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리

1 개요

Turquerie

서양에서 유행했던, 혹은 유행하고 있는 터키와 터키 문화 애호 현상. 미술사적으로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가장 크게 유행했으며 과거보다는 약해졌어도 터키 문화 애호 현상과 거기에 심취한 계층 자체는 지금도 남아 있다. 시누아즈리. 자포네스크 ,이집트 애호등과 함께 서양의 유구한 오리엔탈리즘 팬덤인 동시에 오늘날 와패니즈의 터키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터키뽕

2 역사

오스만 제국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성해 지자 오스만의 문화와 예술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와, 유럽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튀르크리의 첫 시작이다. 또한 16세기,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고 그들을 연구하기 위해 전문 학자들을 파견한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터키 문화에 심취한 매니아들이 생겨났다[1]. 실제로 튀르크리라는 단어도 프랑스어다.

3 특징

튀르크리가 시누아즈리자포네스크와 미묘하게 다른 점은 중국, 일본의 경우 근대 이전까지 서양과 직접적으로 충돌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부풀려진 환상 그자체로 매료했고 열광했다. 하지만 서양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고 수백년간 군사적 충돌을 거듭해온데다 기독교와 대립하는 이슬람을 믿는 튀르크(오스만 제국)는 최종 보스로 인식되었다. 이 때문에 서양의 터키 문화 애호 현상의 이면에는 다른 오리엔탈리즘과 달리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이 이국 문화에 대한 환상과 동시에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으로 터키를 통해 수입된 커피가 있는데 이교도의 음료라고 초창기에는 유럽인들에게는 "이슬람의 와인", "이교도의 음료", "악마의 유혹"등으로 불리며 백안시되기도 했지만 그 오묘한 맛때문에 많은 유럽인들이 열광했고 교황이 커피를 축복함으로서 유럽인들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후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식 카페 스타일이 유럽에서 유행했다.

2차 빈 포위 이후 오스만 제국이 점차 쇠퇴하자 그 이전까지는 동방의 강대한 이교도 제국의 문화를 경탄 어린, 혹은 질시하는 태도로 바라보던 유럽인들의 시선이 점차 이국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환상으로 바뀌어 갔고 튀르크리에도 그 이전의 적대적인 시선이 옅어지고 환상 섞인 시선이 가미되기 시작한다. 공포의 대상에서 무서울것 없는 존재가 되자 문화 소비자들인 유럽인들이 안심하고 느긋하게 터키 문화를 소비하게 됐다.

4 주요 현상들

17,18세기에는 유럽 귀족들을 중심으로 터키식 의복을 입는 코스프레 현상이 유행 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이 유행이 정점을 찍었는데 퐁파두르 부인을 비롯한 여러 귀족들이 터키풍 의상을 입고 그린 초상화들이 이 때 그려진 것들. 그 이전에는 귀족 남성들을 중심으로 터번 착용이 유행했다.

하렘과 터키식 목욕탕에 대한 환상이 퍼져나간것도 이 무렵. 술탄 한명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는 하렘의 특징이 서양 남성들의 호승심을 자극했고 튀르크리가 유행할 당시 그려진 수많은 오달리스크 그림들을 보면 그림에 나오는 여성들은 홀딱 벗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 하렘은 매우 엄격하게 관리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튀르크리에 심취한 서양인들은 하렘을 퇴폐적인 쾌락의 소굴로 인식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하렘과 터키 목욕탕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남아 있다.[2]

예니체리의 행진곡을 비롯한 터키 음악들은 터키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재탄생했고 서양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터키 여행이 붐을 이루면서 16세기 후반부터 터키 여행기들이 출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터키 노동자들의 서유럽 이주, 이슬라모포비아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은 열광적인 호응은 찾기 힘들지만 터키 문화 애호가들은 꽤 많이 남아 있고 튀르크리 역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에도 유럽에서는 부유층 집을 내부를 묘사할때 터키식 가구들과 터키 양탄자들을 집안에 들여놓은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선호한다. 유럽인들이 그렇게 사 들여온 가구와 양탄자들로 자기 집 안을 장식하는것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튀르크리 잔재의 좋은 예시.

5 대표적인 터키 문화 애호가 및 작품들

6 튀르크리를 자극하는 대상들[3]

  1. 과학이나 수학, 천문학 등에서는 이슬람이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는 내용은 중,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도 가르치는데, 학자들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이러한 지식들이 프랑스에 전파된다. 즉 '이교도기는 하지만 우리보다 나은 점이 많네...?' 라는 깨달음(?)이 그들에 대한 호기심 내지 환상으로 바뀌어간 것.
  2. 하렘을 다녀온 유럽 귀족 여성들이 하렘의 실상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럽 남성들이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해 그 여성들의 증언을 믿지 못했다.
  3. 터키 문화에 심취한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것들
  4. 오스만 제국이 강성했을때는 그 행진곡 소리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제국이 정체, 쇠락한 후로는 유럽인들에게 웅장하고 듣기좋은 행진곡이 됐다.
  5. Kaftan.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방에서 널리 입어 온 전통 의복으로, 오스만 제국에서는 황제의 예복이었다.
  6.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 왔다.
  7. 하렘의 시중을 드는 여성인 오달륵(Odalık)에서 유래된 단어로, 한국 역사로 치면 궁녀 비슷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것이 유럽에서는 황제의 후궁들로 와전되었고, 앵그르 등 서양 화가들이 오달리스크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나체화를 많이 그렸다.
  8. 터키식 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