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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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길리우스[1]
메가스터디 역사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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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통파! 흐름과 핵심으로 이해하는 역사

1 개요

경상남도 진주 출생으로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인천지역 고등학교(서인천고등학교)에서 교사로서도 일했었다. 같은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서양사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박사과정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하던 도중 생계문제로 돈을 벌기 위하여 중퇴하였다.[2]

원래는 현역으로 진주교육대학교에 합격하였고, 본인의 장래희망이 교사였기 때문에 진학하고 싶은 대학이었다고 한다. 진주교대를 졸업해서 고향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원래의 소박한 꿈이었으나, 부모가 너는 반드시 서울대에 가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서울에 있는 노량진 대성학원에 강제로 집어넣는 바람에 재수를 하였고 결국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3]

수강생으로 치면 1타는 아니지만 주로 역덕후들을 포함해 특정한 매니아층들이 있는 편이다.[4] 매니아층 사이에서는 종길리우스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린다.

스카이에듀에서 이현, 이용재와 함께 사회탐구영역을 맡았으나 2010년 메가스터디로 이적하였다.

2 수업 스타일

매우 꼼꼼한 개념정리가 유명하다. 수업 중 칠판에 적는 필기량이 만만치 않은데, 시험에 나올게 거의 다 정리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교재 부록으로 필기노트를 주기 때문에 필기 때문에 팔 아프거나 할 일은 없다. 그래도 직접 쓰는게 실력향상에 도움된다. 교재 안에도 필기하기 편하도록 별도의 페이지를 모눈종이로 준비해 놓기도 한다.

암기와 이해를 둘 다 강조한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좋은 점수를 못받는다고... 때문에 강의 스타일이 고종훈의 핵심 정리식 스타일과 강민성의 흐름 이해식 스타일의 중간쯤 위치해있다.

역사 관련 독서를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는 편인데 이를 바탕으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평소에 잘 모르는 역사 속 비화들을 잘 알려준다. 이런 지식들을 많이 알고있긴 하지만 서양의 유명한 고전쪽은 잘 안 읽는것 같다. 여튼 수업에서 발휘하는 지식덕분에 역덕후들의 취향에 맞는 수업이 될 수 있다. 어른의 사정으로 인한 비정한 권력투쟁도 자세히 알려주는데 국사의 경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평소 학생들이 몰랐던 지식을 알려주고 고정관념으로 인해 잘못 알고 있던 상식들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매우 비판하는데, 현대 국제무대에 대해서도 강대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다.

내가 역사 강사 하는 이유는 두가지 인데 하나는 너희들 점수 올려주는 것이고 둘은 너희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아주기 위함이다.

서양사 전공이기 때문에, 세계사 강의에서는 수업도 동양사 보다는 서양사 쪽에 좀 더 비중을 두어서 하는 편이다.

개념편 강의의 퀄리티는 훌륭하지만 일부 강좌는 스튜디오 촬영이라 판서 위주로 진행하는 강의 스타일로 인해 현장감이 떨어진다. 때문에 스튜디오 강좌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한 편.

가끔 대선이나 정치권 관련 멘트를 날려주기도 한다. 진보 성향의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출처필요 자신의 수업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조카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완화된 듯하다. 현재는 수업의 이념적 편향을 줄여 근현대사의 경우 최태성처럼 좌우의 입장을 모두 설명한 다음 학생의 판단을 유도하는 식이다. 자신의 수업이 구설수에 오르면 상대적으로 더 좌파에 가까운 이현손주은을 끌어들이겠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한번은 어떤 수강생이 이종길에게 대놓고 “듣보잡인데 강의는 잘하네”라고 하면서[5] “그런데 선생님 강의가 너무 우경화되어 있는 것 같네요.”하니까 순간 이종길의 멘탈이 끔살 및 순삭당한 바 있다. 이 때 잠깐 쉬었다가 하자고... 이 이야기를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아내가 ‘푸하하핫 네가 우익이라고 깔깔깔’하며 약 20분간(?) 웃었다고 한다.

3 인지도

스카이에듀에 있을 때는 나름 스카이에듀의 역사과 대표강사로서 인지도를 떨쳤으나, 오히려 메가스터디로 옮기면서 존재감이 줄어든 듯하다. 1타강사 고종훈이 버티고 있는 데다가 버스광고 및 인터넷 알바 등의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라영환에게 밀리기 때문. 그런데 결국엔 라영환이 3타 그러나 세계사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의 인지도를 지닌 편이며 디시인사이드 인강 갤러리에서도 인정받는 분위기. 대중적인 스타강사라기보다는 아는 사람만 알고, 상위권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진 경우에 가깝다. 메가스터디에 들어오기 전의 신승범이나 대성마이맥의 박건호 정도의 포지션.

4 고종훈과의 인연(?)

메가스터디로 이적한 이후, 왠지 모르게 고종훈과 자주 엮이는 편이다. 2010년에 새 교육과정을 대비한 한국사 강좌를 연합하여 찍었으며, 2011년에는 세계사 의 초스피드 개념 강좌를 연합하여 찍었다. 세계사의 경우, 수험생들은 "동양사와 서양사의 지존이 만났다"며 환호했다.

결국 2012년에는 세계사 기본 개념 강좌를 연합하여 촬영하였다.[6] 고종훈이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1타 강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종훈이 이종길을 챙겨주는 느낌이 든다. 이종길의 입장에서는 인지도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

2015년도 수능 대비 개념 강좌에서도 동양사, 서양사를 각각 맡아서 진행한다.

5 기타

강남지역에 거주하는데, 시골 출신인 자신과 부유하게 자란 자신의 자식들과의 정서적 괴리를 수업 시간에 자주 언급한다.

진주 출신이라 경상남도 억양이 있다. 전라도 억양의 강민성, 경상북도 냄새가 많이 나는 강원도 억양의 고종훈과 함께 역사 강사 방언 트로이카를 이룬다고 볼 수 있을듯. 사실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2016년에 머리를 심었다! 빈약한 머리가 풍성해져 사람이 달라진 느낌이 난다. 덩달아 강의도 재미있어졌다. 그럼 사진도 바꿔
  1. 이종길 강사의 별명. 이름을 적절히 라틴어식으로 변경하였다.
  2. 만일 박사 과정을 마친다 하여도 석사 졸업이 아닌 수료이기 때문에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하고 박사 과정 수료 학력만 얻었을 것이다.
  3. 당시의 서울대 사범대학과 오늘날의 서울대 사범대학의 위상의 차이가 있긴 하나 진정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의 국립대학 사범대학 학생은 학비의 50%와 별도의 생활비를 국가에서 지원받는 대신 졸업 후 5년간 교원으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했는데, 지금과 달리 경제성장기였던 당시에는 사기업에 취직해도 퇴직하거나 비정규직으로 강등될 염려 없이 정년까지 근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의 경제적 메리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2000년대 이후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상황이었다(실제로 2000년대 이후 공립학교 교사로 임용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면서 일단 임용된 교사의 능력은 대체로 상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서울대라 할지라도 사범대학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하였다.
  4. 사실 그의 주력과목인 세계사부터가 극히 매니악한 과목이긴 하다.
  5. 여기까지만 하면 문제가 없고 이종길도 자신의 인지도에 대해서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듣보잡까진 아닌데 허허 하면서 걍 넘어가는 식이었다
  6. 고종훈+이종길=고종길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