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배우, MC, 수필가, 평화운동가. 애칭은 ‘토토짱’(トットちゃん)
2 상세
일본 내에서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나 한국의 송해와 같은 전설적인 MC 및 여배우로 대접받고 있으며, 반전운동과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기도 하다. 테츠코 본인이 유니세프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들을 적은 수필을 모은 《토토의 눈물》이란 책도 있다.
1933년생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 프로그램은 1976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TV 아사히의 토크 프로그램 《테츠코의 방》[1] 과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쿠메 히로시 등과 진행한 TBS의 《더 베스트 텐》이다. 《테츠코의 방》은 매 회 여러 분야의 유명인사들을 초청하여 대화하는 구성의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진짜 유명인이라고 여기는 사람까지 존재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쿠메 히로시 등과 진행한 TBS 《더 베스트 텐》은 최고시청률 41.7%를 기록하는 등 일본 음악계 전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3 과거
어린 시절에는 주의력결핍장애와 학습장애 등 온갖 안좋은 수식어가 따라붙은(...) 문제아였다고 한다. 어떤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찾아간 토모에 학원[2]은 사실상의 초등 대안학교로써, 한창 태평양 전쟁 열기로 미쳐 있었던 일본에서 군국주의, 전체주의적인 교육과 거리가 멀게 자유분방한 수업을 추구하고 있었다.[3] 당시 일본에서 어떻게 그런 학교를 그냥 놔뒀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나중에 테츠코 본인이 추측하길 토모에 학원의 교장 코바야시가 매스컴을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라 학교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학교가 유지될 수 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학교는 도쿄 대공습 때 폭격으로 불타버리고 말았고,[4] 코바야시 교장은 그의 교육 방식을 실현할 학교를 다시 세우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토모에 학원의 교육은 그녀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그 시기를 다룬 책이 유명한 《창가의 토토》.
토모에 학원 이후에는 고란 여학교를 거쳐서 1952년 도요 음악학교 성악을 전공했다. 당초에는 오페라 배우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고 NHK 방송극단과 분가쿠지를 거쳐 1953년 배우로 데뷔하였다. 그녀는 일본 최초의 TV 방송에서 얼굴을 비춘 인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NHK의 시험방송을 촬영할 때는 얼굴의 양쪽을 청백색으로 나눠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5] 배우를 하고자 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1976년 그 유명한 테츠코의 방을 진행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탤런트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본인 스스로 테츠코의 방을 오랜동안 진행하면서 얻은 진행자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마침내, 《테츠코의 방》이 2015년 5월 27일 1만회 방송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기네스에 올랐다. 이는 지난 2011년 8961회 때 자신이 세운 기록을 갈아엎은 것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국민적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사람은 아니다.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담아 대안교육에 대해서 다룬 책인 《창가의 토토》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베스트셀러인데 정작 책의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방송인으로써 그녀의 독보적인 입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편.
4 그 외
NHK의 여성 탤런트 1호의 기록을 갖고 있다. 민방까지 통털어서도 일본 여성 TV 탤런트 1호.
NHK 홍백가합전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1958년, 1980~83년에 홍팀(여가수팀) MC를 맡았고, 2014년에는 타모리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015년에는 82세의 나이로 종합 MC를 맡았다. 이로써 홍백 최고령 MC 기록 달성.
일본 오와라이 BIG 3 중 한명인 타모리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데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 인연으로 1977년부터 2013년까지 '테츠코의 방'의 그 해 최후 방송은 반드시 타모리가 출연하기도 하였다. 1984년 3월 14일 타모리가 진행했던 '웃어도 좋잖아'에서는 반대로 쿠로야나기 테츠코가 출연하여 43분 동안 줄창 토크를 계속했던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이 기록은 이후 2014년 1월 14일에 이르러서야 톤네루즈에 의해 깨진다. 이쪽은 48분)
헤어스타일을 어지간하면 바꾸지 않기로 유명하다. 일본에선 이 헤어스타일을 양파(玉ねぎ)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저 머리 안에는 항상 사탕이 들어있고 그걸 물어보는 사람에게 꺼내 하나씩 준다.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사람한테도 정중하게 극존칭을 사용하는 진행스타일이 특징으로 반말을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보다도 단역 배우들의 처우나 연기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수십 년동안 죽는 역할만 맡아온 어떤 단역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적도 있다.
2016년 4월 30일부터 자신의 자서전 '창가의 토토'의 속편과 속속편인 '토토 채널(トットチャンネル)'과 '토토 한 사람(トットひとり)'을 원작으로한 드라마 토토 텔레비전(トットてれび)[6]에 '100세의 테츠코씨'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테츠코를 연기한 것은 미츠시마 히카리.- ↑ 특유의 오프닝 사운드가 엄청난 중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 애니메이션 쓰리몬에서는 일종의 막간 코너인 야벳치의 방으로 패러디 되었는데, 심지어 오프닝 사운드마저 깨알같이 패러디했다.
- ↑ 학원의 이름에 붙은 '토모에' 는 세 가지 무늬가 한데 어우러진 형태의 문양이며, 다양한 가치관을 받아들임을 상징한다. 이 학원은 도쿄 지유가오카역 근처에 있었다고 하며, 《창가의 토토》의 작가 후기에 따르면 역 근처에 있는 피콕 스토어 지유가오카점이 토모에 학원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 ↑ 정부에서 적국의 언어라면서 영어 교육을 금지하고, 더 나아가 '미국 사람은 귀신'이라는 발표를 하던 순간에도 토모에 학원에서는 미국에서 자라서 일본어가 서툰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소통하고 있었다고 한다.
- ↑ B-29 폭격기가 학원 건물 상공에 잠시 머물러서 폭격을 했다는 묘사가 있다. 토모에 학원은 버려진 전철 차량을 건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을 차량기지로 오인하여 폭격한 것으로 보인다.
- ↑ 이 모습은 사이토 유키가 주연한 영화 《토토 채널》(トットチャンネル, 1987년)에서도 재현되었다.
- ↑ NHK 종합에서 매주 토요일 8시 15분부터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