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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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大燁
1935년 5월 10일 - 2015년 2월 6일

이대엽은 대한민국의 배우, 정치인이다. 종교개신교이다.

1935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1]

경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배우의 길로 갔는데, 영화에 주로 출연하였다. 사실 주로 출연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네이버 영화에 따르면 출연이 무려 137편이나 된다! 한편 1970년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군소정당인 신정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오세응 후보와 동반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같은 해 신정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1982년 신정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오세응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김종필이 정계에 복귀하여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한국국민당을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3당 합당으로 합류)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당 이윤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김종필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공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시장 재임 시절의 비리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2015년 2월 6일 별세하였다.
  1. 마산이 아니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고도 허위사실 유포죄로 벌금형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