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버락 후세인 오바마에서 넘어옴)
미국 대통령
43대44대45대
조지 W. 부시버락 후세인 오바마미정
공식 사진
전체 이름Barack Hussein Obama[1][2]
출생1961년 8월 4일 (55세)
출생지미국 하와이 주 호눌룰루
학력옥시덴탈 칼리지
컬럼비아 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배우자미셸 오바마
정당민주당
임기2009년 1월 20일 ~ 2013년 1월 20일
2013년 1월 20일 ~ 2017년 1월 20일 (예정)
서명
신체185cm[3], AB형(Rh-)
2008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08
2012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Year 2012
300px[4]
블라디미르 푸틴
2007
버락 오바마
2008
벤 버냉키
2009

2011
버락 오바마
2012
프란치스코 교황
2013
<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2008 - 마르티 아티사리버락 후세인 오바마2010 - 류샤오보

1 개요

barack-obama-1-sized.jpg[5]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비백인 대통령

경륜이 오래된 편인 44대 대통령 선거의 라이벌 존 매케인과 비교했을 때 젊어 경험이 부족하단 말이 많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미국 대통령 중 4번째로 젊은 나이로[6] 당선되었다. 2012년 11월 6일(한국시간으로 7일)부로 밋 롬니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5년 1월 19일 시점으로 만 53세. 그리고 마틴 루터 킹[7] 이후 40년만에 백인이 아닌 최초의 흑인 정치 지도자이며 미국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미국의 대표적인 트위터 사용자 중 한 명으로, 선거운동용 계정이 있다. [8]

Affordable Health Care 법, 일명 오바마케어를 통과시킴으로써 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이 실패했던 건강 보험 개혁에 어느정도는 성과를 이루면서 건강 보험을 낼수 없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건강 보험을 제공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대응하여 벤 버냉키와 함께 적극적으로 양적완화를 시도함으로써 제2의 대공황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던 경제위기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미국을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진보적인 연방대법관을 두명이나 임명하면서 동성결혼 등 진보적인 사회정책을 간접적으로 돕기도 하였다.

2 개인사

풀네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로 이 이름 자체가 다양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버락은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 라는 의미이며 후세인은 무슬림인 그의 조부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라는 이름은 케냐 루오족의 남자 이름이다. # 사족으로 조부는 케냐에서 독립운동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되어 고문받아 불구가 되었고 아버지도 미국으로 유학왔을 때 외국에 유학간 케냐 인재라고 따로 명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즉 오바마는 케냐 무슬림 집안 출신이고 케냐 경제학자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으나[9] 미국 편모가정에서 자라 본인은 무슬림이 아닌, 꽤나 복잡한 성장 환경의 소유자인 셈.

미들네임인 후세인 때문에 사담 후세인과 겹쳐서 무슬림으로 오해받고 이를 노린 악성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공화당 측에서도 이를 이용한 유세를 펼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그는 물론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면 어떻습니까?" 발언으로 전화위복 [10]. 이후로 공화당은 저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민의 12% 정도는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11]

참고로 미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의 이주에서 시작한 것도 있고 대체로 청교도가 많아 가끔 착각하는 듯 하지만 헌법상으로는 국교가 없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기독교를 매우 숭상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헌법 자체가 개신교에 바탕하여 쓰여졌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12] 그로 인해 전통적으로 선서나 맹세 등 중요한 건 웬만하면 다 성경[13]에 대고 하기 때문이다.[14] 또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가톨릭 교도인 존 F.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전부 개신교 신자였다. 그리고 경호팀이 경호작전 시 사용하는 코드네임(Code Name)은 '이단자(Renegade)', 즉 이슬람으로 개종한 크리스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참고로 오바마가 직접 골랐다. 하지만 이는 흑인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으로 'Renegade' 에는 'Go against the system'[15]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제이지에미넴의 곡 'Renegade'등 흑인 문화에서 renegade는 대개 이런 의미로 쓰인다.

1961년 하와이로 유학 온 케냐 출신 유학생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6] 하지만 그의 부모는 2살 때 이혼했고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한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했던 경험도 있다. 흑인에다가 무슬림 집안 출신이지만 성장 배경은 백인 및 아시아계와 함께 한 독특한 점은 후의 그에게 상당한 이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 흑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출신이거나 그 후손도 아니다. 어머니가 백인이라고 흑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미국에선 혼혈인은 자기 정체성에 따라 민족이 정해진다. 그 개인만의 가족 관계는 아내 미셸 오바마와 딸 둘.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4번이나 결혼해서 이복 형제들이 여럿이며 어머니 쪽으로도 이부 여동생이 있으며[17] 조부모 쪽으로도 재혼 관계가 있는 모양이라 윗대로 가면 약간 가족 관계가 복잡하다.
심지어 이복 형제 중 한 명은 중국에서 꼬치집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유학생들은 거의 다 이 체인점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를 한다.(간판에 오바마 사진도 있다.)

2.1 정계입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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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의 버락. 누가 이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될거라고 생각했을까 바스키아 닮았다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으로 고등학생 시절 마약을 하기도 했었고[18] 이것이 후의 정계 진출 이후에 발목을 잡았지만 오히려 이를 숨기지 않아 정직한 정치인으로 인정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

1980년대엔 리사 잭이라는 사진작가의 포트폴리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련 글 친구나 가족들에겐 주로 배리(Bar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학생으로서는 공부와 운동을 대단히 잘했다. 오바마는 푸나호우 고등학교 시절 운동을 아주 잘했으며 특히 농구는 거의 운동선수 급으로 잘해서 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부의 에이스였다.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Junior Varsity, 즉 2군팀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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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호우 고등학교 농구부 에이스 시절의 오바마. 사진상에서는 혼자만 흑인이라서 굳이 누구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맨 앞줄 제일 왼쪽에 홍성흔이 보인다

일찌감치 어머니의 영향으로 약자와 소수계층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탈대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 1학년 때도 마리화나를 피며 히피 문화에 심취한 나태한 학생이었다한다. 그러다 우연히 '투자철회운동'을 접하고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빡세게 1년 공부하고 콜럼비아 대학교[20]에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으로 졸업한 후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하다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법무박사(JD) 학위를 취득한다. 하버드 로스쿨 역사상 최초로 하버드 로리뷰 (법률 학술지)의 편집장을 흑인이 맡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날고 긴다는 학생들만 있다는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상위 10% 의 성적인 학생들만 받는다는 마그나쿰라우데(magna cum laude)를 받고 졸업했다. 하버드 로스쿨은 우선 미국 최고의 로스쿨 중 한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기간만 되면 정치인들이 성지처럼 다녀가는 미국 법조계/정계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 미국 로스쿨 법률 학술지 중 가장 파워가 있는 게 하버드 로리뷰. 따라서 오바마가 편집장이 된 것 자체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첫번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21]을 하버드 로스쿨 재학 중 썼는데 쓰게 된 이유도 로스쿨 입학 전 시민단체 활동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흑인 최초 하버드 로리뷰 편집장이 되어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기 때문. 이후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들을 위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1997년부터는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으로서 활동하였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인기 헌법학 교수로서 재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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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학생 시절 랑델 도서관(Langdell Library)에서

2008년 대선 전후를 통해 반토막이나마 학부를 보낸 콜럼비아 대학측에서는 오바마를 초빙하려고 애를 썼지만 출신 로스쿨인 하버드는 신나게 갔으면서 콜럼비아 쪽에는 별로 보이지도 않아 재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콜럼비아 재학시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 있게 배웠다고 했는데 그게 본인이 안 좋은 꼴을 당해서 콜럼비아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루머도 돌았기도 하다. 콜럼비아 학장인 리 볼링거가 정식 초대를 날렸는데도 대략 씹혔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마냥 인기가 좋았는지 선거기간 내내 자발적인 오바마 지지 전단지가 콜럼비아 캠퍼스 내에 휘날렸으며 대선 당일 자정 즈음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당시 캠퍼스 내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학교 정문 앞 116번가 앞으로 뛰쳐나와 그 길로 할렘까지 행진했다.

2.2 정계입문 이후

1996년 정계에 입문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0년에는 일리노이주 하원의원후보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으로 2004년 흑인으로선 세번째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오바마를 전 미국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로 이때 오바마는 찬조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3 2008년 대통령 선거

이후 2007년 2월, 4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당 경선레이스에 돌입한다.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의 당내 기반이 워낙 견고한 데다가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하면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오바마는 겨우 초선 상원위원이었다. 그런 탓에 민주당 경선은 사상 유례 없는 치열한 혈전을 치뤘지만 오히려 이것이 흥행요소가 되어서 오바마를 유력 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초기엔 힐러리가 경선이 뜨거워져야 본선 경쟁력도 더 높아지기에 오바마의 출마와 선전을 부추겼지만 오바마가 이겨버렸다. 안습. 힐러리 클린턴은 매우 인기 없는 전쟁이 되어버린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것이 큰 치명타였다. 또한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의 큰 세력이 된 소수인종들에게서 (특히 흑인) 많은 지지를 받은것도 깜짝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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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와 오바마의 지지율 추이. 보면 9월달, 경선 3달 전까지도 힐러리 클린턴에게 뒤지고 있었다는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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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선 정황을 포켓몬버전으로 나타내보았다...

일찌감치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 존 매케인과 사상최초 흑백대결로 관심을 끈 이번 대선에서 8월 전당대회 이후 세라 페일린을 지명하여 단숨에 관심을 자기 쪽으로 돌려버린 매케인에게 뒤지기도 했으나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 금융위기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응과 대안제시로 결국 승부의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11월 4일 대선 투표일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대선은 오바마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존 매케인과의 여론조사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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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3.1 선거 운동의 혁명

오바마의 2008년 선거 운동은 오바마에 대한 지지여부를 막론하고 미국의 많은 정치 분석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최고" 라는 평을 들었는데 초기부터 선거 운동시 기본적인 메시지와 기본전략을 처음부터 확실히 정하고 인터넷[22]과 지역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수많은 유권자들과 연락을 취해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모아 방대한 조직망에 짜넣어 미국 정치 역사상 전례 없는 엄청난 선거 자금을 대부분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벌어들였다(기부자당 기부량 평균이 약 50불). 오바마 진영은 길고 험난한 선거기간에도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고 기본 전략에 큰 변화 없이 충실했으며 거대하고 효율적인 선거 조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선거 자금을 벌어들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메시지를 유지해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고 안정적인 선거 운동을 벌였다. 이는 경선 기간 중 선거 자금을 서투르게 관리해 금전적으로 홍역을 치룬 클린턴 진영이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의 공격용 메시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페일린을 영입하는 도박을 했으면서도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한 매케인 진영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은 이후 내부 분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미국 정치판이 돈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오바마의 선거 운동은 차원이 다른 정도였다. 미국 연방 정부는 주요 정당 후보들을 위해 대선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게 좀 복잡해서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 선거 운동 기간은 굉장히 길다. 몇 달간 이어지는 경선에서 피터지게 싸운 뒤에 각 당의 후보가 맞붙는데, 연방 선거 지원은 경선이 끝나고 본선 과정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23] 사실 이 단계에 이르면 선거 캠프도 지치고 자금도 바닥난지라 웬만한 후보는 얼씨구나 하고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는데...오바마는 이걸 거절했다. 연방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캠프로 직접 들어오는 기부금이 제한 되는데, 정부에서 주는 푼돈 받느니, 차라리 그냥 우리가 벌어서 쓰지라는 계산을 내린 것. 참고로 저 연방 정부 지원금을 거절한 본선 후보는 오바마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부금 네트워킹이 탄탄하고 캠프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는 매케인의 두 배를 기부금으로 벌어들였다. 무려 7억 8천만 달러.[24] 이쯤되면 인간 ATM이다.

오바마의 승리를 이야기할 때 보통 미국민의 변화를 위한 갈망이나 부시에 대한 반감을 들며 이것이 정해진 승리였다는 의견이 있지만 어떤 감정이나 사상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면 정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바마는 그것을 매우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해냈고 드물게 닥쳐온 위기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해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와 조직의 장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25]

3.2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We have overcome[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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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4일, 당선 수락 연설을 하기 전
연단에서 가족과 기뻐하는 오바마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날, 영국 가디언[27]지의 표지
와우![28]

오바마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초기에는 많았지만 개표 결과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흑인인 것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 중에서 48%가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라티노의 66%, 흑인들의 98%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 집권 1기: 변화를 말하다

경제 위기 때문인지 흑백 갈등 관련해서 유명하기도 했던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 때문인지 그의 당선은 전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몇몇 지역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자국 대통령 혹은 총리 선거를 하는 거 같을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 한 5일 정도 내내 뉴스 첫번째 소식이 미국 선거에서 그가 이기고 있다 혹은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되었다였고 그 외엔 오바마 당선 혹은 오바마 개인에 관한 걸로 3~4가지는 오바마와 연관된 뉴스를 내보냈다. 전혀 다른 뉴스(예를 들어서 부산에 교통사고가 났다거나)로 넘어가는 데 10분~20분 정도 걸렸을 정도다.

오바마는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중산층과 약자, 소수계층의 보호에 주력하는 한편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해결, 이라크 내의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미국에게 실제로 위협이 되는 알 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해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ISAF 병력증파 등이 주로 추진할 정책들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과는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한미 FTA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탓에 한국과는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편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오바마에게 세계가 더 우호적인 건 사실인 듯하다. 얼마나 능력을 펼칠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오바마마저 실패하면 미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참 이래저래 무거운 짐을 안고서 출발하는 대통령인 듯하다. 선거운동 초반에는 정책 공약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항간에는 "흑인판 케네디", "겉은 검고 속은 하얀 오레오 오즈" 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4.1 무역 정책

오바마는 선거 운동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한미 FTA의 개편을 통한 미국의 우위 선점" 을 주장해왔고 동시에 "남한을 통한 북한 정부와의 대화" 보다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 채널 개설" 과 "대북 정치의 포용성 강화" 를 언급해왔다.[29] 만일 오바마가 이러한 발언들을 실제로 임기 동안 수행한다면 수출 주도형 경제를 영위해온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대북관계에 있어 한국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있어 한미 FTA는 단 한 번도 중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진 적이 없었다.[30] 그리고 오바마 개인의 보호무역 성향 자체도 많이 과장보도된 편인데 그의 경제적 성향은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미국의 대표적 보수신문 시카고 트리뷴의 지지기사의 일부에서 알아볼 수 있다..

"His economic policy team is peppered with advisers who support free trade. He has been called a 'University of Chicago Democrat'~~a reference to the famed free-market Chicago school of economics, which puts faith in markets."

"그의 경제 정책 팀은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보좌관들로 가득 차있다. 그는 '시카고 대학 민주당원' 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자유시장 경제를 중시하고 시장의 자율능력을 신봉하는 시카고 경제학파를 가리킨다."

애초에 시카고 학파는 유독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걸로 유명하다. 참고로 시카고 트리뷴은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는 대표적인 보수신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 선거의 중심적 테마와 공약, 정책구상에서 좀 벗어난 주제에 대한 선거용 발언은 믿기 힘든 것으로 악명이 높다. 가장 큰 예로 조지 W. 부시는 선거 토론회 중 미국의 역할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4.2 의료보험개혁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의료 보험 및 Medicaid 에 관련된 개혁안이 수많은 진통 끝에 찬성 60, 반대 39표로 2009년 12월 24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안 때문에 46년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 상원이 투표를 하고 1차대전 이후 25일간 계속 회의를 벌인 기록이 나왔다. 의료보험법 개정 때문에 미국의 몇몇 인간들에게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인 리버테리안이 맞물려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총기 난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총기를 일반 시민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한 것도 전미 총기 협회(NRA)의 간섭도 있었겠지만[31] 이런 리버테리안적인 경향 탓도 크다. 호머 심슨의 발언이 바로 그 예이다. 호머가 전미 총기 협회에 가입을 하고 총기 소지하는 이유를 '영국 왕이 미국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 는 이유였다. NRA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미국 국민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서 영국과 싸우고 이로 인하여 국가보다는 개인 스스로가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와 그러한 마인드가 시대착오적임을 조롱하는 의미가 깔린 대사로 추정이 된다.

2010년 3월 22일, 드디어 하원에서도 통과되면서 미국의 오랜 숙원인 건강보험 개혁법(Affordable Care Act, 일명 오바마케어)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중도보수 민주당 의원들 때문에 원안과는 달리 공공보험 옵션이 삭제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가 확대되었고 저소득층 이상의 미국민들에게는 소득에 따라 정부가 보험가입자들을 의료비지원을 하여 새로 도입되는 의료보험시장을 통해 경쟁하는 민영보험을 들게 하였다. 대신 선택적으로 보험을 들지 않는 미국인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되도록 하였다. 한국 자동차보험과 흡사한 듯 그밖에도 의료보험 회사가 의료보험 가입자를 그 어떤 사유에서라든지 거절하거나 치유기간 중 의료보험 서비스를 중단하는[32] 행태를 금지하였으며 기존에 존재하던 보험의 평생혜택,연간혜택 금액의 제한을 없애고 도리어 보험자의 연간 의료비 지출에 상한도를 두었다. 이러한 시스템 도입은 세계적으로 네덜란드나 스위스형의 의료보험 체계에 미국이 다가서는 모양새이다.

어쨌건 이 법안이 양당합의가 아니라 행정부와 민주당 단독 통과라는 형태로 법안이 성립되어 당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법안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마땅치 않은 데다가 법안이 효력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법안을 논의하면서 미국 사회에 반오바마 세력이 조직화되었고 민주당 내부의 낙태 반대론자들도 이번 법안에 반대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생긴 상황이라 오바마 정부의 레임덕이 이 법안으로 인해 촉발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기형 의료 시스템상 이 의료보험법이 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막대한 돈이 환자에게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의료보험이 없다면 병원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병원과 의료보험회사가 뒷거래로 삭감 금액을 결정한 뒤 환자에게 납부 요청서를 보내는 방식이라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큰 수술의 경우에는 몇백만원에서 심지어 수천만까지 다다르는 돈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33] 이런 문제가 시정되려면 공공보험이 전국민상대로 도입이 되거나 정부가 의료비용을 규제를 해야한다.

결국 의료보험안은 실상은 공화당극우주의자, 그리고 리버테리안을 자칭하는 프로파간다에 넘어가버린 꼴통들의 공세로 오바마 정부에게는 크나큰 폭탄이 되어버렸으며 2010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익 세력 쪽에서도 상당수가 이로인해 '오바마는 무능하다' 라는 설득론에 넘어가버렸으며 결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과반 이상 차지하면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래저래 시작은 좋았으나 80-85%의 국민 대부분이 이미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공격에 취약한 국민정서와 같은 한계를 맞아 역효과를 불러오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상원은 과반을 지켜낸 것은 다행한 일이라지만 공화당은 중간선거 승리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하원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시키려는 시도를 서른 네 번이나 했다. 이 정도면....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의료보험 개정안에서 벗어나서 월가의 만행을 막는데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재선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듯 보인다. 한편 그의 측근들의 의견으로 볼 때 재선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다시 밀생각이었던듯 하다.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 오바마케어가 합헌이라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4년까지 3천 2백만 여명의 미국 국민들이 건강보험에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중. 오바마의 지지율도 중간층의 이동으로 상당히 올랐다. 2012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지켰으나 의석 수가 줄었고, 상원은 민주당이 2석을 더 얻었다 (민주당과 코커스하는 무소속 의원 둘 포함).

2015년 6월 25일, 미 연방 대법원은 오바마케어 시행 과정에서 지급되고 있는 정부 보조금에 대한 위헌 여부 최종 심리에서 6대3 합헌 판결을 내렸다. CNN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예전보다 오히려 더 국가의 자금을 축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추정 예산치를 따라가려면 세금이 더 필요한데 이 액수가 기하급수적이기 때문. 언젠가는 이 또한 개혁이 필요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4.3 극좌 대통령?

2011년, 오바마 집권 이후 북미관계에서 큰 변화를 기대했던 몇몇 진보인사들은 상당히 실망한 상태이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컸지만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을 한국에 사실상 위임하다시피하면서 이로 인해 한-미공조가 더욱 공고해져버렸기 때문이다(참고).

게다가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급진적으로 북미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려워졌다.

  • 오바마가 인기가 높아서인지 현 정부는 "오바마와 코드를 맞추겠다(참고)" 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코드가 안 맞다며 까였다(참고). 다만 거시경제에 한해서는 의외로 그다지 의견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참고).
  • 한편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란의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비판하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참고 "교수들에 이어 오바마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근데 진짜 몇몇 극우적인 미국인들은 오바마는 좌빨 공산주의자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라고 믿고 있다. 진지하게 오바마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됐을 정도. 2015년 미국내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 전 국민의 29%가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인식하고 있다.

4.4 집권 1기의 현실적 어려움

현재 가장 큰 문제라면 자국 내에서의 평가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 특히 청교도 정신에 영향받아 돈을 버는 부자들에게 관대하면서 국가가 행하는 공공사업에 믿음을 가지지 않는 미국의 풍토 때문에 공공 사업 추진이 주요 정책인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도가 낮아지는 게 사실. 특히 월가에서 터진 세계금융위기를 뒷수습하는데 있어서 계속 마찰이 터지고 있으며[34] 미국인들 대부분이 국가 주도로 부의 재분배를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넘어야 할 산이 좀 많은 듯. 케인스가 지하에서 불을 뿜는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를 뽑은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부시 정권을 통한 공화당의 불신과 단순히 부시가 삽질한 걸 오바마가 당선된 것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숨에 고쳐질 거라고 믿었던 묘한 기대감이 반작용이 되고 있는 이유도 있다. 한마디로 대선 기간에만 정치에 관심을 잠시 가졌다가 오바마가 당선되자 "오바마가 뽑혔네? 이제 알아서 잘 살게 해주겠지? 이제 모든게 다 잘 풀릴 거야 yay!" 모드로 다시 정치 무관심 모드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지금의 추세는 이제까지 별 생각도 관심도 없던 오바마 정권의 행태가 미심쩍어지자 법 공부를 하러 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가 다른 종교에 보여주는 유화적인 태도가 몇몇 미국인 사이에선 반감을 사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 오바마가 지지를 천명하고 나서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는 타임지 조사에서 미국민의 27%가 '오바마 대통령은 무슬림이다' 라고 믿고 있는 걸로 드러났다. 애초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종교가 마이너 하다고 문제 삼는 거에서 이미 에러. 특히나 신정국가삘이 충만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와 중부주들에서 이런 경향이 심각하다.

4.5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오바마 정권의 임기 후반기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공화당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를 선언하면서 폐기법안을 하원에 상정해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2011년 1월 8일에 터진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의 원인으로 그동안 보수 논객들과 정치인들의 오바마 정권 까기가 도마에 오르면서 보수측이 위기를 맞은 반면 오히려 오바마 정권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을 참석해서 추모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감동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이성적 면모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 추모 연설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오히려 더 호평을 받는다는 분석.

투싼 추모식장에서의 오바마 대통령 연설.연설 전문 번역

4.6 빈 라덴 사살

2011년 5월 2일, 오바마가 보낸 DEVGRU 팀이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이후 2012년에 오바마는 이 공로로 미 육군 특전대로부터 명예 그린베레로 임명되었으며, 네이비 씰 트라이던트 배지도 수여받았다.

4.7 소버린 쇼크

빈 라덴을 사살해서 지지율이 한껏 올라가고 재선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도 잠시, 이후에 연방정부의 국가부채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의 독특한 특성상 연방정부의 국가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부도가 나는 사상 초유의 위기가 도래할 지경이 된 것.

이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공화당 지도부와 국가부채한도를 올리는 문제를 협상했다. 그러나 재정 적자를 줄이는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의견이 엇갈렸는데 민주당은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한 반면 공화당은 전통적인 보수의 주장대로 "감세와 복지예산 축소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해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국가부채한도에 도달하는 위험수위에 도달하기 직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공화당의 승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공화당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는데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층에선 반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부채한도 문제에 대해서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미국의 재정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했고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을 실제로 강등시켜버렸다. 결과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떡실신. 당시 오바마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안습.

5 2012년 대통령 선거

5.1 당시에 제기되었던 재선가능성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재선에 성공할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일단 부정적인 견해로는 미국 경제의 장기 불황 가능성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게 중도표는 공화당에, 반대로 실망한 서민과 소수인종, 진보표는 투표를 안하는(...) 상황이 예측되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징크스들이 오바마의 재선가도를 막을 것으로 보였다. 경향신문 기사

  •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의 대선 직전 소비자 신뢰지수의 평균은 95였다. 소비자 신뢰지수가 77 이하일 경우에는 재선에 실패했다. 지난 10월 미 소비자 신뢰지수는 72.2였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 이후 전국 실업률이 7.2%를 넘을 경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모두 실패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 전국 실업률은 7.9%였다."

특히 실업률이 문제였다. 공화당은 이 징크스를 내세우며 오바마의 실업률이 8%를 넘는다고 계속 공세를 펼쳤고 반면 오바마는 그 이하라며 반격했다.# 또 공화당은 오바마에게 카터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 "역대 민주당 대통령 중 재선을 노리는 투표에서 상대 후보의 키가 더 클 경우 재선에 실패했다. 가장 최근의 예는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에 패한 것. 오바마의 키는 6피트 1인치(1m85), 롬니의 키는 6피트 2인치(1m88)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를 7번이나 맞춘 아메리칸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앨런 리치트먼은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리치트먼 교수는 오바마가 2008년의 카리스마를 잃은 건 맞지만 상대편인 공화당에 오바마를 능가할만한 카리스마를 지닌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교 안보상으로는 큰 실수가 없고 오히려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성과를 거둔점은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 다만 경제 문제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주요 도박사들도 오바마 편이었다.

게다가 공화당이 미트 롬니와 뉴트 깅리치가 대선 후보 경쟁을 하면서 공화당에선 오바마만 유리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바로 공화당 지지가 분열되고 있는 것. 미국 보수파들에겐 롬니가 공화당에서 인기를 얻는 걸 두고 착잡하게 봐야 하는게 롬니 후보는 바로 개신교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모르몬교도이니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몰면서 반대하는 것들이 이런다고 오바마 지지자들에게 비아냥을 듣는 판인 것. 또 "롬니케어" 라고 알려진 주지사 시절 건강보험 정책도 역시 롬니가 "공화당의 탈을 쓴 리버럴" 이라는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이는 매사추세츠가 근본적으로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낙태동성애에 대해서도 보수적이지만 종교적 이유는 아닌 애매한 스탠스. 반대로 중도 혹은 온건 성향의 공화당 주류는 깅리치가 네오콘, 티 파티와 손을 잡고 무개념 발언들을 일삼는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기에 리버테리안 성향의 론 폴이 10대, 20대의 컬트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공화당 자체가 크게 두파, 작게는 세네파로 지지층이 분열되고 있는 안습한 상황. 롬니가 좀 낫지만 롬니가 나오면 보수파가 이탈하고 깅리치가 나오면 중산층이 이탈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

이를 반영한 듯 일반적인 미국의 여론 또한 '오바마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화당의 혼란 때문에'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시작 이전까지는 오바마의 우세를 점쳐왔다. 물론 롬니가 공화당에서 큰 표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며 도리어 모르몬의 텃밭인 유타에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73%:25%, 심지어 일부 카운티에서는 89%:8.8%도 나옴)를 받았다.

결국 문제는 경기의 절대적 상황이 아닌 추세였다. 2011년 9%에서 2012년 8%로 점차 하락하는 실업률의 추세는 잭 웰치 등의 디스 발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데 큰 공신이 되었다. 게다가 (1956년을 제외하고) "주식시장이 선거 직전 3개월 동안 상승하면 현직 대통령만 재선에 성공" 했는데 "미국 주식시장은 3개월간 약 2.5% 상승했다"(경향의 같은 기사).

그리고 2012년 11월 7일,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재선 성공 항목 참조.

5.2 슈퍼팩 논란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인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 에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슈퍼팩 논란에 휘말렸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 표명이 가능한 정치인 후원회를 일컫는 말인데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투입해서 특정 후보 지지나 반대 광고를 내보내는 게 가능하다.

먼저 미트 롬니의 슈퍼팩이 3천만 달러를 퍼부어서 뉴트 깅리치 등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디스하는 광고로 TV를 도배했다. 이에 뉴트 깅리치도 지지 않고 라스베가스 카지노 거물의 자금을 중심으로 한 슈퍼팩을 동원해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을 승리하면서 선거전을 돈싸움으로 만들어버린 상황.

오바마 대통령은 슈퍼팩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적이자 기업들의 무제한 정치자금 통로' 라면서 강력하게 비난했었으나 공화당 후보들이 무제한의 엄청난 자금으로 오바마 반대 광고 융단폭격을 일삼자 결국 현실에 순응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의 행동을 용인한 것.

이런 지지의사 표명에 공화당에서는 오바마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했고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공화당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면 미국민들은 오바마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슈퍼팩의 문제는 당연한 것이지만 받아먹은 만큼 토해내야 하는 인류 고래의 진리로 보면 오바마가 재선되더라도 사실상 무제한 자금을 제공한 슈퍼팩의 뒤에 서있는 기업들을 봐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슈퍼팩과 절연한다면 미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어쨌든 슈퍼팩 논란으로 오바마도 롬니, 강리치와 더불어 사이좋게 돈 전쟁의 시궁창으로 자진 입수해버렸다.

사실 오바마는 이미 기존 지지기반이던 민주당 좌파들의 기대를 상당히 저버렸고 특히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과 상당부분 타협을 하면서 중도 쪽으로 우향우를 한 입장이다. 이는 빌 클린턴과도 겹치는데 현재까지는, 그리고 결과론적으론 이런 정책이 재선으로 효과를 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슈퍼팩을 통한 선거전의 효력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다.[35]

5.3 선거 내용과 재선 성공

4년 더.[36]

민주당은 일찌감치 오바마의 재선 준비에 돌입하였고 2012년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밋 롬니를 대선 후보로 확정하였다.

이후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반짝 지지율이 상승한 롬니는 9월 17일 그의 비공개 선거자금 모집 행사에서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 이라고 자폭 발언(47% 발언)한 것이 드러나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대선 판세가 급격하게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이 행사에서 일하던 스콧 프라우티라는 바텐더가 찍어서 올린 녹화본을 이어 받아서 본격적으로 퍼트린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제임스 카터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다룬 1차 TV 토론회에서 절치부심한 롬니에게 회심의 일격을 허용한 오바마는 큰 폭으로 따라잡히며 재선을 위협받는다. 오바마는 뒤늦게 2차, 3차 토론회에서 우위를 점하였으나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 등 후속 효과가 잇따르면서 롬니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초접전 양상을 계속 보여주었다. 선거 직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으며 따라서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경합주의 승패에 따라 선거가 결판날 것이 분명하였다.

롬니는 토론회에서의 일격 이후 기존의 47% 비하발언 등의 실책을 딛고 당선을 눈앞에 둔 듯 하였으나 태풍 샌디가 미국을 덮치면서 상황이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뉴욕주와 뉴저지주 등 동부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상황에서 오바마는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티 뉴저지주지사를 동반해 헬기를 타고 상황을 직접 살피면서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미국 동부에선 정전에 휘발유까지 부족하여 주유소마다 경찰이 서있는 모습이 연출되는 상황에 교통마비까지 겹쳐(가로수 및 가로등이 도로 위로 많이 쓰러졌다.) 최악의 상황 중에 오바마는 대통령전용기를 이용하여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고 이전에 재난 예방 및 대책에 관련된 부서를 축소하겠다고 말한 롬니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결국 동부에서 지지율이 올라갔고 기존에 오바마를 비난했던 크리스티 역시 (자신의 야심[37]과 주 민심 등의 상황을 감안하여) 오바마를 극찬하였다. 더불어 공화당 출신 무소속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에 적합하다면서 오바마를 지지하였다. 선거날의 날씨도 맑아서 민주당에 유리한 높은 투표율이 기대되었으니 결국 50% 후반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에 투표가 마쳐졌다.[38]

결국 2012년 11월 6일(한국 시각으로 7일) 재선에 성공하였다. 전체 538명의 선거인 중 303인을 거의 확정적으로 획득하여 201인을 획득한 밋 롬니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고 오바마와 달리 패배연설 원고도 쓰지 않았다는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였다.

선거 개표는 시작과 함께 초반에 일제히 공화당 우세주의 투표함이 열리며 롬니의 우세로 시작되었다. 오바마는 동북부의 작은 주들에서 천천히 선거인단을 확보해 나갔지만 중북부의 중규모 주에서 앞서나가는 롬니에게 뒤졌다. 그러나 오하이오플로리다의 개표가 시작되자 서서히 오바마는 롬니를 따라잡기 시작하였고 선거인단 수에서도 본격적으로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텍사스로 롬니가 앞서나갔지만 오바마는 뉴욕주에서 앞서 나가며 다시 따라붙었다.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텃밭)' 과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양 후보에게 모두 흡수되었으며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스윙 스테이트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이와중에 이번 미국 대선 3대 경합주로 분류되었던 오하이오 주와 플로리다 주, 버지니아 주는 50:50에서 오차범위 내의 격전이 개표 내내 계속되고 있었다. 오하이오 주의 경우 오바마에게 우호적인 카운티의 투표함이 먼저 개봉되면서 초반 오바마가 10% 이상 앞서기도 했지만 곧장 롬니에게 오차범위 내로 따라잡히며 한두번 뒤집히기까지 했다. 플로리다 주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순위가 몇 번이나 뒤바뀔 정도였고 며칠 뒤까지 결과가 정해지지 못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오하이오의 반대의 경우로 롬니가 여유 있게 앞서다가 막판에 오바마에게 따라잡혀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롬니는 경합주 중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신승하였지만 이는 사실 예상되던 바였다. 도리어 콜로라도위스콘신 등 중요한 주가 하나둘씩 오바마의 낙승이 점쳐지고 인구가 가장 많아 55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캘리포니아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결국 뒤처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에서 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해짐에 따라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당초 전국 지지율에서는 롬니가 앞서고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오바마가 앞서 조지 부시가 전국 득표수에서 뒤졌지만 선거에서 승리했던 2000년 선거의 재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분석이 있었지만 NYT의 선거 분석단 "538(five-thirty-eight)" 은 부정적이었다[39]. 공화당 우세주의 개표가 거의 끝나고 민주당의 아성인 태평양 3주(워싱턴, 캘리포니아, 오리건)의 개표가 시작되자 20만표 격차를 두고 몇 차례 기우뚱 거린 끝에 동부시간 밤 10시 반(한국 시간 12시 33분) 무렵 전국 득표 역시 오바마가 앞서기 시작하면서 선거 후에 불거질 문제 역시 차단되었다.

선거 전에 뉴욕 타임즈의 경우 롬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31가지,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221가지라는 분석을 했었는데 과연 오하이오 등의 큰 주를 얻으면서 승리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비등하면서도 뒤쳐지는 듯 했지만 큰 주 여럿을 먹으면서 대역전하였다. 밋 롬니가 도전자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조용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에 집중적으로 선거 운동을 한 오바마의 전략적 압승이라는 평가다.

이로써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에서 '최초로 재선된 흑인 대통령' 으로 렙업 불리우게 되었다. 다 최초네 선거인단은 332 대 206, 득표는 51.1%(6590만표)로 지난 선거보다 360만표 가량 덜 받았지만 격차는 497만표(3.9%)를 냈다. 100명 이상의 차이를 벌리는 압승이었다.

선거인단은 2008년에 비해 노스 캐롤라이나(15석)과 인디애나(11석), 분할 선거인단제도를 시행하는 네브래스카의 1석을 잃었으며[40] 이는 선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인디애나는 원래 중부에서 보수성향이 가장 강한 주로 08년에 승리한 게 특이한 경우였고 노스 캐롤라이나는 높은 실업률로 지역 여론이 좋지 않았다.[41] 오바마는 경합주로 거론되던 플로리다, 오하이오[42], 버지니아(big 3), 콜로라도, 위스콘신, 뉴햄프셔, 아이오와, 네바다에서 모두 승리하는 위업을 거뒀다.

참고로 출구조사에서 백인 인구는 40%만이 오바마를 뽑은데 비해 동양계와 히스패닉은 70% 가까이가 오바마를 찍었고 흑인의 93%가 오바마를 뽑았다고 대답. 이는 공화당이 자초한 바가 큰데 민주당에 우호적인 소수인종의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서 photo ID로 신분을 의무 확인하라고 주장했다가 (테네시 주는 2011년부터 실제로 그러고 있다!) 소수인종들의 미움을 사 반공성향이 강한 아시아계는 물론 실향민격인 쿠바계 히스패닉까지 48%가 등을 돌려버렸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오바마에게 등을 돌려 미시시피 대학에선 오바마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불태우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잡혔고[43] 트위터에서도 온갖 인종차별적 욕설이 나오는 데다가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며 나라를 뒤집자는 식의 트윗을 했다가 지웠다. 이와중에 무식한 인간들이 많이 보여서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었는데 영국 여왕에게 잘못했다면서 제발 다시 영국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편지가 오는가 하면[44] 어떤 여자는 호주로 가서 독실한 기독교인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호주는 대통령이 없으며 2012년 기준으로 여성 수상이 독신에 무신론자인 사람이다. 낙태 허용하고 창조론 따위 안 가르친다는 거 알면 아주 뒤집어질걸? 그리고 오바마가 당선되면 직원 해고한다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진짜로 해고했으며 백인보수층의 멘붕이 심하다보니 단순히 이런 멍청한 발언에서 오바마를 암살하고 싶다는 인간도 나와서 국가 기관에서 긴장 중이다.

6 집권 2기: 위기의 오바마, 그러나 돌파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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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truly believe you could work full-time and support a family on less than $15,000 a year. Go Try It!
( 정말로 당신이 연간 15,000달러 미만의 급여로 하루종일 근무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해 보시죠! )
2015년. 동의율 90%를 기록했던 연설.#

6.1 공화당과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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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재정절벽 문제

집권 2기가 시작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겪어야 했던 문제는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였다. 재정절벽 문제는 연방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협상이 2013년 1월 1일까지 완료되지 못할 경우,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감세 혜택이 자동으로 종료되고 오바마 집권 1기 때 시행되었던 2%의 페이롤 세금 감면이 끝나게 되며, 정부가 한꺼번에 엄청난 액수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재앙과도 같은 문제였다. 재정 절벽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는 무려 8천억 달러의 규모 축소가 예상되는 상태였고, 전 세계가 숨죽이고 미국 정계를 주목하였다.

사실 2009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겨우겨우 경기를 부양해 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2012년 하반기 들어 겨우겨우 실업률과 주택경기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더블딥으로 직행하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결국 재정절벽 시한 하루 전이던 2012년 12월 31일, 부자 증세와 실업 수당의 연장 지급, 여타 세액 공제 등 핵심적인 부분에 합의점을 찾는 데 성공하여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경우 재정절벽 협상안을 얼른 통과시키지 않고 밍기적거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일정 부분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 사가 갑자기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재정절벽에 못지 않은 악몽, '시퀘스터(Sequester)' 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6.1.2 시퀘스터 문제

시퀘스터는 2013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양의 재정지출을 자동으로 삭감하게 되는 조치이다. 시퀘스터 문제는 2011년 하반기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에 대해 고심하던 미국 의회에서 2011년 8월 예산관리법을 의결한 뒤 2012년 말까지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하였다. 시퀘스터는 이 재정건전화 대안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발동되는 장치였던 것이다. 일종의 시한폭탄과 같은 것.

민주당공화당은 재정절벽 협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채한도의 재증액과 시퀘스터 문제를 가지고 부딪혔다. 공화당은 재정절벽 문제에서와는 달리 의료와 교육 등 사회보장부문의 지출을 낮출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부채한도 증액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였고, 의회에서는 미봉책으로 시퀘스터의 발동을 2개월 미뤄 두었지만 이는 정말 말 그대로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2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 기업과 정유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국방비 2천억 달러 축소, 메디케어 예산 4천억 달러 축소, 농업보조금 2천억 달러 축소 등의 수정안을 제시하였으나, 공화당은 재정절벽 협상 때 이미 부자 증세를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증세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면서 또 협상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은 시퀘스터 발동 하루 전인 2013년 2월 28일 각자 대체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지만 자당 의원의 자당 대체법안에 대한 반대표가 속출하는 등 전 미국인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막장스런 행태만 보였고 결국 두 법안은 모두 부결되었다.

그리고 2013년 3월 1일, 결국 시퀘스터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산안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한편으로는 쪽지예산을 편성)해서 예산안 확정의 헌법상 시한을 넘기는 건 연례행사지만, 정부가 휴업하지는 않는다. 정부기관이 줄줄이 문을 닫으며 업무가 마비되자, 협상 압력이 높아졌고 결국 이것도 해결을 보았다.

6.2 연달아 일어난 테러 사건

2013년 4월 2차 집권초기 이지만 불안정한 상황인데 앞서 총기규제와 관련해서 강한 반발도 있지만,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 상원위원 집무실과 백악관으로 독극물 배송, 테러는 아니지만, 웨이코 비료공장 폭발 사고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들 참조.

6.3 그리고 반전. 지지율 50% 회복

여러가지 악재와 난조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이 경제지표 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자[45] 2015년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가진 연두교서[46]에서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감세정책을 고수하는 공화당을 압박하며 강공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47]## 연두교서 풀 버전(자막)

"소수만 특출나게 잘사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득과 기회를 확대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인가…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다."
"상위 1%가 축적된 부에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아 초래되는 불평등의 간격을 메우자."

특히 이날 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1년 내내 일해서 1만5000달러도 못 받고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If you truly believe you could work full-time and support a family on less than $15,000's year?) 직접 해보십시오!(Go try it!)"라고 한 연설은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켜 순간 동의율이 90%에 이르기도 했다.## 영상

언론에서도 옛날의 오바마가 돌아왔다!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공화당은 "어차피 국회에서 통과 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의미없는 발언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중산층의 표가 걸려 있는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에 공화당에서도 오바마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6.4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2015년 6월 22일, 미 상원은 대통령에게 신속협상권(Fast-track)을 부여하는 TPA 법안을 60-38로 통과시켰다. 이는 행정부가 타결한 무역협정 내용을 의회가 수정하지 않고 찬반표결만 내리는 법안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자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이에 반대해 왔으나 오바마는 공화당과 손잡고 이를 통과시켰다. TPP는 중국의 AIIB를 견제하고 미국의 아시아권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성격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워싱턴포스트는 TPA의 통과에 대해 오바마의 중요한 정치적 승리라고 평했다.

6.5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사실 TPP보다 이 TTIP가 더 큰 떡밥이다. 한국에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2016년 타결 및 비준동의 완료를 목표로 미국유럽연합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했으며 EU에서 받아들여 현재 협상 진행중이다.

6.6 동성결혼 지지선언

뉴요커무지개 기둥 백악관 표지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48]


오바마의 2008년 선거 엠블렘을 무지개색으로 치환한 엠블렘. 무지개는 당연히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동성결혼 문제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가운데 조 바이든 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표명을 밝히자 오바마 대통령도 이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오바마는 대놓고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발언으로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선언이 의도적인 정치적 계산에 의한 도박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많고 진보적 입장이기 때문에 적극 지지층이 필요한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 상대적으로 미트 롬니가 고딩 시절에 게이 친구들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맞물린 시점에 나온 것이라서 더욱...

오바마의 지지율은 이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동성결혼을 지지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정략적(이념적)이다라는 미국 국민들의 판단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오바마가 정작 중요한 문제인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고(성소수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 입장에선) 부차적인 문제인 동성 결혼 같은 걸로 술수나 부린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단, 이 하락은 일시적이었고, 가장 결정적인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 하락이 별로 없었으며 오히려 "오바마 케어" 합헌 결정 이후 대반등을 했다.

2011년에는 성 소수자가 미군에서 복무하는 것을 규정하는 Don't ask, don't tell 제도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2012년 재선가도에서도 이 전략은 적중했다. NYT(뉴욕타임즈)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출구조사 전체의 5%를 차지한(5%는 3%를 차지하는 아시아계보다도 많은 수이다) 성소수자들은 76%:22%로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한 반면 이성애자들은 49%:49%로 뚜렷한 호오를 표시하지 않았다.#

2015년 6월 26일, 미 연방 대법원은 5-4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NYT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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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공식 트위터는 계정사진을 무지개색 백악관 아이콘으로 변경했으며 대통령 공식계정은 #LoveWins 해시태그로 트윗을 띄웠다.

Today is a big step in our march toward equality. Gay and lesbian couples now have the right to marry, just like anyone else. #LoveWins
오늘은 평등을 향한 우리의 행진 중의 큰 한 걸음입니다. 이제 동성애자 연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결혼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LoveWins

6.7 이란 협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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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비엔나에서 역사적인 이란 핵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지난 2002년 8월 이란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폭로되면서 시작된 이란 핵 위기는 13년 동안 협상과 갈등을 반복한 끝에 평화적인 외교 협정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오바마는 임기내 최대 외교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오바마는 2007-2008년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대선때부터 이란, 쿠바, 북한같은 적성국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힐러리 클린턴과 존 매케인 모두 오바마가 순진하다면서 비난을 했지만 적성국들에 대한 오바마의 대화 제스쳐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와 함께 그의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다. 오바마가 당선 된 후 대통령 임기 초반때 이란에 손을 내밀었지만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이란의 대통령이어서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방침을 바꾼 오바마는 2011년 유엔에서 미국이 EU, 러시아, 중국과 연대를 이뤄 강력한 대이란 경제제재를 통과시켰고 이는 이란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2013년 이란 대선에서 중도 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가 미국과 핵 협상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핵무기보다 경제난 탈출을 원했던 이란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들은 로하니 대통령을 전폭 지지하여 그를 당선시켰고, 이란의 국가적 최종 결정권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로하니 대통령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하며 힘을 실어주어 이란이 핵 협상에 나설수 있었다. 오바마 역시 경제제재는 이란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경제제재 유지를 주장하면서 협상자체에 반대해온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등의 수니파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무장관 존 케리를 파견하여 핵 협상을 추진했다. 본인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이 결렬되자 케리는 이란 핵 협상에 엄청난 집요함을 보였줬는데 72세의 나이로 자전거에서 떨어져 대퇴골이 골절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협상 시한을 본래 6월말에서 7월 7일, 10일, 13일, 14일로 네 차례나 연기하며 18일 동안 이란의 외무장관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와 마라톤 줄다리기를 벌였다.

협상의 핵심은 이란이 원심분리기 숫자를 19000에서 5000가량으로 줄이고 우라늄 농축량을 97% 축소하며 플루토늄에 필요한 중수로 설계 변경 등으로 핵개발 활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만약 국제적 중재기구가 핵사찰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해제했던 이란의 경제제재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또한 이란의 무기 수출 금지는 5년 동안, 탄도미사일 관련 제재는 8년간 유지되고 만약 이란이 협상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안에 경제재재가 부활한다.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은 역사가들과 평론가들에 의해 이 핵 협상 타결이 닉슨의 중국과의 수교, 카터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레이건고르바초프의 핵군축 협상만큼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로 한떄는 중동에서 가장 미국에게 최우방국이었던 이란이 적성국이 되고 양국은 36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 시기동안 미국은 이란을 공격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기도 했고 1988년 이란의 민항기를 사고로 격추시키고는 사죄도 없었으며 조지 W. 부시가 2002년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북한과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36년만에 이란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되고, 미국과의 대화의 물꼬를 틀게 되어 양국은 장차 시리아 내전 종식, IS 격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레반 견제같은 현안에서 협력도 가능하게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단 한 표도 얻지 않은 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과 국내적 성과(오바마케어)를 둘 다 이뤄낸 희귀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이란 핵 협상 논쟁의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의 의회를 로비해가면서 이란과의 핵 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해오고 핵 시설들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폭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미국내 여론몰이와 로비에 있어서 오른팔 역할을 했던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이란의 라이벌인 사우디 아라비아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협상이 타결됐다고 이란 핵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제 막 커다란 고비 하나를 넘겼을 뿐이다. 전문가들이 핵 문제에 관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비핵화가 최종적으로 성공하려면 합의 이행 단계에서 쌍방의 성실한 합의 이행과 상호 신뢰 구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협상 타결이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부터 뒤끝 마찰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이란 비핵화가 달성될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6.8 파리 기후 협약 타결

추가 바람.

6.9 9.11 소송법 거부권 행사 및 오바마 임기 최초 의회의 거부권 기각

양당의 지지를 얻어 발의되고 양원을 통과한 9.11 소송법(Justice Against Sponsors of Terrorism Act, 약자로 JASTA)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JASTA는 9/11 테러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9/11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이 미국 법원을 통해서 소송을 걸 수 있는 법이다. 대체로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을 통해서 소송을 걸 수 없는데, 이건 1974년에 제정된 주권면제법(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 FSIA)과 미국 연방 대법원 판례법 때문이다. 이 법이 발의되었을 때 백악관은 이 법이 통과되면 외국 정부에서도 비슷한 법을 제정하여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가 있으며 외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안전에도 우려가 생길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일찍이 밝혔다. 존 브레는 CIA 국장도 국가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라며 우려를 표현한 바 있다.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한지 5일 후인 9월 28일에, 상원과 하원 모두 오바마의 거부권을 뒤집는데 필요한 표수를 충족시켰다[49]. 상원은 네바다의 해리 리드(반대표를 던졌다), 버지니아의 팀 케인, 버몬트의 버니 샌더스(투표 불참)을 제외한 모든 상원의원이 거부권 기각에 찬성했다 (97-1). 하원도 435명 중 348명이 찬성해서[50] 필요한 찬성표 수를 가뿐히 넘김으로써 오바마 임기 사상 처음으로 거부권이 뒤집히게 되었다.

대다수의 민주당원들도 거부권 기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오바마의 레임덕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7 전반적인 평가

7.1 긍정

자신이 핵심과제로 밀어붙인 오바마케어, 부자 증세, 동성애 관련 이슈에서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두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과 협력하기도 하는 등의 추진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전임 행정부가 남긴 파탄 직전의 경제를 어느정도 정상궤도로 돌려놓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건 전 정권의 무리한 중동 개입과 경제 살리느라 생긴 막대한 재정적자 탓이 크다.

IS가 준동하는 중동에 제한적인 공습만 가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2016년 1월인 현재, 어느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중동에 지상군을 파병했다면 IS를 몰아내는데 수백명~수천명의 미군이 죽고 앞으로도 몇 년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미군이 주둔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마 행정부의 간접 개입은 최소한 미국이 전에 벌여왔던 삽질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것이었다. 개전 초기에 온갖 욕을 먹던 이라크군은 공습으로 IS의 진격이 뜸해진 사이[51] 황금사단을 주축으로 재편하고 이란과 페쉬메르가, 연합군과 협력하면서 바이지, 티크리트, 팔루자, 라마디 같은 주요 도시들을 연달아 탈환했다. 이라크 내에서 IS의 주요 거점은 사실상 모술 밖에 남지 않았고 이곳까지 밀리면 IS가 이라크 내에서 세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진다. 사실상 전황은 이미 기울어졌다고 봐야할텐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미군 사상자를 최소화하면서 허수아비 군대였던 이라크군을 키워낸 셈이다.

물론 이렇게 미국의 간접 개입이 효과를 본 건 90달러 하던 유가가 30달러까지 곤두박칠 정도로 유례없는 유가폭락 때문인데, 덕분에 원자재에 의존하던 반미국가들이 나란히 엿을 먹은 것.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오바마가 반사이익을 챙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유가 하락의 시작이 미국의 셰일 혁명 때문인데 앉아서 받아먹었다고만 보기에는 힘들 것이다.

역사적인 쿠바와의 수교, 파리 기후 협약 같은 평화적인 업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이란의 경우는 그걸 못마땅해한 이스라엘과, 특히 사우디의 역대급 트롤링 때문에...

국민들의 행정능력 신뢰도와 언론과의 관계지수가 갈수록 증가하는 듯하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2016년 4월에는 지지율 50% 회복, 2016년 5월에는 55% 까지 지지율을 회복했다. 2번째 텀이자 임기의 대통령 치고는 상당히 높은 지지율이다. 어떤 언론 분석에서는 공화당 대선주자들 막말 파티 덕분에 반등 효과도 있다는 듯 하다.

7.2 비판

지지율 ‘정점’ 쳤지만… 오바마의 레임덕

버락 오바마/비판 항목 참조.

8 이야깃거리

8.1 절반만 흑인?

사실 절반은 백인인지라 첫 흑인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첫 혼혈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사실 미국에 '순수한' 흑인은 미국으로 갓 온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이상 얼마 없다. 대부분 20~30% 정도는 백인 피가 섞여있다. 흑인이라고 해도 피부가 짙은 황색이나 갈색에 가까운 것도 그때문이다.

이런 식의 흑인 분류(?)는 원래 악명 높은 'one drop rule' 에서 시작되었다. 직역하자면 '한 방울 규칙'.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다면 흑인이라는 것으로 '순수한 백인의 피' 에 유색인종의 피가 섞일 경우 피가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법칙. 현대에 이르러서는 one drop rule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미친놈들은 거의 없어졌고[52] (적어도 법적으로는) 유색인종의 권리도 신장되었다. 이제는 '대충 흑인처럼 생기고 자기가 스스로 흑인이라고 하면 흑인' 인 듯. 다만 오바마의 경우에는 백인 어머니에 의해 길러진 것도 '반쪽 흑인' 의 이미지에 한 몫 하는 듯하다.

2016년 2월 17일, 일본 마루야마 가즈야(丸山和也) 집권 자민당 참의원은 17일 "지금 미국은 흑인이 대통령이 됐다. 흑인의 핏줄을 잇는다. 이는 노예다"고 말하면서 논란이 됐다. 사실 미국이 발전이 있다고 호평한다는 소리가 이런 소리라고 했으니...흑인에 대한 인식을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경우라고 할까.

8.2 스포츠광 오바마 - "오바마 징크스"

스포츠광이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인 시카고 관련 팀들의 팬이다. 이제까지의 대통령들이 주로 야구 팬이었던 것처럼 야구도 좋아하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이기도 하여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즌 개막 경기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09년 카디널스의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게임에 화이트삭스 저지와 모자를 쓰고 시구를 하고 마크 벌리퍼펙트 게임을 했을때 격려 전화를 하는 등 화이트삭스 광팬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US셀룰러 필드에서 시구를 한 적은 없다(2005년 상원의원일 때 시구를 했다). 또 2012년에 케빈 유킬리스가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자 표 텃밭인 보스턴에서 '유킬리스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농담을 했다가 야유받은 적도 있다. 축구도 좋아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당시 미국이 치르는 경기들을 모두 직관했다. 또한 콜로라도 라피즈 구단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는데 등번호가 10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싸! 리오넬 메시랑 등번호가 같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농구광이기도 하다. 농구로는 시카고 불스, 풋볼로는 시카고 베어스 팬이다. 2010년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농구 경기를 하다가 입술 부위를 12군데나 꿰메는 부상을 입었을 정도. 그렇다면 대통령님의 입술을 터뜨린 사람은 무슨일이 일어난걸까?물론 보는 것도 좋아해서 NCAA 경기를 관람하거나 항공모함에서 연 적도 있다! NCAA는 3월의 광란 (플레이오프 혹은 포스트시즌) 때 항상 대진표를 채우는걸로 유명한데, 이걸 ESPN에서 Baracketlogy라는 이름으로 세그먼트를 해서 매년 틀어준다. 정확도는 그리 높지도 않고, 우승팀을 맞춘것도 1번, 2009년 첫 임기 첫해때였다. 심지어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중에 건설한 백악관 지하의 1개 레인짜리 볼링장을, 2009년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밀어버리고 # 거기에 농구장을 건설했다가 볼링협회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도....

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개표 직전에 농구 시합을 벌이면 당선된다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존 매케인과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오바마는 지인들을 불러모아 농구 시합을 실시했는데 당선되었고, 밋 롬니와의 최후반 선거 경합을 벌일 때 역시 그랬다.

특히 2012년 대선때에는 롬니가 마지막 며칠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오하이오 주에서 유세전을 펼친 반면, 오바마는 그 마지막 며칠동안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놓고는 농구 시합을 했다. 그 이후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한마디로 농구시합을 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것이 오바마 징크스이다.

2016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때에도 (장난삼아) 자기는 스테판보다는 클레이 탐슨의 점프슛폼이 더 맘에 든다고했고, NBA단일시즌 최강팀의 일원이 팀을 이끌고 감독으로 오자, 오바마는 "NBA 최강팀의 일원이 온다는거는 아주 드문일이죠.. 운좋게도... 1995/1996 시카고 불스의 멤버, 스티브 커가 여기있슴다!"라고 했다. 커리, 탐슨 및 모든 골든스테이트 선수들 전원 의문의 1패....

8.3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과 잡음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여 전략무기감축협정 갱신,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CTBT)의 비준, 핵물질 방호와 안전을 국제적으로 논의하고 공조하기 위한 핵안보정상회의의 구상을 밝혀 핵무기 확산에 강력한 제재를 천명하였고, 그 해 노벨상(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것도 재임 10개월만에 받았다.

이 때문에 수많은 논란이 되었다. 아직 취임 10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인 만큼 정책상으로도 평가받기가 모호하고 유화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자유 노조 지도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레흐 바웬사도 '축하할 일이고 기쁘지만 너무 이른데' 라는 발언을 하였고 뉴스위크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도 반응이 엇갈리며 미국의 극우파들은 과거 한국에서 일부 자칭 '극우' 들과 필적할 수준으로 입에 거품 물며 노벨 심사위원들을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마저도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오바마 본인도 수상 소식을 듣고는 '뭐 내가?! 벌써?!'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해 수상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같이 후보로 선출된 후보들을 보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위해서 오바마보다 나은 성과를 올린 사람이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

200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총 205건의 인물 혹은 단체가 추천되어 역대 최다 후보수였던 2005년의 199건을 약간 상회했다. 게다가 후보들 중에는 오랜 기간 에이즈퇴치운동과 인권운동에 종사해왔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아나 히말라야 오지에 여학교 78개를 세운 그레그 모텐슨 등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은 노벨상 중 유일하게 단체에게도 수여가 가능한 상이다. 정 인물이 없었다면 차라리 단체를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를 들어 비정부기구인 집속탄연합(CMC)는 국제 집속탄 사용금지 협약 체결을 위해 100여개국에 파견되어 설득 작업을 벌여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노벨 평화상 수여 원칙인 국가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상비군을 폐지·축소하거나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주장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가장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오바마를 좋아해서 줬다기보다는 '부시에 대한 반감' 으로 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들 부시와 네오콘을 쫓아낸 걸로도 세계 평화에 공헌한 점은 사실이긴 한데,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대통령이 된 후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대통령이 되기 전 유색인종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일, 아니 흑인 대통령 당선 그 자체만으로 미국 내 화합에 기여한 점을 고려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노벨평화상이 원래 주는 이유가 좀 모호한 상이기도 하고.

그나마 좀 가능성 있는 것으로, 그 해 러시아와 미국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갱신되었다는 이슈가 있었다는 점을 보면 못 줄 것도 아니다. 그로 인해서 핵무기의 양이 줄어들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 오바마는 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상원의원 시절 대표적인 핵전력 감축론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2010년에는 공약대로 워싱턴에서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였고, 2012년 서울, 2014년 헤이그를 거쳐 2016년까지 네 번의 회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2기 임기 막바지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와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이라는 빅 이벤트가 성사된 뒤에는 오바마가 외상으로 상 받아간 빚을 갚았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오오 선견지명 오오

9 기타

  • 대통령이 된 후 여러 공식 석상에 지각을 자주 해서 빈축을 사고 있다. 3, 40분 지각은 기본이라는 듯.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에 비하면 이건 약과...[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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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의 교육을 본받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본받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바마는 한국의 "수업일수" 를 본받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수업일수를 본받자는 이야기는 미국 교육계에서 매우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제안이고 그리고 미국 공교육이 좀 많이 개판스러운 것도 사실이다.[54] 그러므로 "미국에도 드디어 야자가!" 하는 식으로 설레발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일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전문가들은 "오바마가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 며 충공깽에 떨고 있다. 심지어 "한국 교육은 미국의 100년 전과 같다" 라고 평한 칼럼니스트도 있었다. 일단 다른 건 제쳐두고 게임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말은 확실히 틀린 것 같다.
  • 2009년 아시아 순방 도중 덴노에게, G20 정상회의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90도 인사를 해 반대파들에게 미국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빈축을 샀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정치적 제스처라는 반응이 있다. 오바마가 겉으로는 친아시아적 외교를 진행함으로서 각국의 친미파들의 호감을 사고 배타적 정책을 펴려는 정부들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55] 실제로 중국의 경우가 어느 정도 그러하고 일본의 경우는 결국 후텐마 기지의 후폭풍이 심해지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실각했다. 그와중에 뒷짐지는 한국 대표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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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에서는 오바마가 열받으면 "더 락 오바마" 가 된다고 한다(...)
  • 한미동맹친선협회라는 단체가 G20차 한국에 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이름이... # 오한마오함마인가
  • 도호쿠 대지진때 "I'm confident the Jap, uh, Japan will recover and rebuild" 라고 인터뷰한 게 플짤로 돌아다니고 있다.# 실제로 일본인을 비하하려 했다기 보다는 the Japanese people(일본인들)이라고 하려다 Japan(일본)으로 말을 바꾸며 일어난 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 2010년 2월부터 오바마는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1973년에 마지막으로 착공한 원자력발전소(완성은 1990년)를 근 40년 만에 다시 착공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였다. 이는 8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대계획으로 8000억원이 아니라 8000억 달러다 주목적인 탄소배출권 문제 해결을 통한 친환경 이미지 구축과 당시의 불황 극복을 위한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야심찬 계획이었다. 재선을 위해 기획한 좀 규모 작은 뉴딜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날려버리는 병크를 일본이 저질렀으니 그게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망했어요
한국에서는 오바마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을 별 비중없이 다루었으나 실질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사업은 오바마의 재선의 발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오바마는 사고 이후 한동안 발전소 건설에 대해 함구하다가 한 해가 지난 후에야 다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가 실은 케냐 출생인데 미국에서 태어난 것처럼 조작해서 대통령 되었다고 턱없는 음모론을 펼치자 백악관 기자단 연례만찬(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56] 에서 "저번엔 제 출생 증명서를 공개했죠? 이번엔 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도록 하죠" 라고 말하고는 라이온 킹심바 탄생 장면을 틀었다. 그리고 한 말이
"...사실 이 발표를 제일 기뻐하고 있는 건 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는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달 착륙은 조작됐는가? 로스웰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비기2pac은 어디에 있나? 같은 것들 말입니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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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5월 이루어진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에서는 작전을 지휘한 마샬 웹 공군준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옆에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냥 동네 흑형(...) 물론 지휘관이 중앙에 앉는 게 맞는 거다
  • 2011년 5월 대통령 전용차가 아일랜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나서다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섰다. 백악관 경호실은 황급히 '그 차에는 대통령님이 탑승하지 않으셨다. 그건 예비차다' 라고 발표. 사족이지만 이건 딱히 차에 고장이 있는 것보다는 VVIP용 차량은 겉만 자동차고 속은 탱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방탄이 잘 되어있다.총기 소지가 자유로워 대통령 암살이 꽤 많았던 미국이니까 더욱 물론 무게도 탱크만큼 무겁다. 문턱을 못 넘은 것은 아마도 그 때문...
  • 2011년 5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영토를 할양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여 이스라엘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현실적 손익계산이 개입된 것으로 연속적인 중동의 체제이행 이후 들어설 정부들의 반미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중동의 평화무드를 조성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니오,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청년은 이 자리에 있게 해 줍시다. 가족을 걱정하는 저 청년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는 절차라는 게 있고 그 절차라는 건 여기서 소리지르는 것과는 달리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경비요원들이 이 청년을 연설장에서 쫓아내려고 할 때 오바마는 그걸 막고 오히려 이 청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발언을 했다.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오바마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상관없이 미국과 대한민국은 우방국가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구조 작업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조치했다.


  • 4월 25~26일 방한시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에 대한 오바마의 답변이 끝난 후에 당황하며 머뭇거리자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불쌍한 박 대통령이 다른 질문이 뭔지조차 기억을 못한다) 라는 농담인지 조롱인지 애매한 발언을 했다. 영상을 보면 알듯이 말 자체의 어투는 단순한 장난이라고 봐줄 수 있으나, 그 뒤 박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게 부각되어 조롱의 의미로 부각되는 듯 하다. 오바마 정도나 되는 사람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일부러 대놓고 깠을 리는 없겠으나, 이는 외교적 결례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 백악관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거나 자막처리하는 등 수습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그리고 언론에서는 특별한 언급이나 조치가 없다. 일부에서는 "조롱당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다만 이쪽에서 잘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냥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장면이라...
  • 2015년 1월 25일에는 북한은 결국 무너진다고 발언했다. 오바마는 북한 따위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너진다는 발언을 하면서 북한같이 폐쇄적이고 고압적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는 오래 못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북한 당국은 머리끝까지 열폭했다. 이 말을 깊게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뼈 있는 발언으로 "우리 미국은 나라를 똑바로 다스리기 때문에 멸망할 일이 전혀 없지만 너네 북한은 나라를 똑바로 못다스리고 너무 국민들을 가혹하게 굴려서 가만히 냅둬도 시민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될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동유럽과 아랍의 독재국가가 무너진 걸 보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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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미셸 외에도, 딸들인 말리아 오바마(1998년생)와 샤샤 오바마(2001년 생)도 훗날 정계에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퍼져 있다. 말리아, 샤샤 자매가 어려서부터 이미 오바마의 각국 순방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미 세계 각국 정상들의 눈도장을 찍어뒀다.
  •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이다. 자신이 블랙베리를 워낙 좋아하고 중독되어있다고 밝힌 상태.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블랙베리를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쓰게 됐지만...
  • 오바마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목소리가 엄청 굵다. 거의 시영준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목소리가 굵다.
  • 오바마의 가족들은 전부 장신이다. 오바마 자신의 키부터 187cm인데 그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키가 5피트 11인치(180cm). 오바마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2011년 오바마의 하와이 휴양사진에 찍힌 장녀 말리아 오바마(1998년 생)은 이미 180cm에 거의 달했으며[58] 차녀 샤샤 오바마(2001년 생) 역시 2015년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175cm가 다 되어간다. 심지어는 미셸 오바마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의 키가 198cm로 말리아와 샤샤 자매는 부계, 모계 양쪽 다 키가 크다.
오바마는 루오족 계통인데 사실 루오족이 포함된 나일로트계 민족들이 키가 큰 편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늦둥이들이다. 버락 오바마가 37세와 40세, 미셸이 34세와 37세에 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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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아버지의 날에 올린 사진.
미셸은 시카고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를 졸업하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시민단체와 지역사회개발활동에서 5년간 시간을 보낸 오바마보다 3년 선배다. 로펌에서 만나 1992년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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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크리스마스. 이쯤되면 오바마의 온가족의 키가 거의 차이나지 않는다. 사진상으로 얼굴이 차녀인 샤샤만 다소 통통한데 샤샤는 외삼촌을 닮았다. 그 때문에 샤샤는 아버지를 닮은 장녀 말리아와는 친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크게 차이난다.
그러자 백악관에서는 질 수 없었는지 백악관 만찬회에서 더 화려하게 약을 빤 합성짤을 공개해버렸다...제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사격하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포샵 한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고백하는데,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실 실제 사진은 이거였죠.
  • 국내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에서 오바마 닮은꼴 모델인 레지 브라운이 김정은 닮은꼴 UIUC 한인 학생인 김민용과 함께 광고모델로 출연했다.
  • 대리운전 광고에도 나왔다... 참고로 배우는 위의 레지 브라운과는 다른 사람으로 추정된다.
  • 관용차로는 THE BEAST라고 이름붙여진 캐딜락을 탄다. 차체는 강철/세라믹/알루미늄 복합장갑으로 강화되었고 문은 20cm 두께 강철 / 복합장갑[59]으로 보호되며 가장 취약한 창문조차도 소총 철갑탄을 막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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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서도 출연하셨다. 방영일자는 12월 24일 오후 11시.(한국에서)

그리고 오바마가 반기문에 이어 UN 사무총장(!!!)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사[60] 세상에 미국 대통령까지 해먹고 이젠 세계의 정점에 오르려하는 위엄

  • 세계자연유산로 유명한 파파하노모쿠아키아 해양국립기념물이 현재의 4배 면적인 150만㎢로 늘릴 계획을 발표한 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아서 감사를 표시하는 뜻으로 최근 새로 발견한 물고기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토사노이데스 오바마 게다가 물고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점이다.

9.1 유머 센스

존 케네디, 빌 클린턴 대통령 등과 함께 언변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으며 연설등에서 적절한 조크를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SNS 스타이기도 하고.

오바마 : "우선 유킬리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오바마 지지자들 : Boo~(야유)
오바마 :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가 양말(socks)[61] 색깔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오바마 지지자들 : (웃음)
오바마 : "여기서 야유를 받을지 몰랐네요. 야구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이해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이곳에 있는)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았어야 했는데.(웃음)"

케빈 유킬리스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후 가진 보스턴 연설에서 유킬리스 보내줘서 고마워요ㅋ라는 말을 했다가 야유를 들었다(...) 민주당 텃밭 보스턴에서 이정도로 야유듣기도 쉽지 않을 듯 이 뒤에 백악관에서는 Boo가 아니라 Youuuuuuuuk였다는 개드립으로 천조국 황제폐하를 변호했다고.

오바마 : 512호 홈런을 쳤던 어니컵스가 언젠가 반드시 정상에 오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청중 : 웃음.
오바마 : (참으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심으로요.
청중 : 웃음.
오바마 : 화이트삭스 팬인 저도 이 점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의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식 중에 시카고 컵스를 돌려까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에 우승을 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 취소선이...

우린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본 사람들은 농담으로 보지 않는 중(...)

여자친구 건들지 말라는 한 유권자에 대한 반응.

오바마 : 제가 더 이상 출마할 선거는 없습니다.(I have no more campaigns to run.) 저의 유일한 의제는...(my only agenda..)

공화당 : (박수갈채)
오바마 : 제가 이걸 아는 건 이미 둘 다 이겼기 때문이죠. ㅋ. (I know because I won both of them.)[62][63]
민주당 : (박수갈채), (환호)

지미 키멜의 토크쇼에 출연했을떄 키멜이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었다면, 취임식 이후 바로 51구역외계인들의 파일들을 찾아보러 갔을거에요. 당신은 그랬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그래서 당신이 대통령이 될 일이 없어요."라는 시크스러운 대답을 날렸다.

2009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수상소감을 말하던 도중 카니예 웨스트가 난입해서 방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태에 대해서 "He's a jackass" 라고 했다. (오프더 레코드였다.) 애초에 카니예 웨스트가 엄청 까일만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오바마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회견 마무리 짓는 멘트로 "이제 스타워즈 보러 갑니다. 고맙습니다.(Get to 'Star Wars. Thank you.)"라는 애드립을 날렸다.

임기 중 마지막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마지막으로 두 마디만 하겠다면서 마이크를 떨구면서 "Obama Out"을 외치고야 말았다.(...) 랩퍼들이 주로 랩 대결등에서 신명나게 하고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하는 마이크 드랍 퍼포먼스를 한것. [64]

참고로 위의 기자다 만찬당시 백악관 후를 준비하는 영상을 찍었는데 트럼프가 제기한 자신의 출신을 이용한 드립등을 이용해 코믹하게 찍었다.

2012년 3월 14일, 백악관을 방문한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내외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미영전쟁을 들먹이며 캐머런을 놀리는 오바마. 받아치는 캐머런의 모습도 재미있다.

18:05부터

"오바마": 200년 전, 영국은 처음으로 이 곳 백악관을 방문했습니다. 비록 다른 이유였긴 하지만요.
청중: (웃음)
"오바마": 상당히 인상깊었죠.(They made quite an impression.)
청중: (웃음)
"오바마": 말 그대로 이 곳을 환히 밝혀주었습니다.(They really lit up the place.)(화르륵)[65]
청중: (웃음)
"오바마": 여하튼 그 후로는 잘 지냈죠.(But we moved on.)
청중: (웃음)
25:25부터
"캐머런": 이 곳에 서서 200년 전 그 일을 생각하니 상당히 당황스럽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우리 조상님들이 이 곳을 불태우려 했다니.
청중: (웃음)
"캐머런": 오늘 쭉 둘러보니 그때보다는 방비를 잘 해놓으셨더군요.
청중: (웃음)
"캐머런": 이번에는 우리 영국인들에 대한 대비책을 허투루 세우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2016년 1월 1일 신년사를 코메디언 제리 사인필드와 함께 코믹하게 찍기도 했다.

9.1.1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

먼저 아래의 영상을 참조.

코미디 센트럴에서 방영한 Key & Peele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오바마의 분노 번역기"라는 스케치다. 내용인즉슨 오바마가 젠틀하게 연설하면 옆에서 "분노 번역기" Luther가 "사실 내 말뜻은 이거다 개객기들아!!"라고 번역해주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스케치.

그런데 오바마가 2015년 4월 25일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이 잔뜩 모인 백악관 출입기자단 저녁만찬에 "분노 번역기" Luther를 데려왔다! 매해 4월 열리는 이 기자단 참석 만찬에는 대통령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관례가 정착되어있다.원본 연설문 링크 한국어 자막
원본 영상을 보면 50:00부터 나온다. 사실 그 전에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연설을 해서 분위기기 딱딱해질까봐 풀어줄라고 했다고 카더라 그리고 나중에는 본인이 성질을 부려 번역기가 당황하다가 퇴장[66]

9.2 오바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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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 왓삽!?[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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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오바마는 스탠드. 저 아이가 진정한 미합중국 대통령. 어 난 오바마 보이는데 나도 스탠드술사인가
백악관을 방문한 한 소년이 오바마의 머리도 자신의 머리와 같은 느낌인지 궁금하다고 만져보고 싶다고 하자 허리를 숙여주는 오바마.[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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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사진) 후진타오와의 키스.[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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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국의 황제를 능욕하는 (신)대륙인의 기상. 찰지구나
(깜짝 방문한 샌프란시스코차이나타운 중국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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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25일 새벽 방한한 오바마 미대통령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여 오피오울렛에 근무하는 한국군장병을 고문격려하고 있다.[70]

10 매체에서

  • 미국 NBC에서 방영한 Running Wild with Bear Grylls에 출연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생존기술을 전해받은 바가 있다. 생태계 최강의 존재가 나오는 그 프로가 맞다.
  • 내 이름은 칸에선 상원의원의 신분으로 맨 처음 등장해 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다가 대통령 당선 이후 칸을 찾아가서 그와 만난다. 근데 조지 부시는 아주 빼다 박았던 것에 비해서 내 이름은 칸에 나왔던 배우는 목소리는 좀 비슷한데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다...
  • 킹스맨에선 해리 하트의 정체를 모른다고 확인해준 다음에 발렌타인의 회유에 넘어가서 그의 신세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마지막에 머리가 폭발하여 요단강을 건넌다.(...)
  • 기안84의 웹툰인 복학왕에 우바마란 이름으로 두번 나왔다. 첫번째 등장은 별 파문이 없었지만 두번째 등장은 오바마를 지나칠 정도로 희화하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정말로 외교 문제로 번질 것이라는 순진한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일개 웹툰을 가지고 한미관계가 흔들릴 리가 있나... 심의라 쓰고 검열이라 읽는 내리갈굼이 작가에게 다이렉트로 꽂힐까부터 걱정해야지
  1. 영어의 병영을 뜻하는 Barrack이 아니다. '버락(Barack)' 은 스와힐리어에서 따온 것으로 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아랍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 무바라크(مبارك‎)가 있다.
  2. 개그맨 크리스 락은 전 NBA 선수 디켐베 무톰보와 동급 수준으로 듣기만 해도 흑인인 걸 알 정도로 흑인 이름이라고...
  3. 참고
  4. 보면 알겠지만 테두리가 은색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는 타임지 역사상 4번째로, 올해의 인물 선정 표지중에서는 처음으로 붉은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채워 넣었다.
  5. 집권 초기에는 이렇게 흰 머리가 거의 없는 검은 머리에 생기있는 모습이라 풋풋한 느낌이었지만...이 때만 해도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이었다. 언뜻 보면 아내 미셸 오바마가 더 연상으로 보일 정도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인지를 보여주는 일례.
  6. 당선 당시 만 47세 3개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네 번째로 젊은 나이였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있어서 취임한 것으로는 5번째로 젊은 나이였다. 참고로 존 F. 케네디가 당선자로는 가장 어리고 두번째가 빌 클린턴(당선 당시 만 46세 3개월)이다. 율리시스 그랜트도 의외로 젊은 대통령(3번째).
  7. 원래는 목사였으나 흑인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 운동권 출신 정치 지도자
  8. 2015년 5월 정부에서 만들어 준 개인 계정이 개설되었는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인 오바마가 시카고 스포츠 팀 중 시카고 컵스만 팔로우를 안 해 줘서 화제가 되었다(...). 그 와중에 컵스 트위터 계정은 영부인 드립을 쳤다{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컵스 팬이다)
  9. 아버지는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자라면서 무종교인이 되었다.
  10. 정확히는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아랍계 미군의 예를 들면서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훌륭한 미국인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아랍 출신 기독교인에서도 제프리 후세인 압둘이라든지 가브리엘 아사드, 피터 무함마드(이 사람은 재미교포와 갈등을 빚어서 한국에서 잠깐 알려진 목사) 같은 목사가 실제로 있기에 이 이름 드립도 따져들면 역효과가 날 법했다.
  11. 앨러배마주에서는 45%, 미시시피에서는 무려 52%가 무슬림이라고 믿고 있다.
  12. 미국인의 대부분이 기독교, 혹은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13. 다만 최초의 무슬림 하원 의원이 탄생하면서 꾸란 선서가 이루어졌다.
  14. 오바마의 경우엔 148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이 취임식에 쓴 성경으로 선서를 했다.
  15. 시스템에 역행한다, 즉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다.
  16. 참고로 대다수의 남부주에서는 1967년 Loving vs. Virginia 판결로 뒤집어지기 전까지 인종간 결혼 혹은 성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고, 주지사가 대학앞에서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대학 못 다닌다고 대놓고 말하던 시절이다.
  17. 이부 여동생에게도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한 이복 동생들이 있다.
  18. 다만 그의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증언에선 마약 같은 건 하지 않은 범생이라고 밝혔는데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마약 복용 사실을 꾸며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애초에 마약하는 걸 막 알리고 다니진 않을텐데
  19. 참고로 미국 고교에서는 학교와 스포츠마다 다르긴 하지만(농구 등 구기종목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지만, 크로스 컨트리같은 비인기 종목은 신청서 내면 100%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JV는 일단 조건만 충족하면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Varsity, 즉 1군에 들어가야 어느정도 하는 축에 속한다고 보지 JV는 어지간한 명문팀에서도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마저도 학교가 너무 작거나 약체면 Varsity에 있어도 들러리로 봐준다.
  20. 일반 학부, 즉 컬럼비아 컬리지로 편입했다. GS가 아니다.
  21. 하버드 로스쿨 입학까지 자신의 인생에 관해 쓴 책이다. 로스쿨 재학 중에 썼으나 1995년 정치 활동 준비하면서 출간했다.
  22. 특히 Twitter가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여 오바마를 트위터 대통령이라고도 하기도 한다.
  23. 경선 과정에서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가 기부금에 비하면 너무 적어서 양당의 주요 후보들은 거절하는게 대세다.
  24. 2016년 현재 한화로 약 8876억 원
  25. 물론 이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W. 부시도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선거 운동을 해냈다.
  26. 20세기 초에 태어나서 흑인들의 굴곡과 수난 시대를 모두 거처온 어느 90대 흑인 할머니가 오바마의 취임식을 보고 한 말씀이다. 사실, 단순히 "이겨냈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격동의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 킹 목사와 말콤X 등으로 대표되는 흑인민권운동의 상징 그 자체이자 모든 시위, 집회, 행진에서 부른 민중가요로 "We Shall Overcome"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충 한국 사회운동/운동권 진영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든지, 국제 사회주의운동에서 "인터내셔널가"와 같은 포지션. 미국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노래라 저 한 마디에 어떠한 다른 설명도 필요가 없는 것 - 그 맥락을 모르는 한국인들에게는 굳이 이런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저 한 마디는 미국의 흑인과 소수민족에게 있어 예수가 마지막 순간 한 말 - "다 이루어졌다"(요한 복음서 19장 30절)와 맞먹는다. 굳이 뜻이나 맥락을 살펴 의역하자면, "끝내 이겼노라."
  27. 타블로이드판인 G2이다.
  28. 참고로 조지.W.부시의 재선 성공 때의 문구는 "Oh, God", 신이시여.
  29. 발언 원문을 보면 미국의 우위 선점과는 거리가 있음.
  30. 참고로 많은 이들이 예로 드는 클린턴 행정부 때 슈퍼 301조 발동은 보호무역적인 정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신자유주의적 행동에 가깝다. 클린턴 행정부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를 상대로 국내용 정책을 팔아먹는데 정치적 역량을 다 쏟아부어서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결정에 많이 휘둘렸다.
  31. 물론 이건 헌법에 의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미국 헌법 개정안 제 2조에 의거, 개인의 물리적 방어를 위한 총기 소유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총기를 들고 가택에 칩입한 강도에 같은 총기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도 하니... 물론 합법적으로 총기류를 소지하려면 몇 개의 면허가 필요하다.
  32.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는 이전 질환 병력이 있는 환자의 가입을 거절하는데 이것은 보험회사의 필연적 속성이긴 하지만 아픈 사람이 의료보험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33. 참고로 보통 암 수술의 경우에는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보험이 있어도 1만달러 이상이 드는데 보험이 없을 경우 환자에게 300~400만 달러라는 금액이 청구된다(한화 약 40~50억원). 즉 보험 없는 상태에서 병 한 번 잘못 걸리면 인생 쫑난다.
  34. 기껏 은행들을 살려줬더니 저소득층 대출을 줄여버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소비 심리 자체가 얼어붙어 장기 침체로 가버릴 수밖에 없으니 정부 쪽에서도 은행에 압박을 넣고 있다.
  35. 슈퍼팩을 통한 유세는 미국 선거법의 규제 때문에 효율적인 광고 전략을 짜는 게 어려운 반면 개인 소액기부는 그런 게 없어서 개인 소액기부가 많은 오바마가 돈은 더 적게 받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효율은 더 좋다고 한다.
  36. 버락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후 작성한 트윗이며, 2014년 3월 2일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된 트윗이었으나, 2014년 3월 3일 가장 많이 리트윗이 된 트윗은 엘런 디제너러스가 가져가게 되었다.
  37.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데 오바마가 되면 4년만 기다리면 되지만 롬니가 되면 최소 4년, 최대 8년을 버텨야 하는지라 이러한 계산이 작용한 것
  38. 지난 1968년 이래 미국은 40년간 투표율이 50% 초반으로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39. "538" 은 플로리다에서 오바마의 0.0002%(100표)의 우세를 예측한 것을 포함해 모든 주의 결과를 맞췄다. 물론 퍼센테이지까지 맞췄다는 건 아니고... 여하간 조지 W. 부시 사태의 재현은 선거결과가 나온 시점에서는 그저 허풍에 불과하게 되었다.
  40. 365대 173에서 27석이 아닌 32석이 줄어든 것은 지역간 인원 조정 때문.
  41. 그리고 카운티별로 집계한 투표를 보면 샬롯과 랄리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찍었다.
  42. 오하이오 징크스라고 해서 이곳의 선거인단을 차지하면 대선에서 승리하는 징크스이다. 2차 대전 이후 이곳을 빼앗기고도 대선에 승리한 건 존 F. 케네디가 유일하다.
  43. 그러나 이는 공화당 지지성향이 매우 강한 미시시피 주의 지역적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아성인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C. 버클리에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또한 평균적으로 미국의 20대는 2008년보다 조금 부족한 약 63%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CNN 출구조사 결과 밝혀졌다.
  44. 그러면서 사회주의자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는데 영국은 미국 교과서에서도 사회주의의 예로 드는 곳이다.
  45. 2014년 4분기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5%가 넘었는데 이 수치는 근 20년 동안 미국이 기록한 최고 기록이다.
  46. 한국으로 치면 신년연설이 되겠다. 미 대통령이 매년 1월 의회에 제출하는 신년도 시정 방침을 말한다.
  47. 이날 오바마는 정책 반대시 거부권 행사를 암시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는데, 역대 대통령 중 이렇게 강력한 거부권 행사 의지를 보인 적이 처음이라고 한다.
  48.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라.
  49.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양원의 2/3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50. 민주당원 59명, 공화당원 18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51. IS 조직원들이 산개한다느니 민간인을 방패로 쓴다느니 하면서 공습의 효과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군사적으로 봤을때 그냥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2차대전 때도 제공권을 장악당한 독일군은 '평지에서는' 변변한 공세 한번 해보지 못하고 쭉 연합군에게 밀리기만 했다. 공습 초기에야 소규모로 침투한 IS에게 이라크군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모습도 나오고 그랬지만 이라크군이 전열을 갖추고 나서는 그런 모습이 거의 없어졌다. 베트남전 패배도 민심을 등에 업은 베트콩이 주요 원인이었지 북베트남군은 야심차게 준비한 테드 대공세에서 엄청난 전력을 날려먹고 전쟁 내내 그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공습이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는데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
  52. 물론 인종차별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병크. 법적이지 않은 미묘한 부분에서는 인종차별은 아직도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있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의류 브랜드인 '아베크롬비 & 피치'. 당연하지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베크롬비 & 피치의 모델은 'all-american', 'blonde', 'blue eyes' 가 특징. '흑인을 안 뽑겠다' 가 아니라 '백인만 뽑겠다' 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
  53. 푸틴은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도 사소한 이유로 길게는 몇시간씩 지각을 한다. 그 예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4시간이나 늦게왔는데 그 이유는 폭주족들과 술을 마시느라(...).
  54.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75% 정도밖에 안 되며 공립학교의 경우 50%에 불과하다. 특히 디트로이트 같은 곳은 겨우 25% 정도로 한 반에 중퇴자가 4분의 3이나 된다. 반면 한국은 2008년 OECD 보고서에 의하면 97%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고졸일 경우 제대로 할 게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55. 그리고 국제관례상 군주국의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공화국의 국가원수가 상대를 극존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56.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위한 행사로 게스트들과 대통령이 스탠드업 코미디 유머 섞인 연설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57. 오바마는 웃으면서 이 개그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래의 넵튠 스피어 작전을 실행하러 갔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빈 라덴의 위치를 가지고도 농담을 했다. 레알 충공깽.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바마가 트럼프를 비웃는 짤방이 양산되고, 당시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트럼프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58. 6ft에 육박했다는 걸 그렇게 해석했을 공산이 크다.
  59. 6호 전차 티거의 방호력이 강철 수직장갑 10cm였다. 꾸준히 향상된 복합장갑의 성능을 예상하면 아무리 못해도 M60 패튼의 전면장갑 수준이다.
  60. 다만 이것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0%이다. 국제적인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강대국은 배제하고 미국 및 러시아(구 소련)와 관계가 무난한 제3세계 국가 출신이 맡는게 관례이다. 이것은 역대 UN 사무총장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미국이 유엔 사무총장까지 차지할려고 하면 국제사회의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며, 실제 성사가 된다 해도 딱히 유리한게 없다. 어차피 지금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끄는 유일 초강대국이니까. 게다가 오바마는 전임 부시가 혼자서 막나가다가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국제사회의 협력을 그 누구보다 중요시 여기고 있다.
  61.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와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의 팀명을 빗댄 언어유희.
  62. 미국 대통령은 중임(두 번 당선)이 가능하며 그 후에는 대선 출마를 할 수가 없다. 조지 워싱턴 이래의 관행을 무려 4선을 한 어느 인물 때문에 헌법에 3선 불가 규정을 넣었다.
  63. 여기서 말하는 캠페인은 자신이 출마할 대선 뿐 아니라, 같은 당원들이 출마할 중간선거 역시 자신의 임기 내에는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바마 본인이 더이상 자신의 인기나 지지도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오바마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인 남부/중서부 지역구에서 질까봐 덜덜 떠는 딕시크랫(민주당내 보수파)들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이제 내가 늬들 눈치 볼 일은 없다는 의미로도 말을 한 셈.(...)
  64. 만찬 전 4월 중순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은퇴를 선언하며 'Mamba Out' 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65. 미영전쟁 때 영국군에 의해 백악관이 불탄 것을 빗댄 유머다.
  66. 물론 다 각본이다. 퇴장하기 전에 '분노 통역사 필요없고 상담이나 받으셈ㅋ'이라고 말한데다가 퇴장할때에도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미쳤나봐요' 말하기까지 한다.
  67. 이 사진은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면 노동3권이 보장되면 툭하면 파업을 할 것이라 발언한 대한민국의 모 국회의원과 비교되면서 그 의원을 까는데 사용되고 있다.
  68. 물론 둘 다 어느 정도는 컨셉샷이라고는 한다. 사족으로 저 아이는 백악관에서 일하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대통령과 사진을 찍으러 온 직원의 아들이라고 한다. 백악관 직원들이 떠날 때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것이 전통.
  69. 의류 브랜드 베네통(Benetton)이 '언헤이트(unhate)'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광고의 일부로 합성사진이다.
  70. 애초에 굳이 상관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가 군까지 닿는 사람이 앞에 있는 것도 고역이다. 사단장이 오면 산을 없애야 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괜한 게 아니다. 상상이 안 되는 위키러는, 자신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난데없이 자기 집을 찾아올 때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 물론 이걸 의도해서 가지는 않았겠지만. 시간도 11시 59분이다. 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점심도 늦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