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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강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댐. 행정구역상으로는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에 걸쳐서 위치하고 있다. 길이 601m, 높이 125m, 최대저수량 26억 3000만t으로 대한민국 내의 모든 댐 가운데 3위의 규모이다. 1989년 당시 준공되었으며 2004년, 2012년에 두 번의 증축을 거친 댐이다.
2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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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빗길이 아니고 굽잇길이다.
이 사진 한 장이면 길 레벨이 어느정도인지 증명된다.[1]다음로드뷰
길이름이 말하듯이, 멀미를 잘 하는 체질이라면 도착까지 피자를 한두판 만드는 정도가 아닐것이다. 멀미를 잘 안 하는 체질이라도 멀미약은 필수로 챙길 것. 내비를 찍어 보면 드래곤 커브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구불구불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저 표지판으로부터 평화의 댐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삼십 분 가량. 그러나 굽이굽이 도는길이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느낌인데다가 가는 길에 차가...없다. 좀 무섭다. 직접 방문하면 아흔아홉 굽잇길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옛 미시령길은 애교처럼 느껴지는 수준. 단, 매우 구불구불한 데 비해 미시령길만큼 가파르지는 않고 완만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과 완만한 경사가 묘한 상승효과를 일으켜 사람을 졸리게(...) 하니 주의할 것. 이런 특이한 도로 덕분에 자동차나 바이크의 좋은 와인딩 장소로 입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일요일 오전에 평화의 댐에 가면 스포츠카나 미들급 바이크들을 찾아보기 쉽다고 한다.
댐 자체는 별로 볼 것 없지만, 가는 길에 '두타연' 등 명소가 많으며, 자연 경관이 정말 멋지고 깨끗하다. 한 번 쯤 여행해볼 만한 곳이다. 물론 양구, 화천 쪽 전역자들은 죽어도 안 가겠지 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전시관, 평화의 종, 비목공원, 깨끗한 화장실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한 번쯤 둘러보기 나쁘지 않다. 전두환의 대국민 사기극을 미화하는 전시관을 견딜 수 있다면 말이지 식당과 매점도 있다! 평화의 댐 자체의 전경은 꽤 아름다운 편이지만, 엄청나게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기억할 것. 다만 댐 자체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흔히 생각하는 저수댐의 모습(물을 막아 거대한 저수지를 조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황할 수도 있다. 계곡에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솟아 있는데 마치 과속방지턱을 천만배 쯤 확대해 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한번 구경해 보고 싶다면,
-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까지 농어촌버스가 다닌다. 다만, 평화의 댐에 가기 전에 민통선 이북 지역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로 빠지기 때문에 신분증은 필수.
- 보트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파로호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한참을 걸려 갈 수가 있다. 물론 보트가 있거나 빌려야 한다는 것은 함정.
3 배경
이 댐이 지어지기 시작한 1986년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국민적 열망이 타오르던 때였다. 이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2]을 건설, 무려 200억 톤의 수공을 펼쳐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라고 과장되게 발표한 것.
이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63빌딩이 절반이나 물에 잠기는 것을 비롯해서 서울특별시의 주요 건축물이 물에 잠기는 모형을 보여주었고[3], 유명한 대학 교수들[4]이 출연하여 그럴싸한 설명까지 덧붙이는 바람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런 곡학아세한 교수들이 이후에도 잘나갔다는 것은 한국 학계의 어두운 면 중 하나. 그나마 일부 교수만 당시 홍보질에 앞장서던 사진과 같이 사죄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이젠 잊혀져서 거론도 되지 않는다. 하긴 이렇게 사죄한 것도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니...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뻔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업과 국민들에게서 성금을 거의 반강제로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국민학생들도 저금통이나 용돈을 털어 평화의 댐 건설에 보태는 일까지 벌어졌다. [5][6] 심지어 TV 쇼프로그램까지 동원하여 홍보에 앞장서기도 했다.링크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반공 분위기로 얼어붙는 바람에 줄기차게 개헌을 요구하던 야당과 국민의 여론,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크게 위축되었다. 전두환이 이것을 노렸다는 것이 정설로,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과 제2차장 이학봉이 주도하여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대표적인 실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외에 이기백 국방부장관도 이 일과 관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배재정 의원이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집권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4 200억 톤 수공설
- 한때 동양 최대의 댐 소리까지 들었던 소양강 댐의 최대 저수량이 29억 톤이다. 참고로 이 정도 수량을 모으는 데도 6년 넘는 공사기간과 훨씬 더 긴 저수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 호수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길이는 장장 100km 이상, 평균 수심 100m 이상, 수문 근처의 최대 수심은 200m가 넘는다. 그런데 이것의 7배(200억 톤) 짜리 호수를 소양강 댐보다 훨씬 상류에? 그것도 북한이?
- 만약 정말 금강산에 200억 톤의 물을 비축할 수 있는 댐을 만들려면 덤프트럭으로 흙 나르는데 10년, 물 채우는데 17년, 최소한 도합 27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이 되었다.
즉, 2013년 완공 예정. 이미 2013년이 지났으니 어쩌면 완공되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시간은 흘러흘러 발표시점에서 이미 25년이 흘렀고, 저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후술하는 것처럼, 아직 20억 톤 수준에 불과하다. 당시 북한의 국력으로는 당연히 무리.
- 더구나 북한의 토목기술 수준으로 보아 금강산 댐에 필요한 인원은 공사기간 내내 연인원 10만 명 이상이 필요한데, 금강산댐의 공사 지역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이만한 인원과 장비를 억지로 밀어넣는다면 당연히 정상적인 공사는 불가능하다.[7]
- 그리고 북한강 일대에 다수의 우리 댐들(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이 있어 방류 이후 서울지역 침수까지는 최대 8 ~ 9시간이 걸리므로 홍보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기습수공'은 불가능하다(물론 기습이 아니라도 피해는 막심하겠지만). 더구나 1986년 당시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기간이고 1988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1988 서울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이 얼마나 외교적으로 멍청한 일인지 1972 뮌헨 올림픽 사건을 상기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물론 그거 신경 안 쓰고 북한이 테러 공작을 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소련, 중국도 쉴드를 쳐 줄 수 없었을 정도로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군사적 국지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 또한 비축한 물이 120억 톤 이상이 되면 물이 오히려 넘쳐서 북으로 역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이것과 앞선 이유들(공사기간, 작업면적)은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그나마 양심 있던 한 안기부 간부가 이학봉 2차장(이재용 분)에게 진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학봉 차장 왈, "시끄럽고, 그럴듯한 그림이나 그리시오!"
- 이는 드라마상의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 자체가 "실화"와 교차검증된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분명히 논픽션을 표방했으며, 등장인물들 상당수가 아직 살아 있는 정계/재계의 거물들이기 때문에 소송 위험도 있었다. 얼마나 신중하게 만들어졌을지 생각해 보자.
- 세계 최대의 댐인 중국의 삼협댐의 저수량이 393억 톤, 미국 최대인 후버 댐의 저수량이 336억 톤이다. 북한에서 신설하던 댐이 200억 톤을 달성한다는 것은 북한에 양쯔강 급의 강이 있더라도 불가능했을 일.
- 만약에 북한이 남침용으로 이런 짓거리를 한다면, 남침의 주력이 될 기갑부대의 진격로를 모두 쓸어버려 습지로 만들어 놓고 한강을 도하할 수 있는 다리를 모조리 무너뜨리는 병크를 저지르는 셈이다. 뭐하러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전차, 자주포 등 각종 중장비와 어마어마한 보급물량이 소요되는 현대전에서 도하는 훨씬 어려워졌기에 대형 교량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는 상상 외로 크다. 단기 결전만이 살 길인 북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제 손발을 자르는 셈.[8]
- 이 모든 사실을 떠나서 일단 위에 언급한 TV 방송의 모형과 달리, 서울은 수조 안에 들어 있지 않다(…). 심지어 분지 지형도 아니다. 200억톤의 물이 서울에 가득 찬다고 해서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광범위한 면적에 수해가 발생할 뿐이다.
요즘 같았으면 검색 한 방에 논파됐을 떡밥들 투성이지만, 당시의 언론통제 수준과 그 용이성을 잘 알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논파를 시도했다간 빨갱이 소리는 기본에 고문의 위험까지도 존재했을 시대였다. [9]
5 건설 과정과 그 이후
총 공사비는 1700억 원이었으며 이 중 639억여 원[10]은 반년동안 모은 국민 성금으로 충당되었다. 1987년 2월 28일 착공하여 1989년에 1단계가 완공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에 들어서야 국정감사를 받으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11]. 북한의 금강산 댐의 저수량은 최대 59.4억 톤에 불과하므로 그 위협은 의도적으로 과장된 것이며, 이를 대비하기 위한 평화의 댐의 필요성도 엄청나게 부풀려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3년 댐 완공 뒤에 정보당국이 항공사진으로 판독한 결과 그 절반 수준인 26억 2천만톤으로 판명났다. 그러나 사법처리는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심지어는 사죄 한 마디 없이.[12][13]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정부에 속은 것이었다.
게다가 평화의 댐은 이름은 댐이지만 '발전 기능과 홍수 조절 기능이 없는 댐'이라서 비용에 비해 정말 하는 것이 없는 댐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도 떠안게 되었다. 아예 평상시에는 물이 없는 건류댐이니 뭐(물론 후술할 내용처럼 '만일을 대비해' 지어진 댐이니 만큼 건류댐인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보통 댐이라면 배수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홍수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댐은 비상시 대량방류를 할 수 있는 수문이 따로 없으며 대신 댐 옆에 설치한 여수로 몇 개가 작은 수문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바보댐이란 별명도 붙었다. 근데 간간히 한건씩 해주는거 보면 바보는 아닌듯??
참고로 탈북자 출신 네티즌 '회오리 33'[14]의 말에 따르면 금강산댐의 숨겨진 목적은 저수지도 아니고, 수공도 아니고, 바로 땅굴이라고 한다. 물론 남침용 땅굴이라는 소린 아니고, 전쟁 발발 즉시 한미연합군에게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 당할 북한군이 궁여지책으로 동부 해안선 방어를 위한 보급로로 땅굴 터널을 뚫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북한의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6 영향
물론 댐의 효과를 보았다. 1995년, 1996년, 2010년의 강원 북부 지역의 집중호우와 2002년, 2005년 북한 측에서 예고없이 금강산댐을 수 억 톤 방류시 톡톡히 덕을 보았다고 한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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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북한의 금강산댐의 노후화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댐의 높이를 좀 더 올리는(80m→125m) 등 2단계 공사(1단계 보강공사)가 시행되어 2005년 완공되었다. 들어간 예산은 약 3995억원.
이 증축은 전두환이 한건 나쁘고 김대중이 한건 괜찮냐 운운 하는 의견들이 당시부터 드물게 주장되었다. 당연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증축은 명확하고 정당한 사유아래 진행되었다. 반대로 전두환은 서울수공이라는 기묘한 이유를 들었다. 양측의 차이는 지대하다 하겠다. 아래에 나오듯이 평화의 댐은 말이 많았으나 의도치 않게 나름대로 역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과정에 있어서 불투명한 요소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이다.[15]
하지만 원래 평화의댐은 1단계 완공이 목표가 아닌, 1단계 완공 후 금강산댐의 공사상황을 고려하여 2단계 공사를 하는것이 원래 공사 목표였다. 하지만 희대의 사기극으로 밝혀진 이후 잠정중단되었다가 이후 정부의 평화의 댐 보강은 북한의 무단 방류뿐만 아니라 서울 대기 중의 수증기가 모두 다 물로 변했을 때의 극한 상황을 가정하여 저수량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공사,완공하였다.
금강산댐(임남댐)은 17년이 지난 2003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는데 폭 710미터, 높이 121.5미터, 저수용량은 최대 26억 2천만톤으로 추정되며 실제로도 소양강댐 급의 매우 큰 댐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이 댐은 인위적으로 일정 수준 이하로 수위를 낮출 수 없게 설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정밀할 리가 있을까[16] 즉, 고의든 사고든 간에 한 번 댐이 넘치게 되면, 중간에 있는 댐들(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이 완충을 하더라도 서울특별시 등 한강 하류에 위험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2009년 '한탄강 북한 황강댐(룡성댐) 방류 사건'으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자, 평화의 댐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2012년 6월 10일 국토해양부는 댐 치수능력 증대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까지 평화의 댐 남쪽 사면을 콘크리트로 덧대는 3차 보강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2012년 9월 착공하였다. 목표는 '금강산댐이 붕괴'됨과 동시에 '극한강우' 즉, 대기 중의 수증기가 모두 비가 되는 상상 가능한 최대 폭우가 내려도 견딜 수 있는 기준이 적용된다.[17] 이 공사에는 1650억원을 투입하고 2014년 상반기 말 준공 예정이었으나 2015년 9월까지 완공되지 못했으며 2017년이나 되어야 완공 예정이라 한다.
어쨌든 이래저래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기야 하다. 하지만 애초에 이걸 지어서 뭘 하려는게 아닌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돈을 끌어모은 것이고 당시의 1700억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았을 것이며 정직하게 지었다면 1700억원이나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상황인지라 딱히 잘했다는 말은 나올 수 없는 상황. 경쟁입찰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시공사 결정을 부당하게 수의계약하고 반대 여론을 온갖 비민주적 방법으로 묵살하는 등... 뭐 말이 필요했겠는가? #] [18]
7 그 외 이야깃거리
어찌 되었건 5공화국 당시에는 제대로 먹혀든[19] 반공정책 중 하나였고, 재평가된 이후로도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반공 정책 관련해 갈등을 일으키는 패턴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 사진은 화천쪽에서 진입해 해산령터널을 나오자마자 있는 간판. 터널 전 해산령을 올라가는길도 상당히 험하다. 평화의 댐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양구쪽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 ↑ 북한에서는 임남댐이라고 부른다. 이 댐 때문에 금강산선의 일부 구간이 수몰되어 버렸다.
- ↑ 평화의 댐이 있으면 수공을 막을 수 있고 보조댐까지 지으면 역관광도 가능하다는 쇼도 했다.
- ↑ 대표적으로 서울대 토목공학과의 교수였던 선우중호는 전두환의 구미에 맞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학문적으로 전두환의 사기질을 도왔으나, 사기극이 드러난 이후에도 별다른 타격없이 지내다가, 1995년에는 서울대 총장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딸을 고액과외 시킨 것이 드러나 자진사퇴. 이후 명지대 총장을 지냈고 광주과학기술원의 총장으로 있다가 2012년 퇴임하였다. 여담이지만 이 양반이 명지대 총장 지내던 시절에는 안기부가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카다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여 두고두고 명지대의 흑역사로 남았다(...)
- ↑ 국민학교에 찾아와서 전교생에게 빈봉투를 나눠주고 모금함에 집어넣는 장면을 찍어서 TV에서 방송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 ↑ 모 국민학교에서는 교사 주도로 성금을 내지 않는 학생을 따돌리는 일까지 벌어졌었다고 한다.
- ↑ 실제로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의 어느 다리 공사에서 인력과 장비를 억지로 밀어넣었다가 교각이 붕괴되어 수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전력이 있었다. 관련 링크.
- ↑ 그런데 이건, '한강 이북만 점령해도' 북한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된다는 점에서, 평화의 댐 병크와는 별개로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이면 이미, 홍수로 선공해서 피해준다고 북한이 적화통일을 노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 ↑ 온라인매체는 없었고 PC통신의 태동기였다. 한겨레 신문정도 되는 논조의 오프라인 매체도 없었다.
- ↑ 2015년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환산액수 1254억원
- ↑ 평화의 댐 감사결과 발표문 요지 #
- ↑ 그나마 이 당시 언론에 나와 위험성이 심각하다고 하던 어느 대학교수는 2000년대 들어서 쓴 책자에서 당시 왜곡했다고 인정하면서 글이나마 사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그 누구도 사과는 커녕
지금도 자랑한다 - ↑ 문제는 2013년 현재에 와서도, 실무담당 공무원을 처벌할 법조항은 있어도 단체장, 장관, 대통령 등을 처벌할 법조항이 없다. 정책 실명제가 논의중인 상황.
- ↑ 보수성향의 밀리터리 커뮤니티 유용원의 군사세계(비밀)에서 상당히 풍성한 소재의 글을 올리며 한끗발 날리던 네티즌이다. 물론 그의 말이 모두 신빙성 있는 건 아니니 이 점도 확실히 해 두도록 하자. 가령 폭풍호 증언이라든가...참고로 이 양반은 2011년 현재, 한국에서 사기친 후 중국으로 도주한 상태.
- ↑ 그 외에도, 저렇게 누가 한건 나쁘고 누가 한건 괜찮냐 하는 것은 기초적인 경제학 개념도 없는 발언이다. 합리적 선택은 한계(margin)에서 이루어지기 때문.
- ↑ 일반적인 댐에 비해 배수구 위치가 높은 편이어서 최저수량 자체가 크게 잡혀있다는 것. 설계미스라는 이야기도 있고 수공을 염두에 둔 의도적 설계-배수공 위치가 낮을수록 요구 내압이 상승하고, 만일 수공용으로 한번 쓰고 버릴 카드라면 어차피 댐 자체를 발파하면 된다는 논리-라는 시각도 있으나 진실은 저 너머에..
- ↑ 16년 1월 2일 기준으로 두깨 1m, 높이 수m를 높인다고 평화의댐 에 위치한 공사현황판에 명시되어 있다.
- ↑ 당시 사람들은 이 횡령 의혹을 간단하게 "마이 뽀케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 ↑ 서브컬처 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인 예제가 바로 따개비 한문숙어.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여기에 할애할 만큼 당시로서는 큰 이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