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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문명 | |||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황하 | 인더스 |
1 개요
기원전 2500년 경 ~ 기원전 1500년 경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달한 인도 최초의 문명으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이다.
2 드라비다인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이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와 같은 계획도시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층적 토양을 이용한 농경과 목축을 기반으로 고도의 도시문명이 성립되었다. 도시 중 모헨조다로는 도로와 집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고, 급수/하수, 쓰레기 처리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토기와 청동기가 사용된 흔적과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교역한 흔적도 발견된다. 서쪽과의 무역은 이후에도 이어져 유럽인들이 2000년 동안 그 놈의 인도 가는 길 찾겠다고 세계를 싸돌아다니는 계기가 되었다. 인장, 도장류의 인더스 문자는 아직까지 완전히 해독되진 않았다.
드라비다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중동인들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동진을 멈추고 정착했다는 설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양 세력이 서쪽으로 이주해왔다는 설 등이 대립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란 남부에 있던 엘람 문명의 언어가 드라비다어족과 같은 계열이라는 쪽으로[1] 연구가 진행되면서 해양 세력설은 사실상 부정되고 있다.[2] 반면 이에 따르면 드라비다인들은 데칸 고원에서 인더스 강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인더스 강 주위에 선주하다가 데칸 고원으로 밀려났다는 얘기가 된다.
아리아인의 남하 이전 모종의 이유로 쇠퇴하였다. 기후 혹은 인더스강의 변화가 이유로 지목되고 있지만, 명확한 이유는 아직도 미지의 상태이다.
3 아리아인
이후 인도는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리아인의 진출이 시작된 기원전 약 18세기경부터 수천년간 통일, 분열, 재통일을 반복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이 때문에 인도 남부와 북부 사람들의 외모가 꽤 다르다. 아리아인 세력이 들어온 북서부에 가까울수록 피부가 밝으며, 반대쪽인 남인도와 현재의 방글라데시로 갈수록 점차 어두워진다.[3] 흔히 아리아인이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드라비다인을 전쟁으로 몰아내고 이들을 부렸다는 설이 널리 퍼져 있으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점진적인 정착과 확장과 이합집산으로 수정되는 추세이다.
아리아인은 정착 과정에서 베다를 중심으로 브라만교 제단을 구성하였으며,[4] 엄격한 신분제인 바르나 제도를 만들어냈다. 바르나는 피부색이라는 뜻으로, 앞의 각주에서 언급했듯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은 피부색이 다르다. 이 제도는 후대에 직업적인 성향이 강한 자티의 구분과 함께 카스트 제도로 불리게 된다.
4 관련 문서
- ↑ McAlpin, David. "Elamite and Dravidian, Further Evidence of Relationships," <Current Anthropolog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75
- ↑ 여기에는 사실 실론 섬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이 현생 인류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도 영향을 줬다.
- ↑ 서유럽의 백인과 같지는 않다. 정확히 따지자면 아리아 민족의 발상지는 오늘날의 동 우크라이나 또는 동 아나톨리아 일대이며, 이들 중 일부가 동진하여 이란과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지역에 정착하여 선주민과 혼혈되었다. 다른 일부가 서쪽으로 나아가서 유럽계 백인이 되었다.
- ↑ 그러나 최근에는 아리아인들이 원주민들의 종교를 받아들여 브라만교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