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타바 코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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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4년식으로, 2000년부터 2008년 단종 때까지 생산된 최후기형에 해당된다.)

1 개요

(제레미 클락슨의 자스타바 코랄/유고 45 리뷰.)

자스타바 코랄(Zastava Koral.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는 "유고(Yugo)", 이탈리아에서는 "인노첸티 코랄"[1])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세르비아의 자동차 회사인 자스타바 오토모빌즈[2]에서 생산한 소형차이다.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에도 진출한 경력도 있어, 자스타바에서 만든 차들 중 가장 유명한 차종이기도 하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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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식 자스타바 코랄/유고 45 유럽형.)

본래 자스타바 사는 1853년에 무기 업체로 설립되었고, 1930년대부터 유고슬라비아 군대에 판매할 포드 트럭을 생산하는 것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1941년부터 1950년대 초반 동안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을 대비하기 위한 윌리스 MB의 생산기지로 보냈고, 1953년 8월 26일부터 피아트 1300을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승용차 시장에도 진출했다. 이후에도 피아트 128을 비롯한 여러 차들을 라이센스 생산을 하면서 피아트와의 관계도 나름 두터워졌다. 1970년대에는 피아트의 소형차 127을 기반으로 자스타바 코랄을 개발했으며, 1978년 10월에 첫 차가 수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피아트 127과 128의 부품들을 끌어다 사용해서 설계하고, 형제차인 피아트 144와는 다른 디자인의 차체를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했다.

차를 만들기 위한 부품은 유고슬라비아 연합의 여러 국가들로부터 받아왔는데, 가령 전자 장비는 슬로베니아의 노바 고리타에서, 인테리어 부품들은 크로아티아의 스플릿에서, 엔진에 들어갈 전자 장비들은 보스니아 의 반자 루카에서 만들어졌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안전벨트와 잠금 장치, 거울 등을 만들었으며 세르비아에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나머지 부품들과 다른 지역에서 납품받은 부품들을 모아 차를 생산했다. 1980~1985년식 코랄은 옆으로 밀어 여는 버터플라이식 뒷창문과 원형 방향 지시등, 검은색 인테리어 마감 등이 제공되었으며, 1985년을 기점으로 뒷유리 열선과 개선된 시트, 인테리어 마감 색상으로 추가된 청색과 갈색, 두 쌍으로 늘어난 후미등, 새 계기판, 열리지 않는 버터플라이식 뒷창문을 적용했다. 1981년부터는 영국에서 코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미국의 상인 Miro Kefurt[3]를 통해 코랄(유고 45 트림)을 미국에 수출하는 데 합의했고, 피아트의 허가 하에 1984년부터 캘리포니아의 썬 밸리에 위치한 YugoCars라는 회사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 로스 엔젤레스 모터쇼에서 “유고 GV“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으며, 당시 돈으로 4500달러에다가 10년/16만km 무상보증과 무료 워런티를 보증했다. 여담으로 차량 색상은 빨강색과 파란색, 흰색이 제공되었다. 이는 LA 타임즈와 뉴욕 타임즈 등의 유명 언론들로부터 주목받기도 했으나, 캘리포니아의 배기가스 규정을 통과하지 못해 곤혹을 겪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었던 상인 말콤 브리클린(Malcolm Bricklin)[4]은 여기에 늦게 끼어들어 선수를 놓쳤다가 나중에 코랄을 판매하기 위한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84년 10월에 넘겨받은 후, 배기가스 문제는 마침 피아트 X1/9을 수입하던 회사와 같이 인수했던 YugoCars사 측에서 엔진을 손봐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고, 903cc 45마력 엔진과 1100cc 55마력 엔진 라인업을 제공했다. 당시 코랄/유고를 미국 시장에 맞게 손보는 일을 맡았던 Tony "Hurricane" Ciminera에 의하면, 미국 시장에 맞추기 위해서는 500가지가 넘는 변경이 필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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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식 유고 GV. 1985년까지 쓰이던 단일 후미등 한 쌍이 쓰였다.)

미국 시장용 코랄을 생산할 공장 역시 따로 신설했고, 여기에 체용되는 직원들도 작업량과 보수를 더 많이 받았다. 말콤 산하에서 판매되는 첫 자스타바 차량인 1987년형 유고 5대가 판매되었고, 라인업도 전보다 크게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당시 돈으로 399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5]을 자랑하던 기본형 GV[6], 유리 썬루프가 장착된 GVC, 고급 내장제와 트림 몇 가지가 추가된 GVS, 1300cc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 푹신한 인테리어, 전용 드레스업, 알로이휠, 보조등과 같이 스포티하고 고급스러운 라인업인 GVX가 제공되었고, 전동 루프가 장착된 카브리올레 [16294.jpg 버전]이 1988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1989년에 31세의 미국 여성이 다리 위에서 자신의 1987년식 유고를 타고 주행하다가 사망하는 사고[7]가 터져 온 미국의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기대 이하의 품질과 서비스망의 부족과 같은 꾸준히 쌓여오던 기존의 문제들과 합쳐지면서[8] 판매량이 급감해버렸다. 또한 유고 전체 판매량의 거의 모두나 다름없는 12만 5천대에 달하는 차들이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리콜 명령을 받았고, 1991년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까지 터져 결국 1992년을 마지막으로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때까지 약 15만대의 유고/코랄이 미국에 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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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식 유고 GVX 1.3 EFi 북미형.)

한편, 1988년에서 1991년 초반 사이는 "최고의" 자스타바 코랄이 굴러나오던 "전성기"로 불리기도 했다. 다른 차들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였어도, 플라스틱 부품들이나 직물 커버, 페인트 도장을 비롯한 차량 전반의 품질 관리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으며 1989년에는 한 해 생산량이 거의 20만대라는 코랄 역사상 최고를 찍을 정도였다.[9] 심지어 "미국 시장에 우리가 진출해서, 판매량이고 평가고 나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1990년에는 자동변속기와 에어컨이 장착된 트림의 차량을 450대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또한 1990년에는 연료 주입구 뚜껑이 돌려서 여는 분리형에서 고정된 형태의 경첩식으로 바뀌었고, 계기판을 포함한 소소한 인테리어 변경이 있었다. 1991년에는 유고 GVX 트림의 대시보드를 손보았으며, 유럽형 모델에 용량을 키운 연료탱크를 추가하는 한편 버터플라이식 창문을 제거했다.

하지만 1990년에서 1991년 사이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발발함에 따라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품 수가 부족해지자 1991년 6월부터 1996년 초반까지 생산되는 코랄은 차량 상태가 다들 제각각으로 출고되었다. 예를 들자면 파란색 대시보드와 갈색 스티어링 휠이 섞여 장착되는 경우가 있었고, 내수시장용인데도 미국시장용 mph 속도계가 장착되거나, 물이나 오일 등을 나타내는 픽토그램을 글씨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차종에서 대시보드를 가져와 장착하는 사태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조립품질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한 국제 연합의 제재, 미국에서의 안정성 문제 및 혹평으로 미국 수출이 중단되자, 이때 쌓인 수출차 재고를 유럽 고객들에게 대신 판매하기도 했다. 생산량도 크게 급함해 1990년대 중반에는 매년 수천 대밖에 만들 수가 없었다.

1996년에 세르비아 지역에 가하던 제재가 풀려남에 따라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었고, 자스타바 역시 1997년부터 생산을 제개해 생산대수를 서서히 늘려나갈 수 있었지만 1999년 중반에 NATO군이 참여한 코소보 전쟁의 영향으로 공장이 폭격당하면서 아예 차량의 생산 자체가 중단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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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타바 코랄 GTI. 위에서 언급한 2000~2008년식 모델 중 하나이다.)

그 이후, 2000년에는 새로운 앞모습과 범퍼, 스포일러, 새 대시보드와 좌석이 장착되는 대폭적인 디자인 변경이 있었으며, 2007년에 계기판을 새 것으로 바꾸었다. 최종적으로는 2008년 11월 11일에 794,428번째이자 마지막 코랄이 세르비아의 크라구예바츠 공장을 떠나면서 단종되었다.

현제 세르비아에는 쉬운 부품 수급과 단순한 설계 구조의 장점 때문에 여전히 6만대 가량의 코랄이 현역으로 남아 있다고 하며, 수출국 중 하나인 영국에는 약 100대가 남아 오너 클럽까지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끝없는 조롱거리로 남아 있어 “최악의 차“라는 주제만 나오면 꼭 따라오는 존재인 반면[11], 라다FSO 폴로네즈와 같은 동유럽의 여러 차들을 1980년대 내내 수입했던 영국에서는 다른 동유럽 차들에 비하면 문제점들이 심각하진 않다는 이유로 그다지 악명 높지는 않다. 다만 제레미 클락슨이 시승 후 모든 방면에서 혹평을 하고 탱크로 폐차 쇼를 벌인 적이 있다.

한편, 자스타바는 코랄의 후속으로 자스타바 플로리다를 개발해 1988년부터 생산했고, 이것 역시 미국에 수출하려고 했다가 내전으로 좌절된 적이 있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세대 피아트 푼토를 “자스타바 10“으로 라이센스 생산한 뒤 피아트의 해외 기지로 완전히 통합되고 만다. 여담으로 플로리다는 2008년에 코랄 및 스칼라와 같이 단종되었으며, 자스타바에서는 2015년 현재 피아트 500L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여담으로 픽사카 2에 출연하는 악역들 중에 코랄/유고를 베이스로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알고 보면 여기서의 악역 대부분이 AMC 페이서AMC 그렘린, 쥔다프 야누스처럼 현실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차들이 다수라는 점도 특징이다.
  1. 인노첸티는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로부터 미니 등의 차를 받아 생산하던 오토바이 업체의 이름이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자동차 생산만을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2. 여담으로 1980년대 북한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을 복제한 국산차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의 인력들이 초빙되었다.
  3. 나중에는 라다 오카의 전기차 버전을 판매하기도 했다.
  4. 1939년생의 미국 사업가로, 미국에서 스바루 360을 판매한 적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중국 체리의 자동차를 수입해서 팔려는 시도도 했었다. 이처럼 저가차를 수입하던 경력이 꽤 유명하다. 심지어는 전동 자전거 회사를 차리거나,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든 스포츠카인 브리클린 SV-1을 가지고 사업을 하기도 했다.
  5. 1981년식 닷지 아리스 기본형이 약 9천 달러였고, "차 하나 값에 두 대를" 살 수 있다고 홍보하던 현대 프레스토/현대 포니엑셀 역시 약 5천~6천 달러였다. 광고에서도 포드 모델 T폭스바겐 비틀을 유고/코랄과 같이 두고 이 두 차처럼 "실용적이고 믿음직한 저가차"라고 홍보하곤 했다.
  6. "Great Value"의 줄임말이다.
  7. Leslie Ann Pluhar라는 여성으로, 시속 80km/h의 바람 속에서 차를 주행하다가 다리 난간에 차가 충돌했다. 유족들이 선임한 변호사에 의하면 바람으로 인해 차량이 통제력을 잃고 충돌했다고 하며, 언론에서는 바람에 차가 들려 뒤집혔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전문가들은 바람이 주요 요소라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중앙 난간과의 충돌이 다른 난간으로 차를 튕겨내 차주를 사망하게 만든 주된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8. 당시 농담으로는 "Yugo Nowhere(아무데도 못 간다)"는 식이였거나, 현대 포니엑셀과 프레스토에 대한 농담들과 비슷한("차값을 2배로 불리려면 연료를 가득 체워라!", "브레이크 달린 유고는 사제 브레이크를 쓰는 차다", “뒷유리 열선은 차 밀때 보태는 용도“ 등) 식의 농담들이 있었다.
  9. 이때 생산된 코랄/유고가 나름대로 별 탈 없이 지금까지도 세르비아 등지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10. 자스타바는 총기 업체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때도 총기류를 제작하고 있었기에 폭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11. 여담으로 미국의 자동차 블로그인 잘롭닉(Jalopnik)에서 새차 수준의 유고 GV를 보여주며 2999달러면 어떻냐는 설문을 하자, 약 66%의 네티즌들이 유고치고는 너무 비싸다고 했다. 심지어는 “걍 페차해라“는 식의 반응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