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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의 정연한 기억 속에서 섬은 수십 장의 스케치였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본 커다란 2절판 책 속에 차례차례 봄의 섬이,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섬이, 동쪽과 서쪽의 섬이, 남쪽과 그리고 북쪽의 섬이 있었다. 아침의 섬이 있었고, 밤의 섬이 있었다. 폭풍의 섬도, 잔잔한 파란 바다 위로 녹색 케이크처럼 떠오른 섬도 있었다. 갈매기만이 한가로이 날고 있는 섬은 무인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여 척의 배들이 둘러싼 섬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였다.미완인 듯 검은 잉크만으로 그린 섬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에서 어김없이 섬은 수십 가지 빛깔로 칠해져 반짝이고 있었다. 스케치 한 구석에 그려졌던 두 개의 문장도 또렷이 기억했다. 아르님 가문을 나타내는 키 문장, 그리고 그 옆에 그려진 작은 꽃. 꽃은 섬의 이름이었다. 바람개비 같은 다섯 날개를 가진 청보랏빛 꽃이 부드러운 붓끝 아래 피어나 있었다.
페리윙클(periwinkle).
한 가지 소재를 이렇듯 수십 번 되풀이하려면 얼마나 애착이 깊어야 할까.
(중략)
섬은 때로 태양과 함께, 달이나 별과 함께 있었고, 푸른 날치떼와 있었고, 존재하지 않는 천사와도 함께 있었다. 그림 하나하나에 그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었다. 먼 바다의 페리윙클, 나의 페리윙클.
룬의 아이들 데모닉에 등장하는 지명.
아노마라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남쪽 바다에 위치한 '이카본 군도'에서 가장 큰 섬. 남쪽 바다에서 유일하게 눈이 내리는 산이 있고, 무척 아름다운 파란 꽃이 핀다고 한다. 옛날부터 아노마라드와는 독립된 역사를 가진 곳으로서, 지배자인 아르님 가문이 이곳을 떠난 이후 아노마라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섬'으로 여기고 있으며 아노마라드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곳이 되었다 .
아노마라드 남쪽 바다에는 페리윙클 섬 말고도 노을섬을 비롯한 여러 섬들이 있으며, 초대 아르님 공작인 이카본 폰 아르님이 나타나 페리윙클을 손에 넣고 주위의 작은 섬들을 대부분 평정한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일대의 섬을 이카본 군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노마라드가 세워지고 이카본이 아르님 공작이 됐을 당시 왕국에 복속되었지만, 왕가와의 사이가 틀어져 후손들이 다시 군도로 돌아오게 됐을 때부터 완전히 별개의 지역이 되었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군도 전체는 왕국에 필적할 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로 군도의 인구가 줄어들고 힘도 약해져서 현재 사람이 사는 곳은 페리윙클 섬 하나로 좁혀졌고, 다른 섬들은 무인도나 다름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아르님 가문의 숨겨진 영지로서 산호, 청금석 등의 산지인데다 대륙에서 유일하게 진주 양식[1]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몹시 부유하다.[2] 지금은 고갈됐지만 예전에는 사파이어도 나왔으며 이러한 각종 풍부한 자원들로 인해 한때는 보물섬이라고도 불렸다. 섬의 주민들은 이외에도 어업과 해적질(…) 등으로 살아가며 작중 묘사를 보면 해적 함대를 통한 강력한 해군력까지 보유하고 있는 듯 하다.[3] 이렇듯 막대한 부와 군사력을 가지고 아노마라드 왕국의 간섭을 철저히 물리치고 있으며, 사실상 독립 국가나 다름없는 위치를 누리고 있다.
아노마라드 어디에도 영지가 없는 아르님 가문이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은 페리윙클 섬의 재원 덕분이다. 그런데 몇 대 전 국왕에게 혹시 아르님이 페리윙클 섬의 자치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예 분리 독립을 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 가문에 큰 화가 미칠 뻔한 모양이다.[4] 그동안 아르님 가문은 아노마라드 내에는 켈티카에 비취반지성만 두고 있을 뿐 줄곧 페리윙클 섬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국왕의 의심을 풀기 위해 조슈아의 할아버지 아르트와 폰 아르님대에 페리윙클 섬과의 인연을 끊고 아르님 가문 직계후손들은 켈티카의 비취반지 성으로 이사가야 했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현재 아르님 가문은 대외적으로는 이 땅과 연을 끊은 것으로 하고 있지만 그 결속이 매우 단단해 비밀리에 끊임없이 연락이 오가고 있다. 세금도 여전히 아르님 가문에 바치는 모양.
오고가는 대화로 미루어보건대 대륙의 영지와는 달리 행정력의 수준이 상당하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필요로 하며 모든 상품에는 일정의 세금이 붙지만 제분세같은 악습은 없고 시대상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도 없는 의무교육과 의료복지가 있는 것 같다. 이건 세계관이 어긋나잖아? 워낙 풍족한 섬이라서 이런 일이 가능한 모양.
이런 공작가의 수완 덕분인지 페리윙클의 모든 사람들은 아르님 가문을 왕가와 같이 떠받들고 있다. 펠 집정관의 표현에 따르면 골수 아르님주의자들. 섬에 도착한 조슈아는 왕자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고 주민들은 아르님 공작 부부에 대해 '공작 폐하', '공작비 마마'라 부르거나 조슈아를 '소공작 전하'라고 부를 정도니 말 다했다.[5] 아르님 가문은 페리윙클 섬 사람들에게 있어 왕가인 것. 그들에게 있어 충성을 바칠 대상은 오직 아르님 공작가뿐이며 설령 대륙에서 다른 귀족이나 국왕이 온다 해도 그냥 신기하게 여긴다면 모를까, 부복한다는 생각은 떠올리지 못할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르님 공작을 공작이라 부르는 것도 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서일 뿐, 아노마라드 국왕이 내린 공작 작위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6] [7]
어쩌면 섬에 처음 온 조슈아가 그들의 재판장이자 의사이자 탐정이자 예언자이자 주술사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8]
과거에는 근방의 노을섬에 사는 사람들과 알력 싸움이 있었으나 노을섬 사람들이 페리윙클로 이주해 온 이후로는 이것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껄끄러운 감정이 남아있는 모양. 아르님 가문의 납골당이 있으며 실종된 데모닉(갈리페르 폰 아르님)과 섬을 떠난 조슈아의 할아버지(아르트와 폰 아르님) 대 이후를 제외하면 모든 아르님 가문 사람이 이 땅에 묻혔다.[9]
여담이지만 페리윙클 특유의 방언이 있는 모양.[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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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주민들은 악의 무구 중 하나인 '피 흘리는 창'을 숨겨오는 바람에 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 가나폴리 이주민들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본대와는 정반대로 남쪽으로 향해서 페리윙클에 도착했다. 하지만 페리윙클은 살아가기에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산호섬이라 지반이 약해서 악의 무구를 봉인하기에는 부적합했고, 그렇게 되자 초기에 본대에서 이탈할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던 일부가 목소리를 내면서 소지를 반대한 측은 페리윙클, 피 흘리는 창을 택한 이들은 노을섬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간혹 마법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는 달의 섬과 달리, 페리윙클 섬에는 노을섬으로 간 마법사들을 제외하고는 마법적 재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모양.
또한 소원 거울의 재료인 주춧돌이 페리윙클에 남아 있었는데 힘을 불어넣을 사람이 없어 평범한 돌로 남아있던 것을 아나로즈 티카람이 가져가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보리스가 머물렀던 달의 섬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섬으로 일단 위치부터가 대륙의 북동과 남서로 극과 극의 위치에 있으며, 자급자족마저 버거울 정도로 척박하고 가난한데다 몹시 추운 달의 섬과는 달리 페리윙클 섬은 각종 자원들로 인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기후도 온화하다. 또한 사람들의 기질도 차이가 있어서 달의 섬의 인간들은 대체적으로 음험하고 잔인하지만 페리윙클은 유쾌하고 활발한 기질의 사람들이 다수. 게다가 전염병과 골모답 출몰 등, 총 인구의 절반 가량이 몰살 당한 재난을 겪은 달의 섬과는 다르게 페리윙클은 이카본이 활약한 독립 전쟁을 제외하면 심각한 재난을 겪은 적도 없다. 이주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달의 섬은 기함이 추락하면서 연료 공급이 끊겨 바다에서 표류하다 극소수가 겨우 도달한데 반해 페리윙클은 별 문제없이 온전히 도착했다.이쯤되면 뭔가 저주라도 걸린게 아닌가 의심된다.
- ↑ 진주 양식은 아르님 가문의 선조가 만든 독자적인 비법이기 때문에 대륙에서 오직 페리윙클 섬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독과점 - ↑ 이게 보통 부유한게 아닌게, 아르님 가문으로 가는 것은 한 해 수입의 10분의 1인데도 대륙의 다른 어지간한 귀족들은 따라오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 규모가 정말 엄청난 모양.
- ↑ 이 해적 함대의 우두머리가 바로 히스파니에 노인이다. 작중 묘사를 보면 돈벌기는 부업이고 실제로는 페리윙클 섬의 방어 및 섬에 대한 정보가 새지 않도록 하는 역할로 보인다.
- ↑ 그리고 이 의심은 결과적으로는 사실이 되었다. 히스파니에와 프란츠의 대화를 들어보면 아르트와 폰 아르님 대 이후 아르님 가문은 오랫동안 아르님 왕국을 세워 독립할 계획을 만들어 온 것 같다.
- ↑ 페리윙클 주민 曰, "아르님은 이 땅의 흙 한 덩이조차 빠짐없이 갖고 있고, 우리 또한 그런 아르님을 갖고 있습니다."
- ↑ 초대 이카본 폰 아르님의 별호 중 하나가 바로 '바다의 공작'이었다. 페리윙클 섬의 사람들이 부르는 공작이란 아마 이쪽의 의미일 것이다.
- ↑ 공작을 뜻하는 단어는 유럽에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로마 제국의 지역 군 지휘관을 의미하던 Dux이 어원인 Duke, 소 왕국/공국의 지배자를 뜻하는 prince인데 아노마라드에서 받은 작위는 전자에 가까울 것이고, 페리윙클 섬에서 사용되는 공작의 의미는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 ↑ 막시민이 투덜대면서 한 말인데 조슈아 이전의 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사람이 히스파니에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은 아닐지도.
- ↑ 이후 밝혀지는 사실로는 모든 아르님들의 조상이자 초대 아르님인 이카본 폰 아르님의 시신도 빈 관만 있었을 뿐 이 곳에 없었다. 그는 연인이었던 아나로즈의 곁에 묻혀 있었다.
- ↑ 제주도 방언과 비슷하다.
- ↑ 신성 찬트, 티그리스 #s-3나 티엘라 등의 마법적 검술 등. 하지만 달의 섬에서도 섭정의 계략이나 사람들의 인식 같은 이유로 인해 명맥이 거의 끊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