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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네딘 지단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1.1 데뷔
풍성한 머리칼을 자랑하는 지단의 몇안되는 사진이다
A매치 첫 데뷔는 1994년 8월 17일 체코와 맞붙은 친선 경기였는데, 0-2로 끌려가던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어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데뷔 골을 기록했고, 이후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를 꽂아 넣어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단은 이때의 감격에 대해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컸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다비드 트레제게, 티에리 앙리, 클로드 마켈렐레, 니콜라스 아넬카, 유리 조르카에프 등 황금 세대와 같이 맹활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지네딘 지단이 선발되지 못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약체 이스라엘에게마저 2-3으로 충격패하고, 또한 불가리아전에서 다비 지놀라가 엉성한 크로스를 차는 바람에 백패스가 되면서 불가리아에게 공을 내주었고 결국 역전 골을 얻어맞으면서 연달아 패배하였다. 부진한 성적으로 결국 1990년에 이어서 또 다시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지역 예선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1]
참고로, 1990년과 1994년 레 블뢰의 스쿼드는 지네딘 지단이 맹활약했던 1998년의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했었다. 다비드 지놀라, 장 피에르 파팽[2], 에릭 칸토나, 폴 르갱같은 황금세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1990년, 1994년 세대를 통틀어서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라고 부른다.
1.2 유로 1996
대회내내 전 경기 주전으로 출장하며 활약해 팀을 4강까지 올리는데 공헌했지만 체코와 승부차기 혈전 끝에 4강에서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1.3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국에게 첫 월드컵을 안겨주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전부터 지단은 이미 스타 플레이어였고, 대회 전부터 호나우두, 데니스 베르캄프와 함께 가장 유력한 MVP 후보 중 하나로 꼽혔다. 물론 배당은 호나우두가 가장 높았지만, 지네딘 지단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마냥 깜짝 등장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지단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진 것은 아무래도 2경기 출장 정지 탓이 크다.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티에리 앙리와 유리 조르카에프(혹은 뒤가리)를 전방에 세워 상대 진영을 헤집었다. 이 때 지단이 전진하면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 디디에 데샹이 전진해야 했는데, 그 뒤에 펼쳐진 공간은 마르셀 드사이와 로랑 블랑,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미친 듯한 운동량을 보여준 릴리앙 튀랑이 성공적으로 메웠다. 이때의 레 블뢰는 지단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도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급이었다.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만 해도 훌륭한 플레이로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지단이었지만, 사우디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상대 선수를 밟아 버리는 행동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었다.[3] 이로 인해 지단은 2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으며, 결국 16강전까지 경기에 불참하였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복귀를 하였으나, 이 경기 자체가 0:0으로 무승부로 비긴 상태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던 경기였기에 딱히 돋보이지는 않았고,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릴리앙 튀랑의 인생 골 2개가 더욱 강렬하였다.[4]
결국 레 블뢰는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지만, 지단이 1994년 미국 월드컵의 로베르토 바조처럼 신들린 활약으로 조국을 결승으로 이끌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아쉬운 활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승전까지의 지단의 활약을 평가하자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닌 정도의 준수한 활약이었다. 물론 지단은 지단이었지만 그에게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실제로, 당시만 해도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MVP 투표를 했기 때문에 대회 MVP는 예상대로 호나우두였고, 2위는 대회 골든 슈 수상자인 다보르 슈케르가, 3위는 튀랑이 차지하였다.[5] 그리고 결승전 직전 도박사들의 예측은 브라질의 우승이 6:4 정도로 우세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호나우두의 발작 사건으로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월드컵 결승전이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단은 코너킥 두 번을 모두 헤더로 골대 안으로 꽂아 넣으며 레 블뢰의 승리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호나우두는 경기 내내 제대로 화면에 잡힌 장면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호나우두는 고개를 숙였고, 지단은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그리고 세계는 '마에스트로'의 충격적인 등장에 열광했다. 그렇게 지네딘 지단은 조국에서 열린 첫 월드컵에서, 레 블뢰 역사상 첫 번째 FIFA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1998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시상하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은 지단이 주인공이 되었다.
1.4 유로 2000
축구계 본좌의 자리에 올라서다.
지네딘 지단 이외에도 티에리 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가 기량을 만개한 상태였던 때라, 안 그래도 사기 캐릭터급으로 강했던 레 블뢰의 능력이 정점을 찍었다. 8강 스페인전에서 불꽃 프리킥으로 선취 득점을 하며 프랑스를 4강으로 이끌었고, 4강에서 루이스 피구가 이끄는 포르투갈과의 혈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PK 골든 골을 성공시킨다. 연장 종료 직전 PK가 선언되었을 때 루이스 피구의 반응도 걸작이었다. 처음에는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하다가 결국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지단이 PK를 차기전에 유니폼 상의를 미리 벗어 젖히고 스스로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지단이 실축을 한다면 경기는 다시 속개되는 상황이었으나 피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는 지단의 강력한 킥력과 PK를 절대로 실축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한 피구의 강한 확신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4강전에서 피구가 보여준 경기력은 훌륭했지만 지단이 보여준 경기력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엄청났다.[6] 결승전에서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반면에 프란체스코 토티가 엄청난 활약을 하였지만 결국 승리자는 프랑스였다. 그리고 지단은 대회 MVP를 차지했다.
1.5 2002년 한일 월드컵
충격의 세네갈 쇼크.
대회 직전(5/26, 수원)에 열린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을 당했다. 프랑스는 세네갈 쇼크를 맞고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는 조별 예선 마지막 덴마크와의 경기에서는 무조건 2골 차이로 이겨야 16강 진출이 가능한 절박한 상황인 탓에 부상당한 지단을 16일만에 불러내서 뛰게 하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오히려 2-0으로 패배하여 결국 짐을 싸게 된다.[7] 1966년 브라질에 이어 월드컵 사상 두번째로 전대회 우승국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vs 세네갈 0:1 패
vs 우루과이 0:0 무
vs 덴마크 0:2 패
한 골도 못 넣고 짐을 싸야 했다
1.6 유로 2004
전설의 잉글랜드 3분쇼.
세네갈 쇼크 이후에 지단의 커리어도 슬슬 정점에서 내려간 듯 했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프랑스 국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꽤나 오래 전부터 하였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프랑스는 강팀이었고, 역시나 강력한 우승후보로 뽑혔다. 지단의 커리어에서 가장 강렬한 경기 중 하나인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전도 바로 이 경기. 당시 프랭크 램파드의 선제 헤더로 잉글랜드가 리드하면서 후반 막판까지 앞서갔으나 지단은 프리킥으로 동점골, 추가 시간에 앙리가 얻어낸 PK를 성공시키면서 2-1 역전승을 거둔다.
2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는 앙리의 짧은 코너킥을 올리자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없이 감각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발뒤꿈치로 볼을 띄어 갈라스에게 전달하는 경악스러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갈라스는 헤딩을 했지만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단의 영향력은 조별리그까지만 빛났고, 8강에서 수비형 볼란치만 4명을 쓴 복병 그리스에게 0-1 패배로 일격을 맞고 결국 초라하게 은퇴하게 된다.[8] 한 시대를 발 아래 둔 마에스트로의 국가대표 은퇴가 이렇게 씁쓸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1.7 2006년 독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에서 프랑스가 점차 본선 진출에 멀어져 가는 위기를 맞았다. 프랑스 언론 여론에서는 지단을 국대 복귀를 원했고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본선 진출을 일조까지 했다.
그의 국가 대표 마지막 대회이자 현역으로 참가한 마지막 대회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모습[9] |
조국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전설을 써내려가다.
그의 공식적인 은퇴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였는데, 유럽 지역 예선에서 빌빌대던 고국을 위해 국가 대표 복귀를 선언[10]하고 나서 레 블뢰가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는데 일조한다.
그 이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는데,[11] 1차전 스위스전과 2차전 한국전에서는 본인의 이름값에 맞지 않는 부진에 빠지면서 전세계 언론들은 이제 지단도 한물 갔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지단은 열받았는지 16강 이후부터 그야말로 각성하기 시작한다.
1.7.1 16강: vs 스페인전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당시 최고의 상승세를 그리던 스페인이였는데, 지단과 비에이라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는 스페인을 말 그대로 개발살을 내버렸다. 그 경기에서 지단도 골을 넣었는데... 그것도 당대 최고의 센터백중 하나인 푸욜을 상대로 자기의 장기인 섬세한 볼 컨트롤 개인기로 제친 뒤, 팀동료이자 당대 최고의 골키퍼중 하나인 카시야스를 상대로 깔끔하게 득점을 마무리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라울 곤살레스는 지단의 월드컵 은퇴 경기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자기가 그 꼴이 되었다. 그리고 지단은 "나의 은퇴 무대는 월드컵 결승전이다."라는 초절정 간지 나는 선언을 하였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스페인과의 경기가 끝난 후 지단이 대놓고 스페인을 비꼬면서, "이번이 내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고 했던 스페인에게, 이 경기가 마지막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1.7.2 8강: vs 브라질전
사실 스페인전은 지단도 뛰어났지만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훨씬 더 빛난 경기였다면, 진정으로 그가 빛난 경기는 브라질과의 8강전이었다. 아니, 이 경기는 빛난다는 말로도 부족한 경기였다.
당시의 브라질은 판타스틱 4 또는 환상의 4중주라고 불렸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를 보유하고 있었고,[12] 당연히 우승 배당 1위에 모든 전문가들이 브라질을 우승 후보 1순위로 뽑았으며,[13] 역대 최고의 브라질 국가 대표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반면 프랑스는 조별 리그 때부터 언론에게 조롱의 대상이었고, 스페인을 꺾으면서 평가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브라질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수탉이라고 조롱받았을 만큼 지역 예선 때부터 성적이 좋지 않았고, 스쿼드도 이름값만 높고 실속이 좋지 않았다. 지단을 위시해서 튀랑, 마켈렐레는 국가대표를 은퇴했다가 돌아온 선수였으며, 비에이라와 바르테즈는 기량이 하락하고 있었고, 프랑크 리베리, 플로랑 말루다, 에릭 아비달은 신예에 불과했다. 프랑스 대표 팀 주전 중에 정상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는 티에리 앙리, 윌리엄 갈라스, 윌리 사뇰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단은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브라질 국가 대표를 완전히 떡실신시켜 버렸다.
경기 시작한 지 30초 만에 제 호베르투와 주니뉴의 압박을 가볍게 벗어나고, 지우베르투 시우바를 헛다리 짚기로 제치고, 카카의 눈앞에서 공놀이를 하며 그를 데꿀멍시키고, 카푸를 발재간으로 농락하질 않나, 루시우와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연속 태클을 가볍게 돌파한 뒤 킬 패스를 찔러 넣고, 지우베르투 시우바를 상대로 마르세유 룰렛을 하는 등... 이게 정녕 은퇴 직전인 선수의 플레이가 맞는가?
점수는 1대 0이었지만, 역대 최고라고까지 불렸던 브라질이 경기력으로 압도되어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결승골은 지단의 어시스트에 의한 티에리 앙리의 골. 여담으로 그렇게 국대에서 안 맞는 조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둘은 결국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했던 월드컵 은퇴 무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단 본인 역시 직접 득점할 뻔한 아쉬운 장면을 몇 번 만들었다.
전 세계의 보도 매체들이 지단의 전성기 시절 볼 터치가 살아났다며 그야말로 대서특필.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하며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1.7.3 4강: vs 포르투갈전
4강에서는 28년 만에 16강에 진출한 뒤 1966년 이후 40년만에 4강까지 올라온 포르투갈과 만났는데 [14], 한때 최고의 라이벌로 불렸던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의 마지막 대결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 결과는 지단의 PK 결승골에 의한 프랑스의 승리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만나게 되는데...
1.7.4 결승: vs 이탈리아전
지단은 전반전에 파넨카 킥으로 PK 선제골을 넣고, 부폰의 선방에 막혔지만 결정적인 헤더를 날리는 등 큰 활약을 하였으나 경기는 이탈리아의 센터백 마르코 마테라치의 동점 헤더로 연장전으로 가게 되었다.
1.7.4.1 지단 박치기 사건
결국 연장전이 진행되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뜬금없이 지단이 마테라치에게 머리로 박치기를 시전했고, 그 즉시 엘리손도 주심은 레드 카드를 꺼내 지단에게 퇴장을 명령한다. 이른바 지단 박치기의 탄생이었고,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되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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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은퇴경기에서 FIFA 월드컵 트로피를 지나쳐 쓸쓸히 퇴장하는 지단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동점 골의 주인공인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모욕을 했고 지단은 그대로 박치기로 응수를 한 것. 정확히 문제가 되는 내용인 즉슨, 마테라치가 지단의 옷을 자꾸 잡아당기자 지단이 "그렇게 내 유니폼이 가지고 싶으면 경기 끝나고 주마."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테라치가 "유니폼보단 니 창녀 누이가 낫겠다(I would prefer your whore of a sister)."라는 모욕적인 말을 했고, 순간 빡쳐서 박치기를 했다고 한다.
지구상 최고의 선수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은퇴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연장전이 끝나고, 다비드 트레제게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지막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단의 공식적인 은퇴 경기는 월드컵 결승전이었고, 그 경기에서도 골을 넣고, 또 퇴장까지 당하며 가린샤 클럽에 가입한 것을 보면 그야말로 전설적인 선수의 전설적인 마지막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조국의 2번째 월드컵 우승은 아쉽게 놓쳤지만, 월드컵 MVP(골든 볼)는 지단이 차지했다.
이 덕에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뒤 전 세계의 언론이 "지단, 왜 그랬나?"라는 식의 보도를 하게 되었고,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식은 그대로 묻히게 되었다(...).오죽하면 신문의 1면이 이탈리아가 우승 트로피를 드는 사진이 아니라, 지단이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시전하는 사진이었을까.
지단은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게 된 이유를 언론을 통해 해명하였고, 마테라치는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결국 자신이 지단의 누이를 모욕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렇게 마테라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죽도록 까였다.
이 박치기 장면은 프랑스 파리에 동상으로 건립되었고, 마테라치는 이 동상 앞에서 인증 샷을 찍어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단보다 마테라치가 나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해외에서는 지단이 순간적으로 흥분하는 성향이 원래부터 있었으며 이를 이탈리아가 영리하게 이용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0년 유벤투스가 UEFA 챔피언스 리그 1차 조별 리그에서 충격적으로 탈락할 당시 함부르크 SV와의 경기에서 박치기로 퇴장당한 전례가 재조명되었다.
어쨌든 지단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팀을 주장으로서 이끈 점, 무엇보다 우승 후보였던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을 모조리 제압하며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시킨 활약을 인정받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받지 못한 대회 MVP를 수상하게 된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화려한 은퇴라고 할 수 있겠다. 16강에서 라울 곤잘레스를 은퇴시키고, 8강에서는 호나우두를 은퇴시키고[16], 4강에서는 루이스 피구를 은퇴시키며 자신의 은퇴를 자축한 대회였다 캐삭빵도 아니고
2 지단의 은퇴 이후 레 블뢰
지단이 레 블뢰를 완전히 떠나고, 당장 유로 2008 지역 예선부터 프랑스는 플레이메이커의 공백에 시달리며 답답한 공격흐름이 시작되었고, 본선에서는 역대급 졸전으로 1무 2패로 광탈하게 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도메네크 감독의 막장 지도력이 아주 제대로 빛을 보게 되면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도메네크는 곤살로 이과인을 레 블뢰에 뽑았지만 이과인의 선택은 레 블뢰가 아니라 알비 셀레스테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홈 팀 남아공에게 돌림빵(...)을 당한 건 둘째 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도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다행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꿀조에 편성된 덕인지 막강 화력을 과시하며 조별 리그 탈락은 면했다. 다만 유로 2016 데샹감독이 이끄는 프랑스가 앙투안 그리즈만, 폴 포그바, 드미트리 파예등을 필두로 선전했고, 아쉽게도 날두국에 밀려 준우승을 한다.
다른 국가들 못지 않은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랑스 축구 국가 대표팀이 지단의 존재 유무에 따라서 경기력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보면 지단의 존재감이 프랑스에서 얼마나 큰 무게감을 지녔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축구계의 영원한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단의 은퇴 이후 프랑스에서도 "제 2의 지네딘 지단" 열풍이 불면서 수많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스트 지네딘 지단이라 불리는 선수는 바이에른 뮌헨의 프랑크 리베리, 세비야의 사미르 나스리, 파리 생제르망의 아템 벤 아르파, 올랭피크 리옹의 요앙 구르퀴프 등 여럿 있었지만, 위의 저 명단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 아무도 전성기 시절의 지네딘 지단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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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프랑스를 꺾은 불가리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여 4강 진출 신화를 이뤄냈다.
- ↑ 심지어 발롱도르 수상자였다.
- ↑ 의외로 사람들이 지단이 성깔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 ↑ 항목에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써보면, 튀랑의 국가 대표 커리어가 142경기 2골인데 그 2골을 이 경기에서 넣었다. 그것도 동점 골과 역전 골.
- ↑ 당시 대회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튀랑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튀랑의 경우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 동점 골과 역전 골을 뽑아 인생 경기를 펼친 것이 크게 작용했다.
- ↑ 특히 후반에 보여준 볼 컨트롤은 예술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참조
- ↑ 이 날 경기 양국 국가 연주 때 카메라가 국가를 부르는 프랑스 선발 멤버 지단을 비춰주자 프랑스 팬들을 포함한 인천 문학경기장의 상당수 관중들이 환호했다. 경기는 2-0으로 졌지만 정작 지단 본인은 이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이 날 경기의 MVP에 선정된다.
- ↑ 결국, 그리스는 유로 2004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이기도 하다.
- ↑ 2005/06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프랑스 국가 대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 참여했다.
- ↑ 릴리앙 튀랑도 함께 복귀했다.
- ↑ 당시 같은 조였던 한국 언론에선 지단을 늙은 수탉이라고 대놓고 조롱할 정도였다. 물론 해외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본인도 조별 리그 당시 부진한 경기력에 빡쳤는지 한국전 1-1 무승부 직후 라커룸에서 철제 라커를 걷어차버렸다는 기사도 나왔다.
- ↑ 사실 브라질에게 환상의 4중주니 뭐니 언론들이 찬사를 보냈지만 이는 이름값만 지나치게 믿고 엮은 조합일 뿐, 저 4명을 쓰기 위해 무리하게 진영을 짠 결과 효율성 면에선 답이 없다는 우려가 결국 증명되었다.
- ↑ 당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던 브라질 뒤로는 개최국 독일과 황금 세대가 도래했다는 잉글랜드,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이 우승 후보로 꼽혔고 정작 독일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와 준우승팀 프랑스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 ↑ 참고로 이때 포르투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반대로 그 당시 우승후보였던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를 격파했다.
- ↑ 한 축구 팬은 그를 위해 지단 박치기 플래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 ↑ 정확히는 2011년에 은퇴하지만, 월드컵은 2006년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