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황

1 대한민국배우

이름이재황
출생1976년 12월 26일
신체180cm, 68kg
소속루브이엔엠
학력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중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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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소개

이재황은 1999년 SBS 일요드라마《카이스트》로 데뷔를 했다. 루키로 주목을 받다가 2000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바람둥이 '권재황' 역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아직도 권재황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유행어가 나 권재황이야인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전성기 중 2002년 10월 31일에 군입대를 하게 된다. 필모그레피에서 작품이 끊어진 적이 없던 것은 군에서도 꾸준히 홍보드라마를 찍었다. 2004년 11월 23일에 제대했다. 2005년에는 정다빈[2]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 [3]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뉘. 2008년엔 막장드라마의 신바람을 이르킨 《아내의 유혹귀가시계에서 민건우 [4] 역을 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CF도 찍었다. 이젠 권재황보다 민건우로 더 많이 불린다. 끝까지 자기 이름으로는 안 불린다. 한채영의 남편으로 오인된 흑역사도 있다. 지못미. 유일한 악역이었던 《웃어요 엄마》 신머루 역으로 2010년 연기대상 우수상 후보에도 올랐다.[5] 제대후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엄친아 혹은 실장님 역할이다. 늘 상처받은 여주인공을 감싸준다. 이혼녀 킬러. 요즘들어 주로 아침드라마나 주말극 혹은 일일드라마에 출연한다. 역할이 비슷비슷해서 연기 변신이 시급! 처음엔 가수 데뷔를 준비했기에 노래 실력도 갖춰 드라마 OST[6]도 불렀고 일본에서 앨범도 내본 적 있다.

1.2 출연작

  1. 졸업을 했다면 강동원, 하석진과 더불어 공대오빠로 불렸을 텐데 아쉬움....
  2. '옥탑방고양이'의 그녀가 맞다. 재밌는 것은 바로 차기작인 《다이아몬드의 눈물》에서 동명이인인 아역 정다빈과 함께 연기를 했던 점이다.
  3. 《다이아몬드의 눈물》에 이어 7년 후《너라서 좋아》에서 재회한다.
  4. 착한 역인데도 여주인공 방해한다고 욕먹고, 여주인공 버리고 결혼했다고 욕먹고, 고자질한다고 '고자건우'로 불린 흑역사가 있다
  5. 실제로 웃엄 출연 당시 자기 어머니(실제 배우의 어머님)한테서 "나쁜 놈"이라고 욕먹을 정도로 악역연기 잘했다
  6. 《돌아와요 순애씨OST》'Goodbye',《아내의 유혹OST》'못된 바램','용서 못 해','슬픈 인연'
  7. 데뷔작, 10회에 출연
  8. 기레기가 이재황의 캡쳐사진을 한채영씨의 남편인 최동준씨로 혼동하여 기사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9. 1기에 비해 망해서 아는 이가 별로 없다, 2기인 68회~81회 출연
  10. 《아내의 유혹》하기 전에 대표작임
  11. 오세강 감독과의 인연으로 훗날 《아내의 유혹》에 케스팅, 역할 이름도 같다.
  12. 군입대 전 마지막 작품
  13. 첫 영화. 국제군사영화제 우수상 수상작품.
  14. 군 제대작, 극중 '제임스 한'으로 더 많이 불렸다.
  15.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작품
  16. 여주인공이 황신혜와 오연수, 케미사망, 시청률 사망(옆동네가 선덕여왕이라서ㅜㅜ)
  17. 20회에 출연, 극 중 배수빈이 세탁한 신분의 진짜 주인. 진태현과의 첫 작품
  18. 《아내의 유혹》과 같은 작가임, 스토리도 아유와 똑같음, 단지 민건우에서 정교빈으로 역할 바꿈. 김순옥 작가와 정식으로 두번째, 카메오까지 합하면 세번째 합작이라서 김수현 사단을 잇는 새로운 사단의 탄생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렸다.
  19. 《아내의 유혹》때 조연출이었던 신경수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출연.
  20. 레알커플인 박시은-진태현 커플의 함께 출연이 더 화제가 됨. 진태현과의 두 번째 작품

2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재황(프로게이머)로.

3 고종의 본명

흔히 이명복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아명. 본명으로는 이재황(李載晃)이 맞다. 다만 이재황은 즉위 후에 개명한 이름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재황이라는 이름은 초휘(初諱)[1]이기 때문에 일단 왕이 되기 전의 이름은 이명복이 맞다는게 정설.[2] 그래서 닥터 진에서도 이명복으로 나온다. 애시당초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신정왕후의 명에도 명복(命福)이라고 불렀다.[3] 그리고 나중에 한번더 개명한 관계로 이 이름을 사용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4]

  1. 첫번째 휘(諱)라는 뜻으로 휘라는 뜻은 왕이 되었을때 쓰는 이름이다.
  2. 고종은 관례를 치를 나이(만 15세)가 되기 전인 12살에 즉위했기 때문에 즉위전에는 아명을 썼을 것이다.
  3. 흥선군의 정실부인이 낳은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익종대왕의 대통을 승계하는 것으로 결정한다."(以興宣君嫡己第二子命福, 入承翼宗大王大統, 爲定矣) - 철종 14년 12월 8일자.
  4. 이희 또는 이형으로 개명. 한자 독음 문제에 대한 내용은 여기여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