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임진왜란 1592
1 개요
임진왜란 1592의 고증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이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한국 사극보다 개선된 부분들도 있고, 새로운 시도 역시도 신선하지만 당당하게 내세운 팩츄얼 드라마라는 타이틀치고는 걸맞지 않게 고증오류 및 역사왜곡 수준의 연출이 적지 않게 많다. 물론 100% 완벽한 모습은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제작진이 자진해서 팩츄얼 드라마라는 타이틀까지 붙인 만큼 이런 부분이 눈에 띄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2 복식 및 갑옷
- 조선군 병사들은 여전히 투구와 갑옷이 아니라 포졸모와 포졸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예산 문제 등의 이유로 충분하게 재현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1]
- 장수들의 갑옷의 경우 기존의 사극에서 자주 범하던 두석린갑[2]의 오류에서 벗어나 두정갑을 두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순신의 두정갑의 투구 부분의 정면부에 충격을 입어 손상된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을 통해 1화 이전에 이미 여러 해전(옥포 해전, 합포 해전)을 치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중-하급 장수들의 갑옷과 투구는 징비록 때처럼 고증의 문제가 있다.
4편 평양성 전투에서 유성룡이 입은 찰갑은 고증에 어느 정도 부합했다.
- 3화에서 잘 보면 챠챠와 시녀들, 오만도코로[3], 아사히히메가 입은 기모노의 오비 폭이 넓고 보통 사람들이 잘아는 리본형 매듭까지 지어져 있는데, 이건 에도시대 중기 때의 양식이다.[4] 전국시대 당시의 기모노와 헤어 스타일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첫번째 사진에서 나고야라고 되어 있는건 우리가 아는 그 대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아니라 히젠 (지금의 규슈지역 사가현의 가라쓰) 나고야(名護屋) 성으로 동명이성이다. .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전진기지로 활용된 성이다.[5]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다. 한자가 다른데 한국 한자음이 같아서 자꾸 이런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애초에 저 자막 옆에 名護屋 자막처리만 했으면 딱히 틀린 것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최종화에서는 히젠 나고야 성으로 정확히 명시하면서 보완되었다.진작에 한자도 병기했다면 어땠을까
- 일본군 갑옷의 고증 역시 여전히 문제가 많았다. 분석글 참조바람.
- 극중의 조선군은 병사들은 물론이요, 지휘관들조차도 검(환도)을 손에 파지하고 다닌다.(...) 대표적 고증 오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지난 수십여 년이 넘도록 꾸준히 지적된 한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들 중 하나인 올바른 환도 패용법은 이번에도 재현되지 못했다.[6] 4화에선 그럭저럭 올바른 파지법이 나왔다.
- 명나라 복식 고증은 전체적으로 괜찮은 편이지만, 만력제의 익선관이 금실로 되어 오류를 보여주었다. 금실 익선관은 황제가 사망한 후 매장할 때 같이 묻는 부장품이었다. 이번 오류는 중국과 합작 드라마인 만큼 아마도 중국 측에서 실수했을 확률이 높다.
3 무기류
- 첫회에서 사천해전을 준비하는 수군의 훈련 과정에서 화포의 장전 과정이 상세히 잘 표현되었다. 또한 화포의 위치에 따라 배치되는 종류가 다른 점이 명시되었고, 각 화포의 명칭도 언급되었다. 다만 실제 사격시 발사되는 투사체는 포탄만 나오고 조란환의 경우에는 연출되지 않았다.[7]
- 대장군전을 수송하는 병사. 함상에 비치된 대장군전은 있으나 1-2회 간에는 대장군전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장군전의 크기도 실제 크기보다 다소 작게 나왔다.
- 사격에 있어서는 최근에 제기된 직사 사격을 제시하고 있어 기존의 곡사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조총 의 경우 징비록에서 사용되던 소품을 재활용하였지만 발사 장면은 개선이 되었다. 우선 이전에 나왔던 사극에서는 흑색화약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뭉게뭉게한 연기가 없거나 근현대의 권총발사음 비슷한 소음이 나왔다. 이번작에서는 CG이긴 하지만 화약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연기도 재연하였고 총성도 징비록에 비해 화승총에 근접하게 나온다. 다만 재장전하는 장면에서 화약이 흰색으로 나오고 화승심지가 걸리지 않는 상태에서 발사되는 장면이 나온다
- 일본군의 원거리 무장이 조총만 나온 것도 아쉬운 부분. 어디까지나 조총은 부무장이며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군도 활이 주무장이었다. 4화에서 군사훈련하는 장면에서 일본 활이 나오긴했지만 정작 전투장면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 당포해전에서 애기살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고증에 맞게 통아를 사용해 사격하는 장면이 나왔다.
- 노량해전에선 그 동안 잘 나오지 않은 명군의 화약무기들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명군의 화승총과 불랑기포. 특히 불랑기포는 자포를 교환하며 방포하는 모습을 고증해 냈다.
4 함선
- 나대용 소개란에 나대용이 거북선을 제작했다는 속설을 반영하고 있다. 나대용이 거북선 제작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높지만, 인물 설정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그의 손에서 거북선이 탄생한 것은 아니다.
- 거북선에 있어서는 언더우드식 2층설이 아닌 3층설을 적용하는 한편 용머리가 수납이 가능했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화포의 위치에 따라 화포가 각각 다른 종류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잘 보여줬으며 이기남의 대사를 통해 전나무보다 튼튼한 소나무로 함선을 만들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초반부 나대용과 이기남의 대화를 통해 녹슨 병기들을 가져와 그걸로 거북선을 무장시키는 부분이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이기남과 병사의 대사를 통해 거북선 상판 구조가 철판이 아니라 철검 등을 꽂은 형상인 것을 알게 해준다.
- 일본군 함선들의 경우 징비록에서 재현한 함선세트에서 주 촬영을 이루어졌다. 이외에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 그리고 영화 명량의 장면을 재편집하거나 CG를 이용하였다.
- 이전에 개봉한 영화 명량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고증 오류가 존재하는데, 바로 함선의 크기. 세키부네와 판옥선의 크기가 별 차이가 없다. 당장 일본 쪽 기록만 두고 보더라도 판옥선을 거대한 함선으로 묘사했고, 명량해전 당시에도 일본군은 공성전을 치루듯이 판옥선과 싸워야만 했다는 점을 보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키부네는 판옥선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은 편인데[8], 극 초반부 세키부네 갑판에서 백병전을 위해 일본군이 점프를 해서 단숨에 판옥선 갑판에 오르는 걸 보면 이는 정말 치명적인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거북선을 비롯하여 함선 CG를 명량 CG 팀이 맡아서 하면서 같은 모델링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판옥선 공성전은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런지?
- 2화에서는 어느 정도 고증에 맞는 함선 크기를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바로 거북선이 포위당하는 장면인데, 거북선과 비교하면 세키부네의 크기가 1/2도 안되는 수준의 크기로 나온다. 하지만 그 이후 장면에선 도선하며 그냥 배에서 배로 뛰어넘는다.(...)
-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의 고증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극중에서 조총 집중 사격을 받자 거북선 선체가 뚫리며(...)[9] 안에 탑승하고 있던 격군 등 탑승자들이 피탄되어 죽어 나갔던 것인데,[10] 당대 기록에는 있지도 않은 장면인데다, 거북선과 판옥선 선체는 무식할 정도로 두꺼운 목재로 제작된, 당대 기준으로는 떡장갑을 둘둘 두른 전투함이라 조총 따위에 뚫리지 않는다(...). 영화 명량에서도 왜군들이 대구경 조총인 오호츠즈를 운용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순신을 보호하던 방패판을 노렸을 뿐, 그걸로 판옥선의 선체를 공략하는 바보 짓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극의 긴박함(...)을 위해 실제 거북선의 내구도를 완전히 무시한 듯 하다. 이래 가지고는 팩츄얼 드라마를 자부하던 제작진이 할 말이 없을 터인데... 거북선이 진수식 때 침몰했다는 연출을 했던 불멸의 이순신조차도 막상 거북선의 전투를 묘사할 때 저 따위로 그려내진 않았다. 여기에 더해, 해당 장면을 업로드 한 유튜브에서는 거북선은 어차피 나무인데 철탄으로 된 조총으로 계속 쏘면 뚫리지 않겠냐는 무식한 드립까지 난무하는 상황(...)[11][12]
4편에서는 2편의 한산도대첩이 1분 분량으로 요약되어 나왔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안 나온 요약분이었고. 자막으로 왜선 격파수를 명시했다. 제작진도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한 모양. 그런데 5회에서 이순신이 노량해전에 출전하기 전에 회상장면에서 거북선 승조실이 조총 공격에 파손되고 승조원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모습이 잠깐이지만 그대로 다시 나왔다. 희생을 기린다는 장치였겠지만.
거북선의 사상자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해 보자.
- 특히 역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회에서 나온 거북선 반파에 대한 비난이 매우 커진 상태이다. 사실성과 철저한 사료 고증을 표방하는 팩츄얼 사극에서 사료에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왜곡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거북선 승조원들이 뚫고 들어온 조총에 최후를 맞고 거북선 내부가 조총 공격으로 반파되는 것이 비판을 크게 받고 있다. [13] [14] 철저히 사료를 검증해 창작인 허구에 중심을 둔 것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 재현을 충실히 하겠다고 했던 기획 의도와는 차이가 크다. 국내 최초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팩츄얼 사극으로 제작됐다는 발표와는 거리감이 많다. 하지만 4편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건너뛴 해전을 축약해 보였기 때문에 제작진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게 확인되었다 할 수 있다.
5 전투
- 이순신의 전적으로 46전 46승이라는 정체 불명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전투 중 소규모로 진행된 몇가지를 묶어서 책정한 전적으로 보이는데 정확하다고 할 순 없다.
- 사천해전을 묘사할 때 기존 사극에 비해 궁시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물론 이순신이 화포 운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지휘관이지만, 그간 사극들에서 묘사되듯이 '크와아아아앙 포를 마구 쏘아라!!' 하면서 화포를 주력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물자 사정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고, 바다 위에서 화포를 운용하는 것은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화력 투사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선 1회가 끝난 뒤 잠시 설명하기도 했다. 때문에 임진왜란 내내 조선 수군의 주된 화력 투사 방식은 인명 살상과 화공을 목적으로 한 궁시였다. 화포의 경우 대인 살상용 소구경 화포의 활용도가 높았다. 이러한 양상은 아직 이순신 함대가 본격적인 단계가 아닌 전쟁 초기인 사천해전 단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화포 운영에 있어서도 부상병인 이선지를 불러 문답을 통해 직접 화포 사거리를 파악한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화포 운영이 익숙치 않은 때이므로 근본적으로 주력이 바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화포 활용의 비중은 차츰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포술에 대한 측면도 특정한 학술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오히려 고증과 비교하면 틀린 점이 많다. 특히 직사포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조선수군의 운영한 대장군전이나 이순신이 직접 천자, 지자, 현자 총통을 비교하면서 대형화포는 위력과 사거리는 굉장하지만 들어가는 화약에 비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 점과 실제 수조규식에서도 250보에서 200보 내외로 발사해라고 되어있는 것을 지나치게 축소하여 50보 안팍으로 설명하고 있어 실제 이순신 함대의 포술 운영과는 거리가 발생하고 있다.
- 이순신의 함대가 실제로 장사진으로 적 종심을 파고들는 전술을 쓴 것은 오직 부산포 해전 뿐으로 한산도 대첩 이후 일본 수군이 포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자 부득이하게 사용한 경우로 본작에서는 이순신과 나대용의 부상. 극중 갈등을 위해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각색하지 않더라도 전쟁초기의 포술의 미숙함과 거북선 운용의 경험 부족을 이용하면 충분히 극적인 전개가 충족되었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연출 실수인 셈.
- 여전히 화살과 활을 등에 매고 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순신의 경우 화살을 한 손에 두개 들고 있다가 하나를 쏜 뒤 곧바로 다음 화살을 당기며 전투장면의 현실성이 높다
- 당포 해전에서 히데요시에게 하사받은 부채를 자랑하며 조선인 여자들을 희롱하던 적장 카메이 코레노리 (1557~1612)가 목이 잘리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물론 난중일기에 당포 해전에서 불상의 적장을 참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나 이는 구루시마 미치유키 (1557~1592)로 이미 밝혀져 있으며, 카메이는 당포해전에서 도망친 이후 임란은 물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까지(...) 멀쩡히 살아남는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반영한 연출로 보이나, 누가 봐도 카메이 코레노리를 연상케 하는 당시에 죽지도 않은 적장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오는 바람에 실제 사실 관계와는 전혀 맞지 않게 되어 버린 아쉬운 장면.
- 다만 당포해전에서 고증이 잘 된 부분은 구루시마를 저격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이 팔의 부상으로 실패하자 순천부사 권준을 부르고. 권준이 애기살로 저격 후 사도첨사 김완과 그 군관이 도선해 구루시마의 목을 벤 것은 난중일기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
- 3화 빗츄 타카마츠성 공략에서 수공을 이용한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중에서는 타카마츠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가 할복하는 것 이후에 하시바 히데요시가 혼노지의 변에 대한 소식을 들으나, 실제 역사상으로는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얻은 뒤, 모리와의 협상을 통해 시미즈의 할복이 이루어진다.
6 건축
- 3화에서 나온 일본의 성도 문제다. 역시 제작비 문제로 인해 징비록의 고증에 어긋난 CG를 재사용했고, 오사카성은 현대의 재창조된 오사카성, 그리고 한참 후에 지어진 히메지성이 나왔다.
- 천수각이 거처인 듯한 묘사가 나오는데, 마치 천수각의 최상층에 가신들을 집합시킬수 있을 만한 넓은 공간, 그리고 화려한 내부 장식 등이 거슬린다. 실제로는 천수각의 내부는 매우 비좁으며, 옆에 딸린 저택이 화려하고 장중한점을 미뤄볼 때, 마치 이 두 공간을 섞어 놓은 듯한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내부는 도요토미의 잔혹성과 광기를 드러내기 위해 붉은 조명을 사용했으나 과도한 사용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 일본 측 어소의 건물 내에 복도의 역할을 하는 여러 방이 있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미닫이문이 자동문처럼 열린다. 그 시대에 자동문이 있을 리 만무하고, 당연히 문 양쪽에서 사람이 열어줘야 정상이다.
- 조선을 묘사할 때 창덕궁이 나오는데,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에 이화문 장식이 나온다. 그러나 이 이화문 장식은 구한 말에 붙여진 것이다.
- 4화에 나온 평양성 전투에 나온 평양성은 성의 누각[15]과 벽돌의 모양[16]을 볼 때 영락없는 중국의 성이지 한국의 건축과는 다르다. 이건 애초에 중국에서 촬영했다 하니 설명이 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7 정치, 문화, 제도
- 극 초반 1화에서 전쟁을 피해 떠난 피난민 아버지와 머리에 총탄을 맞은 아들이 도착하는데, 수영 군인들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은 고증에 맞으면서도 틀린 부분인게 일단 군영 자체에 대한 일반인의 출입 자체는 금지되었다. 신분을 알 수가 없으며 적의 첩자일 공산도 있어 신분확인이 실제로 철저했다. 다만 난중일기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순신은 부족한 군량과 병장기 정비 인력을 메꾸기 위해 종종 피난민들을 인력으로 동원했고, 명량 해전 직후에는 이들을 적극 활용하여 섬에 둔전(屯田)을 마련하는 등 살길을 마련해줬다. 전쟁 기간 내내 조선 조정에선 조선 수군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못한 마당에 이순신은 힘겹게 군량을 조달했고, 여기엔 피난민인 그들의 공이 컸다. 때문에 군영이므로 출입이 통제되니 피난민을 위한 피난시설로 이동하도록 조치하는 연출이 위 장면에서 옳으며 무작정 때문에 출입을 금지하는 본편의 연출은 틀린 것이다.
- 3화에서 아사히히메가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가는 장면을 보면 눈썹 위 이마에 다른 눈썹을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히나인형이나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볼 수 있는 동그란 눈썹이 아니라 가늘고 길게 눈썹을 그렸다(...) 그리고 한국 사극 최초로 검게 물들인 이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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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에서 만력제가 일을 하는 고증오류가 나왔다. 명국 황제가 아니라 조선 황제라서 그렇다
- 3화에서 히데요시가 포르투갈인에게 국제 사회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에서 나오는 지도는 '천하전여총도'라는 지도이다. 청나라 건륭제 시기에 제작된 지도이기 때문에 고증에 맞지 않다. 또한 해당장면에서 포르투갈인은 '말라카라는 곳으로, 네덜란드가 차지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말라카는 1641년까지 포르투갈이 차지했었다.
- 3화에서 히데요시, 노부나가, 이에야스가 모인 장면에서 오다 가문의 가몬인 모과꽃이 위아래가 뒤집혀서 걸려 있다.
- 5화에서도 히데요시가 명의 책봉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는데 엄연히 태정대신은 천황의 신하다. 그가 일본 국왕 책봉을 바란적 없다.
8 언어
기본적으로는 3국(조선,명,일본)이 제 나라의 말을 하는것으로 설정 되어 있다. KBS 제작분에서는 상당히 성의있게 나온반면, 중극 측의 제작분에서는 언어 부분이 상당히 허접하게 나왔다. 예를 들어 파병된 명군이 지나가는 조선 난민에게 어설픈 조선말로 왜구 이서여?하고 묻자 "네~" 라고 대답하거나, 일본국 사신과의 교섭 장면에서 명나라에서 질문하면 일본 측 사신은 소곤소곤하면 그 말을 들은 통역이 중국어로 전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밝힌 제작비는 13억원에 불과하다. 방송 분량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같은 웰메이드 사극의 경우에도 제작비가 100억 가까이 들었다는 점(SBS 84억원, 제작사 36억원)을 생각해보면 정말 허리띠를 엄청나게 졸라내서 만드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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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갑옷이다. 두석린갑은 조선 후기에 주로 제작되었고, 두정갑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용성이 떨어져서 그 수도 많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두정갑이 더욱 고증에 적합하다. 2015년 방송된 징비록에서도 기존의 두석린갑이 아닌 두정갑을 착용하였다. - ↑ 히데요시의 모친
- ↑ 대부분의 전국시대 사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시대 초반의 오비는 폭이 좁고 가늘었다.
- ↑ 히데요시는 본래 지금의 후쿠오카시(하카타)에 전초기지를 세우려했으나 수심이 얕은 곳이라 불발되었다. 그 대신 조금 떨어진 가라쓰가 전진기지가 되었다.
- ↑ 환도 패용이 그나마 잘 나온 사극은 뿌리깊은 나무의 초반부 정도이며 액션신을 찍어야 하는 배우는 이 패용법을 무시했다.
- ↑ 다만 묘사하기엔 꽤 잔인한 장면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조란환은 산탄이기 때문에 실제 전투라면 중상 수준이 아니라 사지가 찢어지는 치명상을 입힌다. 명량에서도 조란환을 묘사했지만 매우 순화된 모습으로 나온것을 감안하면 연출이 안된 것은 이해 가능하다.
- ↑ 그런데 하늘에서 본 CG를 보면 또 세키부네는 거북선 크기의 60% 정도로 표현된다.
- ↑ 1화에서 보여준 사천 해전에서는 조총에 안 뚫리고 잘만 싸웠다...
- ↑ 실제 당대 기록을 보면 한산도 해전에서 조선 수군 전체를 통틀어 아군 사망자는 딱 3명에 부상자까지 더해도 17명이다. 그러나 저 장면을 보면 당장 거북선 하나에서만 수십명에 다른 배에서도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
- ↑ 조선군의 화포 실제 가용 거리가 우리의 상식보다 매우 짧은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 조총에도 판옥선과 거북선의 선체가 작중 묘사처럼 뚫렸다면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이 기록한 기적적인 전상자 수는 나올 수가 없다. 뚜껑을 덮은 거북선은 말할 것도 없고 판옥선의 방어력과 내구력은 사실상 바다를 떠다니는 요새나 다름 없었으므로 이순신 지휘 하 조선 수군의 말도 안 되는 사상자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 ↑ 이전에 거북선이 조총에 뜷리지 않으면 사상자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는 근거를 들어 해당내용이 삭제된 적이 있었는데 일본수군도 적게나마 화포를 운용하기는 했고 대구경 조총인 오오쓰스와 불화살까지 생각하면 조총을 방호한다고 해도 충분히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거북선 승무원들이 지붕과 두꺼운 선체로 보호되어도 전투를 하려면 결국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사살당할 수 있다.
- ↑ 승조원들이 눈과 심장을 조총에 맞고 쓰러졌으나 사망으로 그렸는지는 드라마에서 확실히 나오지는 않았다.
- ↑ 거북선 반파 자체 뿐만 아니라 반파 정도도 강도가 높고, 승조실이 크게 파손되고 승조원들이 대부분 조총 공격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비판받고 있다.
- ↑ 중국성의 누각은 하나의 빌딩과 같이 거대하지만 한국성은 간단한 정자 정도 크기이다.
- ↑ 만리장성과 수원화성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