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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선수가 실제로는 가장 싼 선수이다.
1 소개
이름 | 플로렌티노 페레스 로드리게스(Florentino Pérez Rodríguez) |
생년월일 | 1947년 3월 8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마드리드 |
학력 | 마드리드 공과대학 |
전공 | 토목 공학 |
현직 | ACS(CEO) |
경력 | 레알 마드리드 2000~2006, 2009~현재(회원 번호: 3018) |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회장 | ||||
로렌소 산스 (1995~2000) | → | 플로렌티노 페레스 (2000~2006) | → | 라몬 칼데론 (2006~2009) |
라몬 칼데론 (2006~2009) | → | 플로렌티노 페레스 (2009~ ) | → | 현직 |
스페인의 사업가, 토목 공학자, 전 정치인이며, 스페인 최대이자 유럽 3위 건설 그룹 회사인 ACS의 최고 경영자이다. 축구 팬들에게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1] 2000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그 유명한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장본인이다.이러니 안감독님까지 짜르지....
주로 축구 클럽 회장으로 유명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라는 스포츠 팀 안에 축구 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구 팀인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의 회장도 겸하고 있다.
2 회장 1기(2000~2006)
1995년 2월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여 3선을 목표로 하던 멘도사 회장에게 불과 698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다. 그 당시 선거에서 총 54083명의 소시오 중에서 33682명만이 투표하였고 멘도사 회장은 15203표를 획득하였고 페레스 후보는 14505표를 다른 후보였던 고메스 핀타드는 4154표를 획득했다. 선거의 승패의 열쇠는 부재자 투표였다. 멘도사 회장은 5375표, 페레즈는 3985표, 고메스 핀타드는 694표를 획득하면서 승패가 갈렸다.
2000년 가진 회장 선거에 다시 입후보 로렌초 산스 회장에게 도전했다. 당시 회장이었던 로렌초 산즈는 그의 임기기간 동안 1998년과 2000년에 각각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투표단의 신임을 얻고 있는 상태였기에 재선을 확실시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페레즈는 클럽의 자금 운영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전의 클럽 보드진과 프런트의 무능함에 대해 비난했고 클럽의 운영과 레알 마드리드라는 브랜드 가치의 격상을 자신의 공약으로 내걸었다. 7월 17일 회장 선거 집계의 최종 결과 페레즈는 16469표를 획득하였고, 산스 회장은 13302표를 획득하여서 페레즈가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2000-01 시즌 페레즈는 회장 선거의 공약대로 FC 바르셀로나에서 루이스 피구를 6000만 유로를 쏟아부어 영입하면서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갱신하였다. 그리고 그해 12월 23일 FIFA가 레알 마드리드를 20세기 최고의 구단으로 선정하였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는 당시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배하여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01-02 시즌에는 유벤투스로부터 지네딘 지단을 영입하면서 피구를 영입할 때 갱신한 세계 최고 이적료를 다시 갱신했다.[2] 2002-03년 시즌 이적 시장 마감일인 8월 31일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우승자이자 득점왕에 빛나는 호나우두를 4500만 유로에 인터 밀란에서 영입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는 그 시즌에 UEFA 슈퍼 컵, 인터컨티넨탈 컵, 그리고 리그 우승을 하였다.
2003-04 시즌에는 잉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베컴을 2500만 유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영입한다. 그리고 99년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델 보스케 감독과의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석 코치였던 포르투갈의 케이로스를 영입한다. 이때부터 팀의 붕괴를 불러오는 불균형이 시작되었다. 그 직후에 열린 회장 선거에서 재선에는 성공하였으나, 이후 감독 선임에 있어서 문제를 겪으면서 감독들이 한 시즌을 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는 사태가 여러 차례 발생하게 된다. 카마초, 레몬, 룩셈부르고와 같은 감독들이 그의 회장 임기 동안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수행하였지만 매번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부진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자 결국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2006년 2월에 사임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맴버이자 부회장이었던 페르난도 마르틴이 회장 대행으로서 그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라몬 칼데론이 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칼데론 부임 시기가 열렸다.
3 회장 2기(2009~현재)
칼데론 회장이 구단 총회에서 투표 조작 파문을 일으키며 임기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 형식으로 2009년 1월에 사임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당선이 되자마자 페레즈는 그가 과거에 그랬던 것과 같이 갈락티코스의 부활을 천명하였고, AC 밀란으로부터 카카를,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부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하는 것으로 2기 갈락티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올림피크 리옹으로부터 프랑스의 떠오르는 신성 공격수 카림 벤제마를 3500만 유로에 영입한다. 그러고 나선 또 리버풀 FC의 사비 알론소를 3000만 유로에 영입하는 등 분노의 영입 행보를 보였다. 그 이외에도 발렌시아의 수비수였던 라울 알비올, 그리고 과거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었던 우측 측면 수비수인 알바로 아르벨로아 등도 영입하면서 09-10 이적시장에만 무려 2억 2651만 파운드. 유로로는 284m. 한화로 약 4천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비야레알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남미의 명장인 마누엘 페예그리니를 선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해당시즌 무관에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결국 2010-11 시즌,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이끌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을 선임하였으며 당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메수트 외질을 SV 베르더 브레멘으로부터 1800만 유로에 영입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사미 케디라를 VfB 슈투트가르트로 부터 1400만 유로에 영입했으며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부터 앙헬 디 마리아를 3300만 유로에 영입하는 등 이 시즌에도 약 1억 유로, 한화로 약 1300억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였다. 그 결과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하면서 3년 무관에서 탈출했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항상 발목을 잡아왔던 올림피크 리옹을 누르고 지긋지긋한 6년간의 16강 징크스에서 탈피하여 챔스 준결승까지 오르는 등 투자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11/12 시즌에는 스쿼드가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으므로 파비우 코엔트랑과 누리 사힌이라는 영입에만 5500만 유로 정도를 썼고, 해당 시즌에 리그 32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다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안타깝게도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배하여 2연속 준결승에 머물게 되었다.
12/13 시즌 역시 감독인 무리뉴가 별다른 스쿼드 보강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그 의견을 받아들여 토트넘 핫스퍼로부터 루카 모드리치를 3천만 유로에 영입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그 결과 부상으로 인한 스쿼드 악화로 인해 해당시즌을 무관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시즌 이후 성적 부진과 주장 및 선수단 간의 불화로 인해 무리뉴와 상호 합의로 인한 계약 해지를 발표하게 된다.[3]
13/14 시즌, 스페인의 신성인 말라가의 이스코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아시에르 이야라멘디에게 각각 3천만 유로라는 금액을 투자하여 영입하였고 토트넘의 가레스 베일에게 9400만 유로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이적료 금액의 영입을 성사시켰으며 동시에 메수트 외질을 5000만 유로에 아스날에게 팔아 넘김으로써 최대 이적료 방출 기록을 갱신하였다. 그리고 파리 생제르망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이 시즌에도 1억 6천만 유로, 약 2300억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였다. 그 결과 코파 델 레이 우승 및 레알 마드리드의 오랜 숙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 10회 우승, 곧 라 데시마를 달성하게 되며 해당 시즌을 더블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14/15 시즌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던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소속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를 약 3천만 유로의 금액에 영입하였으며, 브라질 월드컵 골든 부트 수상자이자 가장 센세이션한 활약을 펼쳤던 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AS 모나코로 부터 8천만 유로에 영입하였다. 그 이후 브라질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의 8강 열풍을 주도했던 주역인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를 레반테로부터 바이아웃 1천만 유로를 주고 영입. 올 시즌에도 1억 유로가 넘는 금액을 투자하며 전력을 보강하였다.
4 업적
구단 경영 면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회장
페레즈의 가장 큰 업적은 천문학적인 부채 탕감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훈련장인 '시우다드 데 레알 마드리드'를 완공하였으며 FIFA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구단이라는 명예를 얻게 하면서 레알 마드리드를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잡게 한 것에 있다. 그는 이적 시장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감행하는 경영인으로서, '슈가 대디'로 일컬어지는 돈 많은 부자 구단주의 지원을 등에 업지 않고 순수하게 클럽의 자산을 통한 자금 운영을 통해 저러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의 투자 전략은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전략으로 스타급 선수에게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서 선수를 영입하고 그를 통해 클럽의 브랜드 가치를 확립하고 각종 사업을 벌임으로써 이윤을 남기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페레즈 자신이 토목 및 건축 관련 사업가이기 때문에 부동산과 관련한 시가 정책에 밝아 부지 매각이나 건물 임대 및 테마 파크 조성 사업 등으로 인한 수익 창출도 어마어마한 수준. 그리고 페레즈 자체가 항간에 떠도는, 돈을 펑펑 써대는 헤픈 이미지와는 달리 극도의 실용주의자로 클럽의 브랜드 가치 확립을 위해 투자와 그 반대로 이윤 창출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철저한 자세를 취한다. 페레즈의 그러한 자세가 극명히 드러나는 두 가지가 바로 앞서 언급한 공격적인 투자 정책과 주급 체계, 초상권 정책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주급 체계는 그 어떠한 구단보다 잘 잡혀 있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그 선수의 스타성과 수익성에 기반하여 책정된다. 물론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실제 경기력 및 기여도에 따라 선수 개인의 시장 가치가 변동이 있을 경우 그것을 감안하여 어느정도 인상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선수가 얼마나 수익성이 있는가'가 가장 주된 임금 책정 요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갈락티코 1기 당시 클로드 마켈렐레의 첼시 이적인데 당시 마켈렐레는 팀 내 포지션에서 중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때문에 자신은 지단, 피구와 같은 스타급 선수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주급을 요구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운영 자금 상황이라면 마켈렐레가 요구하는 주급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으나,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가정했을 시에 비슷한 활약을 보였던 여타 선수들도 나서서 주급 인상을 요구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 선수, 저 선수에게 다 퍼주다 보면 결국 평균 주급 자체가 상승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주급 체계가 붕괴되어 클럽이 재정적인 문제에 봉착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마련이다. 페레즈는 이런 이유로 마켈렐레의 주급 인상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으며, 그 외에도 바로 앞의 패스도 제대로 못하는 선수라면서 혹평까지 더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마켈렐레는 로만이라는 부자 구단주가 인수한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후로 갈락티코가 한동안 성적 부진을 겪으면서 마켈렐레의 이적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클럽 내부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지만 레알이 마켈렐레의 요구를 들어주었을 경우 레알의 주급 체계는 그 시점에서 붕괴되었을 것이며 클럽 운영에 있어서 주급 부담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영입하는 이적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에 다들 동의한다. 즉 마켈렐레의 이적이라는 선례를 통해 비록 이후로 한동안 성적 부진에 시달렸지만[4] 그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레알 마드리드의 브랜드 가치가 확립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초상권 정책인데, 레알 마드리드는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선수 계약에 있어서 초상권을 최소한 40%는 확보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비싼 선수가 실제로는 가장 싼 선수이다"라는 말의 근거가 된다. 초상권이라고 함은 특정 선수를 소유한 클럽에서 팀에 소속된 선수가 주급이나 상여금 등 계약에 명시되어 있는 임금을 제외하고 그 선수가 따로 얻는 모든 부대 수익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리를 뜻한다.[5] 스타성이 좋은 선수는 단연 언론 및 미디어 노출이나 각종 행사, 그리고 광고 섭외 등이 폭주하게 마련이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온전히 레알이 가져가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레알은 선수들에게 투자한 고비용을 고스란히 회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페레즈가 월드컵이나 유로 등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은 대회에서 맹활약을 해서 인지도가 높아진 스타급 선수 영입에 그토록 목을 메는 이유기도 하며 또한 그러한 선수들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들은 축구 클럽 운영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운영 형태기도 하다. 실제로 하버드대학 경영학에서 레알 마드리드 클럽의 운영 사례가 교재로 쓰일 정도(#),(#)이며 레알이 그토록 많은 자금을 이적시장에 쏟아붓고서도 FFP와 관련된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실질적으로 부자 구단주가 없는 시민구단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롤 모델을 만든 인물. 현대 스포츠, 특히 축구 사업 분야 업무에 직종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가 이끌었던 갈락티코 프로젝트는 스포츠 수익 사업에 있어서 일종의 전설로 회자될 만큼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해 내었다. MLB에서 존 헨리가 빌리 빈의 세이버메트릭스를 기반으로 일약 혁명을 일으켰다면 그 반대로 페레즈는 축구에서 투자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역설하는 인물.[6]
4.1 비판
투자와 경영의 성공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업적
물론 페레즈가 레알에 끼친 업적은 위대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다 보니 실수를 여러 차례 한 적 있다. 사실 클로드 마켈렐레 이적 건만 하더라도 사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하더라도 페레즈에게도 책임을 회피할 소지가 없지는 않다.[7] 아무래도 갈락티코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강압적으로 진행된 감이 없잖아 있었고 그 때문에 썰려나간 선수도 사실 꽤 되는 편. 마케렐레를 비롯하여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페르난도 이에로, 플라비우 콘세이상, 스티브 맥마나만 등을 03/04 여름 이적 시장 때 싸그리 몰아냄으로써 스쿼드 뎁스 악화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 어느 정도는 페레즈의 책임이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 출신 레전드로서 팀이 어려운 상황에 부임하여 팀을 이끌며 4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메라 리가에서 각각 2번씩 우승컵을 안겼던 명장 델 보스케를 02/0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패배를 빌미로 '팀의 매너리즘을 자초했다'라는 이유로 경질시켜버린 것에 대해선 두고두고 비판의 소지가 남는다. 애초에 그 매너리즘의 빌미를 누가 제공했느냐를 따진다면 사실 제일 까여야 될 건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감독을 막 대하는 건 여전해서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최다 승점을 기록했는데도 경질당했고,[8] 카를로 안첼로티는 전 시즌 라 데시마를 이뤘지만 14-15 시즌이 무관으로 끝나자 결국 경질당했다.
그리고 팀 내 레전드의 예우와 관련해서 상당히 질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03/04 시즌, 전성기에 비해 다소 기량이 하락했다고는 하나 라울 이전의 레알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당시 주장을 역임하며 30경기 이상 소화하는 준주전급 선수였던 이에로를 방출한 것, 그리고 09년에 칼데론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 이후 시즌 여름 이적 시장 때 팀 내 리빙 레전드인 라울 곤잘레스와 구티를 이적시킨 것과 관련하여 로컬 팬들에게 상당 부분 질타를 받은 바 있다.[9] 유스 문제에 관해서도 아무래도 레알의 클럽 운영 특성상 선수수급을 화제와 이슈 메이킹이 되는 스타 선수들의 영입을 통해 구축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유스들에게 돌아가는 기회는 저조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캄비아소, 에투, 마타 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제 기량을 만개하지 못하고 타 클럽에 정착하게 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10]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지나친 양강의 독점화로 라 리가의 구도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어버린 주범이라는 평을 받는다. 특히 중계권 협상에 있어서 레알과 바르샤는 서로를 제외한 나머지 18개 구단의 공공의 적인데, 특히 라 리가 중계권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이기적인 행보라는 비판을 듣는다. 레알 마드리드의 막대한 수입의 원동력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유럽 최고 수준의 관중 입장료 및 시즌권, 멤버십 수입, 유니폼이나 패치 등 관련 2차 상품 상품 수익, 건축 사업, 건물 임대와 같은 부대 수익, 다수의 다국적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으로 인한 수익, 우승 상금 및 선수들의 초상권 수입 등등과 더불어 엄청난 TV 중계권료에 있는데 레알 마드리드의 TV 중계권은 근 몇년간 단연 세계 최고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라 리가의 경우 EPL처럼 20개 구단의 중계권을 아예 한꺼번에 묶어서 파는 개념이 아니라 각 클럽이 개별적으로 따로 계약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강을 제외한 다른 클럽들 간의 중계권 격차를 겉잡을 수 없이 벌어졌고 그 결과 라 리가 전체의 중계권 수익은 EPL을 비롯한 여타 리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때문에 라 리가 전체의 공생을 위해 중계권 수익 구조의 변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라 리가 내에서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행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부분에 관해 칼카나마가 웹툰을 통해 언급한바 있다.(#)
그리고 이적시장에서의 행보도 지나친 돈지랄이라고 까는 이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이 경우엔 타 클럽의 팬들이 비판하는 경우가 대부분. 선수들의 몸값을 부풀려서 몸값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는 것.[11] 다만 살 때는 호구처럼 퍼주고 정작 팔 때는 제값 못 받고 헐값에 넘기는 이적 시장의 행보로 인해 레알 팬들도 많이 깐다. 명색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완 좋은 사업가라는 양반이 선수 장사는 더럽게 못한다고...[12] 근데 요새는 예전보다 장사꾼적인 면모가 많이 늘어서 메수트 외질을 아스날에 50m 유로로 팔아 넘기거나, 유망주인 알바로 모라타를 무려 20m이라는 금액에 바이백 조항까지 포함시켜서 유벤투스에 팔아 넘기는 등 거상의 행보를 보여주며 어느 순간부터 이적 시장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 장사를 하고 있다. 근데 살 때는 여전히 호구 맞다. 상대 클럽 입장에서 선수 이적료는 부르는게 값. 레알 입장에서 선수 이적료는 불러주는 게 값
또한 스페인 경제 상황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 은행으로부터 다시금 재융자를 받음으로써 2018년까지 89.58M 유로를 상환해야 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부채 상환만기일을 제정된 금리로 연기함에 따라 재정에 상당히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구단 운영 면에서는 정말 대단한 사람
그리고 2015년 여름, 맨유의 다비드 데 헤아 - 케일러 나바스 트레이드에 관련하여 있었던 이적 공방과 이후 이적 불발에 관한 책임론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이적 시장이 종료된 현재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자세한 사정은 데 헤아 문건을 참조 바람. 이 때문에 케일러 나바스는 이적 시장 마지막날인 8월 31일이 그의 인생 최악의 날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나치게 스타성에만 집착한 나머지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 막장화를 야기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1기때 리그 2회에 챔스 1회 코파 0회. 2기때 리그 1회 챔스 1회 코파 2회. 도합 12년의 시간동안 건진 제대로된 트로피는 이게 전부다. 저 세 대회중 하나라도 우승한 시즌이 5시즌인 반면 무관인 시즌이 무려 7시즌이나 된다.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이라기엔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갈락티코스가 상업적으로는 성공일지 몰라도 축구 구단으로서는 실패한 정책이다.
결국 15-16시즌 엘 클라시코에서 졸전을 펼치자 분노한 팬들이 경기장에서 사퇴 구호를 외쳤다. 특히 갈락티코 2기에서 그가 영입에 상당히 공을 들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가레스 베일이 졸전을 펼친 것이 더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결국 반 년만에 베니테즈 감독을 경질한 뒤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지네딘 지단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초라한 경기력으로 인해 1위 바르셀로나와 승점 12점차로 밀리던 것을 1점차 아쉬운 준우승으로 자존심을 챙겼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카를로 안첼로티를 경질하고 라파엘 베니테즈 선임했고, 팀이 부진하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운 데시마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운 데시마를 달성했다.
이래저래 팬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지만,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의 재정 상황과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키고, 임기동안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달성하는 등, 꽤 좋은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경영적인 부분에서는 일인자이지만 축구 내적으로는 참을성이 없어 카를로 안첼로티를 경질하는 우를 범했음에도, 진정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하여, 구단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회장이기도 하니, 팬의 입장으로는 참 애증어린 사람이다.
5 기타
페레스가 회장직에 있을 때는 성적부진 및 트로피 무관 등의 이유가 되면 제아무리 명감독이라 할 지라도 가차없이 썰려 나갔지만 막상 나가고 나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델 보스케도 그렇고, 주제 무리뉴와도 여전히 좋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특히 무리뉴는 레알 시절 보기 드물 정도로 페레스가 무리뉴의 권한을 최대한 밀어줄 정도였다. 사실 무리뉴는 선수들과의 불화 때문에 그만둔 거지만또한 라울과 구티 같은 클럽 레전드들과의 사이도 여전히 돈독하다.
- ↑ 레알 마드리드는 시민구단이므로 구단주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클럽 임원단들이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여 경영 및 클럽 운영 전반을 일임하는 형태를 취하므로, 순수하게 클럽 운영을 주 목적으로 하는 전문 경영인의 맥락에서 조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세계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지단이 입단 첫 해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히는 발리 슛으로 결승골을 기록해 팀 100주년을 빅 이어로 기념하게 된다. 이로 인해 당시 지단의 발리 슛은 레알 마드리드 100년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골로 평가받기도 한다.
- ↑ 한쪽의 일방적인 해고나 계약 불이행으로 종료될 시 막대한 위약금이 발생하므로 양측 다 그러한 양상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 ↑ 사실 이후의 갈락티코의 부진은 마켈렐레의 이적 하나만으로 결코 일반화시킬 수 없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감독이었던 델 보스케의 해임, 얇은 스쿼드의 운용으로 인한 주전들의 체력 저하 문제, 주전들의 혹사를 유발시킨 백업 멤버들의 부진 등등.
- ↑ 가령 레알이 호날두에게 지니고 있는 초상권 지분이 40%인 상황에서 호날두가 나이키와 100억짜리 광고를 채결했다면 수익의 40%인 40억을 레알이 가져가는 형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 ↑ 아이러니하게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혁명을 일으켰던 존 헨리는 현재 리버풀 FC의 구단주이다. 다만 MLB의 시스템과 유럽 축구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 MLB 팜 시스템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아서 팀내 주축 선수들 내보내도 자체 팜에서 선수가 발굴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더스틴 페드로이아, 존 레스터, 자코비 엘스버리, 클레이 벅홀츠 같은 2013 월드시리즈의 주역들도 모두 팜에서 생산된 선수들. 즉 MLB에서는 스몰 마켓들이 리빌딩 한번 잘하면 빅 마켓 구단들과 경쟁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유럽 축구에서는 그런식으로 유스를 통한 이윤 창출에는 한계가 분명하고 페레즈식 모델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모델이라는 것이 여실히 입증됐기에 과연 리버풀이 차후에 과연 어떤 행보를 걸을지에 관해 귀추가 모아지는 부분.
- ↑ 나중에 페레즈 자신도 마케렐레 방출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시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까지 잡을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지만.
- ↑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리옹에게 패하고 코파 델 레이에서 3부 리그 팀인 알코르콘에게 4-0으로 진 것, 그리고 엘 클라시코 역시 패배한 것 등 경질할 만한 이유는 있었기에 반론의 여지가 있다.
- ↑ 다만 라울과 구티의 경우 기본적으로 선수 본인이 주전 확보를 위해 팀을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페레즈와 당시 감독이었던 무리뉴는 팀에 잡아두려고 했었다. 주전 확보 문제가 해결이 안됐기에 선수 스스로 제발로 나갔다고 보는 편이 더 맞는 편이다.
- ↑ 에투는 어릴 땐 팀에 자리가 없어 다른 팀으로 임대를 다니다가 기량이 만개했고 이미 레알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못 박은 상태, 그리고 캄비아소는 레알시절 캄비아소를 보지 못한 사람이 본문에 언급한 모양이다. 레알 시절 캄비아소는 기회는 기회대로 부여받고 스스로 걷어찬 케이스이다. 그리고 마타는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하고 떠난 경우. 그리고 그 당시 마타가 레알에서 경쟁자였던 이과인보다 더 나은 선수는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레알 마드리드에 관한 비난은 대부분 날조되고 왜곡된 이유들이 많다.
- ↑ 사실 이건 슈가 대디 같은 오일 머니를 앞세운 갑부 구단주들의 등장, 남미 선수 수급에 있어서 에이전트와 서드 파티들의 농간으로 인한 상승 요인들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
- ↑ 근래 가장 대표적인 망한 영입이라면 65m에 샀다가 이적료 한 푼 못 받고 풀어버린, 아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영입에 단연 손꼽힐 만한 카카 영입 같은 것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