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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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스윙의 대명사. 물론 얼굴생김도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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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뭔가 잘생겼다약간 심수창 닮은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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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타격코치. 마이너스의 손
LG 트윈스 No.72
서용빈(徐溶彬 / Young-Bin Seo)
생년월일1971년 1월 2일
국적대한민국
체격183cm, 82kg
출신지서울특별시 용산구
출신학교서울금양초 - 선린중 - 선린상고 - 단국대
포지션1루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94년 2차지명 6라운드(전체 41번)
소속팀LG 트윈스(1994~2006)
지도자 경력LG 트윈스 타격코치(2009~2013)
LG 트윈스 육성총괄코치(2015)
LG 트윈스 타격코치(2015~현재)

1994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성래(삼성 라이온즈)서용빈(LG 트윈스)장종훈(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역대 주장
양준혁
(2001)
서용빈[1]
(2002)
유지현[2]
(2002)
LG 트윈스 역대 주장
조인성
(2005)
서용빈
(2006)
이종열
(2007~2008)

1 소개

LG 트윈스의 코치로 2008~2013년은 LG의 1군 타격코치를 지냈으며, 2014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보조 타격코치를 거쳐 육성군 총괄코치로 복귀했다가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선수시절 포지션은 1루수이며 당시 등번호는 62번.

선수시절의 명예를 코치가 되어 모두 다 깎아버린 또 다른 대표적인 인물. 그리고 박병호와 악연이 깊은 코치. [3]

2 선수 시절

신인 드래프트 순위가 전체의 뒤에서 2번째[4]였을 정도로 신인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5] 하지만, '94시즌을 대비하던 LG 트윈스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당시 타격인스트럭터로 초빙되어 캠프에 머물던 일본프로야구레전드 장훈이 "넌 타격 폼에 특별한 단점은 없다."면서 서용빈의 부드러운 스윙을 칭찬하게 되는데, 이에 피그말리온 효과가 발휘되어 서용빈은 자신의 타격에 확신을 가지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되고, '미스터 LG' 김상훈이적으로 공백이 된 1루 자리에 경쟁자허문회를 제치고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응답하라 1990 - LG 우승의 주역, 서용빈과 허문회의 '엇갈린 운명'.

신인 데뷔 시즌('94) 뛰어난 1루수비와 타율4위, 그리고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1루수 골든글러브를 획득, 김재현, 유지현과 함께 1994년 LG의 신인 3인방으로 등장해 신바람 야구로 LG의 우승을 견인했다. 여담으로 이 해 데뷔시즌 최다안타라는 대기록을 작성할 뻔했지만, 이 해의 괴물 이종범때문에 아쉽게 안타 2위에 그친다. 잘 생긴 외모로 많은 팬을 거느렸으며 당시 인기스타 유혜정과의 결혼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조성민 - 최진실 커플과 함께 대표적인 야구선수-톱스타 부부이었지만 두 부부 다 파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도 조성민에 비하자면 최후가 비참하지 않은 게 다행. 서용빈은 하필 은퇴식 직후에 이혼했으니...

전반적인 그의 선수 생활을 보자면, 운이 정말 없다고 볼 수 있다. 1998년 개막 직전 교통사고로 인한 턱관절 손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그의 불운은 시작되었다. 다행히 포스트 시즌에는 출전했지만, 다음해인 1999년에는 병역비리 사건로 구속되면서 시즌을 날렸고, 2000년 다시 복귀하였지만 부상과 공백기 동안의 훈련부족으로 매우 평범한 성적을 남긴다. 결국 2001년 소송에서 패하고, 졸지에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할 위기에 몰린 서용빈은 단 하나 남은 희망이었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승선을 목표로 야구에 매진하게 된다. 2000년에 양준혁 영입에 불만을 표했던 것과는 다르게 2001년 시즌에는 포지션 불만없이 야구를 하였고, 2002년 초반에는 3할을 넘나드는 타격을 보여주며 대표팀 승선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엔트리에서 탈락, 그 후에 모든 것을 놔 버렸는지 힘빠진 타격을 보여주다가 최소한 시즌만이라도 끝내고 입대하게 해달라는 LG 구단의 요청도 거절당하면서 2002년 8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 때가 우리 나이 32세. 나이를 생각해보면 2002년이 사실상의 마지막 시즌이었으며 당시 언론에서도 서용빈의 마지막이라는 보도를 하게 된다. 서용빈의 빈 자리는 당시 김성근의 특타를 엄청나게 소화한 최동수가 맡게 되었고, 최동수는 그해 포스트 시즌에서의 맹활약으로 1군 레귤러가 될 수 있었다. 최동수는 사실 서용빈의 동기였지만, 재능이 워낙 늦게 만개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2005년 소집해제 후 선수로 돌아왔으나 결과는 당연히 신통치 않았고, 2006년에 주장을 맡았으나 결국 김정민과 같이 동반 은퇴를 하게 된다. 참고로 은퇴식이 있던 잠실 야구장에는 은퇴식 장내 아나운서로 송인득 MBC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고, 시구는 안재욱이 했다!!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의 은퇴 격려 메시지가 전광판을 비췄는데, 그중 김재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신바람 야구를 주도하던 신인 3인방 중 한 명은 은퇴식의 주인공, 한 명은 코치로, 마지막 한 명은 다른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당일 관중석을 채운 수많은 LG 팬들은 썩을 놈의 성적이 더해져여러 모로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LG 팬들의 추억 속에 신인선수 서용빈은 비교적 좋게 남아있으나, 커리어를 종합해 보면 뛰어난 성적을 낸 선수라고는 보기 힘들다. 애시당초 데뷔 후 제대로 풀 타임 시즌을 뛴 것이 1994년, 1995년, 1997년, 2001년이 전부이며 나머지 시즌은 부상으로 시즌 중 아웃되거나 개인사로 제대로 시즌을 치루지 못했다.

특출날 것 없는 커리어에 비해 그가 LG 팬들의 기억에 좋게 남아 있는 이유는 중요한 시합에서 이상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기 때문으로, 시즌 중 중요한 경기에서의 적시타나 끝내기 안타, 그리고 시즌 중에 부진해도 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의 중요한 게임에서 이상할 정도로 잘치고 잘나가는 활약 덕분에 기록보다는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었고 그것이 초라한 커리어에 비해 과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인기의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9회말 주자 1, 2루에 4대 5로 뒤진 상황에서 성준을 상대로 친 끝내기 2루타인데, 당시 천보성 감독은 최동수를 대타로 쓰려고 했으나 서용빈은 이를 거부하고 그대로 타석에 나와서 경기를 끝냈다.

다만 특기할 점이 하니있으니 1루 수비 능력 하나는 역대급이었다. 신국환, 박종호 등의 아리랑 송구나, 기습타구들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처리했다. 나갈 것 같은 송구를 다리를 쭉 찢어서 아슬아슬하게 포구해내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문제는 1루수가 장타를 요구받는 포지션이기에 지나친 컨택 일변도의 스타일은 별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슷한 후배 야구인으로 채태인, 박종윤 등이 있는데 채태인은 2013 시즌 타격에 눈을 뜨며 공수겸장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박종윤은 풀타임 주전으론 부적격이란 평을 듣고 있다.

3 지도자 시절

3.1 2009 ~ 2011

선수 생활을 접은 후엔 LG 구단의 배려로 일본으로 건너가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연수를 받은 후 2008년부터 LG의 스카우트로 잠시 있었다. 같은 해 시즌 중 육성군 타격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0년부터 1군 타격코치를 맡았지만, 실적은... 2010 시즌 LG 타자들의 부진이 구단 역사상 최악이 되자, 분노한 LG 팬들이 서빙고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는 어느 경기 중계에서 서용빈이 선수들 타격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수첩에 적고 있는 모습이 나왔는데 엘지팬들이 서용빈의 코치로서의 능력을 심하게 불신하고 있기 때문에, 저건 타자들에 대한 필기가 아니라, 빙고놀이(...), 혹은 동물의 숲(...)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더 골때리는 사실은 이 별명이 히트한 이후에 디씨 팀갤에서는 실제로 팀갤 전용 빙고놀이(실제 경기에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을 5*5 빙고판에 적었다가 경기를 시청하면서 실제 벌어진 상황을 체크하는 것)가 유행하게 되었다! 흠좀무(…)

아이러니하게도 박종훈 감독이 재박존의 존폐를 두고 코치진에게 물어봤을 때 X-존 유지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는데[6] 그 중 서용빈이 가장 강력하게 X-존 유지를 주장했다고 한다. 거의 랩수준으로...아마도 본인자신이 1루 포지션이면서도 장타력이 없었던것과 구장여건때문에 장타를 노리지 않았던 아픔도 있었기에 X-존 유지를 강하게 주장한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2011년에 문제의 X-존은 결국 없어졌다.

2011년 8월 부로 LG타자들의 극심한 타격 부진 때문에 무능 타코로 불리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김기태 감독의 취임과 함께 김무관이 1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자 2군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것으로 LG의 2군 타자진은 다만 이 여파로 LG 팬 사이에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던 허문회 2군 타격코치의 자리가 없어지면서 짤렸다. 결국 허문회 코치는 상무를 거쳐 2012 시즌 이후 넥센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고, 덕분에 넥센만 이득을 봤다.박병호도 주시고, 이택근 치료비 대신 내주시고, 허문회도 주시고, 염경엽도 돌려 주시고 대신 저희는 반년 렌탈 마무리, 조작범 한 놈 드릴게요 ㄱㅅ 그런데 2013 시즌에 다시 1군 보조 타격코치로 올라왔다.

이 때 타자들에게 타격 폼을 이리저리 바꾸게 해서 스트레스를 이만저만 받게 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박병호가 이 일을 들어서 이름은 거론을 안 했지만 이 일을 강력히 디스한 바 있다. 그 대상으로 김용달 & 서용빈이 올랐다.

게다가 2009~2011년 사이에 박병호가 자기가 시키는대로 안 쳤다고 귓방망이를 후려갈긴 사실이 팬들에게 뒤늦게 알려지자 더욱 까였다.해당 방송 영상. 이후 기자가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확인 사살.

사실 팀 돌아가는 사정에 빠삭한 LG 팬 사이에서는 선수로서의 경력이나 코치로서의 경력이 일천한 서용빈이 1군 타격코치라는 중책을 맡았던 것에 대해서 2011 시즌 후에 카더라가 은근히 돌았다. 내용인 즉슨 모 LG 골수팬 단체[7]분들께서 우리도 당시 잘 나가던 다른 구단들처럼 순혈 프랜차이즈 코치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LG 프런트에 징징댄 덕분에 서용빈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는 것. 이것이 사실이라면 LG는 프런트나 골수팬이라는 분들이나 생각이 참 짧고 단순하다고 평할 수 있겠다.하지만 고인 물과는 별도로 모 감독 경질론을 주장한 것이 바람직했다는 것만큼은 2015년이 되어서야 모 팀이 2년에 걸쳐 증명해주고 있다[8]

3.2 2012년

2012시즌 LG의 2군 타격코치를 맡아 타자들을 이끌었고...LG 2군의 타자들은 사멸했다. 2011시즌까지 LG가 1군에서는 죽을 쒀도 2군에서만큼은 상당히 좋은 성적을 남긴 타자들이 많았는데 이 서용빈이 2군 타격코치를 맡으면서 LG 2군 타자들의 타격은 전원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단 한명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선수가 없어서 신고선수까지 올려서 썻다고 애써 옹호하는 소수의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다른 8개구단 2군도 마찬가지이며 특히나 1년사이에 LG 2군의 공격력을 초토화시켜버린 책임은 분명 서용빈에게 있다고 할수 있다. LG팬들에게 있어서는 타격코치판 양상문 & 이상군 취급. 그 양상문이 감독이 되어 2014년에 LG를 9위에서 4위로 올린건 함정

3.3 2013년

LG 트윈스에서도 뒤늦게 코칭스태프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2군쪽에 계형철 & 신경식 & 김민호 코치를 보강했다[9]. 그리고 2군 메인타격코치는 신경식으로 교체되었고 2군 보조타격코치로 김선진이 들어가게 되고 서용빈은 1군 보조 타격코치가 된다. 메인 타격코치 밑에서 배우는 구조가 된것인데 구단에서도 서용빈의 코칭 스킬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듯 하지만 팬들의 시선은 따갑다. 일본 연수가고 그동안 코치해오면서 뭘 배웠냐고 까였고 선수시절 사생활 문제와 엮어서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까이고 있다. 일부팬들은 최동수가 은퇴해서 타격코치쪽으로 나간다면 서용빈을 밀어내버리고 대신 하길 바랄정도다. 야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문상열기자가 허문회 코치의 야구 인생은 마라톤 이란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돌직구 성으로 LG 구단과 서용빈을 디스하는 듯한 내용도 포함시켰다. LG는 선수단 운영도 낙제지만 지도자를 보는 안목과 선택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라면서. 너무 일방적으로 LG를 디스했다며 비난하는 야구 커뮤니티의 반응도 있었지만 오랜 기자경력동안 나름대로 야구계 & 선수들의 뒷이야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기에 이런 기사를 쓴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작년에 서용빈이 맡았던 2군 타격코치에 신경식이 선임되면서 2군의 타선을 확실하게 부활시켜놓고 있는 중인지라 코칭 스킬의 능력차가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7월 26일 두산전을 앞두고 타격을 지도하다가 허리 부상으로 앰뷸런스로 후송되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2013년 시즌 후 김기태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타격코치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이 은퇴한 후 연수를 받았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다시 한 번 연수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해당 구단의 타격코치 보좌를 맡는 것이 결정되었다.

3.4 2015시즌

2015년부터 육성총괄 코치가 되어 구단에 복귀한다. 일단 타자를 키운다고는 하는데, 과거 이력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망주들을 망칠 지, 오히려 연수받고 코칭 실력이 늘어날지는 더 지켜봐야 할것같다.

그러다 1군 타코양반이 가루가 되도록 까이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적어도 서용빈은 1군에 있었을 때 121홈런으로 팀 3위, 팀타율 0.276으로 전체 3위를 기록했기 때문.

결국 6월 15일 노찬엽이 육성총괄 코치로 내려가고, 박종호와 함께 콜업되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오게 되었다.링크 올라온 이후 팀 타격을 살려내면서 노찬엽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나 팀타격이 살아난건 코치 교체로 인한 일시적인 버프일수도 있으니 더 두고봐야 할듯 싶다. 다만 젊은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타격 재능을 이끌어 내고 있는 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듯.......

3.5 2016시즌

일본에서 뭐 배운거냐 대체
노찬엽보다 더한 타격코치[10]
LG 트윈스 철밥통 2호기
니가 코치냐 철밥통이지!
3월 12일까지 LG는 시범경기를 내리 4연승하고 있는데, 정주현, 채은성, 안익훈, 이천웅 등 유망주들의 활약이 큰 공이 되고있다. 코칭의 힘인지는 시즌을 치뤄야 알겠지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빈타로 허덕이기 시작하고 득타율,팀 타율이 최하위로 내려가며 일본 연수가서 뭘 배웠는지 모를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욕을 먹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전임자인 노찬엽이 역대급으로 무능한 모습을 보여서일 뿐...이었는데 다시 욕을 먹고 있었지만

손주인 같은 고참들이나 히메네스는 타격감이 살아나며 채은성이 주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형종, 유강남 등이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6월 들어 6월의 팀타율은 1위지만, 처참한 득점권 타율로 인해 다시금 욕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발전을 한 모습도 있긴 한데, 적어도 예전처럼 선수단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는 다는 것..... 하긴 감독이 그런걸 워낙에 싫어하니 알아서 몸을 사리는 걸수도 있겠지만.....

2016년 7월 2일 경기에서 정의윤 최승준에게 백투백 홈런을 맡으며 팀이 처참하게 패배해 서용빈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박병호를 때린 사건에서 흔들렸던 팬심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하고 있는 것. 양상문과 함께 퇴출하라는 의견들도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6시즌 들어 1군에서 부진한 타격으로 2군에 내려간 선수들이 콜업되기만 하면 맹타를 휘두르는 현상이 매번 나타나면서 정의윤, 최승준의 탈쥐효과와 맞물려 그의 무능력을 성토하는 팬들이 많아지고 있다.

2군에서 휴식을 취하고 온 선수들이 맹타를 휘두르다가 1군에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비실비실해지는 것을 두고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서용빈이 만졌죠? 삼진이에요라는 유행어까지 돌고 있을 지경...(...) 탈용빈 해야겠네 아니다 허문회 코치를 데려오면 된다

거기다 포스트 시즌에 들어가고나서 클린업 트리오들이 전원 노답 타격을 보임에도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고있다
걍 나가줬으면 좋겠다

게다가 만루찬스에서 번번히 말아먹는 타선을 보면 이양반이 대체 뭐하는 양반인지 심히 궁금할정도이다
포스트시즌 역적등극

4 여담

병역면제를 위해 병무청 직원에게 2,500만원을 주고 술접대를 한 혐의로 기소 돼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적이 있다. 다만
당시 서용빈의 부상상태 등에 비춰볼때 병무청 직원에게 돈을 준 대가로 허위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보여지는 만큼 병역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던 서규원 양의 친아버지다. 은퇴 후 일본 연수를 앞두고 2006년 12월에 이혼했으며, 유혜정과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볼 때 딸의 양육권은 유혜정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4LG 트윈스126493.318
(4위)
157
(2위)
30
(2위)
447272
(4위)
644.420.371
1995126441.30613528
(5위)
245348642.406.365
199695248.242604242928329.323.319
1997120399.316126256
(4위)
46951445.439.379
19981군 기록 없음
1999
2000100288.2747912224029437.351.355
2001126371.286106194
(4위)
04936442.358.357
200288273.2867816132735425.385.344
2003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4
20051539.12851102301.205.150
20063273.192144019705.288.241
통산(9시즌)8282625.290760139222235030731270.384
.353
  1. 시즌 중 군입대로 유지현에게 주장직을 넘겨줌.
  2. 서용빈의 시즌 중 군입대로 주장직을 이수받음.
  3. 박병호는 서용빈이 자신에게 이후 사과를 했었다며 해당 사건의 언급을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4. LG 트윈스2차 6라운드(전체 41순위) 지명.
  5. 선수시절의 져지번호 'No.62'가 이의 방증인데, 당시만 해도 ― '반드시'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되(e.g. 정민철55번, 염종석68번) ― 대체로 낮은 번호대의 선수가 주전이고, 50~60번대 번호를 달고 있으면 1군의 벤치멤버 내지는 2군급 선수, 70번대 이후는 코칭스텝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었다. 여담으로 이 져지번호 'No.62'에 관하여 좀 더 부연해보면, 1994년 데뷔 이후 몇 년간 서용빈이 승승장구하면서 이 번호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되었으나, 2년 뒤인 1996년한국프로야구 최초이자 신인 최초 30-30 클럽의 멤버가 되어 전인미답의 금자탑을 쌓게 되는 현대 유니콘스이 선수져지번호62번을 택하면서 'No.62는 서용빈의 아이덴티티'라는 면에서 빛이 다소 바래게(?) 된다. 서용빈은 이후 미디어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저 선수가 내 기운을 뺏어간 거다."(...)라면서 아쉬워했다고.
  6. 당시 X-존 유지하자는 LG 코치들이 3분의 2였다.
  7. 2002 시즌 후 신바람 야구가 아니라며 김성근을 자르라고 난리친 것으로 유명한 LG팬 집단이다. 이 분들이 팬으로서의 경력도 길고 능력이나 돈도 상당하고 정말 한가하신 분들이라서 LG팀 프런트와의 관계가 꽤나 밀접하다.
  8. 실제 당시 김성근 경질을 주장했던 70대 할머니는 1인시위를 한 한화팬과 정반대 의미로10년도 넘게 지나서야 재평가를 받게 된다.문제는 이후의 감독선임
  9. 이 중 계형철,신경식 코치는 김기태 감독과 인연이 있다.
  10. 적어도 노찬엽은 타자들의 폼을 건드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