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華民國立法委員選舉
1 개요
중화민국의 선거.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에 대응하는 국회의원 총선이다.
2 상세
1948년에 중국 전역에서 첫 선거가 시행되었고 760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당시 입법위원의 임기가 3년이었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은 3년에 한번씩 선거가 치러져야 되지만 1949년 국부천대 이후에 장제스가 본토수복 이전까지 선거를 연기하며 입법원 의원들을 종신직으로 만들었다. 거기에다가 처음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진것도 1969년이었고 그나마도 1983년 선거때까지는 중국 국민당과 중국 민주사회당등의 위성야당, 무소속 후보만 출마가 가능했으며 일부 선거구(중화민국 자유지구, 즉, 타이완과 푸젠성 일부지역)에서만 선출되었다. 그러다 장징궈 말기때인 1986년부터 야당 후보의 출마가 시작되었고, 1989년 선거때부터는 야당 후보들의 출마가 합법화 되었고 1991년의 개헌이 이루워지면서 1992년 선거때부터 총선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1998년에 타이완 성의회 선거가 폐지되고 2000년에 국민대회 기능의 일부를 넘겨받음으로써 권한도 더욱 커졌고, 의원수도 224명(1998), 225명(2001, 2005)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2005년의 개헌에 따라 국민대회의 기능이 입법원으로 이전되면서 임기를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했으며 의원수도 225명에서 113명으로 축소했다.
한편, 상원격인 국민대회도 있었고 직선제 전환이후에도 입법원과 별도로 선거가 치러졌지만 2000년에 기능이 축소되면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2005년에 마지막 선거가 치러진 후에 개헌을 하여 입법원에 기능을 넘겨주고 사실상 폐지되었다.
유권자는 중화민국 자유지구(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주민 중 20세 이상인 자로 규정된다. 입법위원 정수 113명 중 73명은 중화민국 자유지구의 각 지역구에서 선출된 소선거구제 의원들이며, 34석은 재외국민(화교)과 중화민국 자유지구 주민에 의해 선출된 비례대표들이다. 나머지 6석은 대만 원주민으로 등록된 유권자들끼리만 선거를 치러 당선된 원주민 대표로 구성된다.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이지만 원주민 의원은 중선거구제로 평지원주민 유권자 사이에서 다득표 순으로 3명, 산지원주민 유권자 사이에서 3명이 선출된다. 비례대표 중 절반 이상은 여성 의원이 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화민국의 입법위원 선거 지역구 당선은 정말 어렵다. 2008년 의원정수 절반 감축에 따라 지역구가 딱 73석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의 지역구 기준 인구가 21만 명으로, 최소인구(67%)는 14만 명, 최다인구(133%)는 28만 명으로 되어 있는데, 중화민국의 경우 지역구 평균 인구가 31만 명에, 가장 인구가 많은 신주현 선거구의 인구는 무려 52만 명에 달했다. #[1] 그래서 군소정당의 장벽이 굉장히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