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

李亨根
1920년 11월 2일 ~ 2002년 1월 13일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8대 정일권9대 이형근10대 백선엽
10대 백선엽권한대행 이형근11대 송요찬
대한민국 국군합동참모의장
초대 이형근2대 정일권

1 일생

충청남도 공주 출생.

1942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전쟁말 대륙타통작전 관련 이야기를 회고록에서 한다..

대한민국 국군 군번 제1번으로 유명하며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장군의 사위이다. 이 사항 때문에 필요없이 욕을 먹기도 한다 참고로 여기서 국군 제1번이란 회고록에 의하면 군사영어학교 등록번호이고 성적이라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군사영어 학교에서 군번 취득용 시험은 없었다는게 오늘날의 기록이고 등록번호등은 채병덕등이 앞선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사항을 감안하면 5번대 이후라는 것이 채병덕 평전에서 주장하는 내용. 물론 일본군 소좌인 자신은 1번, 동기생인 이종찬 소좌가 2번[1]
이형근의 회고록에서는 자신이 번호가 너무 빨라서 미군에게 내가 일본군에서 계급이 낮으니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자 "우리는 일본군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국군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과거 일본군에서 보내준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가 결정하였다."
라고 하였다(이전에는 '군사영어학교시험 성적으로 결정하였다.'라고 하였지만 안통하니 말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채병덕 평전에서는 이미 망한 일본군에서 무슨 경황이 있다고 복무성적등 자료를 보내주는가 하며 비판하였다.

문제는 채병덕과 군번으로 일한 갈등 때문에 국군 탄생과 동시에 파벌이 생겼다. 이 갈등 와중에 채병덕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완벽하게 국군을 말아 먹는다. 그리고 이형근은 채병덕이 수상하다며 그의 회고록에서 계속하여 비판한다(채병덕 평전에는 이형근이 장인 백으로 군번 1번을 받았다며 비난한다).

1946년에 조선경비사관학교 교장을 맡았고,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겸 육군사관학교 교장, 통위부 참모총장, 제8사단을 역임했다.

6.25 전쟁이 터진 1950년 6월 제2사단장에 부임했고, 1951년 9월 휴전회담 당시 한국측 대표를 맡았다.

1956년 9월 제9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으며 백선엽, 정일권과 함께 50년대 군 주축 세력으로 활약하다 1959년 8월 대장으로 전역했다.


2 기타 이야기거리

백선엽의 군과 나 이후에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이란 회고록을 월간중앙에 연재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제시한 한국전쟁 10대 미스테리가 아직도 인터넷에서는 유명하다. 오히려 업적보다도 이런 점으로 더 유명한 편.

2000년대 군사지에서 소개한 미 군사 고문단 관련 연구자료와 미 군사 고문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초기에 주요 침공로인 축석로 방어에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전 후 오전 8시에 각 부대 지휘관의 원대 복귀를 명했고, 이형근의 고문관도 비슷한 시기에 부대 복귀를 명받았지만 막상 이형근은 오후나 되어서 복귀한다. 그때는 이미 축석령 부분의 방위는 포기 된 상태[2]


10대 미스터리는 주요한 떡밥이라서 연구가 되긴 했는데. 2012년 현재는 그렇게 신빙성 있는 의견은 듣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연구 학자들이나 군 전문가들의 연구로 인해 부정되고 있으며[3] 일부 정치적인 논쟁거리로만[4] 나오는 편. 오히려 이형근의 여러 실책들이 묻히는 감이 있긴 하다.
  1. 채병덕과 군번싸움으로도 말이 많았지만, 사실 김홍일이나 김석원 같은 원로가 군번 1번을 상징적이나마 받지 못한 것이 당대에도 말이 많았다. 일본군 경력자인 김석원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김홍일 장군은 광복군 출신이었는데도 말이다.
  2. 간첩...론은 아니지만, 38선에서 흔히 일어나는 분쟁 정도로 가볍게 봤을 가능성도 있고 미 고문단 보고서도 이형근의 그런 실책을 암시하는 정도이다
  3. 대체적으로는 이형근 본인의 판단의 오류와, 초창기 한국군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불운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4. 이를테면 유재흥이라든가, 뉴데일리같은데서 나오는 좌빨 암약설이라든가. 최근에 조선일보에서는 모태범이라는 국군 장교가 이 10대 미스터리를 뒤에서 획책한 통적분자라고 나왔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날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