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17 시즌 스쿼드
1 데헤아 · 3 바이 · 4 존스 · 5 마르코스 로호 · 6 포그바 · 8 마타 · 9 이브라히모비치 · 10 루니 · 11 마르시알
12 스몰링 · 14 린가드 · 16 캐릭 · 17 블린트 · 18 · 19 래시포드 · 20 S. 로메로 · 21 안데르 에레라 · 22 미키타리안 · 23
24 포수멘사 · 25 발렌시아 · 27 펠라이니 · 36 다르미안 · 38 튀앙제브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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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No. 31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Bastian Schweinsteiger)
생년월일1984년 8월 1일
국적독일
출신지콜베르무르
신체 조건183cm, 79kg
포지션미드필더[1]
주로 쓰는 발오른발
등 번호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7번
FC 바이에른 뮌헨 - 31번
유소년 클럽FV 오베라우도르프 (1990 ~ 1992)
TSV 1860 로젠하임 (1992 ~ 1998)
FC 바이에른 뮌헨 (1998 ~ 2002)
소속 클럽FC 바이에른 뮌헨 (2002 ~ 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 ~ )
별명바스티온, 슈바이니, 슈슈[2]
국가대표
(2004 ~ 2016)
121경기, 24골[3]
SNS> > >
201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FW
다비드 비야
FW
디에고 포를란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차비 에르난데스
MF
웨슬리 스네이더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DF
마이콘
DF
세르히오 라모스
DF
카를레스 푸욜
DF
필립 람
GK
이케르 카시야스
HC[4]
비센테 델 보스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필립 람
(2010 ~ 2014)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14 ~ 2016)
마누엘 노이어
(2016 ~ )

13년 동안 헌신한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 미드필더.

야야 투레, 안드레아 피를로, 사비 알론소 등과 함께 2010년대 초반을 이끌었던 월드클래스 중앙 미드필더.

1 개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의 미드필더로 독일 선수 中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이며 유럽 4대 빅리그 현역 선수 中 최다 클럽 메이저 우승 기록 보유자[5]이다. 또한 프란츠 베켄바워 - 파울 브라이트너 - 로타어 마테우스 - 슈테판 에펜베르크 - 미하엘 발락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로 이어지는 독일 중원 사령관의 계보를 잇고 있다.[6][7]

레지스타와 홀딩 미드필더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자원으로써, 환상적인 패스와 중원 장악 능력을 보여주는 수비력, 강인한 체력, 완벽에 가까운 공-수 벨런스, 대포알같은 중거리슛과 상대방의 강력한 압박을 이겨내는 훌륭한 볼키핑 능력 등등 중앙 미드필더로써의 완전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역 월드클래스 중미들이 각자 공격, 탈압박, 수비에 한가지씩 장점이 있다고 하면 슈바이니의 장점은 공-수 벨런스에 있다고 보면 된다. 최근 2014년에는 이전보다 처진 위치에서 최정상급의 포백 보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Top 3안에 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아무것도 안하다가 한 번씩 갑자기 튀어나와서 스텟이나 찍는 윙어', '중거리 잘 쏘는 윙어' 수준으로 클럽에선 못하고 국대에서나 잘하는 공무원 소리까지 들었으나 09-10시즌을 기점으로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해 바이에른의 더블 우승을 이끌고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으며, 근 4년간 3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행, 2013년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과 5관왕의 주역으로 맹활약하는 동시에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에 다시 한 번 선정되며 최정상급 미드필더로써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최근에는 최후방 미드필더에서의 활약으로 독일의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했다. 자세한 활약상은 후술 참조.

2015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면서 바이에른 원클럽맨으로서의 길은 접어두고 적지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바이에른 팬들에게는 여전히 살아있는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13시즌간 바이에른의 윙과 중원을 지키며 1군 통산 500경기 68골 10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분데스리가 우승 8회, 포칼 우승 7회, 챔스 1회 우승과 2회 준우승 등 내로라하는 독일의 레전드들에 비해 결코 꿇리지 않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월드컵 우승은 덤.

2 스텟/기록

역대 스텟은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통산 기록은 500 경기 출전 68골 101 어시스트[8]를 올리고 있어 바이에른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치고는 꽤 스텟이 좋은 편인데, 물론 2009년 이전까지는 윙어로 뛰었다보니 어시스트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독일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2016년 7월 기준) 120 경기 출전 (A매치 최다 출전 4위 & 역대 5번째 센츄리 클럽) 24 골 40 어시스트이며, 그보다 많은 출전을 기록한 선수는 마테우스, 클로제, 포돌스키밖에 없다. 월드컵에서는 20경기에 출장했고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총합 38경기에 출장하는 기록을 남겼다.

  •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 - 역대 분데스리가 역사에서 단 3명뿐인 8회 우승(슈바인슈타이거, 올리버 칸, 메멧 숄의 8회 우승)
  • 역대 최다 포칼 우승 - 7회 우승(역대 포칼 47경기 9골 10어시스트)
  • 역대 독일 선수 中 공동 최다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 - (리가, 포칼, 챔스 합산) 16회 우승 기록 중. 2위는 15회의 올리버 칸.
  • 현역 유럽 빅리그 선수들 중 최다 클럽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 보유 - 19회의 라이언 긱스, 17회의 폴 스콜스, 16회의 하비에르 사네티가 차례로 은퇴하며 3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슈바인슈타이거가 1위로 올라섰다.
  •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단일 경기 가장 많은 볼터치를 달성한 선수로 기록 - 156회, 2014-2015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차전 CSKA 모스크바와의 홈경기에서 달성. 경기는 바이에른이 3대0 승리했으며 슈바인슈타이거는 1도움을 기록했다.
  • 독일 국가대표 주전으로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4강 이상 진출 - 대한민국에게는 신화로 남아있는 메이저대회 4강 무대를 밥먹듯이 밟았다. 주전으로 도약한 첫 대회인 06 독일월드컵에서 3위, 08 유로 준우승, 10 남아공월드컵 3위, 12 유로 4강, 14 브라질월드컵 우승, 16 유로 4강. 독일 국가대표의 암흑기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기까지 했다. 월드컵에서는 2골 8도움, 유로에서는 3골 5도움을 기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1984년생으로 같은 해에 태어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옌 로벤 등과 함께 뛰어난 실력과 노안(...)을 적절히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 패스 능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자주 뛰었지만 경기 중 기복이 심하고 스탯이나 쌓는 플레이를 일관하며 점점 계륵화되어갔으나 반 할이 2009-10 시즌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 바이에른과 독일 중원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윙어로 오래 뛴 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안 그래도 많은 활동량으로 경기장의 중앙을 앞뒤로 뛰어다니는 건 물론 활동범위도 심히 넓어 공격, 수비시 중앙 측면 가리지 않고 단단하게 아우른다. 말 그대로 종횡을 가리지않고, 무진 뛰어다니며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윙어일 때는 결코 빠르지는 않은 스피드의 한계 탓에 돌파를 잘 못했지만 그 대신 몸은 단단했는데, 중앙으로 오고 나서는 볼을 돌리는 와중에 상대의 위치나 바디밸런스 상태에 따라 한두 명 정도는 손쉽게 돌파 해내기도 한다.[9]

정확한 볼배급과 패스 센스, 수비력, 활동량, 대포알같은 중거리슛 모두 최상급이다. 허나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큰 경기에 약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슈바이니의 합류 이후 바이에른이나 독일 대표팀이 공식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 패배할 때는 항상 슈바이니가 제 기능을 못했고 그로 인한 균열이 경기력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10] 그렇다고 슈바이니가 결장하면 팀 벨런스가 아예 나락으로 치닫는데, 2011-12 시즌 슈바이니가 장기부상으로 이탈하자 토니 크로스아나톨리 티모슈크, 루이스 구스타보, 토마스 뮐러등은 모두 슈바이니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선두자리를 도르트문트에게 빼앗겼다. 이래저래 아쉬운 면이 있긴 하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선수. 바이에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시즌도 4강쯤 올라가면 슈바이니가 중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곧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회복되는데 걸리는 시간인 경우도 있었다.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에 슈바이니가 압박에 시달리며 지워지자 바이에른의 경기력이 그야말로 시망이었는데, 점점 위치를 잡으며 압박을 벗겨내자 경기력이 서서히 살아났다.
이런 큰 경기에서의 기복은 2012-13 시즌에 접어들면서 챔스 유벤투스FC 바르셀로나전에서 맹활약하면서 거의 해소되었고, 최근에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큰 경기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감독이 꼭 필요로 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또 한가지는 2011-12 시즌 막판과 유로 2012에서의 부진에서 알 수 있듯 부상당해서 돌아오면 폼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는게 큰 단점이다. 이 점 때문에 클래스에 비해 전성기 기량이 하락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희한할 정도로 2년 주기 부상에 시달리는데, 격년 주기로 한창 폼이 오르다가 시즌 중반에 부상 당해서 침체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2013-14 시즌도 2011-12 시즌만큼이나 장기부상으로 떨어진 폼을 회복하는데 꽤나 애먹고 있는 실정. 게다가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거의 세르히오 부스케츠같은 롤을 수행하다보니 이전 같이 본인이 빌드업 대부분을 책임지던 시절에 비해 양질의 패스 솜씨와 중거리슛도 보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요새는 프리킥 골이라도 많이 넣어줘서 그걸로 위안 삼는 듯)

2014년 모습은 그야말로 수비형 미드필더가 되어버린 듯. 이전에는 전천후 미드필더로써 공격지원과 볼배급, 중거리슈터 역할을 했다면 나이가 든 현재는 포백 바로 앞에 위치해 공격에 이따금씩 관여하긴 하지만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일단 팀이 짧은 패스 위주로 바뀌다보니 슈바이니의 롱패스가 크게 빛을 발할 일이 없어 필립 람토니 크로스가 대부분 볼배급을 담당하고 슈바이니는 가끔씩 롱패스나 중거리를 때릴 뿐 주로 포백 바로앞에서 진공청소기같은 역할을 하거나 순간적인 박스 침투로 마무리를 짓는 룰을 담당하고 있다. 뭔가 이전엔 중거리 잘때리는 전천후 미드필더였다가 2013-14시즌에 와서 공격->수비 위주로 역할변화를 한 이력은 뭔가 스티븐 제라드와 흡사하다. 특히 8강 프랑스전과 4강 브라질전은 이런 슈바이니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써의 능력을 유감없이 잘 보여줬다.

아래는 슈바인슈타이거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여주는 스페셜 영상. 공-수 양면에서 거의 만능형이다. #

4 활약상

4.1 데뷔와 윙어시절 -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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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유스 시절의 꼬마임에도 걸출한 노안 슈바이니

1998년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2001년 바이에른 B팀을 거쳐 2002-03시즌 1군 명단에 들어 정식 데뷔한 이후 2015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02년 12월 7일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리가 경기에서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3-0으로 승리했다. 이후 2003년 9월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왼발 중거리슛으로 분데스리가 첫 득점을 넣었다.

초기에는 주로 메멧 숄과 하산 살리하미지치의 백업 요원으로 출장했으나 강력한 중거리 슈팅과 준수한 드리블 센스를 보여주며 꾸준히 모습을 비추는 로테이션 자원으로 많은 경기에서 활약했고, 2004-05 시즌을 기점으로 점차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 제바스티안 다이슬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어지는 계속된 부상과 창의성을 갖춘 미드필더가 부족한 현실이다보니 슈바인슈타이거의 발재간과 모험성, 창의성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었던 것. 특히 슈바이니 특유의 중거리 슈팅력이 기복이 조금 있긴 해도 중요한 순간마다 공격 포인트로 잘 터져준 편이다. 2006년 하노버, 브레멘전이나 첼시, AC 밀란전이 그 대표적인 예. 조별리그 유벤투스전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원정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격이 슈바이니를 통해서 돌아갈 지경이었다. 첼시 FC와의 8강전에서 1, 2차전 모두 공격포인트를 올렸으며, 1차전에서는 조 콜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후 끌려가던 경기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2차전에서는 1차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골을 넣어야하는 경기에서 도리어 2-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게레로의 골을 만든 (흔히 말하는 0.9골 어시스트) 중거리 슛으로 페트르 체흐 골키퍼를 무너뜨렸다. 바이에른은 경기종료까지 메멧 숄의 추격골까지 더해 필사적으로 따라붙었으나 결국 합계에서 6대 5로 패했다.

2005-06 시즌은 발락-슈바이니-제호-살리하미지치 등의 미들진과 여전한 마카이, 피사로의 화력을 앞세워 리가, 포칼 더블에 성공했고, 챔스에서도 유베, 브뤼헤, 라피드 빈과 한 조가 되어 홈에서 전승을 거두며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지만 하필 만난 것은 천적 밀란(...) 챔스 16강 AC 밀란 원정에서 팀이 2-0으로 쫒기던 상황에서 특유의 필살기인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이스마엘의 골을 만들어냈으나 천적관계는 천적관계였는지 실력도 압도당하는데 골대 불운까지 겹치는 등 4-1로 패했고, 홈에서도 무재배를 거두며 챔스에서는 조기탈락한다.[11][12]

독일 월드컵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르고 돌아오니 2006-07 시즌 바이에른은 대혼란 그 자체. 개막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필살기 땅볼 중거리 골을 넣으며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2시즌 연속 더블을 기록한 챔피언의 위용은 온간데 없고 팀 전체적으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3위까지 주어지는 챔스권 내에도 못 들자 마가트 감독의 입지는 급격히 위태로워졌다. 그나마 웬일로 유럽대항전에서는 무려 인터 밀란에게 1승 1무를 거둔데다[13] 스포르팅에 1승1무,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1승1무로 조별리그 1위로 진출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스포르팅 원정에서 35m 거리에서 환상적인 중거리슛을 성공시켜놓고선 10분도 채 되지 않아 퇴장당해 졸지에 챔스 한정 가린샤 클럽에 준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 스파르타크와의 홈경기에서도 환상적인 논스톱 발리 중거리슛으로 달아나는 골을 기록했다.
전반기 막판 그래도 승수는 어찌어찌 챔스권 복귀 가능한 범위까지는 쌓고 챔스에서도 순항하고있으니 바이에른은 마가트를 신뢰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겨울 휴식기가 지나고도 팀 분위기는 영 시망이었다. DFB-포칼은 아헨같은 하위권 팀에게 일찌감찌 16강에서 발목잡혀 떨어졌고, 16강 상대는 하필 조1위로 올라갔음에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노인정 레알 마드리드고(..) 후반기 첫 경기부터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패하더니, 지난 시즌 2부리그에서 올라온 승격팀 보훔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바이에른 보드진은 더는 참지 못하고 1월 21일 마가트를 경질했고, 바이에른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했던 오트마르 히츠펠트를 다시 불러오기에 이른다. 근데 복귀하자마자 뉘른베르크전 대참사..
16강 레알 마드리드전은 그 유명한 로이 마카이 10초골 사건이 탄생한 그 경기다. 슈바인슈타이거도 나쁘지 않은 경기력으로 팀 승리에 일조했으나 하필 8강에서는 또다시 천적 AC 밀란을 만났..지만 원정에서 2대2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번에야말로 복수할 기회인 줄 알았으나 카카의 PK골과 필리포 인자기의 쐐기에 4강행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팀은 꾸역꾸역 부진을 수습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시즌을 4위로 마감해 다음시즌 챔스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7-08 시즌부터는 분노의 영입으로 프랑크 리베리가 합류했고, 이에 따라 슈바인슈타이거는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을 바꾼다. - 이 포지션은 독일 국대에서도 이어졌고, 루카스 포돌스키와의 아름다운 호흡으로 이어졌.. 지만 그건 국대에서 얘기고 팀에서 포돌스키는 애국자모드여서 그런지 부진 그 자체. 자신의을 데뷔시킨 은사 히츠펠트 아래에서 다양한 공격루트에 굳은 일을 도맡아 몸소 뛰어들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2008-09 시즌에는 개막전 함부르크 SV 전 홈경기부터 아름다운 논스톱 발리골을 넣더니 시즌 내내 자신의 커리어하이였던 9골 15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경기력에서는 여전히 합격점을 받기 어려운 계륵 수준. 이렇게 미친 스탯을 찍으면서도 플레이에 아쉬움이 크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대단한 일이긴 하다. [14] 특히 왼쪽에서는 활발히 중앙으로 파고들며 직접 슈팅을 노리고, 마치 중앙미드필더인 양 종횡무진 반대편 윙을 가리지 않고 뛰어줬던 이전에 비해 오른쪽 측면은 아직 적응이 안됐는지 앞에 두 명 이상만 자리를 막고 있어도 백패스를 남발하는 답답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그 정점이 바로 볼프스전과 FC 바르셀로나 전.[15] 그래도 리베리나 필립 람이 파괴한 측면에서의 볼이 중앙으로 들어오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불쑥 튀어들어와 잘라먹는 플레이로 적지 않은 골을 기록했고, 이 플레이는 국대에서 루카스 포돌스키와의 호흡에도 이어지며 포돌스키의 크로스를 독일이 위기상황일때마다 침투해서 잘 받아먹어주며 포르투갈, 터키전 승리에 큰 공헌을 하게 했다. 스포르팅이나 피오렌티나 전에서도 필살기 오른발 슈팅이 뿜어져 나오며 스텟을 잘 적립했다.

결국 시즌 스텟은 최고치를 쌓았으나 팀 성적은 무관(...)

4.1.1 UEFA 유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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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1년 U-17, 2002년 U-19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2004년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여 헝가리와의 친선 경기에 A매치 첫 출전하였다.

루디 푈러 체제 말기와 위르겐 클린스만 체제로 새로 단장하는 독일 대표팀에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와 함께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자주 기용되었으며, 이들은 유로 2004와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슈바이니는 유로 2004에서 체코전 미하엘 발락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으나 독일은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고 독일의 최악의 부진 속에 2무1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맛보았다. 이후 독일의 전면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람-포돌스키-슈바이니 3인방은 유망주에서 독일 대표팀의 중심으로 성장하며 조국에서 열릴 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한껏 모으게 되었다.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절친 포돌스키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독일은 3위를 차지했다.

4.1.2 2006 FIFA 월드컵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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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니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대회

22세의 어린 나이답지 않게 국제대회 경험이 충분했던 슈바인슈타이거는 3,4위전까지 독일이 치른 7경기 중 6경기를 선발로 뛰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 코스타리카 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추가골과 경기 막판 토어스텐 프링스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며, 마지막 라운드 에콰도르전에서도 아웃되기 직전의 볼을 가까스로 클로제에게 넘겨주며 어시스트를 기록한데다 후반전엔 날카로운 롱패스로 역습의 시발점이 되며 포돌스키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조별리그에서만 3어시스트를 기록한 슈바인슈타이거는 토너먼트에서는 큰 무대에서의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스웨덴전의 강력한 중거리슛외에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4강 이탈리아전에서는 다비드 오동코어에게 선발 자리를 넘겨주고 후반에 교체로 출장해야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과의 3,4위전에서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2골을 집어넣고 페티트의 자책골까지 어시스트하며 원맨쇼를 펼쳤다. 첫 월드컵에서 2골 4도움이라는, 눈에 띄는 스텟을 찍어주며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포지션은 왼쪽 윙어였다. 준수한 개인기와 볼터치를 보여줬기에 테크니션이 부족했던 독일 대표팀에서 많은 출장기회를 부여받으며 제법 창의성을 불어넣은데다 강력한 중거리슛팅까지 장착했지만, 윙어치곤 부족한 드리블 돌파 및 빠르지 않은 스피드에 지나치게 중앙 지향적인 성향, 중거리슛 난사등이 단점으로 지적받았다.

4.1.3 유로 2008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01.jpg

포르투갈의 공식 저승사자

유로 2008에서도 맹활약했는데, 처음엔 프리츠에게 밀린 서브로 출전하지만 첫경기 폴란드전에서도 상대 수비에 대한 집요한 견제끝에 루카스 포돌스키의 추가골을 만들어내며 주전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전 퇴장으로 인해 조별리그 경기 마지막 경기를 결장하게 되고, 이 경기는 미하엘 발락의 대포알같은 프리킥골로 간신히 1대0으로 승리하며 크로아티아에 밀린 조 2위로 간신히 8강에 진출한다

8강 상대는 2006 월드컵에서 만났던 포르투갈. 이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강행을 이끈다. 왼쪽 측면에서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올라온 포돌스키가 중앙으로 빠른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고, 슈바이니는 오른쪽윙에서부터 중앙으로 돌아들어가며 번개같은 쇄도로 선제골에 성공한다. 이후 두 번의 정확한 프리킥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발락의 헤딩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본격 포르투갈 킬러 호날두 지못미

4강 터키전에서도 이른시간에 선제골을 실점했으나 단 4분만에 포돌스키의 크로스를 날카로운 침투로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스페인과의 결승전은 주도권을 장악당한 상황에서도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홀로 고분군투 했으나 팀은 결국 1대0으로 패한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 중에 난입한 스페인 선수들의 기차놀이 세레머니에 굴욕을 당한다. [16]

4.2 2009-2010 시즌 바이에른 뮌헨

슈바이니가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첫 시즌.

아직 적응기였던 시즌 초반에는 4위까지 떨어지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폼이 올라오고 반봄멜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준수한 패싱력을 보여주었으며, 챔스 조별리그 유벤투스 원정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팀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덕분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큰 맘 먹고 지른 제니트 출신 미드필더 티모슈크는 철저히 벤치 신세를 지게된다(...) 티모엄마 지못미 유벤투스도 지못미

중거리 슈팅도 여전했다. 대표적으로 포칼컵 슈투트가르트전에서 강력한 오른발슛으로 레만을 무너뜨린 것과 도르트문트와의 더비전에서는 강력한 땅볼 중거리슛으로 동점골까지 넣었다. 특히 프리시즌이긴 하지만 아우디컵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자그마치 젠나로 가투소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제끼고 땅볼 중거리를 꽂아넣었다.ㅎㄷㄷ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3-0으로 팀이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비차 올리치의 추격골의 발판이 되는 롱패스를 토마스 뮐러에게 성공시켰으며, 중앙과 측면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를 괴롭혔다.[17] 올림피크 리옹과의 4강전에서도 뛰어난 발재간과 패스로 중원장악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1차전에서는 상대 중원의 핵심 제레미 툴랄랑을 퇴장시키는 공을 세우기도했다.[18] 팀은 1,2차전 합계 4-0으로 리옹을 크게 누르며 9년만에 결승전에 진출한다.

리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헤르타 베를린을 기분 좋게 3대1로 꺾으며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다. 샬케 04의 거친 추격을 막판까지 뿌리치는데 성공한 것. 포칼컵 결승전에선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보여주며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슈바이니는 날카로운 중앙 침투로 팀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결승에선 4강전의 퇴장 징계로 팀의 핵심 프랑크 리베리가 결장한 상태에서 인테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팀은 다시 한 번 더블을 달성하며 2008-09 시즌의 치욕을 씻게 되고, 슈바이니는 공로를 인정받아 빌트지로부터 Weltklasse(월드클래스)에 선정된다.[19]

4.2.1 중앙 미드필더 보직 변경

시즌을 앞두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아르옌 로벤이 영입됨으로써 포지션이 겹치는 본인의 팀내 입지가 크게 위협받게 되고, 이로 인해 거의 잉여자원으로 전락할 뻔한데다 유벤투스가 그를 강력히 원한다는 이적설이 나돌았다. 그러던 찰나에 슈바이니의 중앙지향적 성향과 패스 능력을 높이 산 반 할 감독은 그에게 중앙 미드필더로의 전향을 권유하게 되고, 슈바이니는 이를 승낙한다. 이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했는데, 슈바이니는 이미 펠릭스 마가트오트마르 히츠펠트 시절에도 몇 경기 실험 출전해 미하엘 발락의 역할을 수행해 봤으나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앙으로 옮긴다고 해도 포지션 경쟁자들은 팀의 주장이자 중원사령관 마르크 반 봄멜과 제니트의 UEFA 컵와 우크라이나의 월드컵 8강의 주역이었던 티모슈크였다. 그렇다곤 하나, 팀의 척추였던 제 호베르투가 빠진 큰 자리를 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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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슈바이니는 빼어난 활약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종식시켰다. 반 할 감독 초기에 팀이 휘청거리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반봄멜과 매우 단단하고 안정적인 중원 콤비를 형성했으며, 결과는 바로 리그-컵 더블우승과 9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이라는 성적으로 나타났다.

그의 중앙지향적 성향과 활동량은 오히려 포지션이 아예 중앙에 고정되면서 넓은 시야를 활용한 안정적인 볼배급을 가능케 했으며, 윙어 출신이다 보니 테크닉도 꽤 좋은 편이라 단단하지만 느린 반 봄멜에 비해 볼키핑도 훨씬 뛰어났다. 틈만 열리면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때릴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그러나 초반에는 수비적인 면에서 약점을 많이 드러냈으나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해결되었고, 이후 슈바이니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는 Top3에 포함될 만큼 수비력에서도 큰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4.3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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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중미로써의 대활약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어졌다.

1라운드 호주와의 경기에서부터 미하엘 발락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중원 장악능력을 보여주며 호주와 가나를 격파했다. 중간에 세르비아에게 클로제의 퇴장과 포돌스키의 PK실축 등 악재가 겹치며 1-0으로 패했으나 다행히 독일은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한다.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는 전반부터 제라드-램파드-베리의 중원을 압도하며 멀찌감찌 앞서갔고, 환상적인 역습으로 뮐러의 3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4-1 대승을 이끌고 8강에 진출했고, 당대 최강 리오넬 메시가 뛰고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는 전반 3분부터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한데 이어 후반에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20]급의 드리블 돌파를 보여주며 프리드리히의 골까지 만들어낸다. 수비에서도 메시를 꽁꽁 묶고 2어시를 올리는 등 슈바이니의 맹활약 힘입어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관광보낸다. 이 경기에서 슈바이니는 MoM에 선정되었다.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는 분전 끝에 푸욜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패배했지만, 주장완장을 차고 나온 우루과이와의 3,4위전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토마스 뮐러의 선제골을 만들어내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이번에도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대회 통산 4도움으로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다수의 언론과 피파로부터 대회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또한 슈바이니는 2009-10 시즌 맹활약하며 팀의 더블과 챔스 준우승, 그리고 독일의 월드컵 3위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10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는 기쁨을 맛봤다.

4.4 2010-2011 시즌 바이에른 뮌헨

시즌 초반 엄청난 월드컵 후폭풍에 시달리며 팀은 나락으로 치닫는다. 부상을 참고 결승전까지 뛴 로벤은 결국 부상이 악화 되었고, 팀은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떨어졌다. 최전방 공격진의 득점력 부진과 형편없는 수비로 팀은 11위까지 떨어진다(...) 그나마 슈바이니는 개막전 볼프스부르크전에서 후반 91분 결승골로 2-1 승리를 이끌고, 바젤과의 챔피언스리그전과 브레멘과의 포칼컵에서 홀로 2골씩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브레멘전에서는 32m거리에서 대포알같은 중거리로 때려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드필더 한 명이 분전한다고 해도 혼자 순위를 끌어올리는데에는 무리가 있는건 당연지사.

물론 슈바이니의 패스 센스도 눈에띄게 발전하는 등 개인적으로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수비가 뒷받쳐주지 않는 한 우승경쟁은 힘들다는걸 보여준 셈.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잠깐이긴 했지만 도중에 '중미' 슈바이니가 센터백으로 내려간적도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등 유럽의 주요 클럽들과의 이적설이 강력히 나돌기 시작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조세 무리뉴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 이후부터 슈바인슈타이거를 강력히 원했다. 여기에 여름에 레알로 이적한 독일 국대 동료 사미 케디라가 "슈바인슈타이거가 레알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라고 발언해서 이적설에 불을 지폈던 적이 있다. 또한 맨유 이적설도 굉장히 거셌는데, 특히 슈바이니의 친형인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는 맨유의 굉장한 광팬이라 동생 바스티에게 맨유로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슈바이니도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EPL의 경기장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이에른에서 행복하지만 미래의 일은 어떻게 될 지 확답할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한 적이 있어 이적설에 무게가 실렸다.

팀의 주장 반 봄멜마저 AC 밀란으로 떠난 마당에 슈바이니마저 떠나면 바이에른의 치명타가 됐을 뻔한 상황에서, 슈바이니는 결국 바이에른에 남는것을 선택했다.[21] 리가 전반기 마지막 홈경기였던 쟝크트 파울리와의 16라운드 경기 승리 후 홈 팬들앞에서 직접 바이에른과 5년 재계약했음을 밝혔고, 홈 팬들도 뜨거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12년간 이 클럽을 위해 뛰었다"
"내 심장은 붉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색 - 내 미래는 바이에른에 있다"

오오 슈바이니 오오

다행히 나락까지 떨어졌던 순위는 시즌 중반 쯤 접어들면서 마리오 고메즈가 각성하며 골을 마구마구 삽입하기 시작했고, 프랑크 리베리의 폼이 돌아오면서 빠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루이즈 구스타보의 합류로 반봄멜의 공백을 지우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선두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좀처럼 순위가 떨어지질 않고, 샬케 04와의 DFB-포칼 4강전에서도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쇼에 1-0으로 패하고, 챔피언스리그도 인터 밀란에 1차전을 승리하고 2차전에서도 전반내내 가둬놓고 패며 2-1로 앞서다가도 후반 막판 실점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며 16강에서 원정다득점 순위에 밀려 탈락하고, 결국 막판에 리가에서도 3위를 기록하며 무관에 그치며 암울한 시즌을 보낸다. 리가에서도 막판까지 4위에 머물며 하바터면 유로파리그로 밀릴 뻔 하다가(!!) 32R 에서야 하노버를 끌어내리고 3위자리를 차지해 간신히 플레이오프 자격을 얻었다. 마가트 시절때처럼 바이에른이 유로파리그 나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 했다

4.5 2011-2012 시즌 바이에른 뮌헨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하피냐 등등 우수한 자원을 대거 영입한 바이에른은 2년 만에 우승 도전에 나섰고 슈바이니의 기량은 여전히 출중했다. 바이에른은 개막전 삽질 빼고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였고, 그 중심에는 슈바이니가 있었다. 양질의 패스를 배급하며 바이에른의 공격을 이끌었고, 뉘른베르크전에서는 또다시 중거리슛을 뿜어내며 1골 1도움을 올렸다.

챔스에서도 날아다녔는데, FC 취리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헤딩골을 넣으며 1,2차전 합계 3-0 완승을 거뒀고, 1라운드 바야레알 원정에서는 토니 크로스와 함께 다소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해 2-0 승리를 이끌었다. 화제가 되었던 맨체스터 시티와의 2차전에서도 슈바이니는 야야 투레와의 중원싸움에서 압승을 거두며 후반에는 거의 맨시티를 가둬놓고 팼다. 후반 중반쯤엔 강력한 중거리도 날렸으나 조 하트가 가까스로 쳐냈다. 경기는 마리오 고메즈의 멀티골로 2-0 승리.

하지만 이렇던 슈바이니에게 시즌 중반에 크나큰 위기가 찾아온다.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4차전에서 쾨칸 인러와의 공중볼 경합의 충돌로 인해 어깨뼈 골절 부상을 당하게되고, 거의 2~3달간을 쉬어야했다 (처음에는 6주 부상이었으나 점차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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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뼈 골절상으로 실려나가는 슈바인슈타이거

슈바이니가 빠진 바이에른의 경기력은 나락으로 치닫았다. 중원 장악도 형편 없었고 볼배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중원사령관을 잃은 바이에른은 토니 크로스가 중미로 내려오고 토마스 뮐러를 다시 중앙으로 돌렸으나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선두자리를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다시 빼앗겼다.

후반기 묀헨글라트바흐전에 복귀해서 만회골을 터뜨렸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에도 부상 후유증과 계속되는 잔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았으며 실전 감각도 점차 떨어져갔다. 그로 인해 이전 같은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딱 평타만 쳤다.

바젤 FC와의 챔스 16강 2차전에서 오랜만에 후반전에 복귀해들어와 아르연 로번의 쐐기골을 멋진 킬패스로 어시스트했고, 마르세유와의 8강 1차전 원정경기에도 출장해 괜찮은 폼을 보여줬다. 2차전은 경고누적으로 결장.

그러나 잔부상은 계속되었고 가장 중요한 데어 클라시커를 앞두고 또 부상, 결국 슈바이니가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30라운드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건 리가경기에서 바이에른은 1-0으로 패하며 분데스 우승은 물건너가게 되었다.[22] 역시 도르트문트와의 포칼컵 결승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팀의 대패를 막지 못했다.

천만다행으로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4강전을 앞두고 복귀해 좋은 수비력을 보여줬고, 날카로운 중거리슛도 쏘는 등 평타 이상은 쳤다. 2차전도 120분 풀타임 출장했으며,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마지막 5번 키커로 니서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무너뜨리며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2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다시 올랐다.

4.5.1 참담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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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첼시 FC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다섯 번째 키커로 나와 치명적인 실축을 범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실축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은 홈에서 첼시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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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축이후 자책하는 모습.

이날 슈바이니의 폼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바이에른이 첼시를 가둬놓고 패도록 좋은 점유율 확보와 공격 전개를 보여줬다. 그러나 연장전 아르연 로번이 페널티킥을 찰 땐 차마 못쳐다보고 자기편 진영에서 뒤돌아있는 등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5번 키커로 나서서 기어이 불안한 징조가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잠깐 멈칫거리면서 찬 슈바이니의 슛이 골퍼스트를 정확히 때리고 튕겨나가버린 것(..)[23] 결국 첼시의 드록바가 성공시키며 비극적인 PK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2011-12 시즌 팀은 분데스리가, 포칼컵, 챔스 3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준우승 트레블의 비극을 겪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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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슈바인슈타이거는 챔피언스리그 종료 직후 엄청난 결례를 범하고 만다. 그것도 상대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첼시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 후, 바이에른 선수들이 단상으로 차례대로 준우승 메달을 받으며 지나갔다. 플라티니 회장 바로 옆에 가우크 대통령도 비록 패했지만 바이에른 선수들에게 일일히 악수를 건네며 그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오직 슈바인슈타이거 혼자만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관련링크 독일이 아무리 내각제 국가라고는 하나 그래도 대통령은 엄연히 국가의 원수다.

결국 독일 내부에서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엄청난 구설수에 올라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승부차기 마지막 주자로 나와서 실축하는 바람에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놓치게 한 것까지 겹치면서. 뭐 본인 해명에 따르면 당시 패배감에 젖어 가우크 대통령이 손을 내민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했고 사과도 했다. 영상으로는 실축 직후 눈물을 흘리며 유니폼에 얼굴을 묻었고, 단상에 올라갈때까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은메달을 받았을때도 차마 목에걸지 못하고 그냥 손으로 잡고 고개를 떨구고 내려왔는데 제일 끝자리에 있던 가우크 대통령이 손을 내민것을 못봤을 법도 하다. 어쨋건 위에 언급했듯 슈바이니도 즉각 사과를 했고, 가우크 대통령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더이상 슈바이니를 갈구지 말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이듬해 2012-13 포칼컵 결승전이 열린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둘은 재회했고, 시상식 단상에서 가우크 대통령과 슈바이니는 웃으며 악수했다.

4.6 유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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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12도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매 경기 선발출장 했으며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볼터치를 한 선수로 기록 되었지만 활약은 신통치않았다. 부상 이후 떨어진 폼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나마 포르투갈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동선을 간파해 안정적인 포백보호를 통한 클린싯 승리를 이끌었고, 네덜란드전에서는 전반전 마리오 고메즈의 두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슈바인슈타이거를 자유롭게 냅두면 어떤 참변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그 외 경기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진 못하고 딱 '평타'만 쳤다. 덴마크와 그리스를 차례로 격파하고 올라가는 동안 꾸준히 선발출장 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은 아니었다.

독일은 결국 이탈리아전의 졸전끝에 2-1로 패하며 4강에서 탈락한다. 안드레아 피를로와의 중원싸움에서 완패한 것도 원인이지만 마리오 발로텔리의 이른 시간에 터진 두 방에 결국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이며 패하고 말았다.

4.7 2012-2013 시즌 바이에른 뮌헨

슈바인슈타이거의 최전성기

준우승 트레블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한 2012-2013 시즌, 여전히 꾸준히 선발 출장하여 골과 어시스트를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에 비해 눈에 띄게 물오른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팀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과 3라운드 마인츠전에서 윙과 중앙을 오가는 활동량을 보이며 각각 1득점을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발렌시아전에서 로벤의 패스를 강력한 무회전슛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했고, 주말 경기 함부르크원정에서도 크로스의 크로스를 다이빙헤딩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해 3대0 승리를 이끌었다.

슛 정확도도 물이 올라 팀의 전담 프리키커를 맡았고, 샬케와 릴, 레버쿠젠전에 각각 프리킥 골을 기록했다. 호펜하임 원정에서는 프리킥으로 골대 같은곳만 두 번 때렸다(...)

또한 이번에 새로 영입된 하비 마르티네즈와 지난 시즌 파트너였던 루이즈 구스타보와도 찰떡콤비를 이루며 바이에른 경기때마다 그라운드를 초등학교 운동장마냥 누비고 있다. 그야말로 중원의 지휘자.

특히 슈바이니와 하비 콤비는 만나는 팀마다 중원을 아작내버리며(...) 하인케스 전술의 핵심인 게겐 프레싱과 빠른 공수전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중원 강력하기로 전세계 1,2위를 다투는 FC 바르셀로나와 MVP라인의 유벤투스마저 녹여버렸다.

슈바이니는 포칼컵 8강에서도 홀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중원을 쓸어버리며 지난 시즌 패배를 설욕했고[24], 안드레아 피를로-마르키시오-아르투로 비달의 MVP 라인을 앞세운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중원 싸움에 우위를 점하며 유로 2012 이탈리아전 패배를 어느 정도 되갚아주는데 성공했다.
특히 2차전에서는 막판에 빠른 퍼스트 터치로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피를로를 한 번에 따돌리며 킬패스를 찔러 피사로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마리오 만주키치의 선제골도 슈바이니의 날카로운 프리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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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피를로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슈바인슈타이거

리가 28라운드,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필립 람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백힐슛으로 연결하며 결승골을 넣었다. 이 골로 팀은 분데스 역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확정하며 3년만에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되찾아온다.

그리고 가장 화제를 모았던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의 챔스 4강전!!!
슈바이니와 하비 콤비는 이번 경기에서도 완성형 티키타카를 구사하는 바르샤의 중원을 파괴하며 1,2차전 합계 7-0 으로 털어버리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ㄷㄷ 슈바이니는 1,2차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태클과 가로채기를 성공했으며 1차전에서 아르연 로번의 세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2차전에서도 로벤과 람에게 골이나 다름없는 킬패스를 성공시켰지만 (1차전에서 삽질한)피케의 영혼의 태클에 막히며 추가 어시스트에는 실패했다.[25] 여담으로 슈바이니와 하비에게 꽁꽁 묶인 리오넬 메시는 유효슈팅을 단 한개도 날리지 못했다.

아래는 슈바이니-하비 콤비가 바르샤 중원을 아작내는 참고 영상. 심지어 홈도 아니고 캄프 누 원정에서 치른 경기다.

4.7.1 트레블의 위업

그리고 이어진 2013년 5월 2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를 떨어트리고 올라온 최대의 라이벌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슈바이니는 전반에 도르트문트의 오버페이스로 나오는 압박에 고전하며 거의 경기장에서 지워졌으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차츰 존재감을 비추기 시작했고 전반전 오버페이스 압박 탓에 도르트문트는 차츰 체력적으로 밀렸다. 슈바이니-하비 듀오는 다시 한 번 중원을 씹어먹으며 거의 반코트 경기로 도르트문트를 가둬놓고 패기 시작했고, 후반 막바지에 람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중거리를 날렸으나 이날 약빨고 경기한 바이덴펠러가 가까스로 쳐냈다.
경기는 후반 44분 아르옌 로벤의 드라마틱한 결승골로 2대1 승리를 거두게 되고 슈바이니는 생애 첫 빅이어를 들어올린다. 작년 첼시전 패배의 원흉이었던 로벤과 슈바이니가 1년만에 다시 올라온 결승 무대에서 승리 후 울면서 포옹하는 장면이 나름 감동적.

그 후 6월 2일 슈투트가르트와의 포칼 결승전에서도 상대의 거친 육탄공격에 발목 부분을 수없이 다치며 고전했지만, 마리오 고메즈의 쐐기골을 만든 롱패스를 뮐러에게 찔러줬고, 이비셰비치의 골이나 다름없던 쇄도를 태클로 저지하는 등 맹활약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바이에른은 리가, 챔스에 이어 DFB-포칼마저 제패하며 독일 클럽사상 첫 트레블을 이루는 쾌거를 맛본다.

2013년 현재 세계 최강의 중앙 미드필더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빌트지에서 무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지네딘 지단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슈바이니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인터뷰했다.(Schweinsteiger ist mein Lieblings ; Lieblings는 영어의 Favorite의 의미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마도 라이벌 바르샤를 털어줬기때문일지도..??

또한 환상적인 중원 장악과 준수한 스텟에 팀의 트레블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3년 전에 이어 2013 독일 올해의 선수에 다시 한 번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3 UEFA 베스트11에는 마르코 로이스, 가레스 베일등의 윙어들에게 표가 밀리다보니 근소한 차이로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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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아픔을 딛고 기어이 빅이어를 들어올린 슈바인슈타이거. 저 빅이어가 작년 본인의 실축으로 홈에서 놓쳐 눈물을 삼켜야했던 트로피였다.

4.8 2013-2014 시즌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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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부임 이후 팀 기본전술이 4-1-4-1로 전환됨에 따라 이전보다 한층 수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11-12 시즌처럼 중간에 3개월 정도의 긴 공백기를 가진데다 한 시즌 내내 부상에 골골거리느라 이전 시즌같은 전성기 시절 포스는 많이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인 순간마다 한순간의 침투나 프리킥으로 8골을 몰아쳤을 정도로 클래스는 여전하다는걸 보여줬다.

12/13시즌 최전성기를 달렸던 것에 비해 폼이 꽤 떨어졌는데, 지난 시즌 DFB-포칼 결승에서 당한 발목 부상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과르디올라 컨피덴셜에서도 이때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슈바인슈타이거는 일정 기간동안 직선으로 뛰는 트레이닝만 해야했고, 하필 발목부상으로 인해 방향전환에 계속해서 애를 먹어야했다.

결국 부상여파로 프리시즌 경기에 대부분 결장했다. 도르트문트와의 독일슈퍼컵도 후반에 잠깐 교체 출장해 뭐 좀 해보지도 못하고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했다.

다행히 리가 개막 때에 맞춰 회복해서 3라운드까지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FC 뉘른베르크전을 모두 선발 출전해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아일랜드전 월드컵 예선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4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에서 후반 막판 깊은 태클을 당해 그나마 갓 복귀한 슈바이니는 다시 발목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다(..) 안습 결국 리벤지 매치였던 첼시와의 UEFA 슈퍼컵도 결장했다.(다행히 경기는 챔스 결승의 완전 반대 드라마가 나오며 바이에른 뮌헨이 승리했다)

하노버전에서도 결장했으나 다행히도 6라운드 샬케 원정에서 선발로 복귀해 선제 헤딩골을 기록한데다 수차례 양질의 패스를 보여주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팀도 4대0으로 크게 이겼다.

2013년 10월 15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 축구 사상 12번째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는 영광을 안았다. 경기는 독일이 3-1로 승리.

체스카 모스크바와 맨체스터 시티, 볼프스부르크전에서도 연이어 선발로 나서며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맨시티전에서는 진공청소기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야야 투레와의 중원 싸움에서 압승을 거뒀고, 바이에른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홀딩 역할을 환상적으로 수행해주었다.

하지만 티아고 알칸타라마리오 괴체의 부상으로인한 공백으로 슈바이니는 본인에게 익숙치 않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게 되자 포지션이 다소 애매해지며 약간 다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사이에 토니 크로스필립 람이 자신의 볼배급 역할까지 번갈아가면서 대신 수행하자 더더욱 역할이 애매해지며 플레이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바이에른 공격의 시발점이었던 슈바이니가 이번 시즌에는 중원에서 자리를 못잡고 헤메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아무래도 4-2-3-1 바이에른의 더블볼란치 전술의 핵심 역할이었던 슈바이니가 4-1-4-1로 변화된 과르디올라 체제에 얼마나 빠르게, 어느 위치에 적응할지가 최대의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강력한 무회전슛을 장착하고 돌아온 다비드 알라바에게 프리킥 키커 자리까지 내줬다. (근데 사실 프리킥 정확도는 여전히 슈바이니가 훨씬 좋다.)

그나마 빅토리아 플젠과의 챔스 3차전 홈경기에서 마리오 괴체의 땅볼크로스를 환상적인 퍼스트터치로 방향을 돌리며 앞의 수비수 두 명 사이에서 반박자 빠르게 단 두 번의 터치로 추가골을 넣었다. 그외에도 경기내내 좋은 수비력과 패싱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헤르타 베를린전 홈경기에서도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딩골을 만들어냈다.

바이에른은 현재 챔스 조별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있다.

리가 중반으로 접어드는 11라운드 현재 발목부상이 재발하여 재수술을 받게되었고,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6주 아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정확한 복귀시점은 아직 미지수. 이로써 2013-14 분데스리가의 판도가 달려있는 '데어 클라시커', 도르트문트 원정을 뛸 수 없게 되었다.

12월 16일,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빠르게 러닝 훈련에 복귀했다. FIFA 클럽 월드컵출전은 약간 무리이고 리가 후반기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Best11 선정이 유력시되었으나 발롱도르 시상때에 공개된 2013 월드 베스트11에는 여전히 슈바인슈타이거가 아닌 사비 에르난데스가 선정되어 이거 인기투표 아니냐는둥 많은 비난이 흘러나왔다. 객관적으로도 사비는 역대 기록한 업적을 보면 언터쳐블이지만 2013년 한정으로는 슈바인슈타이거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 슈바이니가 중원에서 이끄는 바이에른은 5관왕을 달성했고, 특히 트레블을 달성하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때 슈바이니가 빠진 경기는 팀 벨런스가 크게 휘청거렸을정도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둘의 맞대결이었던 바이에른과 바르셀로나의 챔스 4강전에서도 중원싸움에서 사비를 완전히 압도한 모습을 보여준 슈바인슈타이거였기에 이번 기회에 선정되지 못한 것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클 듯 하다. 이로써 인기투표 인증

이미 발롱도르와 베스트11은 이전 선정방식이던 유명 저널리스트들의 투표가 아니라 각 팀 주장, 감독들도 투표할 수 있게 방식이 바뀐 FIFA 통합 발롱도르는 모든 리그를 다 봤을리 만무한 객관성이 떨어지는 표심 때문에 공신력도 떨어지고, 인맥도 많이 작용하기때문에 FIFA는 스스로 상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짓을 하고있는 셈. 작년 베스트11에도 훨씬 뛰어난 활약을 펼친 필립 람 대신 다소 삐걱거린 모습을 보여준 다니에우 아우베스가 그대로 베스트11에 올라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인기투표 또 인증

그리고 긴 공백을 뒤로하고 드디어 함부르크 SV와의 DFB-포칼 8강전에 교체출전으로 복귀하여 역시 클래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은 5-0으로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스날 원정은 결장했으나 이어진 하노버 96 원정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전해 75분을 뛰었다. 오랜 시간 부상후 복귀여서 폼은 저하되어 보였으나 역시 넓은 시야와 클래스는 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절묘한 패스로 티아고 알칸타라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팀도 4-0으로 대승.

샬케 04와의 23라운드 홈경기에서도 선발출장해 80여분을 뛰었다. 바이에른이 상대를 압도하도록 점유율을 확보하는데 중심 역할을 잘 해줬고, 팀도 5대1로 크게 이겼다. 후반에는 골문 구석을 향한 논스톱 인사이드슛으로 복귀골을 넣을 뻔도 했으나 이날 선방쇼를 펼친 페어만에게 막혔다.

볼프스부르크 원정은 로테이션으로 결장하고 주중에 치러진 아스날 FC와의 16강 2차전 홈경기에 선발로 출장해 풀타임을 뛰며 맹활약했다. 지난 시즌 본인과 프랑크 리베리의 부재로 뜬금패를 당했으나 이번에는 깔끔한 터치로 복귀골을 넣었고, 강력한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는 등 맹활약했다. 바이에른은 1-1 무승부를 거두며 합계스코어 3-1로 8강행에 성공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이 경기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었다.
이어진 레버쿠젠과의 홈경기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장해 맹활약을 펼쳤다. 팽팽하게 맞서던 전반 막판 절묘한 크로스로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시작 직후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베른트 레노를 꼼짝 못하게 만들며 득점에 성공,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27라운드 헤르타 베를린 원정에서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절묘한 패스로 마리오 괴체의 득점을 만들어내며 팀의 3-1 승리를 만들었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시즌 28라운드에서 확정한 최단기간 우승을 다시 한 번 경신하며, 유럽 빅리그 사상 초유의, 3월에 우승을 확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대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공-수 양면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맨유의 역습을 날카로운 태클로 조기에 차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네마냐 비디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 후반 초반에는 마리오 만주키치의 원터치 연결을 그대로 환상적인 왼발 논스톱슛으로 연결해 다비드 데 헤아를 무너뜨리고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전 웨인 루니에게 태클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고 말았다.[27] 졸지에 슈바이니는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사실 슈바이니의 가린샤클럽 가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게 2006-07 챔피언스 리그 스포르팅 리스본 원정에서도 전반 17분 35m 중거리슛으로 환상의 선제골을 기록해놓고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거친 태클로 경고누적 퇴장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잔여 시즌동안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고생하며 그냥 그럭저럭 큰 존재감 없이 평타만 쳤다. 3월말 우승 확정 이후 바이에른은 이전까지 53경기 무패를 달리다가 우승 확정후 10경기 4승이라는 극악의 부진에 빠지는 등 팀 전체적으로 동기부여가 사라져서 순식간에 팀이 휘청휘청거렸으니 슈바이니 혼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기대 이하였던건 사실.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1,2차전과 30라운드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도 나왔으나 워낙 역습에 휘둘리거나 세트피스에서 잇따라 실점하며 패스만 줄기차게 돌렸지 뭐 좀 해보지도 못하고 이번 시즌 가장 중요했던 저 세경기를 모두 패했다. 복수전이었던 도르트문트와의 포칼컵 결승과 리가 최종전 슈투트가르트전에는 부상으로 결장했다. 결국 바이에른은 더블로 시즌을 마감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시즌 막판의 부상 때문에 조마조마했으나 다행히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23인 최종 명단에 승선했다.

4.9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슈바인슈타이거의 만샤프트에서의 활약의 정점 [28]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독일팬들도 바이에른 팬들도 조마조마했다. 카메룬과의 평가전에서 결장했고, 최종전 아르메니아전에서도 후반 20분정도만 나와서 뛰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얼마 안돼서 베네딕트 회베데스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응?

1차전 직전 훈련중에 부상당해 62km나 떨어진 병원으로 헬기로 긴급 공수되었다는 기사가 일파만파 퍼져 독일과 바이에른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때문이 아니고 재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CT촬영하러 갔던 거였다.
그래도 컨디션이 온전하지는 않아 포르투갈과의 1차전에서는 교체멤버에는 포함되었으나 출장하지는 못했다. 독일은 이 경기를 토마스 뮐러의 헤트트릭과 페페의 퇴장에 힘입어 4-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또한 애꿎은 포르투갈은 대체 무슨 죄인지 이 경기의 대승으로 약 한 달 전에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4강 경기에서의 대패를 국대에서나마 어느 정도 코엔트랑, 페페, 호날두에게 분풀이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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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은 보아텡 의 대결로 관심이 모아졌던 가나전[29]. 예상 외로 가나의 엄청난 선전에 독일이 말리는 양상이었고, 슈바인슈타이거는 2대1로 밀리던 후반 21분 사미 케디라와 교체되어 들어가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확실히 토니 크로스의 다소 정직한 패스보다는 경험이 많은 슈바인스타이거의 경기 조율이 더 클래스가 있었고, 후반 막판에 메수트 외질에게 꿀패스도 찔러줬지만 가나 수비가 혼신의 힘을 다해 클로제에게 마지막 공이 흘러가는걸 막아내서 결승골로 이어지진 못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슈바이니의 폼은 제법 괜찮았다는 평.

많은 독일의 레전드들도 토니 크로스의 경험부족으로 다소 답답한 중원 경기운영을 비판하며 슈바이니의 선발을 촉구했다.[30][31]

3차전 미국전에서도 중원에서 홀딩으로 분전하며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잘 수행해줬다. 다만 부상여파로 폼이 완벽하지 않았는데 미국 선수들이 워낙 거친태클을 많이 걸어서 땅바닥에 여러번 뒹굴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 여튼 토마스 뮐러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하며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16강 알제리전과 8강 프랑스전도 연이어 선발출장했으며, 사미 케디라와 함께 부상으로 골골거렸지만 적어도 평타는 쳐주며 독일의 4대회 연속 4강행을 이끌었다. 특히 프랑스전에서 후멜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다 쏠려서 가려졌지만 안정적인 포백보호는 인상적이었다. 4강 상대는 개최국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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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서도 워낙 독일의 화력이 불이 붙어 돋보이진 않았지만 수비적인 역할의 중심추를 담당하며 브라질의 역공을 철저히 봉쇄했고, 12.6km를 뛰며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활동량을 기록해 독일의 7-1 대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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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간지폭풍 그 자체. 거의 독일의 영혼 그 자체였다.

아르헨의 소림 축구급 태클과 거친 육탄전에 상대를 수없이 쓰러뜨리고, 또 본인도 수없이 그라운드에 뒹굴었다. 다리 경련이 올라온 상태에서 비글리아와 마스체라노의 쌍둥이 태클공격을 받고 쓰러졌으나 벌떡 일어나서 뛰는 모습은 오오 감동.

결국 아게로와의 충돌로 얼굴에 출혈까지 있었는데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그로스크로이츠와 교체시키려했지만 자신이 끝까지 뛰겠다고 요청해 끝끝내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단순히 출혈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살이 찢어져 봉합이 필요했으나 본인의 의지로 당연히 마취도 안하고 사이드라인에서 급하게 꿰메고 들어왔다. 독일 관중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결국 투혼을 보여준 슈바이니는 연장 후반 마리오 괴체의 한방으로 앞서가게 되고 독일의 우승이 확정되자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껴안고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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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이 경기의 백미로는 슈바이니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대회 최고의 홀딩 미드필더를 두고 한판 승부. 결국 슈바이니는 양 팀 합쳐서 가장 높은 15.3km 라는 초인적인 활동량을 보여주며 리오넬 메시로드리고 팔라시오 등 상대 공격진들을 잘 방어해내며 숨은 공신으로 활약했다.

FIFA 선정 MoM은 결승골을 터뜨린 마리오 괴체가 차지했지만 진정한 이 경기의 숨은 영웅은 슈바인슈타이거라는데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경기 후 홀로 스카이스포츠 평점 9.0을 받으며 양팀 합쳐 최고 평점을 기록, MVP로 선정되었다. 이날 124회의 볼터치로 필립 람의 131회 다음으로 많았으며, 90%의 패스성공률과 4회의 인터셉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32]

역시 FIFA 선정 대회 베스트11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외 스카이스포츠, 데일리메일 등 다수 언론사로부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나름 호평을 받았다. 아래는 그나마 공신력 높은 스카이스포츠가 선정한 토너먼트 베스트11이니 참고할 것.[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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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월드컵을 손에 든 슈바인슈타이거

4.10 2014-2015 시즌 바이에른 뮌헨

월드컵 종료 후 필립 람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전현직 주장이 한 팀에 ㄷㄷㄷ 근데 이제는 아니다...

중원에서의 파트너였던 토니 크로스가 레알로 떠나면서 다시 하인케스 체제에서처럼 중원에서 볼배급 룰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혹은 여러 친선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실험중인 다비드 알라바와 콤비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

브라질 월드컵을 치른 독일 대표팀 멤버들은 8월 첫 주까지 휴가를 즐기고 있기에 필립 람, 제롬 보아텡, 마누엘 노이어 등과 더불어 프리시즌 평가전과 텔레콤컵에는 불참했다. 미국 투어 중 포틀랜드에서 합류해 미국 MLS 올스타전에 후반에 잠깐 교체투입됐는데, 친선전임에도 불구하고 MLS팀이 굉장히 거칠게 나와 슈바인슈타이거가 들어가자마자 부상당해 교체아웃되었다(..) 과르디올라는 그야말로 빡쳐서 상대 감독의 악수도 거부하는 등 분위기도 안좋아졌다.[34]

8월 7일 있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레전드매치에서 하프타임에 폴 스콜스의 사인과 유니폼을 요청했고, 스콜스는 월드컵 우승까지 한 세계적인 선수가 자신의 유니폼을 원한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해하며 자신이 입은 유니폼에 사인해서 주었다는 훈훈한 일화가 알려졌다. 그런데 딱 하나뿐이었던 준비해온 마킹 유니폼을 슈바이니에게 주는 바람에 스콜스는 후반에 등번호가 마킹되지 않은 예비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했다고(...)

결국 무릎 통증이 악화되어 슈퍼컵도 결장했고 몇 주 동안 결장이 불가피해보인다. 2013-14 시즌 1년 내내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발목 통증에 시달렸던 슈바이니는 월드컵이야 단기간 토너먼트인데다 조국을 대표하는 대회이니 정신력으로 끝끝내 버티면서 결승전까지 전부 소화했지만 시즌 내내 그러다간 선수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현재 어떠한 훈련도 하지 않는 채 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MLS 올스타전에서 왜 빡쳤는지 알만하다.

9월 A매치를 앞두고 소집된 독일 국가대표팀 컨퍼런스에서 요아힘 뢰브 감독은 은퇴한 필립 람의 뒤를 이어 슈바인슈타이거를 주장으로 결정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클래스도 클래스지만 2004년 첫 소집되어 어느덧 대표팀 10년차인 관록의 중원사령관인 데다 팀, 지역감정 구분없이 타 팀 선수들이나 후보선수들까지 일일이 챙겨주며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 이 점은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잘 보여주었다.

한편 올스타전에서 당한 부상은 장기부상으로 악화되었고, 현재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는 어떤 훈련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재활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팀닥터의 진단에 의하면 내년 1월에나 복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갓 이적해 온 사비 알론소가 슈바인스타이거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일단 8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을 앞두고 팀 트레이닝에 복귀해 30분정도 트레이닝을 했다는 희소식이 들어왔다. 예상 복귀기간을 확 단축시켜버리는 슈바이니의 짐승같은 회복력을 기대해야 할 듯. 중원에서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의 조합만 완성된다면 다시 한 번 트레블을 노리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닐 정도의 강력한 조합이 될 것임이 자명하기에 팬들과 선수단도 빨리 슈바이니가 복귀해 폼을 회복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일단 알론소 혼자서 하드캐리중인데도 리가 독주중이다

2014 발롱도르 후보 23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어느덧 2010년부터 5년 연속이다. 하지만 현재 장기부상으로 전반기를 통째로 쉬고있다보니 작년처럼 Top 10에 들기는 힘들어보인다. 결국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며 여러 유력지들로부터 복귀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리고 있다. 예상 복귀시점은 호펜하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슈바이니의 복귀가 임박하자 다비드 알라바필립 람이 장기간 부상을 끊으며부상자가 8명을 넘어간다 복귀하지도 않은 슈바인슈타이거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는데.. 드디어 호펜하임전에서 76분 괴체와 교체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2014-15 시즌 복귀를 알렸다. 몸 풀 때부터 홈팬들은 슈바이니의 이름을 연호했으며 드디어 괴체와 교체투입되자 7만여 홈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복귀하는 장면은 장관 그 자체. 그리고 몇 분 안되어 제바스티안 로데의 바이에른 데뷔골을 어시스트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부상으로 후반기를 통으로 날렸음에도 포포투 선정 2014 최고의 선수 100인에 22위로 선정되었다. 월드컵 우승에 온몸을 바친 게 평가에 크게 작용한 듯.

마인츠 원정을 끝으로 바이에른의 전반기 일정이 모두 끝난 현재, 슈바인슈타이거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좋아보인다. 최악의 부상악령으로 알론소 외에 클래스 있는 중원 사령관이 전무했던데다 그 알론소마저도 혹사에 시달리고 있던 때에 복귀해서 그간의 공백이 무색하지않게 패스, 탈압박, 수비 등등에서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17라운드 마인츠전에서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마저 부상으로 빠진데다 선제골까지 전반에 헌납했으나 곧바로 골문 상단을 정확히 노린 환상적인 직접프리킥 골로 팀을 구해내고 자신도 복귀골을 신고했다. 바이에른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14승 3무로 단독1위를 질주중이며, 챔스에서도 맨시티전 10명이서 싸우다 아쉽게 역전패한 그 1패만 빼면 전승을 달리고있다.

후반기도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빼고는 순항중이지만 중요 경기마다 사비 알론소와 콤비를 이루는 경기에서 유난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게 앞에 언급했던 볼프스 원정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이었던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 슈바이니-알론소 콤비는 2013-14시즌 슈바이니-토니 크로스 콤비가 지녔던 단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둘의 동선이나 성향이 비효율적으로 너무 겹친다. 마치 따로따로 떨어졌을땐 최강으로 군림하던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둘의 조합이 안 맞는 것과 비슷하다. 알론소가 수비형미드필더 자리를 맡고 슈바인슈타이거가 평소보다 전진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슈바이니가 평소 포지션이 아니다보니 제 기량을 발휘를 못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알론소를 전진시키면 슈바인슈타이거야 뭐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알론소도 탈압박이 딱히 좋은 편이 아니라서 장점이 상당부분 반감되어버린다. 유프 하인케스식 4-2-3-1이었다면 둘을 동시 가동하는게 엄청난 효과를 볼지 몰라도 이미 4-1-4-1 혹은 다이아몬드 중원과 플랫 3백을 바탕으로 하는 3-4-3 체제가 정착되어버린 펩 체제하에서는 볼란치가 한 명만 있으면 되다보니 감독의 스타일상 두 선수들 한꺼번에 다 잘 쓰기는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샬케전 무재배 이후 4연승 20득점의 쾌속행진을 하는 동안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사비 알론소와 슈바인슈타이거를 번갈아가며 선발출전시키고 다른 한명은 벤치에 뒀는데, 알론슈 조합을 가동시키는것보단 둘을 따로따로 쓸 때 확실히 경기력이 좋지만 그렇다고 한명을 벤치에 두자니 슈바인슈타이거나 사비 알론소급 네임벨류의 선수를 선수 불만을 고려하면 계속 벤치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칠 지경이다. 앞으로의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2월 27일, 팀 창단 115주년 기념 경기였던 쾰른전 홈경기에서 높은 타점의 강력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1골 1도움의 맹활약으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인 마인츠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에서의 500경기 출장을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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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경기는 다음 시즌 유니폼까지 입었건만 슈바이니가 바이에른에서 출장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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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이적.
슈바인슈타이거 커리어 사상 최악의 흑역사가 될 상황

2014-15 시즌 종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링크가 뜨며 마테우스, 베켄바워 등 여러 독일의 레전드들이 이적에 대한 고려를 심각하게 해보라는 발언과 반 할 감독이 옛제자 영입에 자신 있다는 발언까지 이적에 관련된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와서 과연 정말로 떠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7월 11일 빌트 독점보도에 따르면 슈바인슈타이거가 맨유 이적에 가깝다고 보도 되었다. 이유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하며, 과거 반 할 감독과의 관계 및 현재 바이에른에서의 팀 내 위치와 불투명한 미래가 거론되고 있다. 결국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사장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슈바이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간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이적이 확정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메디컬 테스트만 남겨놓았다는 소식과 함께 모든 게 완료되면 맨유의 프리시즌 투어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7월 13일 모든 이적 절차가 완료되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슈바인슈타이거를 내보낸 것에 분노와 좌절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필립 람과 함께 유스 시절부터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만을 위해 뛰어온 원클럽맨이자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35]인만큼 팬덤도 두터운 데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도 수위 안에 드는 최고의 미드필더를 빼앗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1년 전 감독의 전술 문제를 문제 삼으며 마리오 만주키치를 AT 마드리드로 이적시키고 토니 크로스와는 재계약 문제로 마찰을 빚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데 이어 또다시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이적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독일 현지에서도 팬들을 중심으로 구단에 성토를 보내는 중이다. 아예 대놓고 팬들이 바이에른 훈련장에 펩과 루메니게를 디스하는 걸개를 걸고 돌아가버릴 정도.

한편 이적 이후에는 23번을 달고 프리 시즌으로 소화하였고, 이후 시즌 개막 직전 마루앙 펠라이니에게 양보받아서 바이에른 시절 달았던 등번호인 31번을 다시 받게 되었다.

슈바인슈타이거의 이적에 대해 축알못들의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사비 알론소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쫓겨나듯 이적해왔다는 건데 당연히 개소리.[36]
선발로는 확고부동한 주전임을 과시했음에도 슈바인슈타이거가 2014-15시즌 경기당 69.3분에 그친 것은 잦은 부상 때문이었다. 모두 22경기나 부상자명단에 올라 전력에서 제외됐다. 바이에른 전체 일정의 42.3%(22/52)나 빠졌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슈바이니가 출전 가능한 상태일 때에는 모조리 주전으로 출장시켰고, 선발 출장시에는 평균 85.4분을 뛰며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21경기 5골 7도움을 기록, 알론소의 공격포인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준수한 기록이다. 필립 람의 부상도 한 몫 했지만 선발로 주장완장까지 차고 나온 것도 14경기나 될 정도로 펩 체제에서 신임을 받았다. 복귀전에서 제바스티안 로데의 골을 어시스트 한 것을 포함해 교체출전까지 포함하면 총 결산으로 리그에서 28경기 5골 8도움, 90분당 공격포인트는 0.6을 찍으며 중미로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경기에 출장해 90분당 0.79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슈바인슈타이거가 부상자가 아님에도 벤치만 지킨 것은 단 2차례다. 팀 훈련합류 직후라 뛰지 않는 것이 안전했던 한 번을 빼면 감독의 전술적인 판단에 따른 결장은 1회에 불과했다. 즉, 알론소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서 떠났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축알못들과 기레기들의 개소리일 뿐. 알론소도 잘했지만 슈바이니가 밀리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4.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5-16시즌

떠나면 개고생이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스페셜 영상이긴 하지만 클래스가 클래스인지라 출전하면 밥값은 그럭저럭 해줬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슈나이덜린, 캐릭과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면서 입지가 더 나아졌을 것이지만 워낙 팀에서 이탈한 기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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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후반 마이클 캐릭과 교체됨으로서 많은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지만, 모르간 슈네데를랭과 호흡을 맞추며 정확한 패스와 뛰어난 공수 조율 능력을 보여주었다.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클럽 브뤼헤와의 2차전 원정경기에서 환상적인 킬패스로 안데르 에레라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첫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초반에는 체력 문제로 활약상이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클래스 어디 안 간다고 무서운 속도로 리그에 적응하여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캐릭-슈나이덜린과 로테이션으로 사용되긴 하나, 3명 중 가장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중원을 튼튼히 지키고 있다. 다만 반 할 감독의 성향과 전술때문에 중거리 슛이 매우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쉬운 편. 사실 바이에른에 있을 때부터 2013년 후반부를 기점으로 적지않은 나이와 무릎 문제로 인해 슛을 매우 아끼거나 왼발로만 때렸다.[37]

아스날 원정에서 캐릭과 함께 중원을 구성했으나 전체적인 판을 잘못 가져오긴 했지만 아스날의 빠른 패스웍과 움직임에 상당히 고전하여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캐릭-슈바이니의 베테랑 조합은 빠른 커버링과 기동력에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슈나이덜린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에버튼 원정에서는 슈나이덜린과 함께 선발 출장해 뛰어난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었고 안정된 모습으로 후방 지원에 충실했다.

캐릭이 부상당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슈나이덜린과 중원을 구성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매 경기 노련한 볼 컨트롤과 경기 운영을 보여주며 최소한 미들진의 불안함은 날려보내는 중. 다만 결정적인 킬패스나 강력한 중거리슛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바이에른같이 공격진이 많이 움직이는 팀에서 맨유로 와서 그렇기도 하다. 왓포드 원정에서 PK를 얻어맞고 무승부가 될뻔한 경기를 정규시간 종료 몇초를 남기고 골을 우겨 넣어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정확히는 자책골이지만 김동완 해설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자책골을 이끌어냈다고 평가. 워낙 각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정확히 골대쪽으로 노려서 걷어내더라도 위험한, 걷어내지 못하면 거의 골인 상황을 만들어 결국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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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노답들아! 내가 캐리한다!!! 챔스 우승급 세레머니

14라운드 레스터 시티전 전반 45분에 코너킥을 헤딩으로 처리하며 EPL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전반기 동안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팬들이 기대한 그 시절의 슈바인슈타이거의 모습에 미치지는 못했다. 대체로 평가는 못한건 아니지만 눈에 띄게 잘한건 아닌, 밥값은 했다 정도. 기동력이 부족하다보니 아스날 전처럼 심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과도한 백패스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맨유의 경기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며 본인도 활약도가 오르는 중. 특히 공을 잡은 채 각종 현란한 개인기를 쓰며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모습에 슈바이니가 원래 저랬나 하는 말들도 나오곤 한다. 2016년 리그 경기 중 경기 막판 무릎 부상으로 당분간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유로파 리그 16강 리버풀과의 노스 웨스트 더비 1차전에 복귀전을 치뤘다. 맨체스터 더비가 끝난 뒤 A매치 경기 때문에 독일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으나 훈련 중 무릎 부상이 재발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즌 아웃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부상이 확정되어 결국 시즌 아웃 되었다.

부상으로 워낙 많은 경기를 날려먹다 보니 급기야는 슈바인슈타이거 영입은 실패작이라는 현지에서의 칼럼이 올라올 정도이다.

정리하자면 출전 때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기댓값에 비하면 부족한 편이었고, 출전 경기 수 자체가 부상으로 많이 날려 먹어 절반은 실패한 영입이라 볼 수 있다. 확실히 실패라고 보기에는 활약 자체는 준수했고 확실히 실패가 아니라고 보기에는 경기 수도 부족하고 부상도 자주 당하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음 시즌 때의 활약도 보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뢰브 감독의 신뢰는 여전해서 유로 2016 독일 국가대표 최종 23인 명단에 캡틴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개막 직전 헝가리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토니 크로스와 교체하며 드디어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팀도 2대0으로 승리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30대에 접어든데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슈바인슈타이거를 이미 살생부에 올렸다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 분데스리가로의 복귀설이 떠오르고 있다. 팬들은 바이에른으로 돌아와주길 목빠지게 기다리는 중.[38]

4.13 유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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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3일, 조별리그 1차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 후반 41분 교체 투입되었고, 경기 종료 직전 역습 찬스에서 전방으로 침투하면서 메수트 외질이 올린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이후 주전 미드필더인 크로스-케디라 라인에 밀려 교체 출전에 그쳤지만 8강 이탈리아전에서 경기 초반 케디라의 부상으로 조기 투입되었다. 급작스러운 투입이었지만 그래도 105분 동안 1인분은 해내며 팀에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오 고메즈가 비록 잔루이지 부폰에게 막혔지만 결정적인 추가골 찬스를 만들어낸 시발점이 되는 킬패스도 넣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번 키커로 나섰고, 바로 직전 마누엘 노이어레오나르도 보누치의 슛을 멋지게 선방한 후 자신에게 경기가 끝낼 기회가 왔지만 승부차기에 약한 새가슴 모습을 보여 실축하면서 경기를 끝맺지 못했다. 바이에른 뮌헨이나 슈바인슈타이거 팬들에게는 악몽으로 남아있는 11-1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가 생각나는 소름끼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39][40] 다행히 독일은 6~9번 키커가 모두 성공시켰고 노이어가 이탈리아의 9번 키커 마테오 다르미안의 슛을 막아 독일은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4강 프랑스전에서는 사미 케디라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며 이번 유로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특히 바이에른 혹은 독일 킬러라고까지 불리던 올리비에 지루를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만들어버렸을 정도로 지루와 앙투안 그리즈만을 향하는 역습을 모조리 차단했다. 첫 5분 동안은 프랑스가 활발히 공세를 펼쳤지만 그 이후 독일이 주도권을 잡으며 일방적으로 두드려패며 프랑스를 압박했고, 이 기반은 엠레 찬과 슈바인슈타이거의 중원 장악 덕분이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결장한 마리오 고메즈의 공백과 토마스 뮐러의 부진으로 골을 넣지 못했고, 그러다 전반 종료 직전 프랑스의 코너킥 공격때 파트리스 에브라와의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핸드볼 반칙을 범하며 PK를 내줬다. 결국 그리즈만에게 선제골을 실점하면서 독일은 조급해졌고, 후반전 수비 실수와 함께 추가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이 0-2로 밀리고 있는 후반 78분에 레로이 자네와 교체되었고, 독일은 상황 반전에 실패하며 탈락했다.[41]

대회 종료 후 로타어 마테우스미하엘 발락이 슈바인슈타이거의 국가대표 은퇴를 권유했고, 결국 7월 29일 독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절친으로 유명한 루카스 포돌스키와 함께 핀란드와의 친선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가 확정됐다. 포돌스키는 부상으로 경기엔 못 나오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마지막 주장 완장을 달고서 길었던 독일 국가 대표팀 커리어가 끝나게 되었다.

9월 1일, 핀란드전에 선발출장해 65분동안 그라운드를 누볐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클래스 있는 패스와 활동량을 보여주며 독일 주장 완장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마지막 경기를 치뤘다. 관객들 포함 모든 독일 관계자들이 SERVUS BASTI (잘가, 바스티!)라는 슬로건으로 슈바인슈타이거의 은퇴를 기념했다.

4.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6-17시즌

낙동강 오리알이 되다

유로 종료 이후 휴가를 보내다가 다시 맨유로 복귀했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명단 제외였다. 전 시즌은 부상으로 날리고 폼도 좋지 않았는데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로는 2군으로 밀려났다.

주제 무리뉴 감독은 슈바인슈타이거와 면담을 통해 다음 시즌 자신의 팀 플랜에 없다는 통보를 전하고 그에게 새로운 팀을 알아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슈바이니는 이적보다는 팀에 남아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길 원했고, 결국 무리뉴는 슈바인슈타이거를 1군 공식 팀 훈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8월 24일, 슈바이니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맨유는 본인이 바이에른을 떠나게 만든 유일한 클럽이며 이 곳이 유럽 무대에서 뛰는 마지막 클럽이 될 것이라면서 떠날 생각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현재 슈바인슈타이거는 공식 팀 훈련에 참가할 수 없고 개인 훈련만 하는 중이다. 이로 인해 슈바이니가 맨유를 떠날 것이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소식 또한 나왔다. 그러나 바이에른의 수뇌부들과 일부 선수들은 슈바이니의 2군행에 대한 맨유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선수로 다시 바이에른에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사를 보였다. 또한 국제축구선수협회가 슈바이니의 2군행을 지시한 무리뉴의 결정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팀 플랜에 없는 선수를 제외시킨 것은 엄연한 감독의 권한이며 일방적 통보가 아닌 면담을 통한 것이였으니 무리뉴에 대한 비판은 옳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슈바이니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 2015-16 시즌 부상을 당했을 때마다 치료에 전념하기보다는 판 할의 특별 대우로 독일로 자주 건너갔고[42] 그 시기에 여자친구의 테니스 경기를 따라다닌 것이 밝혀졌다. 이를 참다 못한 맨유 고참 선수들이 테니스 경기 좀 그만 보러 다니고 몸 관리에나 집중해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팀 내 신망도 잃어버린 상황이라 계속 남아도 눈칫밥만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성명서 발표 이후 무리뉴는 인터뷰에서 현재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잔류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경기 출전의 기회는 거의 주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왜 출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지는 위에서 말한 몸 관리 및 동료와의 관계 미흡, 여자친구 테니스 경기보러 다닌 것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잃어버린 유리몸에 고액 주급을 받는 한물 간 선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정말 본인이 기회를 잡고 싶었으면 유로 2016에서 기량을 증명해내거나 유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재활에 전념한 이후 프리시즌에 참가하여 폼을 끌어올려 반전의 기회를 얻어내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지난 시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본인의 기량도 전성기에서 하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리뉴는 그를 팀 플랜에서 제외해버린 것이다. 앞으로 슈바이니에게 남은 것은 지금처럼 경기 출전도 못하고 적당히 돈만 받다가 계약 만료로 끝내던가 맨유와 계약 해지를 하고 꾸준히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겨서 커리어를 마무리하던지 이제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리그 25인 로스터에는 등록이 되었지만 유로파리그 명단에는 들지못했다.

현재까지 공식 경기 출전이 0으로, 아예 라커룸까지 정리한채로 캐링턴에서 혼자 훈련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맨유 팬들이 안타까워하긴 하나 반할 감독밑에서 너무 과하게 편애를 받으며 팀 분위기를 흐트린것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펠라이니도 폼이 별로고 캐릭, 슈나이덜린과 로테이션으로라도 써보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긴하다. 하지만 안그래도 찍혔는데다가 캐릭과 슈나이덜린도 출전수가 낮은 와중에 어떻게 써먹을 수가 없다. 그나마 로테이션을 돌리는 유로파에서는 아예 명단 제외고 리그에서는 명단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MLS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게 쳐지긴 하나 영 지지부진한 듯. 이대로면 슈바이니에게 맨유 시절은 흑역사 그 자체로 남을 듯 하다.

현재 2군 훈련에도 무리뉴가 제외해버렸다!
2군 감독 웨런 조이스 감독이 호출을 했는데 불구하고 1군 감독 권한으로 무리뉴가 막아버린것,
이쯤되면 거의 신경질적인 대응이라 볼 수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번 시즌 현재까지 챔스권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해봐야하는데 그 방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선수를 기회를 안주는 것도 모자라 훈련까지 막아버린것.
이쯤되면 무리뉴 감독은 슈바인슈타이거와 개인적인 불화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행보다.

...인 줄 알았으나 10월 31일부로 1군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현 맨유 부진에 따른 무리뉴의 플랜 철회로 보여진다. 슈슈 복귀에 바이언 팬들은 물론이고 모든 커뮤니티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맨유 팬들은 못마땅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라 여기고 있는듯.

5 슈바인슈타이거에 대한 말, 말, 말

그는 나에게 로이 킨을 연상시킨다. - 파트리크 비에이라
내게 있어서 아주 위대한 선수다. 나는 그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 지네딘 지단
슈바인슈타이거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는 큰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 올리버 칸
차비 에르난데스? 필요없다. 바이에른엔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지 않은가. 이젠 없다. 감독까지 둘 다 없다. 이젠 사비도 없다 - 유프 하인케스
독일의 중심은 단연 슈바인슈타이거다. 그는 경기의 속도를 조율할 줄 아는 선수다. 그의 출장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 토마스 헬머
'독일은 슈바인슈타이거가 허리에 있을 때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한다. '"독일은" 맨유는 아니고 - 조세 무리뉴
그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이다. 그러나 골프는 영 꽝이다. - 토마스 뮐러 너는 골 세레모니가 영 꽝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대로 슈바인슈타이거는 환상적인 선수다. 우리 팀에 합류한 후 그는 환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팀의 모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처럼 경험이 많고 성공한 선수를 보유하는 것은 팀에 큰 도움이 된다. - 웨인 루니
슈바인슈타이거는 세계 최고다. 그에게서 많은 점들은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하다. 그는 항상 볼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그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파악하고 있다. - 안데르 에레라
슈바인슈타이거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그는 팀에 경험과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선수다. - 알렉스 퍼거슨

6 기타

  •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부주장을 역임했었다. 주장은 절친인 필립 람. 최근 브라질 월드컵 우승 이후 필립 람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해 이제는 슈바인슈타이거가 주장이다. 등번호는 국대에서는 7번을 달고 나오지만, 클럽에서는 바이에른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등번호 31번을 달았다. Bastian SCHW31NST31GER [43]
  • 특히 2009년을 기점으로 유럽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중이지만 유난히 FIFPro XI과 인연이 없다.[44] 2010년 바이에른 뮌헨의 더블 우승과 챔스 준우승을 이끈 동시에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도 맹활약해 3위를 이끌고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하필 차비 에르난데스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스페인이 챔스에선 죽쒀도 월드컵을 우승해서 밀렸고, 2013년엔 바이에른의 독일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이끄는데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그 시즌 바이에른에게 7:0으로 대파당했고 라리가 하나만 우승한데 그친 사비에게 또다시 FIFPro XI 중미 자리를 뺏겨 독일 축구팬들의 엄청난 원성을 샀다. 2014년 또한 팀의 더블우승과 독일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팀에서의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를 토니 크로스에게 내줬기도 했지만, 무관에 그치고 월드컵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그대로 선정되 또한번 원성을 샀다.
  • 헤딩슛으로 골대를 맞추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걸 다 골로 환산하면 미들라이커로 분류됐을 정도였다 카더라 특히 10-11시즌에는 헤딩으로만 골대를 7번 강타했다.
  • 그의 형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는 30살이 되어서 뒤늦게 축구를 시작했다.(축구선수가 되기 전에 독일 국가대표 스키선수였다고한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형이 축구선수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를 2012년 3월 부로 바이에른 뮌헨의 2부리그 팀으로 영입했다. 이로서 형제가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형은 2부리그에서, 동생은 1부리그에서 뛰게 된다. 근데 2015년 동생이 바이에른을 떠났다. 하지만 형은 원래 맨유 골수팬이어서 오히려 이적을 환영했다. 그리고 토비아스는 현제 바이에른 뮌헨 U-17 코치직을 하고있다.
  • 대부분 그의 팬덤은 슈바이니의 원맨쇼나 다름없는 2006 독일 월드컵 3,4위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중거리 슛으로만 3골을 만들어 낸 장면을 보고나서 반한 축구 팬들일것이다. 실제로 슈바이니는 미하엘 발락,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안드레아 피를로, 사비 알론소 등 한 중거리 때린다는 선수들에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중거리슛 능력을 지니고있고, 롱패스 능력이 지금처럼 일취월장하기 이전에는 중거리슛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45] 안타깝게도 중거리슛팅을 지양하는 유프 하인케스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하에서는[46] 확실한 상황이 아닐땐 최대한 슈팅을 자제하고 볼 배급에만 집중하고있어서 다소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다.
  • 슈바인슈타이거라는 그의 성은 직역하면 '돼지 들어올리는 사람'이란 뜻이 되어 의미불명이 되지만(das Schwein = 돼지, steigen = 들어올리다) 실은 바이에른 지방의 방언에 Steige는 '우리'라는 뜻이 있다. 즉, '돼지우리'(이름 참...) 이 이름은 조상이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47] 바이에른 지방은 현재도 돼지를 많이 기른다고 한다.
  • 축구 외에도 농구를 매우 좋아한다. 자주 바이에른 농구클럽 경기를 보러다니거나 친구들, 팬들과 농구하는 사진을 자주 올린다.
  • 페널티킥 트라우마가 있다. 이전까지는 강력한 킥력으로 바이에른과 독일의 주요 페널티킥 전담 키커였고 11-12 챔스 4강 레알 마드리드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와 바이에른의 승리를 확정지었지만, 결승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와 골대를 맞추며 팀의 홈에서의 패배를 가져온 장본인이기에 많이 낙담했기 때문.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2012 프리시즌중 리가토탈컵에서도 유프 하인케스가 승부차기에서 일부러 키커를 시켰는데, 여기서도 미엘리츠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며 결국 본인이 페널티킥을 안찬다고 한다. 하지만 유로 2016 8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5번 키커가 해결하지 못하자 주장인 슈바인슈타이거가 차게 됐는데 표정에서부터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더니 홈런을 날리며 실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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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Gs가 이쁜 선수중 한명으로 평가받는다. 사라 브란트너(Sarah Brandner)와는 2007년부터 2014년 월드컵까지 사귀었다. 브란트너가 슈바인슈타이거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나이는 18세이다. 실제로 WAGs 인기투표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전 여자친구였던 다니엘라 아우마이어가 보기 드문 행적으로 뒤끝 찝찝하게 끝났기에 그런 슈바인슈타이거를 잘 보듬어주는 스타일의 사라는 안 그래도 미녀 모델인데 마음까지 착한 진정한 훈녀라는 평. 최근에는 뮐러의 와이프(..)[48]하비 마르티네스의 여친의 등장으로 살짝 약세. 그래도 사라는 고참의 여자친구로서 남친과 함께 졸개급 바이에른 선수들을 잘 챙기고 다니는 넓은 도량으로 바이에른 팬들의 지지도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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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우승 후 한 달 만에 세르비아의 '테니스 미녀' 아나 이바노비치와 스캔들이 터졌다. 뉴욕 근교에서 슈바이니-이바노비치 커플의 비밀데이트가 포착됐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지난 8월, 이비자 섬에서 열린 자신의 생일 파티에 브란트너를 초대하지 않았다. 이 날 생일 파티는 네이마르와 패리스 힐튼이 참석해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의 애인 브란트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슈바인슈타이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하고 다음 참가자로 이바노비치를 지명하면서 떡밥을 던지더니 결국 그 떡밥이 풀린 셈... 이미 브란트너와 결별하고 이바노비치와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가 출전하는 윔블던 대회에 응원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직하게 기사로 쓴 기자들은 제목에 낚인 수많은 팬들의 지탄을 받아야했다. 아니 슈바이니가 이바노비치랑 열애 중? 커밍아웃?? 이후 유로 2016이 끝나고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2009-2010 UEFA 챔피언스리그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독일선수 중 한 명이였다. 본래 포지션이 중앙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및 왼쪽 날개였는데, 이 때의 활약상은 이름값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운 정도이며, 맹활약을 했다고 평해진 2006 FIFA 월드컵 독일, 유로 2008을 제외하면,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은 기대이하의 활약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 이하라기보다는 기복이 무지 심했다. 이후 바이에른에 루이스 판 할 감독이 부임한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이 변경된 이후 바이에른의 더블우승과 챔스 준우승, 월드컵에서 미하엘 발락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버리며 3위를 이끄는 등 대표팀, 소속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 자타공인 포르투갈 킬러다. 첫 만남이었던 2006 FIFA 월드컵 독일 3,4위전에서 슈바이니는 중거리로만 2골을 뿜어내는 등 혼자 3골을 만든 원맨쇼를 펼치며 포르투갈을 3:1로 격파했고, 유로 2008 8강에서 독일과 포르투갈이 다시 맞붙었을때에도 슈바이니는 빠른 침투로 루카스 포돌스키의 패스를 멋진 골로 연결하는 등 홀로 1골2도움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침몰시켰다. 유로 2012에서도 슈바이니는 안정적인 포백보호와 호날두에 대한 철저한 마크로 독일의 1:0 승리에 공헌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독일이 4:0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슈바이니는 부상여파로 결장했다.
  • 리오넬 메시와의 맞대결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49] 2006 FIFA 월드컵 독일 8강에서 독일은 1-1 무승부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메시는 출전하지 않았고, MoM으로 선정되었던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8강 리턴 매치에서 슈바이니의 활약에 메시의 드리블과 슛이 번번히 끊기는 등 힘을 못쓰며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관광보냈고, 2012-13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도 하비와 함께 바르샤 공격진을 원천봉쇄하며, 메시에게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허용하지 않았다. 흠많무. 역시 이 경기도 바이에른이 4대0으로 승리했다. 친선경기지만 2013년 프리시즌 경기 맞대결에서도 2대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중원에서 상대의 거친 육탄전에도 굴하지 않고 초인적인 활동량과 수비력을 보여주며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마침내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6.1 흑역사

6.1.1 파이터 기질

  • 데뷔 초기에는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서 필드 위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몇번 있다.
  • 유로 2008 당시에는 크로아티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종료직전에 상대 선수를 마치 레슬링하듯이 밀쳐버려서 다이렉트로 퇴장당했다. 뒤지고 있는 상황인데다 상대가 불필요하게 위험한 백태클을 해서 화날만한 상황이었기에 심정이 어땠을지 공감은 가지만 어쨌든 그 순간 자제를 하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서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 위기를 불러왔었다. 다행히 8강전에서 돌아와 포르투갈을 상대로 1골 2도움을 올리며 사죄했다.
  • 2010-2011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의 16강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와 주먹다툼 직전까지 갔다. 발단은 슈바이니의 언론과의 인터뷰가 과장/와전되어[50] 그걸 핑계로 물고 늘어진 마테라치가 안그래도 후반 막판 통한의 역전골을 먹혀 심기가 불편한 바이에른 벤치와 슈바이니를 향해 비웃는 말을 연거푸 날렸기 때문이라고. 결국 멱살을 잡고 맞짱뜨기 직전에 양팀 선수들의 제지로 무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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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분위기 안좋은데 거기에 기름을 붓는 마테라치. 삿대질하며 면전에 대놓고 욕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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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거 뿌리치고 최대한 자제하고 가려는데 3~4차례 연거푸 몸싸움을 거는 마테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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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예전에 한솥밥먹던 동료인 루시우가 와서 달래는 중
에투 : "저놈 성깔 알잖아 네가 참아 슈바이니"
해당 경기 VOD를 보면 경기 종료 직후 두 선수의 충돌이 나오는데, 확실히 슈바이니가 먼저 가만히 있는 마테라치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위해 접근한 것. 둘 다 다행히도 직접적인 가격으로 징계를 먹진 않았지만 거의 폭발직전의 몸싸움까지 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고, 옆에있던 필립 람과 라노키아가 재빨리 달려들어 갈라놓지 않았다면 진짜 싸웠을지도. 다행히 마테라치와 슈바인슈타이거의 지랄맞은 성깔을 잘 아는 인터밀란 선수들이 하나가되어 일을 저지르기 전에 마테라치를 끌어냈고, 옆에있던 사무엘 에투와 전 바이에른 뮌헨 동료였던 루시우가 등을 감싸면서 슈바인스타이거를 끌어냈다. 슈바이니는 곧바로 "(2006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날린) 지네딘 지단의 심정이 어땠을지 완전히 이해했다"라며 맞받아쳤다. 그와중에 뭔일인지도 모르고 옆에 누워있던 고메즈의 표정이 꽤 웃기다. 반면 마테라치는 슈바인슈타이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인터밀란에게 해야 한다고 한게 슈바인슈타이거였다.라고 말했다.# - 근데 바이에른과 레알 마드리드는 챔스 결승에서는 단 1회도 만난 적 없다. 당시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맞붙은게 06/07 시즌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최근에 레알에게 패해 탈락한 것도 03/04시즌 합계 1대2로 패한, 무려 7시즌이나 거슬러올라가야한다. (물론 슈바이니는 출장도안했다.) 중간에 기자가 잘못했거나 마테라치가 잘못 알면서 달려들었거나 둘 중 하나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8강전을 남겨두고 아무런 근거없이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자체를 싸잡아 비난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국민성이 개판이라 매 경기마다 무임관람을 하려고 발악한다느니 아르헨티나 팀이 존경하면 안된다느니 하는 식으로 온갖 시비를 걸었다.# 이 발언이 원인이 되어 독일이 4강에 진출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싸가지없는 슈바인슈타이거가 월드컵 우승을 하면 안된다며 스페인에게 제발 독일의 우승만은 막아달라며 부탁했다. 그리고 그 월드컵은 스페인이 우승했다.하지만 그 다음 월드컵이... 이토록 슈바인슈타이거는 타고난 어그로꾼이며 이 분야에서 매우 악명높다. 그래서 2006년 월드컵에서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걸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 선수들 중 가장 이미지가 떨어지는 선수가 되었다.
  •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후 뮌헨의 Frauen26이라는 펍에서 팬들과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욕하는 내용[51]이 들어있는 응원가를 부르는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 멘탈문제에 많은 지목을 받으며 안그래도 개판인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었다. 왜냐하면 슈바인스타이거가 그냥 일개 선수였다면 원클럽맨으로써 라이벌 도르트문트를 디스하는 노래를 부르는건 그냥 도발쯤에 지나지 않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필립 람이 은퇴했기에 차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1순위로 지목되고있는 상황이라 라이벌 클럽들의 화합을 주도해야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월드컵 우승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아직 경기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이렇게 라이벌 의식을 조장하는것은 전혀 신중하지 못했다고 많이들 까고있다. 물론 눈치빠른 슈바인슈타이거는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재빨리 사과글을 올리고, 직접 사과를 하는 영상까지 페북에 업로드해서 도르트문트 팬들과 선수들에게 사죄했고, 이런 발빠른 대처와 진심어린 사과에 독일 내에서는 그렇게 크게 불거지는 분위기까지는 아니다.
  • 그러나 실제로 슈바이니는 월드컵 기간 내내 부주장으로써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매우 친근하게 대해주며 라이벌 관계속의 긴장감을 허물고 팀이 하나로 화합될 수 있게 힘썼으며,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로만 바이덴펠러,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등 벤치멤버들까지 일일이 다독여주고 옆에서 도와줬다고 한다.[52] 태어났을때부터 진성 보루센빠로 유명한 "사냥개" 그로스크로이츠도 사건 이후 인터뷰에서 슈바인슈타이거가 월드컵 내내 바이덴펠러, 그로스크로이츠, 후멜스, 에릭 두름 등 라이벌 클럽인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으며 벤치 멤버들까지 일일히 챙겨주는 등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슈바이니를 옹호했다. 아무래도 사건 장소가 팬펍이었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렸거나 술에 취했거나 했을 듯 하다. 역시 술이 웬수다.

6.2 소녀감성

전형적인 게르만 상남자의 포스를 뿜어내는, 군복이 더 어울릴것 같은 얼굴이지만 성격은 소녀감성으로 유명한데.. 그 중 흑역사로 남은 일화는 아래와 같다.

  • 갓 데뷔했을 적에 당시 동료였던 올리버 칸이 샤워할때 자기 수건까지 써버렸는데, 칸에게 차마 자기 수건까지 쓰지 마라는 말을 못했다고. 하긴 갓 데뷔한 19세 어린애가 누구라도 그 올리버 칸에게 하지 마라는 말을 꺼내긴 쉽지 않아보인다
  • 2011-12 시즌,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슈바이니는 연장전 아르연 로번이 페널티킥을 찰때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혼자 하프라인을 넘어 본인 골대 앞에 뒤돌아서서 앉아있었고, 결국 로벤은 실축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 승부차기 5번째 키커로 나섰는데, 순간 멈칫거리며 찬 슛은 체흐의 손끝에 스친후 골대에 맞고 튕겨나왔다. 이때 슈바이니도 울고 나도 울고 모두가 울었다 모두가 아니라 바이에른 팬들이겠지
  • 이런 아픔을 겪어봐서인지 경기 승리 이후 상대팀 선수들을 가장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메날두의 가슴을 만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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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유로 2016에서 소녀감성이 승부차기에서 다시 폭발하고 말았다. 독일의 5번째 키커로 나왔는데, 자신이 넣으면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슛이 골대 위로 나간 것. 참고로 이때까지 10명의 키커 중 외질은 골대, 토마스 뮐러는 부폰에, 보누치는 노이어에 막히고 시모네 자자, 그라치아노 펠레, 슈바이니는 하늘로 공을 날렸다. 즉 10명 중 6명 실축(...) 결국 양팀의 9번째 키커까지 차고 나서야 독일이 승리하면서 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됐다.

6.3 동료와의 관계

  • 같은 독일 국가대표고 같은 클럽에서 뛰었던 루카스 포돌스키랑 매우 절친인걸로 유명하다. 유망주 시절부터 독국의 주전으로 활약해왔던지라 트레이닝이나 이벤트 사진을 보면 둘이 항상 붙어있다. 둘이서 생산해낸 온갖 개그짤과 영상도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다. 그 밖에도 라이벌 팀이든 어느 팀이건 가리지 않고 두루 친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서, 그 덕에 유로 2008즈음을 기점으로 해서 종종 대표팀의 주장완장을 차기도 했고, 2010년부터는 클럽팀과 국대에서 부주장을 맡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서는 둘이 키스를 하는 시늉을 하기도(...)
  • 국대 데뷔 후부터 포돌스키 외에도 미하엘 발락과도 매우 친했는데, 발락이 바이에른 선배인 동시에 국대 선배로서 잘 챙겨줬다고. A매치때 보면 둘다 중거리존심이 쩌는지(..) 특히 2006 월드컵이나 유로 2008 유럽 예선을 보면 프리킥도 번갈아가면서 찼고 중거리슛도 한명이 어시해주면 번갈아가면서 넣었다(..)[53]
  •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는 무려 라이벌 팀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골키퍼이자 부주장 로만 바이덴펠러와 절친이 된듯하다. 독일국대 전훈이나 브라질 월드컵 내내 사진찍히는걸 보면 둘이 붙어있다. 독국팬들은 폴디가 외질과 바람피우자 슈바이니도 맞바람 피우는거라며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고있다. 원래 내연남이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마리오 고메즈 그밖에 2000년대 말 리그와 컵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FC 샬케 04 선수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아마도 2010 남아공월드컵의 영향인듯.
  • 인맥관계 따지려면 항목을 하나 더 만들어야할 정도로 넓긴 하다. 전설의 골키퍼 올리버 칸과도 친했고, 이전 바이에른의 전설들인 사무엘 쿠포르, 로이 마카이 등등..과도 친했다. FM에서 친밀도 항목에서도 07까지는 여전히 올리버칸이 존재했을 정도. 나이가 들면서 감독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필드 위의 리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하비 마르티네즈도 스패니쉬 선수의 쉽지 않은 독일 진출이었는데 슈바인슈타이거의 도움을 많이 받아 팀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독일 내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와는 달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동료들과 소원한 관계였다는 설이 많다. 잦은 부상으로 경기 및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가운데, 부상 치료를 위해 뮌헨의 주치의를 자주 찾아가게 되었고 이러다보니 정작 맨유 경기 관람에도 불참하는 등 선수들과 인간관계를 쌓을 충분한 기회를 만들지 못한 듯 하다.[54] 게다가 감독이었던 루이 반 할이 이러한 부분에서 편의를 봐준 것이 다른 선수들에게 특혜로 비치는 등의 문제가 겹쳐서, 뮌헨의 레전드이자 독일국대의 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맨유 내에서 팀내 위상은 따라주지 못한다는 평이다.

6.4 축구 이외의 능력

  • 슈바인슈타이거는 영어를 영국인 수준으로 매우 잘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때 기자회견을 오직 영어로만 이끌어낼 정도였다. 거기서 슈바인슈타이거는 모국어인 독일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6.5 외모

상당히 노안으로 유명하다. 위의 항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유망주 시절부터 노안이었다(....) 그리고 "독일 사람" 이미지에 딱 맞는 선 굵고 무뚝뚝해보이는 외모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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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독일 국방군 병사 피규어에 슈바인슈타이거의 얼굴을 박아서 시판한 업체가 생겨서 이 업체와 소송이 붙었다.# 저 피규어의 이름조차 슈바인슈타이거의 이름을 본딴 바스틴이다. 일본으로 치면 일본군 피규어에 엔도 야스히토의 얼굴을 붙인 꼴

7 수상/커리어

7.1 개인

  • 은월계잎 훈장[55] : 2006, 2010, 2014
  • 2010 남아공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 2010 남아공 월드컵 도움왕[56]
  •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11 : 2012-13
  • 2013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
  • 2014 33대 Sportler mit Herz

7.2 클럽

7.2.1 FC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우승 :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 2014-15)
  • DFB-포칼 우승 : (2002-03, 2004-05, 2005-06, 2007-08, 2009-10, 2012-13, 2013-14)[57][58]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12-13)
  • DFL-슈퍼컵 우승 : (2010, 2012)
  • DFB-리가포칼 우승 : (2004, 2007)
  • UEFA 슈퍼컵 우승 : (2013)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 (2013)
  • 2001 U-17 분데스리가 우승 (바이에른 뮌헨 유스)
  • 2002 U-19 분데스리가 우승 (바이에른 뮌헨 유스)
  • 2003-04 남부 레기오날리가 우승 (바이에른 뮌헨 B)

7.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FA컵 우승 : (2015-16)

7.3 국가대표

7.4 출전 기록[59]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1/02FC 바이에른 뮌헨 2독일 리그레기오날리가40------
2002/03FC 바이에른 뮌헨 2독일 리그레기오날리가23210----
2002/03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140120010
2003/04FC 바이에른 뮌헨 2독일 리그레기오날리가30------
2003/04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64301030
2004/05FC 바이에른 뮌헨 2독일 리그레기오날리가3010----
2004/05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63500071
2005/06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03401070
2006/07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74302082
2007/08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014021120
2008/09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1552--72
2009/10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3241--120
2010/11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2452--72
2011/12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2331--111
2012/13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8750--122
2013/14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3441--83
2014/15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0520--60
2015/16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18120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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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17 시즌 스쿼드
등번호국적포지션한글 성명로마자 성명생년 월일신체 조건계약 연도계약 만료비고
130pxGK다비드 데헤아David de Gea1990.11.07193cm, 82kg20112019
330pxDF에리크 바이Eric Bailly1994.04.12187cm, 78kg20162020
430pxDF필 존스Phil Jones1992.02.21185cm, 71kg20112019
530pxDF마르코스 로호Marcos Rojo1990.03.20187cm, 80kg20142019
630pxMF폴 포그바Paul Pogba1993.03.15191cm, 84kg20162021
830pxMF후안 마타Juan Mata1988.04.28170cm, 63kg20142018
930pxFW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ć1981.10.03195cm, 95kg20162017
1030pxFW웨인 루니Wayne Rooney1985.10.24176cm, 83kg20042019주장
1130pxFW앙토니 마르시알Anthony Martial1995.12.05181cm, 76kg20152019
1230pxDF크리스 스몰링Chris Smalling1989.11.22192cm, 81kg201020193주장
1430pxMF제시 린가드Jesse Lingard1992.12.15175cm, 58kg20112018
1630pxMF마이클 캐릭Michael Carrick1981.07.28190cm, 74kg20062017부주장
1730pxDF데일리 블린트Daley Blind1990.03.09180cm, 72kg20142018
1830pxMF애슐리 영Ashley Young1985.07.09175cm, 65kg20112018
1930pxFW마커스 래시포드Marcus Rashford1997.10.31187cm, 70kg2016
2030pxGK세르히오 로메로Sergio Romero1987.02.22192cm, 87kg20152018
2130pxMF안데르 에레라Ander Herrera1989.08.14182cm, 73kg20142018
2230pxMF헨리크 미키타리안Henrikh Mkhitaryan1989.01.12177cm, 75kg20162020
2330pxDF루크 쇼Luke Shaw1995.07.12185cm, 75kg20142018
2430pxDF티모시 포수멘사Timothy Fosu-Mensah1998.01.02190cm, 78kg2014
2530pxDF안토니오 발렌시아Antonio Valencia1985.08.04181cm, 78kg20092018
2730pxMF마루앙 펠라이니Marouane Fellaini1987.11.22194cm, 85kg20132018
3630pxDF마테오 다르미안Matteo Darmian1989.12.02182cm, 70kg20152019
3830pxDF악셀 튀앙제브Axel Tuanzebe1997.11.14185cm, 75kg2014
4030pxDF조엘 카스트루 페레이라Joel Pereira1996.06.28190cm, 82kg2015
-30pxFW제임스 윌슨James Wilson1995.12.01184cm, 78kg2014
출처: 영어 위키백과, 마지막 수정 일자: 2017년 3월 22일
  1. 윙어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변경했다. 아래 문서 참조.
  2. 언론이나 팬들은 슈바이니(Schweini)라고 많이 칭하지만 본인은 뭔가 돼지 같다며 별로라고 한다.(Das Schwein : 돼지) 그래서 자기 애칭을 바스티(Basti)로 불러주길 바란다고. 하지만 워낙 오랜시간 듣다보니 그냥 슈바이니로 굳어져 버렸다. 대한민국 팬들 한정으로는 바인타이거의 뭔가 독일스러운(?) 슈를 두개 따서 슈슈라고들 많이 부른다.
  3. 역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4위
  4. Head Coach - 감독이다.
  5. 자국 리그, 자국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합산. 뭐 물론 팀빨이 작용했다고 욕할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팀의 황금기를 그만큼 함께 했다는 의미. 라이언 긱스가 은퇴하면서 현재 16회 우승을 기록중인 슈바인슈타이거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6. 베켄바워의 경우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고 스위퍼였으나 당시 축구전술의 패러다임이 스위퍼가 후방에서부터 레지스타의 빌드업 임무와 거의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며 그라운드의 무게중심 역할을 잡았던 역할이었다. - 해당항목 참조
  7. 이 계보는 토니 크로스로 이어진다.
  8. 주요 3개 대회 외에도 슈퍼컵과 UEFA 컵(현 UEFA 유로파 리그)까지 합산한 기록
  9. 윙어 시절에는 닌자짓에 능했던 만큼 낮은 지점에서의 돌파나 간단한 탈압박 정도로 살짝 새겨들어야 한다. 특히 강력한 중거리 슈팅 외에도 숨겨진 장점을 꼽자면 반대쪽 윙에서 올라오는 볼을 순식간에 돌아들어가며 잘라먹는 솜씨 하나는 월드클래스였다. 정말 경기를 보면 반대편에서 어느새 돌아들어온건지 어딘가에서 '번쩍' 나타나 (받아먹기로) 골을 넣으며 팀을 구해내는게 일상 다반사였다. 물론 그 정도의 판단력이나 결정력, 활동량도 뒷받침되었다는 얘기.
  10. 대표적인 예로 유로 2012 4강 이탈리아전 패배나 남아공 월드컵 4강 스페인전의 패배가 있다. 슈바이니가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달려 경기장에서 지워지면 팀은 거의 패배의 길을 걸었다. - 그런데 스페인전 볼터치를 보면 그나마 슈바이니가 중원에서 볼키핑과 패스로 홀로 고분군투를 하며 독일을 하드캐리하는 입장이었고, 당시 점유율축구에 대한 대처법도 확실하지 않아 수비적으로 나온 뢰브의 전술의 패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탈리아전 패배도 당시 슈바이니가 부상 복귀에서 얼마 되지 않아 폼이 떨어져있다보니 패배 책임을 슈바이니에게 전가하기도 애매하다.
  11. 계속되는 유럽대항전의 실망적인 성적에도 바이에른이 이적 시장에서 돈을 안쓰자 우승에 대한 열망으로 미하엘 발락, 오언 하그리브스, 클라우디오 피사로 등을 떠나보내게 된다.
  12. 결과론적으로는 잘된 일이기도 하다. 발락은 30세 노장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다 창의성이 부족했고, 하그리브스는 1년간 꼬장부리고 떠나자마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유리몸화(...), 피사로는 계약기간도 끝났는데다 루카 토니, 프랑크 리베리등을 영입했던 분노의 영입에 딸려 버려진 희생양으로 보는게 대부분이다.
  13. 원정 2대0 승리는 운이 따라줬다. 전반전에만 인테르 선수 2명이나 퇴장시켰으니 2-0은 조금 모자란 스코어일수도 있겠다(..)
  14. 보통 윙어는 10골 정도 기록하면 수준급 윙어로 본다. 근데 메날두 이후로 2선 미드필더의 득점력이 증가한 최근 추세와 비교해보면 준수한 수준이 되는게 문제지... 시즌 9골 15도움이면 훌륭한 스탯 이상이다. 참고로 박지성맨유 시절 폭주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2010-11 시즌 스텟이 9골 4도움이었다.
  15. 이건 슈바인슈타이거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 우주 최강 바르샤를 만나는데 주전이란 주전은 모조리 부상당하거나 채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투입한 탓도 크다.
  16. 이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바르셀로나를 7대0으로 털면서도 한번도 살살하지 않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17. 바이에른은 후반 아르연 로번의 환상적인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3-2까지 추격하며 원정 다득점으로 4강진출에 성공한다.
  18. 문제는 더 중요한 리베리가 퇴장당해서 결승까지 못뛰게됐다는거지.. (안습)
  19. 참고로 빌트지는 선수 평점을 굉장히 짜게 주는걸로 유명하다. 리가 전체에서도 Weltklasse를 받는 사람은 많아야 1~2명이라고..
  20. 왼쪽 측면에서 오타멘디, 파스토레, 이과인을 차례로 농락하며 골문앞으로 산책했다. 오오 전율
  21. 슈바이니는 모예스 체제의 맨유라도 충분히 끌어올려서 챔스권 경쟁은 거뜬하게 시킬 능력이 있지만, 유럽을 호령하는 바이에른을 생각하면 남는 게 정답이었다.
  22. 득실차가 앞서는 상황에서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가 3점이었는데, 결국 패해서 6점차가 되고 다음라운드에서 무캐서 8점차로 벌어지고 말았다(...)
  23. 사실은 체흐가 막고 굴절된 것이 골대를 맞은 것이었다.
  24.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볼터치와 패스, 인터셉트, 활동량을 보여주며 MoM이 되었다. 팀은 로벤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다.
  25. 로벤이 너무 안일하게 접으려해서 뺏긴게 아쉬웠다
  26. Best11로 팀을꾸리면 미들진이 리베리-외질-로이스-베일이 되어 중미가 없다.
  27. 이 판정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많다. 슈바이니의 태클은 공을 향했었고, 공이 빠진 이후 루니의 과격한 액션에 주심이 그대로 속아넘어갔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으나 바뀌는 건 없다. 경기전 바이에른 선수들에게 다이빙하지 말라니 어쩌니 하던 모예스 보고있나
  28. 토니 크로스의 경우에는 4강전을 제외하면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이 평소에 보여주는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 역할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슈바이니의 클래스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29. 참고로 형제가 타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에서 맞대결을 치른 사례는 아직까지는 보아텡 형제가 유일하다.
  30. 우주최강 바이에른의 닥주전이자 최고급 중미중 하나인 크로스가 웬 경험부족? 이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크로스는 12/13시즌 8강 유벤투스전에서 시즌 아웃을 당해 4강 FC 바르셀로나전과 결승전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을 뛰지 못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이나 유로 2012같은 큰 무대에서의 출전 기회도 매우 제한되있었다.(특히 이탈리아전 패배의 원흉으로 애꿎은 토니가 지목되어 비난을 듣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주전으로 나선 첫 메이저 대회여서 초기의 기복은 어느 정도 당위성이 있다. 다행히 토너먼트 상층부로 갈수록 활약도가 높아졌다.
  31. 사실 토니가 대회 초반 어쩔 수 없이 부진했던건 옆에서 보좌하는 사미 케디라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도 못했고, 베네딕트 회베데스도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다보니 조별리그에서는 굉장히 부진했고, 무스타피는 민폐 그 자체였으며, 마리오 괴체도 수비적인 역할은 절대 아니다보니 토니 혼자서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이후 람이 다시 풀백으로 이동하고 케디라-슈바인스타이거의 볼란치가 갖춰진데다 회베데스가 각성하자 마음놓고 볼배급에 임할 수 있게 된 토니는 8강, 4강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렇게 팀으로 하나가 된 독일은 끝끝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32. 2위는 슈바이니못지않게 투혼의 수비력을 보여준 제롬 보아텡과 슈바이니와 중원에서 피터지게 경쟁했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나란히 8.0점을 받았다.
  33. 워낙 토너먼트에서의 선수들의 활약도가 막상막하였다보니 FIFA 공식선정 BEST11과 BBC, 스카이스포츠, 후스코어드닷컴, 데일리 메일 등 여타 대형언론들이 선정한 베스트11이 모두 다르다. 여담으로 FIFA가 8강에서 공개한 캐스트롤 인덱스에 따른 베스트11에 오른 선수들은 토니 크로스, 마누엘 노이어를 빼고 4강전에서 모두 부진을 경험하는 저주 기이한 현상을 자아냈다.
  34. 이후 라커룸 들어갈때 풀고 악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개념 현지 해설진들은 이럴거면 미국 오지 말든가라는 식으로 생방송에서 말하는 등 추태를 보였다. 대부분의 여론은 바이에른을 옹호하는 편. 당연히 프리시즌 친선전에서 괜히 선수 다치게하면서 거칠게 나오는 쪽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35. 심지어 국대에서는 주장, 클럽에서는 부주장
  36. 기사 참조 - [1]
  37. 대신 프리킥 정확도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다른 어린 키커들에게 기회가 돌아가 별로 찰 기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 시즌 1~2골 정도는 프리킥으로 넣어준다.
  38. 사실 슈바인슈타이거는 현재 폼으로 봤을때 닥주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의 경험과 리더십, 위닝 멘탈리티 등으로 팀 전체를 상승시키는 역할이 가치가 더 큰 선수이다. 그러나 그게 바이에른이나 독일 국대에서는 통하지만 쌩판 낯선 타지인 맨유에서는 그 효과가 바이에른보다는 미미했을 것이다.
  39. 사실 11-1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실축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특유의 킥 정확도에도 불구하고 클럽 공식전에서 단 한 번도 PK를 차지 않았다. 이날 5번 키커로 나선 것은 팀원들의 사기를 위한, 또는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나섰을 것이다.
  40. 승부차기 트라우마를 떨치기 위해 유프 하인케스 감독은 2012년 프리시즌 베르더 브레멘과의 친선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일부러 다시 세웠는데, 여기서도 넌씨눈 미엘리츠가 슈퍼세이브 해버렸다. 유로 2016 지역예선이었던 지브롤터전에서도 PK를 한 번 찬 적이 있는데 이때도 골대를 때려버렸다(...). 이쯤되면 마르틴 팔레르모가 생각날 정도의 PK 트라우마다.
  41. 이 교체는 끝내 매우 악수로 작용해버렸다. 엠레 찬과 슈바인슈타이거가 차례로 나가자 오히려 폴 포그바가 살아났고, 프랑스가 더 공격을 주도할 지경이었다. 사네는 드리블이라도 두어번 보여줬지 마리오 괴체는 경기장에 투입이 됐던건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42. 다만 이 부분은 뮌헨 시절부터 자신을 치료해주던 前 뮌헨 팀닥터였던 스포츠 의학 최고의 권위자인 볼파르트 박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간 것이다. 이 분 문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여러 들의 의료진을 돌팔이로 만든다거나(...)특히 아스날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우사인 볼트, 코비 브라이언트 등등 각 스포츠 분야의 네임드가 자문을 얻으러 뮌헨 개인병원으로 찾아오는 등 대단하신 분이다. 심지어 많은 헐리우드 스타들도 볼박사의 치료를 받으러 찾아온다고...
  43. 독일 선수들은 원래 어린시절 데뷔할 때 달던 등번호를 끝까지 다는걸 선호하기도 한다.
  44. UEFA Best11야 전세계적인 팬 투표의 특성상 중앙미드필더가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미드필더 4명이 공격형미드필더나 윙어로 채워지지만, 포지션별로 각 팀 주장/감독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FIFPro XI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뭐 각팀 주장/감독이 선정한다 해도 객관성이 떨어지고 인맥이 많이 작용하는건 마찬가지지만.
  45. 스티븐 제라드미하엘 발락처럼 맞고뒈져라슛을 구사하는건 아니지만 상당히 묵직하고 코스가 좋다.
  46. 중거리슛은 답답한 상황을 풀어갈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라인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한순간에 역습을 허용할 수 있고, 볼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겨줄 확률이 높아 볼점유율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감독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47. 이전에 번역기를 돌리면 '돼지 교배시키는 사람'이라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뜻으로 알고있는 축구팬들도 많다.
  48. 스무살 동갑내기 첫사랑과 결혼했다. 스물두 살인데 이름이 무려 리사 뮐러라고한다. 흠좀무.
  49. 2008-09 챔스 8강에서 메시의 대활약에 바이에른이 털린 경기가 있지만 당시 슈바이니는 부상으로 인해 후반 교체출장했으며, 2014-15 챔스 4강에서도 MSN의 바르셀로나에게 완패했다.
  50. 마테라치는 슈바이니가 경기전에 "레알에게 패한 것을 인터밀란을 박살냄으로써 분풀이해야한다."라고 언플로 먼저 시비를 건 것이라고 하는데, 참고로 슈바이니의 데뷔시즌인 02/03시즌 레알에게 원정다득점으로 8강에서 탈락했지만 그건 10년 전 얘기인데다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고, 06-07시즌 16강에서는 로이 마카이의 10.5초골을 앞세운 원정다득점으로 바이에른 뮌헨이 이겼다. 2010년 프리시즌 베켄바워컵에서는 0대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레알이 이겼지만, 역시 이경기는 자선경기여서 경기 분위기도 라이벌 매치가 아닌 친선경기 분위기였고, 바이에른은 1.5군이 나왔고 슈바이니는 출장도 안했다. 즉 되도않는 핑계로 시비를 건 것.
  51. 보루센 개xx쯤 되는 욕이 포함됨
  52. 근데 이 항목과 관계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로스크로이츠는 월드컵 데뷔전 기회가 슈바인스타이거때문에 무산된 바가 있다. 연장 후반 슈바이니가 아게로와의 충돌로 출혈이 있었고, 요아힘 뢰브가 그로스크로이츠와 교체하려했으나 본인이 끝끝내 뛰겠다고 요청해 마취도 없이 즉석으로 찢어진 안면 부위를 꿰메고 복귀하는 투혼을 보여줬기 때문. 뭐 이런 슈바이니의 투혼이 독일 국대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독일국민들 입장에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로스크로이츠는 졸지에 데뷔 기회를 날린 셈이니 본인에겐 그래도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듯. 뭐 어쨌든 우승했으니 장땡
  53. 그러나 슈바이니의 국대 데뷔 이후 발락의 간접프리킥 롤은 슈바이니가 가로챘다. 이유는 발락의 헤딩능력이 워낙 좋기 때문
  54. 이 와중에 여자친구의 테니스 경기를 보러가는 등의 구설수도 있었다.
  55. 독일 연방정부에서 주요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56. 3도움으로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 카카, 디르크 카윗과 동률. 피파 인덱스와 캐스트롤 인덱스, 각각 언론의 기록이 다른데 3/4위전 우루과이전 토마스 뮐러의 골을 만들어낸 중거리슛을 어시스트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다. 인정하는 인덱스는 4도움.
  57. 흥미로운건 리가를 우승한 시즌에 모두 포칼컵을 우승했다는것. 슈바이니의 독일 내 대회 우승은 모두 더블이었으나... 2014-15 시즌 포칼에서 탈락하면서 이 기록도 깨졌다.
  58. 2013-14 시즌 7번째 포칼을 우승하며 개인통산 역대 최다 포칼 우승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어느덧 슈바이니도 나이를먹으니..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가는 중
  59. 분데스리가 리그 컵은 2007년에 폐지, 2팀은 참여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