4 역대 우승자
순서 | 년도 | 우승자 | 준우승자 | 점수 |
1회 | 1988 | 조훈현 | 녜웨이핑 | 3-2 |
2회 | 1992 | 서봉수 | 오다케 히데오 | 3-2 |
3회 | 1996 | 유창혁 | 요다 노리모토 | 3-1 |
4회 | 2000 | 이창호 | 창하오 | 3-1 |
5회 | 2004 | 창하오 | 최철한 | 3-1 |
6회 | 2008 | 최철한 | 이창호 | 3-1 |
7회 | 2012 | 판팅위[7] | 박정환 | 3-1 |
8회 | 2016 | 탕웨이싱 | 박정환 | 3-2 |
1회 대회때는 한국 바둑이 듣보잡 수준이어서 중국 4명, 일본 6명, 대만 3명, 한국, 미국, 호주 각각 1명만 초청했고 한국이 강력 반발하자 서봉수를 예비 1번에 올려주기만 했다.[8] 뿐만 아니라 당시 결승 5번기를 1, 2, 3차전은 중국에서 4, 5차전은 싱가포르에서 치루는 등 기전 일자나 장소 등도 철저히 한국을 배제한 채로 결정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적지에서 싸운 것과 다름 없었다. 4강전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했다. 대만에서 하려고 했지만, 대만 사정이 안 좋아서(대회 주최자가 중국 공산당과 관계있다는 소문으로 시위가 일어났다는데 확인바람.)한국으로 장소를 바꿨다고 한다. 더군다나 녜웨이핑의 지병으로 인해서 결승 장소에 제약이 가해지기도 했다.[9]
1989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응씨배 준결승 3번기. 왼쪽은 중국의 린하이펑. 오른쪽이 조훈현.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그 조훈현이 당시 중국의 자랑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에게 대역전 우승[10]. 바둑계 최초(이자 최후)로 카 퍼레이드를 하고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九단과 함께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대회 이후 전국적으로 엄청난 바둑 열풍이 일어나고 특히 어린이 바둑교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후 응씨배 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기전에서 한국 기사들의 문호를 대폭 확장하게 되었으며 한국 기사들을 제외하고 벌어졌던 기전들은 모두 2부 리그 격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말았다. 쌤통이다
5 2016년 대회 (제8회)
생각시간 3시간, 추가시간 20분 2번(1번에 2집씩 뺌)으로 시간이 줄었다. 점심시간은 전처럼 바둑 시작하고 3시간 뒤, 1시간 동안.
4월18일~ 25일까지 개막식[11], 본선1회전(각 국 대표 28명 참가. 대진표에서 2-3, 4-5, … , 28-29가 대결), 16강(대진표 1을 받은 전기 대회 우승자, 대진표 30을 받은 준우승자, 1회전 승자 14명 참가), 8강전이 열린다.
6월8일~ 15일까지 3번기로 4강전이 열린다.
결승 1,2 국이 8월8일부터 13일, 결승3~5국과 시상식 폐막식이 10월21일부터 27일에 열린다. 예전에는 적어도 결승 2차전은 해를 넘겨서 열곤 했는데 이번에는 일정을 빨리 진행하고 있다.
본선 1 라운드에는 한국 6명, 중국 10명, 일본 6명, 대만 2명, 미주 2명, 유럽 2명, 총 28명이 출전해 절반인 14명이, 16강에 합류하게 된다.
전대회 우승/준우승자는 16강에 직행한다.
한국 출전자 :
- 전기 준우승자 : 박정환 9단이 본선 2회전 (16강 직행) 시드
- 본선 1회전 6명
랭킹 시드 : 이세돌과 박영훈
국가 대표 시드 : 김지석과 나현
4월 22일에 8강 진출자들이 가려졌다.
- 한국 : 이세돌, 강동윤, 김지석, 박정환
- 중국 : 커제, 스웨, 탕웨이싱
- 일본 : 고노 린
4월 24일 4강 진출자들이 가려졌다.
- 한국 : 이세돌, 박정환
- 중국 : 스웨, 탕웨이싱
6월 14일 결승 진출자들이 가려졌다.
모두 준결승에서 상대를 2-1로 이기고 진출.
박정환-탕웨이싱은 2014년부터 7번 만났으며,
역대 전적은 박정환 기준 4승 3패이다.
- 8월 10일 결승 제1국
- 박정환 九단의 3점 승리
- 8월 12일 결승 제2국
- 탕웨이싱 九단의 3점 승리
- 10월 22일 결승 제3국
- 박정환 九단의 7점 승리
- 10월 24일 결승 제4국
- 탕웨이싱 九단의 11점 승리
- 10월 26일 결승 제5국
- 탕웨이싱 九단의 5점 승리
- 8회 응씨배는 탕웨이싱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박정환은 2회 연속 준우승 기록(...)
6 창작물에서
- MBC는 1994년 삼일절날 이 대회 결승[12]과 가상스토리를 절묘하게 뒤섞은 '맞수'라는 특집극을 방영하기도 했다. 당시 캐스팅은 조훈현-유인촌, 서봉수-정보석, 이창호-정준, 유창혁-이재룡
- ↑ 집을 세는 단위는 점이지만 여기서는 알기 쉽게 집으로도 적는다.
- ↑ 내 돌이 살아 있는 곳에 내 바둑알을 채우면 몇 집인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나고 나서 집을 세려고 판에 놓은 바둑알을 이리저리 옮길 필요가 없다. 중국식 계가법에서 돌을 180알씩 맞추고, 바둑판에서 살아 있는 돌을 그대로 두고 남은 돌로 각자 영역을 채우는 방식이 바로 전만(塡滿)법이라고 봐도 좋다.
- ↑ 사실은 돌 180알씩 맞춰서 준비하기 어려워서 그렇다. 그래서 바둑돌을 딱 180알 넣을 수 있는 통(한 층에 36알×5층인 육각기둥형)도 있다(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 Ctrl+F+함중아, 이제까지 나온 여러 바둑통). 본문에서 말하는 '세트'는 응씨룰을 세계표준으로 만들려는 잉창치의 목표 때문이고, 돌 갯수만 확실히 맞춰서 준비할 수 있으면 이 규칙을 쓸 수 있다.
- ↑ 보통 바둑은 패 세 개가 번갈아 나타나거나(삼패빅) 장생 등으로 동형이 반복되면 그 판은 판빅으로 처리하지만, 응씨배 룰대로 바둑을 두면 세 개 이상의 패과 장생까지도 동형반복으로 간주한다.
- ↑ 흑이 딱 덤(8집)만큼 앞서면 흑이 이긴다(흑빅승). 그래서 덤(8점)을 한국식으로는 7집 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로 돌을 놓을 수 없는 공배는 주변 돌 배치에 따라 가르는 방식(그래서 공배가 변에 있으면 ⅓, ⅔도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제1회 대회 8강전에서 조훈현 九단은 흑으로 '1과 5/6점'을 이기기도 했다)에서, 중국처럼 반씩 나눠가지기로 바꿨다.
- ↑ 생각시간을 다 쓰면 1/6만큼 시간을 더 줬다. 3시간 30분은 210분이니 6으로 나누면 35분
- ↑ 우승 당시 三단이었으나 중국기원의 규정에 따라 즉시 九단이 되었다.
- ↑ 당대 최고 상금이 걸린 대회인데 기권할 기사는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국적 기준으로 초청하니 조치훈 九단도 한국 대표라고 주최측에서 해
변명. - ↑ 사실 세계대회 결승 장소는 주최측에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관례이다. 한국이 주최하는 LG배나 삼성화재배도 결승 장소를 주최측 홍보를 위해서 주최사가 지정한 장소에 따라 한국에서 5번기를 모두 치르거나 중국에서 치르지 결승전에 오른 사람의 국적에 따라 안배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당시 언론이나 일부 기사들이 결승 장소의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는 제기할 거리가 되지 않는 사안이다. 다만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 본 것이고 당시에는 세계대회 자체가 처음이었던 만큼 그런 관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쯤은 논란이 있을 만한 문제이기는 했다.
- ↑ 조 九단이 바둑인생에서 일어났던 기적을 4등까지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대회 8강전을 2등, 1:2로 뒤진 채 맞이한 결승 제4국(흑 1점 승)을 3등으로 꼽았다.
- ↑ 24명일 때는 1회전 뒤 16강전 대진표를 짜는 제비뽑기를 또 했지만, 이번에는 제비뽑기를 개막식에서만 하고 대진표가 끝까지 간다. 지난 대회 우승자는 1번, 준우승자는 30번.
- ↑ 제1회 대회 결승에서 시작하고 제2회 대회 결승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