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호베르투

SE 파우메이라스 No.11
주제 "제" 호베르투 자 시우바 주니오르
(José "Zé" Roberto da Silva Júnior)
생년월일1974년 7월 6일
국적브라질
출신지상파울루 주 이피랑가
포지션윙어,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172cm, 68kg
소속팀포르투게자 (1994~1997)
레알 마드리드 (1997~1998)
플라멩구 (임대) (1998)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8~2002)
FC 바이에른 뮌헨 (2002~2009)
산토스 FC (임대) (2006~2007)
함부르크 SV (2009~2011)
알 가라파(2011~2012)
그레미우 (2012~2014)
파우메이라스 (2015~ )
국가대표84경기 6골

브라질현역 미드필더.
축구를 위해 성욕마저 참는 남자 [1]

19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선수 가운데 파트리크 비에이라, 클라렌스 세도르프, 질베르투 실바, 미하엘 발락, 에메르손과 함께 전술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로 꼽힌다.

1 커리어

브라질의 포르투게자에서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데뷔했다.

포르투게자에서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를 맡아보며 다재다능함을 앞세운 좋은 활약으로 1995년 일약 19세의 나이에 브라질 국가대표가 되는데 그 데뷔전이 바로 대한민국과의 평가전. 이 경기는 둥가의 골로 0-1 대한민국의 패배였다.

포르투게자와 국가대표의 활약으로 유럽 무대에서의 영입제의가 왔는데 예상보다는 이르게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제의가 왔다. 1998년 1월 이적시장에서 약관 22세의 나이로 파비오 카펠로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에 긴급 수혈된 제 호베르투는 긴급 영입이다보니 크게 중용되지 않고 15경기 출전에 그치며 1998시즌을 마감, 짧게 유럽경험을 한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뛰게 된다.

본격적인 유럽무대 데뷔는 1998년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윙어를 겸업하며 미하엘 발락이 이끄는 강력한 중앙 미드필더진의 왼쪽을 책임지며 113경기 17골 34어시스트를 기록한다.

이때의 활약을 눈여겨본 분데스리가의 공룡 바이에른 뮌헨은 1200만 유로를 질러 미하엘 발락과 함께 제 호베르투를 영입한다. 제 호베르투는 레버쿠젠때처럼 발락의 왼쪽에 서서 바이에른의 미드필드를 책임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경쟁에 밀려 승선에 실패했지만 2006년까지 발락을 보좌해 바이에른에서 맹활약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2006년 이후에는 파트너 미하엘 발락이 첼시로 이적하고, 2004년부터 지휘해온 감독 펠릭스 마가트가 자신보다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를 중용하려 하자 이에 반발해 브라질 산토스로 돌아가기도 했다. 산토스에서는 놀랍게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며 48경기 12골을 기록한 제 호베르투는 펠릭스 마가트가 성적부진등을 이유로 사임한뒤 바이에른으로 돌아온 제 호베르투는 2009년까지 뮌헨을 위해 뛰었다. 반 봄멜과 함께 중원을 구축하던 제 호베르투는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중원을 휩쓸었다. 이 활동량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한편 왼쪽으로도 월드클래스였던 경력을 살려 필립 람, 프랑크 리베리와 함께 왼쪽 라인을 3명이서 공략하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주곤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위치상 크게 돋보이지는 못했지만 뮌헨이 여러모로 삐그덕대던 시기 거의 전경기 풀타임 활약하면서도 기복 없는 경기력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을 이끌어가던 사실상의 1등 공신이다.[2] 뮌헨에서는 169경기 14골 45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다.

09년 반 할 감독이 부임하자 2년 계약을 원하던 제 호베르투와 당시에도 노장이던 제 호베르투에게 1년 계약을 원하던 팀과 협상에 실패하고 함부르크 SV로 자유이적한다.[3][4] 제 호베르투는 함부르크에서 중앙 대신 윙으로 활약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에이스 라파엘 반 더 바르트의 이름이 쑥 들어가게 하는 플레이로 끝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5] 뛰어난 경기력과[6] 성실함으로 팬과 후배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으나 2011~12시즌 재계약 협상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54경기 7골 15어시스트의 기록을 끝으로 카타르의 알 가라파로 이적한다. 2012시즌 이후부터는 고국 브라질의 그레미우로 돌아갔다. 그레미우에서 3시즌 동안 83경기에 출장해 6골을 기록하였다. 2015 시즌 부터는 파우메이라스에서 뛰게 되었다.

2 플레이스타일

제 호베르투란 플레이어의 기본 얼개를 이루는 것은 엄청난 성실함이다. 브라질로 돌아가기 직전의 사진을 봐도 30대 후반인 아저씨가 군살도 없는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마르셀 얀센도 자기관리에 있어 제 호베르투처럼 완벽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일매일 근육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으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패스트푸드와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는 그야말로 프로정신의 화신이라고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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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몸에 자신이 대단한 나머지 바지를 너무 내려입었다

제 호베르투가 권유하는 자기 관리 비법
1. 술 마시지 마세요.
2. 담배 피지 마세요.
3. 섹스 조금만 하세요.
"전 결혼 18년 차지만, 와이프와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뭐, 제 자택이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런 거지만요." [7]

뛰어난 전술이해도와 그를 바탕으로 한 포지션 이해도도 발군. 기본적으로 왼쪽과 중앙 미드필더로서 활약했지만 04/05 시즌 비셴테 리사라수가 변덕을 부려 6개월 동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뛰었을 때 왼쪽 수비수 자리를 메꾼 건 제 호베르투였다. 이 04/05시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왼쪽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자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었고, 이듬해 이적한 산토스에선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다음해 뮌헨에 복귀해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함부르크에선 다시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다. 이 정도로 포지션을 바꿔대면 혼란을 느껴서 커리어 자체가 어그러지는 선수도 많은데 제 호베르투는 적응기도 별 필요없이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이런 전술이해도와 성실함으로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강철같은 체력과 죽지 않은 속도를 자랑하며 필드를 누볐다. 이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활약하는 노장들이 출장시간도 짧아지고 떨어지는 피지컬을 경험으로 메꾸는 경향을 무시하는 듯한 퍼포먼스는 가히 아르헨티나와 인테르하비에르 사네티에 비견될 정도. 사실 이 둘 정도의 연배와 클래스에서 그런 선수는 딱 이 둘뿐이다.

체력, 속도, 육체적 강인함, 전술이해도, 성실함. 거기에 측면으로 뛸 때는 그 스피드와 브라질리언다운 테크닉으로 상대방의 측면을 유린하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쌓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왼쪽 미드필더였다.[8]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기본적으로 경기 내내 보여주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살림꾼이었으며 여기에 남부럽지 않은 전진능력과 패스를 갖췄다. 그리고 준수한 득점능력까지. 제 호베르투는 시즌 내내 이 능력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발휘하는 믿음직한 선수였다.

3 인지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가대표 경력과 한국에서의 낮은 인지도. 95년 19세의 나이로 데뷔해 97년과 9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지만[9] 레버쿠젠으로 옮기고 나서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이 시절 브라질은 측면 미드필더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02년 월드컵 우승 멤버로 선발될 수 없었다. 그러나 06 월드컵에서 소위 황금 4중주라는 개막장 포메이션[10]의 브라질이 8강까지라도 올라간 건 중원에서 제 호베르투가 엄청난 활동량과 성실함으로 상대편 중원에 맞섬은 물론 전진과 패스까지 도맡아 하는 실로 눈이 부실 만한 활약상에 힘입은 것 외에 다름아니다. 전성기 시절에 포지션 문제로 빠지고, 산토스에서 뮌헨으로 복귀 이후는 아예 계약으로 대표팀 복귀 불가로 묶어 놨는데도 브라질 대표팀으로 84경기나 출전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11] 그러나 충분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02년 월드컵 멤버로 선발되지 못한 건 아쉬움이다. 에메르손이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에 더욱.

한국에서의 낮은 인지도도 아쉽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뛸 때는 눈에 잘 뛰기 어려운 중앙 미드필더로 다른 선수들의 후광에 가려졌고 그나마도 06 월드컵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06 월드컵 브라질은 국내에서 판타스틱 4 개개인의 후덜덜함을 찬양하는 걸로 시작해 프랑스에게 깨진 후로 지단과 대비되며 지단을 찬양하거나 판타스틱 4를 비웃는 그야말로 판타스틱 4로 시작해서 판타스틱 4로 끝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수수하게 제일 잘한 제 호베르투 위주로 보자면 브라질을 칭찬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제 호베르투를 욕하는 건 말도 안 되는데 남들 다 브라질 비웃는데 브라질 선수 개인을 칭찬하자니 그 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클럽팀 커리어도 당시 국내에선 별 관심이 없던 분데스리가에서만 뛴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바가 사실이다. 손흥민과 함께 뛰었더라면 멋진 경기력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손흥민 도우미로 알려졌을 텐데 마침 그 시즌에 카타르로 이적하는 바람에. 2015년에도 손흥민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받은 선수로 제 호베르투를 꼽기도 했다. 사실 손흥민만 특별한 게 아니라 그 시절 함부르크 유망주들은 죄다 제 호베르투를 존경하는 선수로 꼽는다.
  1. 자기 관리 비법으로 밝힌 것 중 하나가 아내와의 성생활을 참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피지컬 관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다.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던 옛날 감독이 그에게 틀린 사상을 주입시킨 것. 누가 이 아저씨한테 어서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 텐데...와이프만 불쌍
  2. 루시우, 다니엘 반 바이텐, 마르틴 데미첼리스 등의 불안한 수비력과 왕성하게 카드를 수집하며 경기력도 기복이 있던 반 봄멜을 고려하면 중앙의 기둥은 2년 동안 제 호베르투였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왼쪽 풀백이나 왼쪽 미드필더에 빈 자리가 꽤 자주 생겼는데 그때마다 땜빵으로 들어가는 등 없었으면 리그 운영 못했다.
  3. 필립 람은 이 이적에 대해서 큰 아쉬움을 표했다.
  4. 거기다 브라질 회사의 소유권 문제 때문에 제 호베르투가 자유로이 계약할 수 있는 것과는 별도로 적지는 않은 금액도 매년 가외로 지출하고 있었다.
  5. 바이에른과의 경기에서 1:0 경기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비수를 꽂기도 했다.
  6. 함부르크 최고 레전드 우베 젤러마저도 볼프강 오베라트 이후 이런 미드필더는 처음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볼프강 오베라트는 70년대 쾰른 원클럽맨 레전드로 월드컵 우승멤버.
  7. 다시 말하지만, 섹스가 피지컬 관리에 악영향 미치는 건 아니다. 누가 빨리 이 사실 좀 이 아저씨에게 전달 좀...
  8. 리베리 오고 나서는 자리를 내 주긴 했으나 리베리가 워낙 분데스레사 내 넘사벽급 윙어여서 그렇지, 결코 못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9. 98년 준우승도 충분히 주전으로 뛸 만했는데 자갈로가 몽니를 부리며 삼파이오-둥가 라인을 가동시켰다. 삼파이오는 사실 클래스가 많이 부족한 선수고 둥가는 노장이었다.
  10. 수비를 절대 하지도 않고 내려와서 운반도 잘 안 하는 4인방 - 카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 그나마 카카가짬에서 밀려서 좀 내려오는 편이었다.
  11. 사실 계속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다면 10년 월드컵에도 뛰었던 질베르투 실바와 충분히 경쟁할 만했으나 함부르크에서 다시 윙으로 뛰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