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

(대구상고 야구부에서 넘어옴)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A
(전반기)
경북고등학교50px경주고등학교글로벌선진학교대구고등학교
50px상원고등학교40px포항제철고등학교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상
(후반기)
경북고등학교50px경주고등학교글로벌선진학교50px김해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60px마산고등학교물금고등학교50px상원고등학교
50px용마고등학교울산공업고등학교40px포항제철고등학교
파일:QiXxmjQ.jpg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Daegu Sangwon High School)
창단1928년 3월
소속 리그대구경북권
감독박영진
연고구단삼성 라이온즈
우승 기록[1]12회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2회(1973, 93)5회(1974, 76, 78, 88, 2009)1회(1998)
청룡기6회(1950, 70, 77, 99, 2011, 2015)6회(1962, 66, 68, 69, 98, 2000)3회(1971, 78, 2010)
황금사자기2회(1973, 98)2회(1974, 2015)2회(1981, 90)
봉황대기2회(1973, 74)1회(1975)3회(1971, 80, 97)
협회장기---
195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서중등학교대구상업중등학교인천고등학교[2]
197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선린상업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
197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
1973년, 197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명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
197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경남고등학교
1977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
199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대전고등학교
1998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군산상업고등학교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성남고등학교
2011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고등학교상원고등학교덕수고등학교
2015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고등학교상원고등학교덕수고등학교
06_09_05.jpg

1 소개

파일:/image/410/2014/01/20/20140120 1390169207.jpg 59 20140120081303.jpg
1988년,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모자 안쓴 아이가 양준혁
말안해줘도 머리크기로 모두 알아챈다 카더라

경북고와 함께 대구 야구의 쌍벽을 이루면서 건재를 과시한 팀으로 한국 야구를 지배한 슈퍼스타들의 산실, 특히 타격 부분에서 슈퍼스타의 산실이다. 대구상고 출신의 머리 큰 좌타자는 레전드가 된다 카더라 백상원과는 관계 없다

2 연혁

2.1 경북지역의 최강자(1928~1945)

파일:EuCgmQ9.png

1928년 3월[3] 대구상업학교 시절에 생겼던 팀으로 다른 일제시대에 생긴 팀에 야구부가 유명무실해진 것과 달리 비록 팀은 약했을지라도 야구부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간 팀이다. 그래서 여타 팀들과 다르게 80년 넘는 역사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 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창단 당시에는 팀원 대다수가 일본인 학생들으나 조선인 학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최초 창설 당시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인물들은 편순윤(片順潤), 표문철(表文哲), 오명오(吳命五) 등이 외야수로 활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창단 첫해였던 1928년 5월 24일에 대구춘계쟁패전에서 대구실업을 꺾고 첫 우승을 달성했으며, 창단 첫해에는 은근 콩라인 기질이 있었는데 1929년 제9회 조선중등학교대회겸 제15회 전국중등우승대회 조선예선전[4]에서 평양중에게 패배(5:0)하며 준우승, 10월 12일 제3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도 경성사범에게 패배(6:4)하며 준우승.

그러나 이듬해인 1930년에는 그들의 해로 만들었다. 제16회 고시엔 조선예선에서 우승하며 조선대표로 고시엔에 출전하기도 했다. 고시엔 진출 당시 1회전에서 요나코(米子)중학을 4-0으로 격파하고 2회전에 진출했으나 마쓰야마(松山)상업에 2-4로 패해 탈락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18일에 열린 제4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에서는 경성중을 5:4로 꺾은 후 평양중을 꺾고(3:2)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5] 1931년에는 용산중(4:1), 경성산업(3:2)을 차례로 꺾고 제5회 조선신궁중등학교대회를 재패했다.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대구 상업은 1935년에 다시 기지개를 폈는데 제15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신의주상업에게 22-3로 대패하며 무릎을 꿇었고 1936년 제16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결승에서 인천상업에게 8-4패배하며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 제17회와 18회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는 모두 4강에 올랐으나 떨어졌다.[6] 그리고 1941년 개최된 마지막 고시엔 조선 예선에서도 4강까지 진출했으나 용산중에 16-12로 아쉽게 탈락하며 4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대구상업은 치열했던 고시엔 예선[7]을 뚫고 심심찮게 결승과 4강을 오가며 경북지역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해방 후에도 전통은 이어져서 1950년 청룡기에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학교측에서는 성적이 나올리가 없다는 이유로 출전을 반대했지만 김종경 당시 대구상고 감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출전, 결승전에서 에이스 어지홍을 앞세운 동래고를 2: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했다.‘돌아오지 않은 학도 야구소년들’ 그러나 그들이 첫 우승을 달성하고 바로 직후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우승의 영광은 전쟁의 포연 속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2.2 영광의 시대(1960~1973)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부의 강세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1962년 정동진이라는 걸출한 포수를 앞세워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한 것을 신호탄으로 이 번에는 류영수 투수와 우용득 포수의 콤비를 앞세워 1968년과 1969년 다시 청룡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 번의 준우승의 한은 이들이 모두 졸업한 1970년에 풀리는데, 청룡기 우승으로 20년 만에 서울 메이저 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대로면 대구상고 야구부의 독재 체제가 열리는가 싶었지만, 그렇지도 못한 것이 1971년 동향의 라이벌 경북고가 전관왕을 달성하면서 막을 연 고교야구 전성시대의 최강자로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구상고도 그들의 라이벌이라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며, 강태정 감독의 지휘 아래 장효조와 김한근을 필두로 한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1973년 고교야구 3관왕을 달성하면서 그들이 한 시대를 지배할 가치가 있는 팀임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1974년 세 차례 결승에 올라 봉황대기에서 우승에 성공하며 전년도의 영광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들의 영광어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은 김시진이만수였는데, 불행히도 이 둘이 배터리를 맞출 때는 성과가 영 좋지 않았고, 김시진이 졸업한 1977년에 박영진을 앞세워 다시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고, 1978년 양일환이 에이스로 뛰며 대통령배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1980년대 대구상고는 무려 양준혁이 졸업하는 등 인재는 나쁘지 않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고, 결국 1980년대에는 한 차례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되었다.

2.3 중흥기

1993년 고교 무대에서는 이승엽과 쌍벽을 이뤘다는 오른손 강타자 김승관의 활약 속에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하면서 오랜 침묵을 깼다. 이 때의 중흥은 1990년대 말로 이어지는데 장준관이정호라는 거물 고교 투수들이 등장하면서 대구상고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 4차례 결승에 올라 두 번 우승에 성공했다. 다만 이 때 우승의 주역이었던 장준관이정호 모두 프로 무대에서는 대성하지 못한 것이 옥의 티라면 티. 이정호는 1차 지명을 받았는데 결국 먹튀로 전락한 채 보상선수로 끌려갔고, 장준관은 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는 굴욕을 당한 후 은퇴했다.

2000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김주철의 성남고에게 패하면서 우승 기회를 놓친 후, 대구상고 야구부는 쭉 하향곡선을 그렸다. 역시 안지만처럼 훗날 포텐셜을 터뜨린 선수들이 존재했을 정도로 인재는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성과는 나지 않았다. 이는 동향의 라이벌 경북고가 부진한 것과 맞물리면서 대구 지역의 야구 패권을 대구고에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졌고, 연고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는 뒷목을 잡으면서 안습한 1차 지명을 찍어야 했다.

2.4 2010년 이후

2009년 대통령배 결승은 오랜만의 성과였다. 2004년 일반계 전환 후 맞이한 첫 결승전에서 박화랑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덕수고의 야수진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9:10의 분패를 당하면서 우승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2011년 청룡기에서 2학년 좌완 에이스 김성민의 활약으로 정말 오랜만의 우승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싶었는데, 그 김성민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부정계약 시비로 징계를 받아 팀을 이탈하는 통에 다시 정상권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2015년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서 최동원선수상[8]결승까지 진출 경북고를 꺾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황금사자기에서 결승에 올랐으나 선린인터넷고에 2:7로 역전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5년 제 70회 청룡기에서 성남고를 12:2 로 누르고 4년만에 정상 자리를 탈환하였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서 고척돔 에서 열린 첫 야구대회 우승이다.

3 출신 선수[9]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서영무-경북대-공군
강태정내야수-제일은행-한국전력
류영수투수-제일은행-육군
정동진포수-제일은행-해병대
우용득포수1982년 코치 겸 선수제일은행-한일은행-삼성(1982~1983)
김한근내야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실업롯데-삼성(1982~1985)-빙그레(1985~1988)-태평양(1989~1990)
장효조외야수1983년 1차한양대-포철-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김시진투수1983년 1차한양대-경리단-삼성(1983~1988)-롯데(1989~1992)
송진호투수1982년 창단멤버건국대-포철-삼성(1982~1986)
박영진투수1982년 창단멤버성균관대-삼성(1982~1984)
오대석내야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삼성(1982~1988)-롯데(1989~1991)
이만수포수1982년 창단멤버한양대-삼성(1982~1997)
양일환투수1983년 1차건국대-삼성(1983~1989)
홍승규외야수1983년 1차성균관대-삼성(1983~1990)
김성갑내야수1985년 1차건국대-삼성(1985)-빙그레(1986~1990)-태평양(1991~1995)
김용국내야수1985년 1차한양대-삼성(1985~1993)-태평양(1994~1995)
이강돈외야수1985년 1차건국대-한화(1985~1997)
이종두외야수1985년 1차한양대-삼성(1985~1996)-쌍방울(1997)
김정수외야수1987년 2차 4라운드영남대-삼성(1987~1992))
이정훈외야수1987년 2차 1라운드동아대-한화(1987~1994)-삼성(1995~1996)-OB(1997)
김태한투수1992년 1차계명대-삼성(1992~2001)-SK(2002~2003)
양준혁외야수1993년 1차영남대-상무-삼성(1993~1998)-해태(1999)-LG(2000~2001)-삼성(2002~2010)
전상렬외야수1991년 연고지명삼성(1991~1996)-한화(1997~1999)-두산(1999~2009)
허삼영투수1991년 연고지명삼성(1991~1996)
전병호투수1996년 1차영남대-삼성(1996~2008)
김승관내야수1995년 연고지명삼성(1995~2004)-롯데(2004~2007)
권도영내야수1999년 2차 9라운드고려대-현대(2003~2007)-넥센(2008~2011)
이영욱투수1999년 2차 8라운드홍익대-SK(2003~2013)-삼성(2014)
차일목포수1999년 2차 5라운드홍익대-KIA(2003~2015)-한화(2016~)
강영식투수2000년 2차 2라운드해태(2000)-삼성(2001~2006)-롯데(2007~)
박기혁내야수2000년 2차 2라운드롯데(2000~2014)-KT(2015~)
용덕한포수2004년 2차 8라운드동아대-두산(2004~2012)-롯데(2012~2014)-KT(2015)-NC(2015~)
이영수내야수2000년 2차 4라운드한양대-KIA(2004~2011)-삼성(2013)
장준관투수2000년 2차 1라운드LG(2000~2008)
이정호투수2001년 1차삼성(2001~2004)-현대(2005~2007)-넥센(2008~2010)
안지만투수2002년 2차 5라운드삼성(2002~2016)
곽동현포수2003년 2차 7라운드한양대-삼성(2007, 2011)
김형준투수2003년 2차 8라운드영남대-삼성(2010~2011)
조현근투수2005년 2차 2라운드두산(2005~2006)-삼성(2006~)
유선정포수2006년 2차 6라운드현대(2006~2007)-넥센(2008~2016)
백정현투수2007년 2차 1라운드삼성(2007~)
이상호내야수2010년 육성선수 입단강릉영동대-롯데(2010)-SK(2011)-NC(2012~)
우동균외야수2008년 1차삼성(2008~)
김민수포수2014년 2차 2라운드영남대-한화(2014)-삼성(2015~)
김정수외야수2014년 육성선수 입단성균관대-한화(2014~)
박화랑투수2010년 육성선수 입단삼성(2010~2012)
배진호내야수2015년 2차 10라운드고려대-삼성(2015~)
조무근투수2015년 2차 6라운드성균관대-kt(2015~)
최민구외야수2015년 2차 5라운드영남대-삼성(2015~)
박승욱내야수2012년 3라운드SK(2012~1)
이동훈외야수2012년 4라운드삼성(2012~)
김성민투수2017년 2차 1라운드SK(2017~)
이수민투수2014년 1차삼성(2014~)
정용준투수2015년 2차 6라운드넥센(2015~)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2. 1953년 우승팀. 1951~1952년 대회는 6.25 전쟁으로 중단
  3. 1924년에 창단 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KBO에서 발간한 한국야구사 연표에 따르면 1928년에 창단되었다고 나와 있다.
  4. 고시엔 조선 예선.
  5. 당시 멤버는 양일득(1루수), 편순윤(3루수), 오명오(좌익수), 니헤이(二甁. 투수), 최달수(崔達壽. 우익수), 스기하라(杉原. 포수), 미토(三戶. 중견수), 나이토(內藤. 2루수), 사다(佐田. 유격수).
  6. 17회 용산중에 6-5 패, 18회 인천상업 4-3 패
  7. 당시 고시엔 예선에 참여한 학교는 총 36개교 전후였다.
  8. 최동원상과는 다르다.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상
  9.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