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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鶴捧
1938년 5월 15일 - 2014년 5월 24일
1 개요
2 상세
1938년 부산부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18기생으로 하나회 회원이었다.
방첩부대, 보안사령부에서 오래 수사관[1]으로 근무하였다. 1979년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하자 대공처장에 임명되었다. 10.26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재규를 고문하고[2] 12.12 군사반란 때 정승화를 고문하였다.
1980년 5.17 내란 이후 김종필, 김대중 등 주요 인물들을 중앙정보부나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하여 조사하였다.'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준장으로 예편하였고 이어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 되었다.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민정수석비서관에서 물러날 뻔 하였으나 없던 일이 되었다.
1986년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이 되어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보좌하였다. 이 때 평화의 댐 건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에 관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5공비리 청산 정국에서 구속되었다. 그리하여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출마 자격이 상실되었고 부인 이설혜가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김영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영삼[3]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에 의해 1996년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구속되었고 징역8 년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인 1997년 특사로 풀려났다.
2014년 5월 24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이재용이 이학봉을 맡았는데, 이후 이는 야인시대의 미와 경부와 함께 그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다.
5.17 및 5.18의 실무자였기 때문에 두고두고 지탄을 받지만, 한 가지 부분에서는 그를 지탄하는 사람들도 그의 말을 인용한다.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것인데, 그는 이에 대해 '북한의 개입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으나, 확인된 바 없다. 증거가 있었다면 공개적으로 밝혔을 것'이라며 북한군 개입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