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망소급 항공모함


영어-클레망소급Clemenceau class aircraft carrier
포르투갈어-상파울로급NAe São Paulo (A-12)

프랑스 해군이 1961년부터 2000년까지 운용했고 2번함이 브라질 해군에서 현역인, 만재배수량 32,000톤급의 정규 항공모함.

1 개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군용기가 제트엔진을 탑재하게 되어 탑재량, 속도, 항속거리 등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그에 비례해 항공모함의 크기도 커져야만 했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의 프랑스 해군이 운용하던 항공모함은 만재배수량이 13,600톤 정도밖에 되지 않다 보니 제트기를 탑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해군은 영국 해군이 1951년에 진수시킨 만재배수량 47,000톤의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의 선진적인 설계사상을 눈여겨 보고, 이착함 임무를 분리시킨 경사비행갑판, 증기식 캐터펄트 및 거울착함유도장치를 갖춘 35,000톤급 이하의 증기터빈 추진 항공모함을 건조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1955년 12월부터 건조가 시작되었고 1번함 클레망소가 1961년 11월에, 2번함 포쉬가 1963년 7월에 취역하였다.

2 항공단

클레망소급은 40대의 고정익기 및 헬리콥터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프랑스 해군 항공대가 마지막으로 운용했던 1990년대의 항공단 편성으로는 에탕다르(Étendard) IVP 공격기 4대, 발전형인 쉬페르 에탕다르 공격기 15대, F-8 전투기 8대, 알리제 공격기 8대로 이루어진 고정익기와 AS365 도팡(Dauphin) 헬리콥터, AS321 쉬페르 프를롱(Super Frelon) 수송 헬리콥터 각각 2대씩을 탑재했다.

2번함 포쉬가 브라질 해군으로 매각되어 상파울루로 개칭된 이후에는 항공단 편성이 크게 달라졌다. 상파울루는 고정익기 22대와 헬리콥터 17대를 탑재하며, 고정익기는 A-4, 헬리콥터는 SH-3, 유로콥터 쿠거(Cougar), 에퀴레이(Ecureuil),C-1 수송기[1] 등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A-4 공격기가 이미 노후화된 상태의 기종이기 때문에 대체기종으로 브라질 공군이 도입을 선언한 그리펜의 함상형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사브사에서 브라질 해군에 제안중인 상태이다.

참고로 아르헨티나 해군이 보유한 S-2 초계기나 쉬페르 에땅다르 공격기가 자주 해당 항모에서 이착륙 훈련을 하고 있다.

3 각 함정 상세사항

건조순서함번함명기공일취역일퇴역일상태
1R98클레망소1955.111961.11.221997.10.1퇴역
2R99포쉬1957.11.151963.7.152000.11.15브라질 해군에 매각

3.1 1번함 클레망소(Clemenceau)

클레망소급의 1번함으로,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정치가로 베르사이유 조약 및 파리 강화 회의의 초안 작성에 영향력을 크게 끼친 인물이기도 한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1841-1929)의 이름을 붙였다.
브레스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며, 1974년 지부티 독립, 1982년에서 1984년 사이의 레바논 전쟁 항공지원, 1993년에서 1996년 사이의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ㅋ클레망소는 36년을 조금 못 채운 운용기간동안 3,125일간 1,000,000해리를 넘는 항해를 하였으며, 1977년에서 1978년, 1985년에서 1987년의 두 차례에 걸친 현대화 개장공사를 받아 초기의 100mm 포 8문에서 4문이 철거된 대신 크로탈(Crotale) 대공미사일 발사기 2대, 12.7mm 중기관총 5정 등의 무장이 새로이 탑재되었다.

퇴역 이후의 처리문제가 여러모로 꼬여 있다.
해체처분이 결정된 후 해체지를 찾던 프랑스는, 스페인으로부터도 터키로부터 모두 거절당한 뒤에 클레망소를 인도에서 해체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대해 2004년 12월에 그린피스가 프랑스의 조치를 다량의 독극물이 함유된 대형 군함을 인도에서 해체하는 것은 바젤협약 위반이라고 항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리고 결국 2005년 12월 31일 툴롱에서 해체작업장이 있는 인도 공화국 구자라트주의 알랑(Alang)을 향해 출항했지만 2006년 1월 6일에는 인도 대법원이 입항거부조치를 내렸다. 게다가 같은 달 12일에는 이집트 근해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무단승함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프랑스로의 회항을 명령했고, 결국은 모항인 브레스트 해군 기지에 돌아왔다.
2년 뒤인 2008년, 석면이 다량 함유된 폐자재 처리에 축적된 노하우를 지닌 영국기업인 에이블 UK(Able UK)와 해체계약을 체결했고 클레망소는 2009년 2월 8일에, 영국 북동부의 그레이소프(Graythorp)에 예인되어 그 해 11월 18일부터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클레망소의 함체에는 석면이 700~1,000톤 정도 사용된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2010년 2월 5일,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에 해체작업이 완료되었다.

3.2 2번함 포슈(Foch)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육군 원수이자 연합군 총사령관도 역임한 영웅 페르디낭 포슈(Ferdinand Foch, 1851-1929) 장군의 이름을 붙였다.[2]
1977년 지부티 해상에서 포쉬의 항공단 소속 F-8 전투기가 정체불명의 전투기를 발견하고는 지부티 주둔중인 프랑스 공군의 F-100 수퍼세이버 전투기인줄 알고 합동 공중전훈련을 하던 도중에, 그 전투기가 예멘 공군 소속의 MiG-21라는 것을 알고 격추하려다 만 해프닝이 있었다. 1983년에서 1984년 사이에는 레바논 연안에서 작전중인 클레망소와 교대하였으며, 역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도 참전했다.
1992년 비행갑판 개수 후에는 라팔이 시험운용되었고, 1995년에서 1996년에 걸친 재개수를 마친 후, 퇴역 직전까지 해군용 라팔 전폭기가 운용되기도 하였다.

2000년에는 브라질 해군에 1200만 달러에 매각되어 상파울루(São Paulo)로 개칭되었으며 2000년 11월 15일에 브라질에 인도되었고 프랑스에서 수리 후 2001년 2월에 브라질에 도착하였다. 이후 3년간 현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보일러, 배관계, 연료탱크, 증기터빈, 캐터펄트, 착함유도장치 등의 보수, 해군전술데이터 시스템 및 CCTV 설치, 도색 등을 실시하여 2010년에 현역에 복귀했다. 재 정비시에 노후화 된 장비들은 통체로 교환하였기에 프랑스 해군에서 운영하던 시기보다 오히려 가동 상태와 성능이 향상되었고 이전에 브라질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미나스 제라이스랑 비교시에는 속도가 50% 가량 빠르고 탑재량은 두배로 늘어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여 브라질 해군은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4 제원

사항클레망소포쉬
기준배수량22,000톤24,200톤
만재배수량32,780톤32,800톤
길이265m
폭(비행갑판)51.2m
흘수선8.6m
추진방식증기터빈 2축식
기관출력126,000마력
항해속력32노트
항속거리7,500해리
탑승인원1,338명
자체무장(초기)100mm 포 8문
자체무장(개장)100mm 포 4문,
크로탈 SAM 발사기 2기(52발),
12.7mm 중기관총 4정 등
탑재 항공기수40대

5 영화와 소설에서의 클레망소급

  • 1989년 발간된 소설 붉은 폭풍에서 클레망소급 2번함인 포쉬가 등장하는데 북대서양에서의 미 해군과의 작전도중 소련군의 대함미사일 공격에 대파된다.
  • 1995년 개봉한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 영화 초반부와 결말부에 한 기자가 상황을 설명하는 항모도 클레망소 2번함 포쉬이다. 영화 내용상 미 해군의 협조를 받지 못해 프랑스 해군의 협조를 받은 것으로, 영화에서 미국의 슈퍼캐리어만을 봐온 사람들로서는 의아해 했을듯.

6 관련 문서

(영어)Clemenceau-class aircraft carrier
(스페인어)Clase Clemenceau
(한국어)클레망소급 항공모함
(포르투갈어)NAe São Paulo (A-12)
(영어)Brazilian aircraft carrier São Paulo (A12)

7 관련 항목

  1. 8대를 중고로 도입하였는 데 이 중 4대는 공중급유형으로 도입하였다.
  2. 포슈 장군이 "비행기는 참 재미있는 기계이지만, 군사적으로는 별 가치가 없을 것이다." 라는 명언을 남겨서 아이러니하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포슈 장군이 이 말을 한 시점은 1911년이다. 최초의 비행기가 하늘을 난것이 1903년이고 이것도 기껏해야 12초를 날았을 뿐이다.그리고 저 말은 하고 4년 뒤인 1915년에 항공기의 활약을 보고 항공정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처음 등장한 기술을 회의적으로 보는것 자체는 포슈 장군만이 그런것도 아니고 그 이후 생각을 바꾸었으니 저걸로 까이는건 상당히 억울한 이야기다. 엘랑비탈도 그렇고 왜곡된 정보가 너무 많은 비운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