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 왕조

인도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의 역사
인더스 문명
베다 시대드라비다인
십육대국
하리얀카 왕조 · 시슈나가 왕조
난다 왕조 · 마우리아 왕조
체라 왕조
촐라 왕조
판디아 왕조
인도-파르티아인도-그리스슝가 왕조사타바하나 왕조
인도-스키타이칸바 왕조
쿠샨 왕조서사트라프사타바하나 왕조
굽타 왕조바카타카 왕조카담바 왕조칼라브라 왕조
후나족바르다나 왕조찰루키아 왕조팔라바 왕조판디아 왕조
프라티하라 왕조팔라 왕조라슈트라쿠타 왕조
가즈니 왕조서찰루키아 왕조촐라 제국
고르 왕조세나 왕조야다바 왕조호이살라 왕조촐라 제국판디아 왕국
델리 술탄 왕조 · 노예 왕조마두라이 술탄국
델리 술탄 왕조
로디 왕조
구자라트 술탄국
말와 술탄국
자운푸르 술탄국
벵갈 술탄국
바흐마니 술탄국비자야나가르 왕국
무굴 제국 · 수르 제국데칸 술탄국마이소르 왕국
카르나틱 태수령
마두라이 나야크
무굴 제국
시크 왕국무굴 제국영국마라타 동맹
영국 동인도 회사
영국령 인도 제국
파키스탄인도 공화국
파키스탄방글라데시

600px-Ghurids1200.png
AD 1200년 경 고르 왕조의 판도.

1 개요

Ghorid/Ghurid Sultanate. 12세기에서 13세기 초(1100? ~ 1215)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동부와 인도 북부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 중심지가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의 고르(구르) 지방이었기 때문에 고르 왕조, 혹은 구르 왕조라고 한다. 원래 고르 지방의 군소 세력이었다가 12세기 말 가즈니 왕조셀주크 제국의 연이은 몰락을 틈타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으나, 영토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13세기 초 호라즘 왕조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했다. 몽골 제국이 쳐들어오기 불과 수 년 전의 일이었다. 이란과 아프간 쪽 영역은 호라즘이 차지했으며, 인도 쪽 영역에는 델리맘루크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2 역사

고르 지역의 지배자들은 "샨사바니"라는 씨족이었는데, 그 기원이 튀르크계라는 설, 파슈툰족이라는 설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타지크의 일파라고 보는 쪽이 우세이다.

고르 지역이 역사 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1세기 초인데, 한창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던 가즈나 왕조술탄 마흐무드가 이 지역을 공격하여 속령으로 삼은 뒤의 일이다. 그 전에는 번성하던 서아시아의 교역망과 문화 중심지들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깡촌이었을 뿐 아니라, 이슬람으로 개종하지도 않은 호전적인 토착민들이 고립되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이곳을 수 차례 공격한 가즈나 왕조는 직접 통치보다는 조공을 받고 간접지배하는 선에서 타협했는데, 이들과의 접촉을 통해 고르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셀주크 제국의 득세로 가즈나 왕조의 세력이 약해지자 고르 세력은 셀주크 제국의 속국이 되었다.

원래 고르 지역의 여러 부족장들 가운데 하나였던 샨사바니 씨족은 11세기에 서서히 고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12세기 초반부터는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프간 동부 지역와 인도 북부에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옛 상전 가즈니 왕조와 충돌하게 되었다. 가즈니 술탄 바흐람샤와 싸워 이긴 고르 지도자 알라 앗 딘 후세인은 바흐람샤가 죽인 친족들의 보복을 내세우며 그 수도인 가즈니를 무자비하게 약탈, 파괴하여 "세계를 불태운 자"(Jahānsūz)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속국 지위를 벗어나기 위헤 셀주크 제국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1152년 셀주크 술탄 아흐마드 산자르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그 당장에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산자르가 오구즈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셀주크 패권이 붕괴되자 그 틈을 타 아프간 북부와 호라산 등으로 세력을 뻗칠 수 있었다.

알라 앗 딘 후세인 사후 고르 영역은 전통에 따라 친족들에게 분배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적장자인 기야스 앗 딘 무함마드는 고르 지역의 수도인 피루즈쿠를 거점으로 이란 동부와 호라산 지역을 공략했으며, "무함마드 고리(Muhammad Ghori)"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의 동생 무이즈 웃 딘 무함마드(혹은 샤하브 웃 딘 무함마드)는 1171년 다시 점령한 가즈니를 거점으로 아프간 동부와 인도 북부를 침공했다. 호라산 지역으로 확장을 시도한 기야스 웃 딘은 마침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하던 호라즘 왕조 세력과 충돌하게 되었다. 마침 호라즘샤는 이교도(불교) 세력인 서요의 조공국이었고, 압바스 칼리파는 물론 주변의 거의 모든 세력과 사이가 나빴으며, 형제 간 내분도 있었기 때문에 기야스 웃 딘은 동생인 무함마드 고리와 함께 사이좋게(...) 호라산을 정복할 수 있었다. 한편 무함마드 고리는 형을 도와 서부 전선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북인도의 가즈나 왕조 잔존 세력을 순조롭게 정복하고, 힌두 라지푸트 세력들과 전쟁을 벌여 델리 등을 점령했다. 1200년 고르 세력의 판도는 최대 범위에 이르렀다.

1202년 기야스 웃 딘이 죽자 무함마드 고리가 새 술탄이 되었는데, 고리 역시 1206년에 죽었다. 그러나 1200년에 정점을 찍은 고르 왕조의 패권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고리 생전에 새로 등극한 호라즘샤 무함마드 2세가 고르 군대를 격파하여 호라산 일대를 차지했으며, 고리가 죽자 구심점을 잃은 샨사바니 씨족들은 친족들이 영토를 분배받은 그대로 분열되었다. 고르, 할라즈(아프간 지역에 정착한 튀르크계 부족), 기타 파슈툰 부족들이나 맘루크, 용병 등 기야스-고리 시절에 한 깃발 아래 뭉쳐 있던 군사집단들의 규합도 와해되었다. 1215년 마지막 고르 통치자가 호라즘샤에 의해 폐위될 때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고르 세력은 정신없는 붕괴의 과정을 겪었다.

3 역사적 의의

고르 왕조는 이전 통치자들인 가즈나 왕조, 셀주크 왕조와 마찬가지로 당시 서아시아 지역의 주류 문화였던 페르시아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페르시아 문학, 예술, 학술, 건축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고르 왕조의 이 같은 활동은 장차 무굴 제국 시대까지 이어지는 아프간-북인도 지역의 페르시아 문화 득세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상술했듯이 고르 왕조는 이슬람을 매우 늦게 받아들였는데, 이전 통치자들인 가즈나 왕조, 셀주크 왕조와 마찬가지로 정통 순니파 교리를 적극 수용하여 당시 이란 지역에 유행하던 시아파를 거부했다. 한편 북인도 지역의 확장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가즈나 왕조와 달리 힌두스탄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이슬람의 전파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오늘날 파키스탄 국가 탄생의 기원을 고르 시대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고르 왕조의 지배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무함마드 고리가 형을 돕기 위해 고르로 돌아가기 전에 남겨둔 맘루크 장군인 쿠툽 웃 딘 아이박이 델리에 새 왕조를 세워 눌러앉게 되면서 북인도 지역 이슬람화의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