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딘 지단/클럽 경력

1 개요

지네딘 지단의 클럽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다.

2 축구 천재의 등장

1988년 AS 칸에서 데뷔한 지네딘 지단은 1990년 18살 때부터 팀의 주전을 차지하였으나 두각을 나타낸 것은 막 20살이 되었을 때인 1992년이다.

리그앙의 AS 칸 소속으로 그 당시엔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그러나, 이후 윙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해 내는 쪽으로 전향했다. 당시에는 개인기가 뛰어나고, 머리숱이 많고 피지컬이 좋은 선수라는 평을 들었다.

3 지롱댕 드 보르도 시절

1992년 보르도로 이적한 후, 지단은 주전자릴 꿰차며 뛰어난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1994년에는 리그 앙의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에는 인터토토 컵 우승에 공헌하며 팀의 UEFA컵 출전권을 따낸다.

그리고 1996년 UEFA 컵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한 2차전에서 뒤가리와 리사라수 등과 함께 활약하머 3-0으로 카펠로의 밀란을 떡실신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결승전에서 이 시즌 무관의 위기에 몰려 독기를 제대로 품은 바이에른 뮌헨에게[1] 3대1로 패하며 콩을 수집했지만, 지단은 결승전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고 무엇보다도 밀란전의 활약으로 빅 클럽들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였으며 리그 앙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된다.

4 유벤투스 시절

1996년에 리그 앙의 베스트 선수가 되면서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 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을 하게 된다.

이 시절 유벤투스는 '지네딘 지단-디디에 데샹-에드가 다비즈'라는 사기 캐릭터급 중원으로 세리에 A와 챔스를 폭격하며 두 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하였고, 1996-1997 시즌과 1997-1998 시즌 2번 연속으로 유벤투스를 챔스 결승에 올리는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96-1997 시즌에는 마티아스 잠머가 이끄는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1997-1998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해 두 번 모두 우승에는 실패한다.콩콩

하지만 이 시기에 지단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 우승을 이끌었고 프랑스 축구의 영웅이자 세계 축구의 본좌로 자리잡는다.

5 레알 마드리드의 지단

슬슬 탈모의 기운이 느껴진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 우승 이후, 갑자기 불어닥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에 의해 어마어마한 이적료로 지구방위대의 일원이 되었는데,[2][3] 그 시기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마누엘 산치스의 은퇴 시점과 맞물리면서 그의 유산인 5번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직접 전달받았다.

레알 마드리드 입단 초기에는 루이스 피구와 호흡이 안 맞는 모습이 나오는 등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으나 적응을 끝마친 후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4강으로 이끌고, 4강에서 라이벌 FC 바르셀로나를 만나 펼쳐진 엘 클라시코에서 멋진 로빙 골로 선제골을 터트려 2:0 승리를 이끌었고, 2차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에 올린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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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fantastic! fa~ntastic![4]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의 결승전에서의 그의 발리 슛 결승골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매체에서 역대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골로 선정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 선정은 덤. 레버쿠젠 소속이었던 발락은 이 슛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5] 레버쿠젠에게는 3개 대회 준우승이라는 아픔을 낳게 한 골이었지만, 그 역시도 이 골이 최고의 골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지단의 슛이 화룡점정이긴 했지만, 만들어가는 과정도 정말 그림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 지단의 등 번호는 5번이다. 다른 팀에서 5번은 주로 수비 라인의 리더를 의미하는 번호로 배치되지만, 마드리드에서 5번은 지단의 후계자라는 의미이다.[6][7]

2001년 이적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7350만 유로에 이적하였고, 이 기록은 수 년간 깨지지 않고 있다가 2009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9400만 유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깨졌다. 하지만 2001년의 화폐가치와 2009년의 화폐가치의 차이를 생각해볼때 당시 지단의 몸값은 그야말로 넘사벽수준.

2002년 시즌에 지단은 새로 합류한 호나우도와 호흡을 맞추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까지 올라가 친정팀 유벤투스와 1차전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치지만 2차전에서 유벤투스에게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후 레알은 공격은 지단, 수비는 파본이 맡는 지다네스 & 파보네스 정책을 고수하였는데, 마케렐레페르난도 이에로 등의 이탈과 새로운 신입생 조나단 우드게이트, 왈테르 사무엘의 부상과 부진과 파본엘게라의 불협화음으로 수비진이 붕괴되고 주전 선수들이 혹사를 겪고 백업 자원들의 실력이 지나치게 떨어졌던 탓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지단은 카시야스와 더불어 유이하게 팬들에게 야유를 받지 않을정도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였으며,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2006년 월드컵 이전에 마드리드 선수로서 치른 클럽 공식 은퇴 경기에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온 관중들이 모두 지단의 등 번호인 5번이 적힌 유니폼 모양의 종이 섹션을 들고 나와 지단을 비롯한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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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트라파토니가 경질되고 보다못한 회장 프란츠 베켄바워가 직접 임시감독을 하고 있었다 답답하면 니들이 감독하던가
  2. 이 과정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지단에게 '냅킨'으로 영입 제의를 한 비화가 상당히 유명하다. 2000년 FIFA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장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냅킨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생각이 있는가'라는 말을 써서 지단에게 전달했고, 지단이 영어로 'Yes'를 적어 화답하면서 영입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날 수상대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지단이었다.
  3. 이는 호날두의 이적 전까지 최고 몸값이었으며, 유벤투스는 필리포 인자기에드윈 반 데 사르, 다르코 코바체비치를 팔고서 지단을 판매한 돈까지 더해 부폰튀랑 그리고 네드베드, 마르셀로 살라스, 크리스티안 제노니를 사와 팀을 재건한다.
  4. 골이 터진 순간에 나온 해설자의 멘트.
  5. 지단이 슛을 작렬시키는 순간 바로 뒤에 있었다.
  6. 펠레가 등 번호 10번을 '에이스의 상징'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듯이 5번을 '수비 라인의 리더'로서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바로 프란츠 베켄바워이다. 그는 선수 시절 4, 5, 6번 등을 달고 뛰었지만 전성기 때 등 번호는 5번이다. 대표적인 5번 선수로는 푸욜이나 칸나바로 등이 있다.
  7. 각국마다 다르기는 한데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 5번을 미드필드의 청소부 역할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본다. 김남일? 매우 중요한 포지션으로 10번은 관중을 부르지만 5번은 승리를 부른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지단 이전의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5번 선수는 같은 프랑스의 전설인 '나폴레옹' 레이몽 코파. 아마 지단도 10번이나 7번을 달지 못할 바에는 5번을 달기로 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8. 참고로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단말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한 선수들은 없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예지 두덱루벤 데 라 레드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하기는 했다.
  9. 다만 두덱은 레알에서 고작 2경기(...)밖에 안 뛰었고, 데 라레드는 심장문제로 은퇴를 했으니 정상적으로 은퇴한 것은 지단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