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토마니아

Evolution_of_Civilization.jpg
이집트를 문화의 근원으로 묘사한 에드윈 블래시필드의 벽화.

1 개요

이집트의 역사나 문화, 혹은 이집트에 관련된 모든 것에 열중하는 부류를 일컫는 표현. 쉽게 말해 이집트덕후. 아니면 와패니즈의 이집트 버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이집트라 함은 사실상 '고대 이집트', 넓게 봐야 콥트 정교회 시대까지만 뜻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콥트시대까지만 해도 고대 이집트와 문화적 연관성이 있지만 이슬람 시대쯤 들어가면 언어나 문화면에서 간극이 너무나도 커지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집트 문화라고 하면 보통 아랍 문화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아랍 문화라해도 분명히 이집트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집토마니아라고 하면 어디까지나 아랍 문화와는 무관한 시대를 좋아하는 부류만 포함된다.

하고많은 고대 문명 중에서 유독 이집트가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신비롭고 위대한 문화'라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금은 국가의 형태로는 남아있지 않고 당대에도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왕조변천이 심해 현실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어 후대인의 이목을 끌기 힘들었던 반면 이집트는 수천년 동안 안정적인 국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 특유의 내세에 대한 사상, 태양신 종교 등 은밀한 문화에 힘을 쏟을 수 있어 현대인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었다.

2 역사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엄청나게 오래된 취향이다. 2500년 전 헬레니즘 시대만 해도 이미 이집트는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갖춘 문화 대국이었던데다 훌륭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압도적인 문화에 끌려 이집트빠가 된 사람들이 당시에도 넘쳐났다.[1] 당시 지중해 사회에 있어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대충 유럽이나 일본과 비슷한 지위에 있었으니 당연히 이집트 문화에 영향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는 시기였다.[2] 막말로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공주님 안기하고 있는 피에타의 원형이 이 당시 이시스 신앙이 유행하여 여기저기서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상' 형식을 따라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중세시대 ~ 근대시대에 들어서 이집트가 이슬람화되자 이집트인들은 자국의 고대 유산을 탐탁치 않게 여기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슬람교는 성상에 특히 부정적인지라 성상빼면 시체였던 이집트 전통문화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문화였던데다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같은건 이미 잊혀졌고(다만 완전히 잊혀진건 아니고 피라미드같은건 이전부터 유명했고 아무리 상형문자가 잊혀졌다고 하지만 콥트어는 여전히 쓰여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피라마드가 옛날 왕의 무덤정도라는걸 알 정도의 수준이었다.) 문화재 보호개념같은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던지라 정작 당사자들은 고대의 유산들을 그다지 귀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 이집트인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이집트의 조각상들은 대부분 코가 부숴져있는데 이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이 무슬림이 저지른 반달이라는 것. 하지만 무슬림들은 아니라고 반문한다. 무슬림 짓이라면 "우상숭배로 얼굴을 죄다 부숴야할텐데 코만 부수다니? 그건 뭔데?"라고 한다. 여하튼 무슬림도 반달이 심했지만 이집트인 기독교인이라든지 외세도 만만치 않았었다...[3]

어쨌든 무슬림이라든지 이집트 콥틱 및 기독교인들도 이집트 고대 유물에 대하여 무시 및 외면은 이어졌고 이런 거랑 달리 유럽인들의 이집트 문화재에 대한 수요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무력으로 빼앗긴 유물도 많았지만 이집트 본국의 도굴꾼들이 팔아넘기거나 높으신 분들이 친목을 다지려고 아무 나라에나 내줘 버린 것도 허다하다. 지금 기준으로는 황당하게 보일 뿐이지만 파리에 있는 거대한 오벨리스크 역시 그때의 높으신 분들이 문화재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시계 하나와 냉큼 바꿔먹은 것이다(...).

이에 대해 모범적인 이집토마니아의 예로 손꼽히는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위대한 유물을 십년도 못가 고장나는 시계와 바꾸고 말다니!"라고 절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마리에트는 이집토마니아로 전설이지만 적어도 이집트 문화와 역사,유적을 사랑했으며(심지어 조국 프랑스보다도!) 유럽 및 미국의 이집트 유물 도굴 및 반출을 막으며 이집트 유물은 이집트에 있어야 한다고 발설하고 이집트 높으신 분들을 찾아가 열변을 토하며 유물을 아끼라고 일갈하던 사람이다. 아예 이집트인들에게 자국 문화제에 대한 위대함을 가르치고 보호하도록 제자들을 양성했다. 위에 서술한 파리에 있는 오벨리스크 반출에 대하여 절규하던 마리에트가 이집트 영주이던 무함마드 사이드를 찾아가 분노했는데 사이드조차도 데꿀멍하고 알았다고 하며 유물에 대한 건 당신에게 맡기겠다고 물러섰을 정도이다. 이집트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자국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이집트 유물에 대한 욕심을 좀도둑이라고 앞에서 대놓고 까서 대노한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 입국을 금지해버렸을 정도이다. 이런 이집트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보호에 대한 노력으로 마리에트는 지금도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앞에 동상으로 남아 추앙받는다.

하지만 마리에트같이 순수한 이집토마니아는 당시에는 드물었고 특히 제국주의 시대 서양인들의 이집트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어서 이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이집트에 관한 것은 예술, 문학을 막론하고 꾸준히 소재로 쓰여왔다.

3 근황

220px-USA.NV.LasVegas.Luxor.02.jpg

이렇듯 서구권에서는 매우 유구한 팬덤(?)인지라 유럽의 관광지에 가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곳에서 이집트의 조각상이 서있다거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룩소르'라는 호텔에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거을 볼 수 있다.왜 옛말에도 덕중지덕은 양덕후라고 하지 않았던가 각종 창작물 중에 이집트가 배경인 것이 굉장히 많으며 이집트 자체가 배경은 아니더라도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에피소드가 한두개는 등장하거나 게임에서도 이집토마니아를 노린 듯한 먼치킨들이 한두명은 등장한다.

일부 흑인 우월주의자들도 자신들의 근원은 이집트에 있다면서 '우리 조상들이 이런 위대한 문명을 건립했으니 너희 백인들한테 지배받을 족속아니여!'같은 식으로 고대 이집트 문화 하악하악하면서 우폭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설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집트인 항목 참조.

동양권은 아무래도 서양에 비하면 이집트와 교류를 한 역사자체가 짧기 때문에 그다지 오래된 팬덤은 아니지만 왕가의 문장이나 유희왕의 대흥행으로 어느정도 이집토마니아를 양성하는데 공로를 했다. 하지만…….

4 문제점

문제는 이집토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이집트'라는 나라나 매체에서 묘사되는 이집트라는 요소 자체가 심각하게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하고 있거나 다른 중동계 국가와 혼동되어 왜곡되어있다[4]는 점이다. 가장 대중적인 예로 영화 <미이라>나 <십계>를 생각해보자. 과연 고대 이집트가 정상적인 국가로 묘사되어있던가? 더 가까이 들어가서 일반인들이 '이집트'하면 '아 그 미라가 돌아다니고 스핑크스 섬기는 나라?' 정도를 떠올리는 걸 생각해보자. 역사공부는 판타지로 했나? 역사 시간에 이집트 고대 문화는 안 배워서요...

사실 지금의 이집토마니아는 제국주의 시대에 확립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에 압도되어 이집트덕후가 된 이들이 상당수이지만 이때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덕후와는 달리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5] 이런 면모는 이집트에 여러가지로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각종 창작물에서 이집트를 소재로 삼음으로 이집트학에 대한 관심을 드높인다'는 긍정적인 입장[6]과 '왜곡이 난무하여 이집트에 대한 편견만 가지게 된다'는 의견으로 갈린다.[7]

또한 인류문화와 역사의 근원이라고 지나치게 이집트를 추종하고 '모든 인류문화는 결국 이집트 문화에서 영향받은 거니까 짝퉁이라는!'같은 식으로 이집트에 비해 발전이 늦었던 다른 문화권 국가들을 얕보는 이집토마니아들도 많은데 이 역시 포지티브 오리엔탈리즘이라고해서 따지고보면 결국 편견에 지나지 않는 시선일 뿐이다. 그렇게따지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신대륙의 고대 문명은 설명이 안되니까.

현대 이집트에서도 당연히 이런 걸 무척 짜증낸다. 이슬람적이 아니라고 하는 시각도 많으나, 반대로 서구놈들이 미이라나 스핑크스만 나오는 걸로 우리나라를 인식하는데 이런게 좋을 놈 어디에 있냐? 라는 것. 실제로 여행전문가 함승모는 이집트 여행에서 알게된 이집트인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 친구도 짜증나듯이 "스핑크스와 미이라, 아득한 고대 유적과 그 문화만 이집트인지 아는거 지겨워요! 이슬람이니 뭐니 이것도 천여년에 걸친 문화인데 이건 뭔지도 모르는 거 같더군요..더더욱 서구 놈들이 그러는데."라고 울컥해했다고.

5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

6 창작물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문명 시리즈,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등등 서양에서 만든 역사/판타지 계열 게임 중 이집트풍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1.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보면 이집트인들이 자기들이 원조라고 뻐기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2. 물론 당시 지중회 사회를 제패한 국가는 이집트가 아닌 마케도니아이기는 했지만 헬레니즘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된 배경에는 이집트의 유구한 문화적 파워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이슬람 제국도 마찬가지여서 헬레니즘 제국이건 이슬람 제국이건 일단 이집트를 점령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알렉산드리아' 중 가장 융성했고 지금도 살아남은 곳이 어디에 있고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어디인지를 생각해보자.
  3. 그 예로 이집트인 기독교인들도 3~4세기에 피라미드 안을 불태운다든지 반기독교적인 우상이라고 반달 저지른게 허다하다. 그래서 찬란한 이집트 유물을 부숴놓은 건 죄다 무슬림 탓이라고 하던 18세기 유럽 여론에 대해 에드워드 기번이 개소리한다! 그 시절, 기독교인들도 같이 부숴놓고 태우고 그랬던 건 모르냐?"라고 비난했을 정도이다.
  4. 가장 흔한 유형이 고대 이집트 문화와 아랍/이슬람 문화를 같은 통속으로 취급하는 경우이다. 거진 중국 은나라 시대 문화와 청나라 시대 문화를 혼용해서 표현하는 거나 마찬가지. 특히 서구권에 비해 이집트에 무지한 편인 한국이나 일본 매체의 판타지물에서 이렇게 묘사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또하나 예를 더 들자면 위에서 예로 든 레넥톤의 갑옷도 이집트보다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나 히타이트 쪽 무장과 더 닮았다.
  5. 이 때문에 현대의 '이집토마니아'라는 개념은 서구인에 의해 왜곡된 이집트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으며 2014년 3월부터 위키백과의 'Egyptomania' 항목 역시 'Ancient Egypt in the Western imagination'이라는 항목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제시되고있다.
  6. 재미있게도 이렇게 왜곡된 이미지의 이집트 문화에 심취하여 이집토마니아가 되었다가 연성을 하면서 '제대로 된 이집토마니아'로 돌아서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7.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바로 이집트 왕자. 고증으로 따지면 이집트 왕자만큼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창작물도 적지만 이것도 고증면에서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작품성에 대한 견해가 크게 갈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