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150611A-Sagan.jpg

앤 드루얀을 위하여[1]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였다.[2]

- 코스모스 서문

1 개요

우주천문학계의 본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물리학과 천문학을 대중화시킨 인물덕분에 많은 중고등학생의 꿈이 과학자가 되었지
리처드 도킨스, 앤 드루얀에게 영향을 준 인물


미국천문학자 겸 과학저술가. 풀 네임은 Carl Edward Sagan. 1934년 11월 9일 ~ 1996년 12월 20일

뉴욕 출신의 천문학자로,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이다. 책을 쓴 것만 30권이 넘으며, 이 중 '코스모스(COSMOS)'의 경우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들어져 60개국 5억 명의 시청자가 시청했다.

천체물리학천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에덴의 용 등에서는 인류학이나 생물학도 다뤘다.

2 일생

코넬 대학교 천문학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던컨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NASA에서 마리너, 파이오니어,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했다. 20대 때인 1950년대부터 나사의 기술고문으로 재직한 본좌 중의 본좌이다. 우리는 20대 때 뭘 하고 지냈나... 나무위키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선구자적인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의 업적들만 봐도 충분히 그의 실력을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1996년 12월 20일에 암으로 별세했다. 이후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착륙 지점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되었다. 그의 유해의 일부는 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주의 이타카(Ithaca)라는 곳에 묻혀있다.

3 업적

미국에서는 천문학자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으로, 우연찮게 코스모스가 방영하던 때에 다른 드라마 작가들이 죄다 파업을 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볼 만한 시리즈로서 당시 TV 방영물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칼 세이건 본인이 미남이기도 했거니와 코스모스 방송에서는 정말로 멋있고 학자다운 스마트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당시 미국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죽기 직전에 출판한 '에필로그' 등이 유명하다. 천문뿐 아니라 진화, 비과학 등에 대한 책도 많이 썼다. 인간의 뇌를 다룬 '에덴의 용'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퓰리쳐상까지 수상했다. 특히 그는 미신, 유사과학, 비과학적인 요소를 매우 싫어하는 회의론자로써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내 차고 안의 용 항목 참조.

칼 세이건의 저서 중 유일한 소설인 콘택트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간혹 칼 세이건이 SF 소설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에는 나무위키SF 문서에도 3대 그랜드 마스터로서 로버트 하인라인 대신 잘못 들어가 있었을 정도. 칼 세이건 본인은 콘택트의 영화화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촬영 기간 중에 사망하였다. 영화는 이듬해인 1997년 개봉하여 흥행에도 성공.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 탐사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생물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하였다. 그의 발의로 보이저 탐사선에는 인류 문명의 수백가지 언어로 기록된 인사말과 지구의 위치, 인간의 모습 등이 녹음된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프로그램(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을 주도하기도 했다. 소설 콘택트도 SETI 프로그램에서 스토리가 출발한다.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에 핵겨울이 발생하여 지구상의 생명체가 핵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결국 절멸하고 말 것임을 경고하며 핵무기 감축 운동에도 이바지했다.

대중화에 앞장선 탓에 동료 학자들에게 백안시당했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세이건은 대중화뿐 아니라 주류 학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학자이다. 오히려 명성에 비해 실제 업적은 좀 모자란 경우는 도킨스.

4 사생활

리처드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미남이고 여자 여럿 울렸는데, 결혼을 세 번 했다. 뱀발로 도킨스도 세 번 결혼했다.
첫번째 아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로[3], 아들 도리언과 제레미를 낳고 이혼했다. 린 마굴리스 역시 세이건 못지않은 본좌급 학자로서, 미토콘드리아의 내공생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을 논하는 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학자.[4] 아들 도리언 세이건도 학자라 그와 함께 쓴 저서들도 있고, 국내에도 몇 권이 번역되어 있다.
두번째 아내는 파이어니어 우주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지구의 위치와 인간의 모습을 그린 린다 잘츠만으로, 중년이 되고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혼. 잘츠만과의 사이에 아들 닉 세이건을 두고 있다.
세번째 결혼 상대가 많이 알려져 있는 앤 드루얀 여사.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 제작에 관한 책임자로서 일을 하던 가운데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세이건이 가장 사랑한 사람으로, 코스모스는 드루얀 여사에게 헌정되었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의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동지이기도 해서, 세이건과 함께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는 수학을 싫어했다. 성장하며 전공을 배워 나아지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미분은 선생들이 쓸 데도 없는 걸 학생들 괴롭히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하는 소인배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다.공대에서는 쓴다

골수성 백혈병으로 여동생의 골수를 기증받아 염색체가 XX가 되었는데, 그래서 심리가 여성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별 거 없었단다.

5 칼 세이건과 종교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을 말한다면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정서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세이건은 불가지론자로 유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다.[5]

칼 세이건의 어머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불가지론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인 토라 회당에도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교 교육을 지루해했으며 모든 신앙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신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신이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고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으니, 나는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는 신을 믿을 수 없다였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로써의 신에 대해서는 여러 번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했지만, 우주를 창조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이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려면 우주에게 시작은 없었다는 확고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칼 세이건 본인은 각 지역과 지방의 문화 요소로서의 종교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존중해주었고, 자신의 저서에서도 종교적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뿐, 그는 절대 과학적인 이야기들을 종교적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해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비유들은 창조설 지지자들의 "그 유명한 칼 세이건도 창조론자였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왜곡되어 발췌당하고 있고, 한 술 더 떠서 사실 칼 세이건도 죽을 때 종교에 귀의했다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 우기는 사람도 존재한다. 세이건이 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종교에 귀의했다는건 아니다. 종교가 없다고 종교에 비판적이어야할 이유가 있는것도 아니고 무신론자라고 전부 종교에 비판적인것도 아니다.

칼 세이건은 암에 걸린 이후 가족들이 신을 믿으라고 하자 거부했으며 임종이 다가왔을 때조차 신의 존재를 입증해야 믿을 거 아냐!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의 부인 앤 드루얀 여사(1949년생)는 아직도 잘 살아있으니 그가 죽는 순간까지 불가지론자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기사, 번역문

6 주요 저서

  •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앤 드루얀 공저)
  •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 본격 창조과학 까는 책
  • 에필로그 (Epilogue)-칼 세이건의 유작이다
  •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앤 드루얀 공저)
  • 콘택트 (Contact)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
  •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6]
  • 코스모스 (Cosmos)
  • 혜성 (Comet)
  •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7 트리비아

칼 세이건은 생전 마리화나에 옹호적이었고, 실제로 마리화나를 한 뒤 'Marijuana Reconsidered'라는 책에 익명으로 에세이도 게재한 바 있다.[7] 그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앤 드루얀 여사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 단체인 NORML (전미 마리화나 법 개정 협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왕년에 아서 클라크와 함께 박람회에 갔다가 공짜 영화를 보여주길래 들어가봤더니 지적설계 홍보 영화였다 카더라.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칼 세이건 평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

이 칼 세이건의 제자이며 후계자가 바로 과학자이면서 방송인을 겸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다. 세이건의 뒤를 이어 코스모스 리메이크판의 해설을 맡기도 했다.

핀란드의 메탈밴드인 나이트위시가 이사람을 위한 Sagan이라는 제목의 헌정곡을 불렀다.
  1. 세이건의 아내 앤 드루얀 여사.
  2. 전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라고 퍼냈었다.
  3. 결혼 전 이름은 린 알렉산더. 마굴리스는 세이건과 이혼 후 결정학자 토머스 마굴리스와 결혼해 얻은 성이며 이후 줄곧 이 이름으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4. 사실 세포 공생설은 그녀가 처음 주장한것이 아니었다. 20세기초 소련을 중심으로 연구되던 가설이었으며,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독자적 DNA마저도 이미 발견된 상태... 다만당시 이 독자적 DNA들이 검출과정에서 핵의 DNA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다지 이정받지 못했으며, 린 마굴리스의 업적은 핵 DNA의 오염없이 이들의 독자적 DNA를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세포내공생설을 주류로 확립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비주류를 주류로 이끌어낸 대단한 업적'이라 표현하였다.
  5. 《Worlds Away》. Washington Post, 15쪽
  6. '창백한'보다 '희미한'이 맞는 번역이라고도 하며, 그렇다면 "희미하고 푸르스름한 점(지구)"가 맞는 번역.
  7. 1960년대 거센 반문화 (Counter-Culture) 운동의 영향으로, 당시 젊은 시절을 보낸 지식인 중에는 LSD와 대마초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