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조시 베켓(Joshua Patrick Beckett) |
생년월일 | 1980년 5월 15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텍사스주 스프링 |
체격 | 195cm, 104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플로리다 말린스 지명 |
소속팀 | 플로리다 말린스(2001~2005) 보스턴 레드삭스(2006~20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12~2014) |
2003년 월드 시리즈 MVP | |||||
트로이 글로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 → | 조시 베켓 (플로리다 말린스) | → |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 |
200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 |||||
플라시도 폴랑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 | 조시 베켓 (보스턴 레드삭스) | → | 맷 가자 (탬파베이 레이스) |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텍사스산 파워 피처의 계보를 이어나갔던 투수.
명예의 전당급 대투수는 아니지만, 2003년과 2007년 두 번의 우승을 이끌면서 빅게임 피쳐로 맹활약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1 선수 생활
1.1 데뷔 후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까지
고교 시절부터 슈퍼 유망주로 각광받았고, 당시 전체 1픽을 쥐고 있던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조시 해밀턴을 선택하면서 전체 2픽을 소유한 플로리다 말린스의 지명을 받아 99년 입단하게 된다. 01년 부터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등판을 했으나 성적은 평범했다. 당시의 인식은 젊지만 유리몸[1]인 슈퍼 유망주 투수로 평가받았다. 강력한 스터프를 가진 동갑내기로 늘상 비교되던 투수는 바로 마크 프라이어 였다. 이들은 향후 10년간 메이저리그를 이끌고 나갈 투수로 각광받았었다.
2003년 시즌 방어율은 3.04로 준수했으나 23선발등판에 9승 8패에 그쳤다.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말린스는 전력상 그다지 강팀은 아니었고, 선발진도 신인으로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돈트렐 윌리스를 포함, 브래드 페니와 마크 레드먼이 14승을 올리고 칼 파바노도 있었지만 에이스감은 누가 봐도 베켓이었다. NLDS에서는 1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제이슨 슈미트에게 완봉승을 내주며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2-3-4차전은 엎치락 뒤치락 역전과 재역전을 개싸움 반복한 끝에 말린스가 모두 승리하며 NLCS 진출.
NLCS에서 1차전은 6.1이닝 6실점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경기는 연장전에서 말린스가 승리) 이후 시리즈는 2차전에서 페니, 4차전에서 윌리스가 컵스 타선에 탈탈 털리는 등 컵스가 2-3-4차전을 모두 승리하여 염소의 저주를 푸는데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으나...
5차전 선발로 나선 베켓은 2피안타 1볼넷 11삼진 완봉으로 컵스 타선을 잠재워 버린다. 이어진 6차전엔 그 유명한 관중 스티브 바트만의 파울볼 수비방해가 터지며 말린스가 다시 승리했고, 마지막 7차전. 말린스는 그나마 3차전에서 선방한 선발 마크 레드먼마저 털려 나가고 있었으나, 마침 컵스 선발 케리 우드 역시 흔들리면서 말린스는 5회초에 6:5로 역전한다. 말린스는 마무리 어비나 외에는 불펜조차 막장인 상황. 이에, 115구 완봉승을 거둔 베켓이 이틀 쉬고 5회말에 릴리프로 올라왔다. 베켓은 홈런 한 개를 허용하긴 했지만 나머지 타자들을 무볼넷 무안타로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4이닝 1실점 홀드를 기록한다. 마침 타선도 더 힘을 내면서, 경기는 9:6으로 승리. 1차전에서 부진한 것도 있고, 시리즈 MVP는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넘어갔지만, 염소의 저주를 거의 다 깨는 듯했던 컵스를 주저 앉힌 1등 공신은 5차전 완봉에 이틀 쉬고 7차전에서 다시 컵스 타자들을 꺾어버린 조시 베켓이었다. 아무리 포스트시즌이라도 완봉승 이틀 뒤에 다시 3-4이닝의 멀티이닝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역사는 드물다. 11년 뒤 월드 시리즈에서 더욱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나긴 했지만...
하지만 이것도 그의 포스트시즌 화려한 역사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월드 시리즈에서는 그야말로 미쳤다.
뉴욕 양키스의 타선을 상대로 마이크 무시나와의 선발 대결에서 3차전 7.1이닝 2실점 패전한 것은 크라이라 쳐도, 말린스가 3-2로 리드하던 상황, 말린스는 6차전에서 경기를 끝내기 위해 베켓을 3일 쉰 상태에서 조기에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그리고 베켓은 6차전에서 양키스 타선을 압살하며, 다시 완봉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한다. 이 활약으로 월드시리즈 MVP에도 선정된다. 이 때 이후로 21세기는 마크 프라이어와 조시 베켓의 시대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2]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영건의 미래를 예지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는 말의 또 다른 예가 되었지만 말이다.
1.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이후 부상은 부상대로 입었지만 성적은 상승세를 타며 05년 15승을 달성[3], 에이스 투수로 자리잡게 되나 그해 시즌 오프후 마이크 로웰과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다.[4] 이적 첫 해인 06년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로서 35년만에 투수 홈런을 치고 커리어 처음으로 200이닝을 던지는 데 성공했으나 ERA는 5.01로 시궁창을 달린다.[5] 하지만 절치부심한 07년 20승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에 도달한다.[6]
게다가 2007년 포스트시즌에서 그야말로 무적 포스를 선보였는데, LA 에인절스 전 1경기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 2경기(Game 1 & Game 5) + 콜로라도 로키스전 1경기 에서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4승을 쓸어담았다. 그의 피칭으로 인해 ALCS에서 1:3의 위기에 놓였던 레드삭스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펜웨이에서 6,7차전을 대승으로 장식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ALCS MVP는 베켓의 몫.[7] 월드시리즈에서도 락토버로 불리면서 연승행진을 달리던 로키스를 1차전에서 제압하면서 기세를 꺾어 버렸다. 스윕하는 바람에 더 등판할 필요는 없었다. [8]
09년 시즌 중반 드디어 100승을 달성했다. 09년 최종 성적은 17승 6패 ERA 3.86을 기록, 동료인 존 레스터와 함께 보스턴이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는데도 일조했다. 다만 08년부터는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이 무색하게도 포스트시즌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다.
2010년엔 초반에 매우 부진하다가 DL로 내려간 다음 7월부터 다시 올라와 나름 호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탈탈 털렸다.[9] 과거와 같은 포심의 무브먼트와 구속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고(포심 평속이 90마일 초반) 커브는 밋밋했고 싱커는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제구력 난조까지 더해져 9이닝당 1.4개의 홈런에 3.2개의 볼넷을 허용하는 막장 피칭을 선보였다.
결국 6승 6패 ERA 5.78로 마무리. 보스턴의 안티 팬들은 아니다! 빅 게임 피처는 빅 게임에서 뛰셔야 하기때문에 스몰 게임은 신경도 안 쓰시는 것이다.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물론 덕분에 플옵도 못 갔다.
2011시즌 첫번째 선발 등판에서는 5이닝 5피안타 4볼넷 3실점의 막장 피칭을 선보이면서 또 다시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11일(한국 기준) 양키스전에서 8이닝 2피안타 1볼넷 10K의 완벽투를 선보이면서 일단 한숨 돌렸다.지금 보빠들은 막장of막장으로 빠진 송판을 까기 급급하지 베켓 깔 여유가 없다 그 뒤로는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필리스 원정 전까지는 1점대 ERA를 자랑했다.
그런데 베켓이 등판하는 날이면 타자들이 일제히 배트를 거꾸로 잡고 나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득점 지원이 처참한 수준이었다. 같은 팀의 존 레스터나 존 래키가 받는 득점지원에 비하면 영 형편없었고 시즌 최종 30경기 출장 ERA 2.89 193이닝 52볼넷 175탈삼진을 소화하고도 13승 7패에 그쳤다. 존 래키는 우주막장급 방어율로도 12승을 따냈는데
하지만 시즌 막판 들어 불어닥친 보스턴의 저주에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후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전 시즌부터 연마했던 커터가 잘 긁히면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11시즌을 잘 마무리지었다. 흠이라면 시즌 중반에 당한 잔부상으로 인한 결장. 이로 인해 200이닝은 채우지 못했으며 레드삭스는 극적으로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팀 케미스트리를 망친 선수들이 있다면서 감독직에서 사퇴하고 테오 엡스타인 단장마저 시카고 컵스로 떠나면서 존 레스터, 클레이 벅홀츠, 존 래키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자기들 경기 안하는 날엔 덕아웃에서 경기 보는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에서 치맥을 뜯고 비디오 게임을 했다고(...) 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가 2012년 스프링캠프 시작과 함께 팀메이트들에게 사과했다.
2012시즌 첫경기부터 짝수해 징크스의 기운이 엄습했다. 디트로이트전에서 4 2/3이닝 동안 술꾼과 왕자에게 홈런을 두개씩 조공한 것을 포함 홈런 5개를 조공하며 7실점 강판. 팀은 10-0으로 완패.
그리고 5월에는 컨디션 안좋다고 등판을 한번 거르고 벅홀츠와 함께 골프를 치러 간 것이 들통나서 곤욕을 치렀다. 팬들은 디비전 꼴찌로 떨어진 성적에 멘탈이 붕괴되었는데 거기다가 뒤통수를 또 맞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벸골프로 불리기도 한다
2012년 전반기까지는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14경기에 등판하여 89⅓이닝 동안 4.43 ERA로 신나게 얻어터졌는데, 그래도 위안을 삼을 것은 심하게 낮았던 잔루율과 ERA에 비해 낮은 FIP을 보면 바운스백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등판 띵기고 골프치러 다니는 그런 멘탈로 바운스백이 가능할...까? 보삭스 팬들은 이미 기대를 접은지 오래였다.
8월 19일 對 양키스 원정경기에서 양키 스타디움의 버프를 받은 스즈키 이치로에게 연타석 홈런을 쳐맞았다.
1.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결국 2012년 8월 25일, 칼 크로포드, 애드리안 곤잘레스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보삭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팬덤은 축제 분위기.
다행히 다저스 이적 후의 7번의 선발등판에선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2012시즌 최종성적은 170.1이닝 7승 14패 ERA 4.65. 여담으로 다저스로 옮겨와선 박찬호 이후 공백이었던 등번호 61번을 달았다. 이는 베켓이 초창기 말린스에서 뛸 때의 등번호이기도 하다.[10]
2013시즌 4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개막 3차전 3선발로 나왔지만 파블로 산도발에게 2점 홈런, 헌터 펜스에게 솔로홈런 등을 맞으며 6이닝동안 5실점을 당하며 강판당했고, 팀도 5-3으로 패배했다. 이날 상대투수인 린스컴이 정상적인 투구를 하지 못했는데, 베켓은 그보다 더한 바람에 졸지에 개막 2선발로 나왔던 류현진은 선방했다는 드립들이 쏟아졌다. 뭐 2013 시즌만 놓고 보면 이건 드립이 아니라 비교 자체가 류현진에게 미안한 일이 되어 버리긴 했다. (...)
4월 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3연전이자 팀 원정 첫 경기 선발로 등판했다. 하지만 1회부터 홈런을 내주는 걸 시작으로 계속 얻어맞으며 불안한 투구를 반복했고, 결국 5이닝 3실점을 하며 강판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저스 타선도 중요할 때 앞서가거나 따라잡는 기회를 자꾸 날려먹는 물방망이를 또 보여줬고, 믿었던 불펜은 8회말에 6실점이나 하며 와르르 무너져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다.
4월 1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등장해 팬들이 원하던 베켓의 모습을 보여주며 호투했지만 다저스 타선이 다시 물타선을 과시한 덕분에 단 1점도 득점지원을 받지 못했고, 결국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완투패를 당했다. 지난 경기들이야 못해서 졌으니 억울하진 않은데 이번 경기는 잘 하고도 져서 매우 원통할 경기였다. 투수가 잘 쳐야 이기는 팀 다저스
4월 2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더블헤드 두 번째 경기 선발로 나서지만 잘 던지다가 급격히 무너지며 팀의 연패도 이어졌다. 다음 날 경기에서 다저스가 간신히 이기며 팀 연패는 끊었지만.
4월 26일(한국시간 4월 27일 오전 11시)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 3연전 첫 경기 선발로 등판. 초중반까지는 호투하였지만 동점 솔로홈런을 내주고, 그 뒤에도 홈런을 내주는 등 다시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반복하였다. 결국 6회초 주자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이번 시즌 첫승은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3:3 상황에서 내려와 패전은 면했지만.
2013시즌 4월은 베켓 입장에서는 안 풀리는 달이 됐다.
현지시각 5월 1일 선발 출전했지만 이번에도 1회부터 두들겨 맞으며 무너졌다. 다저스 타선은 2회말 아드리안 곤잘레스가 친 공이 연타석 홈런이 될 수 있던 것이 호수비에 막히면서 다시 갑갑함이 이어졌고, 결국은 다시 팀과 함께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5월 14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 3연전 1경기 선발로 나와 조던 짐머만과 맞대결 하였지만 3회까지 4실점을 내주며 조기강판을 당하며 5연패를 찍었다.다저스 입장에서는 복장 터질 노릇. 게다가 마비 증세가 와서 커리어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일단 2013년 내 복귀를 목표로 재활에 매진한다고 했지만 결국 시즌아웃을 선언하며 2013시즌은 그저 먹튀로만 기억. 8월달 이전에 몸담던 팀과 펼쳐진 인터리그 홈 3연전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지만 다저스팬들은 순간 못 알아봤었다 카더라(...).
진단 결과 베켓의 마비 증세의 원인은 '흉곽 출구 증후군' 으로 밝혀졌다. 쇄골이 혈류과 신경을 압박해 팔에 마비와 통증을 안겨주는 것. 참조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보통은 수술까진 가지 않으나 베켓의 경우에는 증상이 심각했는지 결국 수술로 해결한 모양이다. 수술이라는 건 혈류와 신경을 압박하는 쇄골 뼈를 일부 제거하는 것. 베켓 본인은 반등에 대한 의지가 강해 보이나 이 증후군을 앓았던 투수들이 대개 수술을 택하던 재활을 택하던 증상을 진단받은 후 성적이 좋지 않고 반등에 실패했기 때문에 베켓의 반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2014년 역시 전망이 밝지는 않다.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의 자리는 넘볼 수가 없는 영역이고 류현진의 자리 역시 공고하다. 만약 리키 놀라스코라도 계약을 하게 된다면 베켓은 잘해야 5선발에서 던지게 될 텐데, 이미 2014년에는 나이가 만으로 서른 넷에 접어들고 꾸준히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져 온 역사를 볼 때 피칭 스타일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반등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 거기에 하필 계약이 14년 딱 1년 남아있고, 2012년 이후의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최강의 현질 구단이라는 걸 감안할 때 베켓의 1년치 연봉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셈 칠 수 있는 구단이다. 이미 2013년 테드 릴리가 연봉을 다 받고 쫓겨났는데,[11] 그 모습을 보며 베켓은 적잖이 위기감이 들 듯. 분명한 사실은 2014년에도 베켓에게 기회는 얼마 없으며, 그 얼마 안 되는 기회 동안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저스는 냉정하게 그를 버릴 수 있는 구단이라는 점이다. 리키 놀라스코는 후반부와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했고, 다저스와 계약에서 의견차이가 나온 끝에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지만, 1년 계약이지만 댄 해런이 워싱턴에서 다저스로 옮겨왔고 여기에 토미 존 서저리 후 복귀할 채드 빌링슬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온 폴 마홀름까지 있어서 그에겐 좋지 않은 소식.
2014년 3월 2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펼쳐진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이닝동안 삼진 3개를 얻어내며 무실점으로 마쳤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부활기대를 걸어볼 수 있던 등판이었지만 3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한 시범경기에서는 홈런만 3방을 맞으며 5실점이라는 실망스러운 피칭을 하였다. 이후 시카고 컵스와의 시범경기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클럽하우스에서 문을 닫다가 손가락을 다친 이후 손가락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등판이 취소될 뻔 했는데 예정을 뒤엎고 그대로 선발로 나왔다. 이 경기에서는 3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손가락이 말썽을 일으켜서 강판되었다. 다행히 손가락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번 경기에서의 부진을 씻어줄 좋은 기회였는데 이래저래 운도 정말 없다. 이후 마이너에서 재활 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서도 번트 수비를 하다 다치는 등 불운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재활을 마치고 4월 9일(미국시각 기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대결에서 선발로 출전하였다. 2회에서 수비 에러로 2실점 하긴 했지만 3회 투아웃을 잡아낼 때까지는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투아웃을 잡은 후 갑자기 흔들려 쓰리런 홈런을 허용했으며 결국 4회까지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4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위기도 몇 번 있었지만 5이닝 4탈삼진 무실점(2피안타 5볼넷)로 저번 경기에 비해 훨씬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4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감기로 고생중인데도 불구하고 5이닝 1피안타 2볼넷 7삼진 무실점으로 확실히 부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5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는 2회 홈런 2방을 맞았지만 그외에는 8이닝동안 4피안타 2실점 6탈삼진 무사사구로 자신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승을 얻지 못하고 논디시전 처리되었다. 4월동안 1승도 얻지 못했는데 5월 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전에서도 6.2이닝동안 5피안타 3볼넷 4탈삼진 1실점(1피홈런)으로 호투하고도 역시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해서 논디시전 처리되었다. 베크라이
하지만 5월 14일,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6.1이닝동안 4피안타 3볼넷 6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하였고 타선도 6회부터 점수를 잔뜩 몰아주면서 드디어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베켓의 이번 승은 2012년 10월 1일 이후 15경기, 약 19개월만에 따낸 승리이다. 5월 20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는 5이닝동안 8피안타(2피홈런) 2볼넷 6탈삼진 4실점으로 전 경기들보다는 안좋았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아 2승을 챙겼다. 답내친으로 1점을 얻어낸 것은 덤.
한국시간 5월 26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데뷔 첫 노히트 노런[12] 마지막 타자 체이스 어틀리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낸 후 기뻐하는 것이 백미. 월드 시리즈 우승에 MVP까지 달성하며 최전성기를 누리던 때도 노히트 경기는 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실로 그에게는 의미있는 기록. #
경기가 자신의 노히트 노런으로 끝날 때까지 투구 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고. "감독이 투구 수에 대해 말해줬다면 경기 도중 내려갔을 것"이라며 "아직은 내 공이 상대에게 통한다고 믿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이주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다만 세이버메트릭스로 분석한 조시 베켓의 부활은 상당 부분 운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베켓은 삼진도 많이 잡고 볼넷도 적게 내 주고 있지만 이런 공격적인 피칭을 하게 되면 상대 타자들이 정타로 공을 맞추기가 쉽다. 예전의 베켓은 이런 타자들의 컨택을 힘으로 누르고 들어갔지만, 지금와서 공에 힘이 떨어진 마당에 그런 피칭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홈런을 많이 내주는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2 점대 평균 자책점을 유지하는가? 그건 안타를 안 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BABIP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투수는 상대적으로 공이 방망이에 맞고 난 뒤에 그게 안타가 될 지 안 될 지 여부에 대해 영향력을 많이 끼치지 못한다는 게 현대 세이버메트릭스의 정설이다. 제구와 무브먼트 등에 의해 소폭 조정 가능은 하지만 사실상 선발 투수에게는 예외로 꼽히는 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면[13]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 그리고 베켓은 이 공이 방망이에 맞고 난 뒤 안타가 된 빈도 인 BABIP 가 7월 30일 기준 .249 로 리그 선발 투수 평균인 .297 에 비해 무지 낮다. 사실 이것도 많이 오른 거다. (...) 한창 때에는 .200 에 근접하게 떨어진 적도 있다. 그게 소화 이닝수, 표본 크기가 늘어나며 노이즈가 사라지고 평준화되어 가고 있는 중.
때문에 ERA 와 달리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 수비에 의지하지 않고 투수의 퍼포만스만으로 평가하는 FIP로 따지면 4.29 로 거의 폐급 투수다. (...) 실제로 베켓의 게임 로그를 보면 운빨이 걷혀가는 7월 즈음부터 경기 내용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비록 7월 30일 시점에서도 ERA 는 2.74로 나쁘지 않아 3.44 인 류현진과 비교가 안 되는 투수지만, FIP 에 바탕하여 실적을 평가하면 팬그래프 WAR 0.3 으로 2.3 가량인 류현진의 1/8 밖에 안 되는 가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건 베켓은 극도로 운이 좋고 류현진은 상당히 운이 나빠 두 사람 사이의 클래식 스탯 차이가 커져 버렸기 때문에 더 대비된다.
이것 때문에 국내 커뮤니티에서 아주 크진 않아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중. 그저 세이버로 냉철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실대로 '베켓이 평자책은 좋아보이지만 사실 류현진이 세이버메트릭스는 더 좋다' 라고 말하면 소위 말하는 류까들은 이 사람들을 류빠로 몰아가며 'FIP 그거 믿을 거 못 된다' 는 말을 하고 소위 말하는 류빠들은 '이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류현진에게 유리하니 마구마구 써먹자!' 라면서 잘 알지도 못하며 FIP 를 마구 비호한다.
8월 3일 경기에서는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5이닝을 채우지 못하며 3실점을 하고 교체된다. 이날 경기는 다저스 타선의 집중력이 발휘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베켓도 볼질을 계속하다가 투수에게 2루타, 1번 타자에게 2점 홈런을 내주는 갑갑한 피칭이 나왔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당한 엉덩이 부상때문에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다 결국 15일 DL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라면 수술을 받아야 할 부상인데 당장 내년이 FA이고 수술을 받을 경우 시즌 아웃될 가능성이 높다 보니 주사처방으로 근근히 버티었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온 것. 그나마 MRI 촬영 결과에 의하면 2012년 클레이튼 커쇼가 당한 부상과 비슷한 상태여서 정규 시즌 내에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 안도거리였지만 9월 확장로스터가 된 시점까지 베켓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매팅리 감독은 이미 베켓이 시즌아웃도 될 수 있다는 암시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베켓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의 내년 FA나 팀의 포스트시즌 모두 긍정적인 효과는 얻기 힘들다.
9월 5일 켄 거닉의 기사를 통해 은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언급됐다. 시즌아웃은 공식적으로 확정됐으며, 은퇴는 시즌이 끝난 뒤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언급한만큼 은퇴 가능성은 적지 않은 편.
그리고 결국 10월 8일 은퇴를 발표했다. 이제는 몸에 한계가 왔다는 것이 은퇴 이유.
통산성적은 138승 106패 3.88, 2051이닝 1901탈삼진. 빅게임 피쳐로서 족적은 크게 남겼지만 잔부상이 많아 강한 이미지에 비해 통산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2 피칭 스타일
젊은 시절 베켓은 주로 90마일 중반대를 기록하는 묵직한 패스트볼을 이용해 타자들과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며 결정구로 리그에서 탑클래스 수준인 12-6 커브와 체인지업, 그리고 예리한 싱커로 타자를 잡아냈다.
그러나 포심-커브-체인지업의 단조로운 피칭은 그의 구속 저하와 함께 파해법이 드러나면서 2010 시즌 대차게 말아먹는 요인이 되었다. 2010시즌 후반에는 떨어진 구위를 대신할 투심 패스트볼도 연마했지만 영 재미를 보지 못했다. 부진을 극복하고자 여러 새로운 실험들을 시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컷 패스트볼의 장착이다. 평속 90마일의 커터를 이용해 2011시즌 수많은 타자들을 잡아내고 있다. 반면 커브의 비중은 16%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베켓의 커브는 위력적이며 낙차폭은 MLB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그외 코너웍과 완급조절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나 두둑한 배짱과 묵직한 포심/종변화구 조합은 제2의 커트 실링[14]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구위를 감안했을 때 피홈런이 많은 편인데 이게 다 가운데에 쑤셔넣는 베켓의 성깔 때문이다.
커리어 자체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유망주 시절의 기대에는 어째 못 미치는 느낌이다.[15] 말린즈 시절에는 잔부상이 많은 편이라 경기 출장 수가 적기도 했고, 보스턴 시절에는 홀짝 징크스가 심한 편이라 커리어 기복이 좀 있기도 했다. 다만 클래식 스탯과는 달리 FIP와 같은 스탯은 06시즌과 진행중인 13시즌을 빼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봐서는 짝수 시즌이 유달리 운이 없던 시즌이었던 걸로 보는 것이 맞다.
다만 13시즌 들어 포심의 구위가 급격히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다저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는 투수치고 심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진행중이긴 하지만 FIP와 ERA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냥 못 던지는게 맞는데, 문제는 자신이 여전히 패스트볼에 대한 고집이 있어[16] 위기 상황을 못 벗어난다는 점이다. 여기에 커브도 말을 잘 안들으면서 설상가상.
2014년 들어와서는 부상회복으로 포심은 13시즌보다는 좋아졌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베켓 본인도 인지했는지 포심의 구사 비율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대신 커브의 구사 비율이 30% 정도까지 올랐다. 그러면서 성적도 13시즌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졌다.
3 기타
- 존 스몰츠나 커트 실링 같은 대투수들에게는 밀리지만, 베켓 역시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서 충분히 명성을 떨쳤다. 경기수 부족으로 누적이 딸리고 08-09년 부진으로 비율스탯도 까먹긴 했지만, 두 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견인했고 두 번 모두 팀이 1:3으로 챔피언십 시리즈 탈락 위기에 몰렸을 때 완벽 투구로 팀을 구해내기도 했다. 통산 3차례의 완봉은 역대 2위. 특히 5번 선발에 1번의 4이닝 릴리프 등판을 했던 2003년 단일 포스트시즌 성적은 42.2이닝으로 4위, 47탈삼진으로 2위에 올라 있다. 비슷한 커리어의 선수로 잦은 부상으로 커리어가 꼬였지만 두 차례 카디널스 우승의 주역 크리스 카펜터를 꼽을 수 있겠다. 다만 카펜터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뼈를 묻으며 박수를 받고 은퇴한 것과 달리 베켓은 소속팀과 영 좋지 않은 마찰을 빚고 어그로를 끌었다는 점이 흠.
- 스포츠 계에선 소문난
킬러 조사슴 사냥꾼이다[17]. 그외에 자신의 이름으로 자선 볼링 대회를 개최하는등 봉사에도 노력한다. 그외에 좋아하는 야구 선수 카드를 1만장씩 모으는등 꽤나 매니아적인 취미도 가지고 있다.
- 2009년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에인절스에 아덴하트[18]의 망령이 남아있다."라는 고인드립을 작렬하면서 몇 달 동안 계속 까였다. 디비전시리즈 2차전에 선발로 나왔을 때 하필이면 상대가 에인절스였고 그들의 홈이어서 야유를 바가지로 먹었다. 거짓말 안치고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강판당할 때까지.
-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US셀룰러 필드에서 안타를 친 첫번째 투수로 기록되어 있다.[19] 2004년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와 플로리다 말린스의 경기가 허리케인 때문에 열리지 못하자 대안으로 US셀룰러 필드에서 경기를 한 것. 당시 선발로 맞붙은 투수는 김선우였다.
-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심정수가 초청선수 자격으로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적이 있었는데, 심정수가 훈련을 하다가 야구화 밑창이 찢어졌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베켓이 자신의 스파이크를 선뜻 심정수에게 줬다고 한다. 하지만 심정수는 자기를 거지 취급하나 불쾌해했고 한번 신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자신에게 신발을 준 사람이 그 유명한 조시 베켓이란 걸 알고 경악했다고.
- 류현진의 통역인 마틴 김에 의하면 2013 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상대로 NLDS 3차전에 등판해 죽을 쒔던 류현진이 NLCS 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상대로 등판할 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 줬다고 한다.
"포스트시즌은 준비하는게 조금 다르다. 본인이 잘하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정규시즌에는 6회정도까지, 혹은 투수를 아끼기 위해 조금더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포스트시즌은 공하나하나에 집중해서 던지지 않으면 빨리 끝날 수 있다. 넌 1년동안 괸장히 잘해왔고 잘될 때는 계속 잘하는 경향이 있으니, 네가 잘하는 것만 계속 던져라, 상대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팀이니까. 장점에만 집중해서 던지면 문제없을거다." |
순식간에 국민투수 등극2014년 베켓의 부활을 기원합니다사실 해 준 조언 자체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돼. 다만 좀 더 세게 던지고.' 라는 뻔한 이야기에, 베켓 뿐만이 아니라 허니컷 투수 코치, A.J. 엘리스 등 류현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저런 조언을 해 줬다. 그래도 가을의 사나이로 꼽히는 베켓의 조언이기도 하고, 보스턴 치맥 사건 이후 대한민국 야구 커뮤니티에서 멘탈레기로 찍힌 그였기에 후배를 챙기는 조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엠팍 및 야구 커뮤니티에서 그의 이미지가 조금 좋게 변하긴 했다. 결국 류현진이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기도 했고.이제 본인이 부활해야 할텐데
- 은퇴 후에는 고향 텍사스에서 농장을 꾸려 살고 있다.
- ↑ 플로리다 시절에는 고질적인 손가락 물집,손톱 문제가 있었다.
- ↑ 마크 프라이어는 당시 18승 6패 ERA 2.43을 기록했다.
- ↑ 다만 부상 때문에 200이닝을 채우는 데에는 실패했다.
- ↑ 이 트레이드로 말린스는 레드삭스의 유망주인 핸리 라미레즈와 아니발 산체스를 받아왔다. 핸리는 지금도 엄청 잘 나가고 그 당시에도 초특급 유망주 중 하나.
- ↑ 여담으로 이 해 8월 3일 베켓은 추신수에게 만루홈런을 쳐맞았다.
- ↑ 다만 이 해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CC 사바시아가 비슷한 승패와 ERA를 기록했지만 이닝을 40이닝 정도 더 먹으면서 사이영을 차지했고 베켓은 2위에 그쳤다.
- ↑ 여담으로 ALCS 5차전 클리블랜드에서 베켓의 등판이 예정된 경기에서 국가 제창을 한 가수는 베켓의 당시 여자친구인 대니엘 펙이었다. 인디언스가 베켓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자 일부러 인디언스 팬으로 알려진 여자친구를 섭외했다고...
- ↑ WS는 마이크 로웰이 MVP를 받았다
- ↑ 클리블랜드 전에서 데드볼로 추신수를 맞춘 적도 있었고(베켓도 고의로 그런건 아니었는지 당황해서 바로 추신수 쪽으로 쭉 걸어가긴 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클리블랜드의 옌센 루이스가 빈볼을 날리자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하기도 했다.
- ↑ 이후 로저 클레멘스를 동경한다고 21번으로 바꿔 달았고 레드삭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21번을 탐냈으나 무산되었다.
- ↑ 테드 릴리는 얼마 뒤 다저스의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을 맺었으나 얼마 안 지나 자이언츠에서도 방출됐고, 은퇴 소식이 나오자 아니라고 했다가 이내 은퇴를 결정하며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감했다.
- ↑ 2014년 정규시즌 첫 노히트 노런이며 역대 노히트 노런 달성자 중에서 고령 부분 2위를 달성했다.(고령 부분 1위는 랜디 존슨의 40세)
- ↑ 톰 글래빈, 클레이튼 커쇼, 요한 산타나 등
- ↑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커트 실링은 전성기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와 리그 최고의 스플리터를 던지던 투수였다. 다만 커트 실링도 야구 실력 외에 알아주는 핵이빨(...)로 유명했기에 이런 건 좀 안 닮았으면 싶지만...
- ↑ 베켓은 2001년 BA 전체 유망주 3위(!), 2002년 BA 전체 유망주 1위(!!!)를 기록했던 슈퍼 유망주다. 예전에 이 항목에는 그저 그랬던 유망주라 표기되었지만 결코 그렇게 볼 수 없다. 조시 해밀턴과 함께 뛰어든 99년의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조시 드래프트로 만든 주역이 베켓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 ↑ 구사 비율은 약간 낮아지긴 했는데 결정적 순간에는 계속 포심을 던지다 털린다.
- ↑ 이때문인지 몰라도 03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미국 총기 협회의 광고 모델을 할 정도. 이와 별도로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 주에 사슴 농장을 운영한다.
- ↑ 닉 아덴하트, 에인절스의 유망주였으나 취객의 음주운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 ↑ http://scores.espn.go.com/mlb/recap?gameId=240913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