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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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014년 8월 각 일자별 기록 | ||||||||||||||||||||||||
2014년 8월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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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라인
8월 8일 | |
03시 53분 | 정조 시각(간조) |
09시 14분 | 정조 시각(만조) |
15시 45분 | 정조 시각(간조) |
22시 27분 | 정조 시각(만조) |
- 정조 시각 출처 :국립해양조사원(사고 해역과 가까운 서거차도 기준, 8월 예보)(추정)
2 상세
제11호 태풍 할롱의 북상으로 선내수색이 중단되었다. 진도 해역은 할롱의 경로가 일본 쪽으로 틀어지면서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들진 않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이날부터 강풍과 높은 파도가 예상되자 바지선 2척이 다시 목포로 피항했다.#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생존 학생들의 목격담을 토대로 실종자들이 남아있을 걸로 추정되는 위치가 이날 실종자 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공개됐다. 총 6개 공간으로 좁혀졌는데, 4층 선미의 28인실과 중앙 8인실 앞 복도와 여자 화장실, 선수 부분의 S4 격실이 거론됐고 중앙 대형 로비, 연결된 3층 계단에서도 실종자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해당 구역은 아직까지 수색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부유물이 많고 공간이 넓어 정밀 수색을 하지 못한 곳이다.
실제로 지난 6월에도 선체 중앙에 있는 B22 격실 앞에 단원고 고 윤 모 양이 있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정밀 수색을 한 결과 바로 발견한 적이 있었고, 특히 참사 당시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던 만큼,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실종자들도 공개된 지점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배의철 실종자가족 법률대리인은 태풍 이후 바지선을 사고 현장에 조속히 복귀시켜 생존 학생의 증언을 토대로 한 구역에 대한 집중 정밀 수색에 더욱 전념해 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고 민관군합동구조팀은 부유물 제거 등을 위해 4층 선미 다인실 외에도 선체 외판을 추가로 절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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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진도에 있는 이주영 해수부 장관을 어서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자 실종자 가족들은 유감을 표시하며 장관의 입장을 듣고자 오전 진도군청에서 면담을 가졌다. 실종자 가족의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오후 진도군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주영 장관은 면담에서 진도에 남아 차질없이 현장을 지휘해 실종자 수습 약속을 지키고 해양 수산 현안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실종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단순히 남은 10명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으로 인한 참사의 책임을 지고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국민보호의무'(헌법 제34조 제6항)라는 헌법상 책무를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와 안산시민대책위원회는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는 피해자 가족과 국민의 염원을 짓밟은 행위"라고 밝혔다. 이들은 "유가족과 국민이 원했던 특별법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며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한 여야 원내대표 합의는 정치적 야합"이라고 주장했다.#
밤에는 서울, 광주, 군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7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로 진도 관제센터에서 팽목항의 등대까지 침묵 촛불 행진을 했다. 등대 앞에 멈춰선 '기다림의 버스' 일행들은 남아있는 10명의 실종자들 이름을 부르며 묵념하고 또 미리 준비해온 노란 바람개비를 등대에 묶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