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섭군 자살사건

(정병섭군 자살 사건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합니다. 불법적이거나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이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 사건·사고를 설명하므로 충분히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틀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한 문서의 최하단에 해당 사건·사고에 맞는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분류 목록은 분류:사건사고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개요

2fc428180b00f03074fa4fdcece19edd.jpg

경무대 똥통 사건, 만화 검열제, 합동출판사에 이어 다 죽어가는 한국 만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먹인 사건이자, 한국만화계의 흑역사, 높으신 분들의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을 한순간에 떨어뜨린 사건이다.

2 상세

1972년 1월 31일 오후 5시 15분경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에 사는 정병섭(당시 나이 12세, 신설 국민학교[1] 6학년)군이 목을 매어 숨졌는데, 그의 사망 이유가 파문을 일고왔다.#

정병섭군은 평소 만화를 탐독하고 만화의 주인공 흉내를 잘내는 말 그대로 만화광이었는데, 이 날도 만화 가게에서 만화를 보고 온 후 누나에게 "만화는 사람이 죽었다가도 살아나더라. 나도 한 번 죽었다 살아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 고 말했다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물론 그러한 믿음이 결국 위와 같은 비극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가 된 만화는 《철인 삼국지》였는데 만화 속에 로 추측되는 인물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1972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회 저명인사들도 한 목소리로 만화를 맹비난했고 언론 또한 만화의 공상(空想)적인 내용이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만화대본소의 유해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으며, 정병섭 군이 다니던 신설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학교별로 궐기대회를 벌여 '절대로 만화 가게에 가지 않는다', '만화 보는 돈으로 어린이 저금을 한다' 는 등의 결의문 아래 만화책을 모아놓고 불태웠다. 자살의 원인이 되었던 《철인 삼국지》와 그 작가는 비난과 처벌의 1호 대상자였음은 물론, 심지어는 애니메이션 또한 MBC의 《뽀빠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종영되었다.[2] --방법에 나선 높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1972년 2월 5일 매일경제 기사

가뜩이나 만화 검열제로 소재가 제한되었덴다가 사건 이전에도 '만화는 어린이에게 유해한 악서(惡書)' 라는 주제의 관변 단체 궐기대회가 열려 만화 분서 퍼포먼스도 종종 벌어지고 사회적 위상이 안 좋아졌고 합동의 독점 체제로 질적 저하까지 겹치던 만화계에 정병섭군의 자살은 대파란을 일으켰다. 그로인해 지금도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에게 지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은 시내 만화대본업소 517개를 수색하여 '불량만화' 라고 분류한 20,440여 권을 수거해 불태웠으며, 현대판 분서갱유? 10원 내지 20원[3]을 받고 TV를 보여주거나[4] 떡볶이 등의 음식물을 판매한 대본소 주인들은 공연법 위반 내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총 70여명이 즉심에 넘겨졌다. 또한 만화 창작과 관련된 69명이 고발 조치되었고 국내 58개의 만화 출판사 중 절반 이상이 등록 취소되었다. 심지어는 만화대본업소를 정리하고 쌀집을 운영하던 사람도 아이들의 증언에 의해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단속에는 이영래의 숨은 속셈이 있었는데, 그 사정은 합동출판사 문서를 참조.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풍자 만화나 역사 만화라 해서 나이 든 계층도 만화에 대한 인식이 퍽 나쁘진 않았으나[5]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인만화에 대해 피상적으로 가졌던 부정적인 인식이 제대로 쐐기를 박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40년[6]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은 크게 해소되지 않는 바람에 이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 프로그램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게 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서야 학습만화웹툰 등으로 활로를 트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게다가 이 사건이 대한민국 만화 산업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방영에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한 심의가 쓸데없이 엄격해지는 데도 한 몫 했다. 80년대 이후 애니메이션 및 비디오와 관련한 각종 자정활동이 진행되면서 9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어느정도 활로를 되찾긴 했지만, 만화든 애니든 미국과 일본에 판권료 갖다 바치는 판권 셔틀 행태는 4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하다.[7] 특히 청소년 애니메이션은 이것도 있어서 2013년 현재도 공급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정병섭군과 그걸 부추긴 정병섭의 누나"는 21세기의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특히 지금 만화가를 장래희망으로 둔 사람들에게 고인드립을 당하기도 한다.

3 또 다른 위기

40년이 지난 뒤, 웹툰계에도 폭력성 논란으로 한 차례 폭풍이 일었으나 노컷 캠페인 등의 자율적 규제활동이 진행된 덕에 어느정도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도전만화코너 아동 강간장면 게시 사건 탓에 한때 규제의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8] 그래도 언론은 물론, 독자들과 웹툰 작가들까지 모두가 앞장서서 해당 사건에 대한 비판 및 자정활동을 벌인 덕에 현재는 상당부분 안정화되었다. 웹툰계의 경우 이미 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이 상당수 나와 질적으로 안정됐다는 점에서, 당시 질적하락이 만연하던 정병섭 사건과는 대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웹툰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면 독자들이 먼저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4 유사 사례

만화는 각종 전자기기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몇 안 되는 오락매체의 하나였으므로, 뉴스데스크 폭력성 실험 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사망 사례로 2011년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온라인 게임을 강제로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면서 게임계도 정병섭군 자살 사건의 전철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사실 그렇게까지 끌고 갈 사항은 아닌데 높으신 분들이 쓸데없이 크게 반응하는 것도 있다. 정병섭 사건도 사실은 합동출판사가 문제를 키웠음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5 비슷한 사건들

나루토에 나오는 가아라를 따라하고 싶었던 미국 꼬마가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얼굴을 모래에 묻어 달라고 했다가 질식사하는 사건도 있었다.[9] 그리고 또 러시아에서 나루토우치하 이타치의 죽음을 본 14살 소년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7살 된 여자아이가 드라마 황제의 딸에 나온 제비를 따라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규제하진 않는다. 높으신 분들도 드라마는 보니까.

그러다가 또 중국에서 어린이들이 만화 장면을 따라하다 심한 화상을 입자 법원에서 범행을 저지른 소년 외에 만화 작가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6일 부산의 같은 6학년 초등학생이 모 공포소설에서 주인공이 목을 졸리는 장면을 모방하다가 사고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2015년 2월 일본 카와사키 중학생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러브라이브' 티셔츠를 입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논란이 터지는 중이다. 뭔 상관이지? 도대체 럽라의 어떤 장면을 보고 살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차라리 스쿨데이즈가 더 이해가 간다

2016년 4월 일본에서 6세 아동이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본 후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추락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아동이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는 것을 따라해보려다 사고가 일어난 것인지, 단순한 우연인지는 알 수 없다.

6 관련 문서

  1. 1975년 폐교
  2. 이 사건이 현재는 40~50대에 해당하는 위키러들이, 어렸을 때 부모들이 집에 있는 만화책을 발견하는 즉시 눈에 불을 켜고 내다버렸던 배경이다.
  3. 지금의 한국 경제로 치자면 1,000원, 2,000원쯤 된다.
  4. 당시에는 TV가 굉장한 희귀품이었다. 검정고무신 에피소드 중에 기영이 일행이 만화방에서 TV보러 가는 에피소드를 보면 알 수 있다.
  5. 다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만화들에는 부정적이었다.
  6. 지금이야 많이 안정됐지만,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7. 다만 이는 인식의 문제도 있었지만 (1987년이 되어서야 국산 TV용 애니메이션이 나온게 그 예.) 미국이나 일본에서 애니 수입해먹는게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하는거 보다 훨씬 싸게 먹히고 또, 광고료에 비해제작비가 비싸다 보니 수지타산에 잘 맞지 않아 저랬던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90년대까지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적용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한다. 하지만 80년대 시청료를 2500원씩이나 받아쳐먹으면서 땡전뉴스방영했을때랑 90년대 초중반 광고판매율이 90%를 넘겨서 수백-천억원대 흑자를 냈을대에도 애니메이션 제작에 그리 투자를 안해 먹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드치기 어렵다.
  8. 요즘 강간이나 수간등을 다루는 자극적인 만화들이 많이 나오면서 이런것들에 무감각해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9. 이 사건은 KBS 위기탈출 넘버원 2011년 5월 9일자 방송에서도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