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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Civilisations of the World
Cradle of Civilisation(문명의 요람) 이라고도 한다.
세계 4대 문명 | |||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황하 | 인더스 |
1 개요
기원전 3500년 경부터 2000년 경 내외, 즉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에서 4000년 전 정도에 등장한 인류 최초의 문명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전까지 인간의 기술력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들 문명의 출현으로 역사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들 문명은 문자와 계급 체계를 갖추었고, 이 시기부터 도시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는 큰 불운이 시작되었다[1]
이들 4개 문명은 다음과 같다.
세계 4대 문명이라는 것은 본래 중국의 근대 사상가인 양계초(량치챠오)가 정의한 개념으로, 서구권 학계에서 나온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문명의 요람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들을 일컫는 말로, 처음 나왔을 때는 이집트 문명 하나만을 의미했지만,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등이 추가되었고, 나중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들을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나오는 등 시대에 따라서 숫자가 달라져 왔다. '세계 4대 문명'으로 불리는 것은 '문명의 요람'의 개념이 4개의 문명을 포함하던 시기에 동북아시아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며, 서구에서는 이를 '4대 문명'으로 숫자를 고정해서 지칭하지는 않지만, '문명의 요람'으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여전히 세계 4대 문명으로 불리는 4개의 문명들이다. 영문 위키에서는 신대륙 문명이 추가된 것 같다.
2 내용
4개 문명 중 3개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하 문명, 인더스 문명)은 아시아 대륙에서 나타났고 나머지 한 문명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타났다. 등장 시기로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가 가장 빠르고(BC 6000년경 ~ 3200년경) 인더스가 그 다음이며(BC 3300~1700년경) 황하 문명이 가장 느려서 나머지 3개 문명에 비해 약 1000년 정도 늦은 기원전 2000년경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은 나중에 서로 영향을 끼치지만 황하 문명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앞의 세 문명을 서양 문명, 황하 문명을 동양 문명으로 구분하기도한다.
이외에 황하 문명의 경우, 황하 외 중국 각지에서도 문명의 모습이 포착되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있다. 때문에 중국 쪽에서는 아예 중국 문명(혹은 중화 문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중. 미래엔 역사교과서에도 중국 문명이라 언급되어 있다. 근데 장강(양쯔강) 유역 정도를 제외하면 문명이라 불러주기 참 뭐한 수준이라(...) 아주 그냥 구석기 시대도 문명이라고 해라 삼황오제도 역사할 기세 다만 장강 유역에선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 확인되고 있기는 해서 황하-장강(혹은 양쯔-황하) 문명으로 부르는 경우는 있고 주류 학계에서도 이 명칭이 정착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기존에 황하 문명이란 용어가 너무 오랫동안 정착되어 아직 용어 사용이 바뀌지는 않고 있었다. 교과서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사 교과에는 '중국 문명'으로 교체되고 있다.
3 기원
4대 문명 개념의 원형은 량치차오의 "20세기 태평양가"(1900년)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개념은 동아시아에서 널리 수용되었지만, 그보다 앞서 등장한 '문명의 요람', 즉 초창기 문명이 발생한 여러 지역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을 갖고 있던 서양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5]
4 의의와 결과
드라비다 인들의 인더스 문명은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몰락했는데, 그 이유로는 여러 학설이 거론된다. 원인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인더스 문명은 아직 문자도 해독을 못한다.[6] 가장 유력한 멸망 원인은 몬순 지역이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벌어진 수계 및 기후의 변화. 이 때문에 도시를 지탱해줄 만한 충분한 배후 농경지가 사라지게 되어 도시 자체가 버려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 충격으로 잔존 문화가 소멸될 때까지 그래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7]
메소포타미아는 바빌로니아 이후 비교적 빠른 시기부터 이민족의 유입(히타이트, 아시리아 제국)에 따라 문명의 정체성이 이리저리 뒤바뀌는 버라이어티한 역사를 겪게 되었다. 그나마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서 대접받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집트사는 철기시대 먼치킨급으로 최선진국, 강대국이었고 왕조가 망한 이후에도 무역으로 잘 나가는 지역이었다. 이들은 모두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의 치하에 들어갔고, 알렉산드로스 3세의 헬레니즘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로마 제국의 세력권(일부는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에 들어갔고, 최후에는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됨에 따라 고유의 독자성을 잃게 되었다.[8]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은 나머지 3대 문명에 반해 중국 문명은 고립되어 있어서 그런지 동양뽕들의 생각과 다르게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약체였다.[9] 그러나 한나라 시기에 포텐이 터지더니, 여러 면에서 매우 강력한 문명이 되기 시작한다.
5 논란
4대 문명 이론이 이미 수십 년 이상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아메리카나 남아프리카 지역의 문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점. 소소한 소규모 문명으로 뉴기니 고지문명,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명, 아스텍의 먼 전신인 중앙아메리카 문명(올멕, 마야 문명), 잉카의 전신인 남미 북부 문명, 북아메리카 동부 문명(아메리카 원주민)이 있다.[10] 사실 중국 문명조차도 하나의 문명하나의 중국으로 묶기 힘들고 둘 이상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80년대 나온 만화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히라가 다이치 키튼은 4대 문명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구석기 교과서 같군요라고 디스했다. 작중의 키튼 자체가 작품 내에서 다뉴브 강 문명을 지지하고 있어서 작가가 게르만 빠라서라고 까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근데 애초에 작중에서 주인공이 미는 학설, 즉 소재로서 쓰인 것이지 작가가 그 주장을 학술적으로 민다는 것으로 보는 건 근거는 없다.
근래까지도[11] 교육현장에서 일본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4대문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사실 애당초 이런 걸 좋아하는 건 일본 스타일이지 서구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전통적인 서구적 관점에서는 황하를 제외한 다른 세 문명이 그리스와 로마를 거치며 유럽에 전해졌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오늘날 인류학, 고고학계에서는 이제는 4대 문명이라는 말을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
물론 "세계 4대 문명"이란 표현만 사라졌을 뿐이지 시대적으로 앞서고 규모로서도 크고 그 후 세계사에 영향도 큰 편이기에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다만 딱히 그 문명들로만 한정해서 최초의 문명을 규정하거나, 교육현장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사용하던 사람들도 편의상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탄생부터 학계에서 엄청난 토론과 논의를 거쳐 정설로 된 것이 아니다. 그냥 대충 지역마다 고대의 주요한 문명을 대략 말할 때 사용했을 뿐. 순위 결정전도 아니고 외국에서 나오는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과서들도 주요 문명들을 필두로 해서 열거를 해나가면서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좌파적인 학자가 쓴 세계사 서적에서는 의도적으로 저 네 문명 말고 다른 문명들도 존재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건 유튜브에 올라온 세계사 애니메이션. 고생하며 만든 명작이긴 하지만 다소 서구중심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것이 몇몇 문명을 간과했다는 이유에서다.[12]
북한에서는 1990년대 이후 세계 5대 문명이라며 대동강 문명설을 밀고 있는데 당연히 코메디로 여겨지며 인정 못 받고 있다. 평양의 단군릉같이 믿으면 심히 곤란하다. 비슷한 케이스로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제5의 문명으로 내세우고 환빠들이 동이족꺼라며 실컷 우긴 홍산문화("요하문화")도 있다. 환빠들은 아예 "4대 문명은 다 환국 거라능!" 따위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정신 나간 주장들은 무시하는 게 건강에 좋다
과거 신용하 서울대 명예 교수는 한강 문명설을 주장하는데, 고조선은 신석기 시대 후기 한강 주변에서 독자적 문명을 이루고 있던 한(韓)족이 만주의 예맥족(예+맥)과 연합해서 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활한 고양시, 김포시 습지(김포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고조선 세력의 경제적 바탕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고조선이 초기에 요동지방에 위치했다가 후기에 연나라에 의해 대동강 유역으로 밀려나갔다는 설이 지배적인 만큼 근거가 없다. [13]- ↑ 거꾸로 지구 생태계의 변화가 농사와 문명을 이끌었다는 주장도 있다.
- ↑ 초승달 지대, 애초에 '메소포타미아' 자체가 '강 사이'라는 의미가 있다.
- ↑ 지금의 파키스탄과 인도의 펀자브지방
- ↑ 뭐 당연히 저 4개의 문명들이 전부 나오고 흥망성쇠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니 관계성 자체는 있는 게임이다.
- ↑ 단, 4대 문명 기원은 오히려 서양의 문명의 요람 개념에 있다. 지금도 그런 것들이 조금 있지만 옛날에는 번역하면서 뭔가 원래의 뜻과 많이 다르게 되기도 했다.
- ↑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긴 텍스트가 필요한데 현재 남은 인더스 문명의 문자는 인장에 새겨진 몇 글자 수준밖에 없어서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 ↑ 고전적인 아리아 인 침공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 고고학적인 결과로 보나, 인도-아리아 어족의 확장 원인을 농경 문화의 확장에서 찾는 아나톨리아 모델로 보나, 인도 상위 카스트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R1a Y 염색체 하플로타입의 인도 유입 시기를 보나 침공 모델과 연결되지 않는다.
- ↑ 그나마 이집트는 이집트인의 장례풍습이나 생활문화 등을 요밀조밀 뜯어보면 역시 고대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됨에 따라 주객전도가 되었다는 거지만(...)
- ↑ 인구도 다른 문명들에 비하여 많지 않았다. 늦게 출발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 ↑ 그러나 북아프리카 - 서아시아 - 인도 -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이른 시기에 문명을 세웠고 다른 문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대문명들보다 시기적으로 뒤지며 어디까지나 독자적 농경혁명으로 도시 문명이 발생했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다만 사하라이남 지방에서는 이집트 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공존하던 문명들이 존재하긴 했다. 이집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게 아니지만.
- ↑ 2014년 개정 교과서는 확인바람
- ↑ 애초에 만든 사람이 역사 쪽으로 지식이 깊은 것은 아닌 듯하고, 위키백과
위키질로만 만든 것이고, 영미권 사람이다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 한반도의 농경 문화는 청동기 시절에 선진 농경 문화를 요동으로부터 도입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신석기 시절에는 농경이 대세가 아니었다는 말씀. 황하 문명도 청동기 시기 이전에는 쌀이 아니라 기장 농사로 먹고 살았고, 양자강의 문화로부터 쌀 농사를 배운 연후에야 쌀농사를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