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왕족 또는 귀족에 대한 호칭
폐하전하저하합하각하족하궤하좌하

陛下. 영어로는 Majesty.[1]

사전적 정의로는 황제, 황후, 태황제, 황태후, 태황태후, 자주국의 경우 태왕태후, 왕태후, 국왕, 왕후에 대한 존칭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것이 꼭 정확하다고 볼수 없는데, 원래 중국에서는 황제와 태상황에게만 폐하라는 호칭을 쓰고, 황후, 태후, 태황태후에게는 전하라는 호칭을 썼다. 이는 근대 이후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의 왕실을 따라 여자황족에게 남자황족과 같은 존칭을 붙였다. 그래서 폐하라는 호칭을 황태후, 태황태후에게도 확대했다. 우리나라도 아관파천 이후 이 경향을 따라가게 된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섬돌 아래'라는 뜻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전으로 오르는 층계 아래를 가리킨다. 즉 이 말은 어원을 따지자면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신하가 층계 아래에 서서 '제가 여기에 있으니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하는 의미에서 부르는 말이다.[2] 그러나 계속 쓰이다 보니 이것이 황제나 황후를 가리키는 일종의 존칭으로 명사화한 것.

중국식 체제에서 폐하는 천자에게만 허용된 존칭이었으며, 제후국의 왕은 전하를 존칭으로 사용했다. 물론 중국식 조공책봉체제와 관련이 없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던 시대의 중국왕조 주변 국가들은 폐하와 같은 존칭을 잘 사용했다.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책봉을 받은 제후국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완전한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임금이 왕(대왕)을 칭한 기원전 4세기부터 고려 원 간섭기 이전까지 자국 임금을 계속 "폐하"로 존칭하였다.[3]

그러나 원 간섭기 이후부터는 대내적인 용어도 묘호[4] 등 몇가지를 제외하곤 완전히 제후국의 예법으로 격하되었고, 이때부터 "주상 전하"로 호칭하게 된다. [5] 그래서 본래 "태자 전하"로 불리던 왕위 후계자의 칭호는 "세자 저하"가 된 것이다.

이후 공민왕의 개혁을 통해 다시 존칭들을 회복하지만 얼마 못가 폐지된다.

결국 50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러서야 조선왕조가 자주국임을 선포하면서 "주상 전하"는 "대군주 폐하"로 "왕세자 저하"는 "왕태자 전하"라는 형태로 복귀되었고, 고종 황제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라는 존칭을 쓰게 되었지만 경술국치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이왕 전하"로 다시 격하되었다.

영어로는 본인(즉, 황제나 국왕)앞에서 직접 2인칭으로 지칭할 때는 'Your majesty'가 되고, 다른 사람들끼리 황제나 국왕을 지칭할 때는 'His majesty' 또는 'Her(여왕이나 여제의 경우) majesty'가 된다.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에서 지겹게 나오는 'Yes, your majesty'가 바로 이것. 직역하면 '그대의 강대함' 정도의 뜻이 된다. 만일 내게 물어본다면 나는 폐하 이보다는 조금 낮은 표현으로 One's Highness라는 것도 있다. 군주를 부를 때 직접 '너'라고 하지 못하고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은 서구권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이를 번역할 때는 대체로 왕이나 황제와 관계 없이 폐하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태자와 세자는 황제와 왕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국의 여왕은 여왕 폐하라 부르면서 영국의 왕위계승자는 왕세자로 번역하는 오류 아닌 오류가 나오기도 한다.

태황제나 황태후는 황제보다 아랫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황제를 부를때 "폐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국의 지존인 황제에 대해 마음대로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기 때문에, "황상(皇上)" 혹은 "성상(聖上)"으로 불렀고 말도 아주 놓지 못해 가벼운 존댓말로 대했다.
  1. 다만 영어에선 왕과 황제 모두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구별해야 할 때는 황제에게는 "Imperial"을 붙여 호칭한다. 다만, 동로마 제국도 신성 로마 제국도 멸망한 이후에 Imperial Majesty로 극존칭을 쓸 일이 얼마나 있을지...
  2. "폐하 존안 여쭙겠습니다." 등의 용법을 잘 생각해 보면 된다. 중국어조사가 없는 고립어다. 예문에서는 일부러 쉼표를 뺐으니 추가하지 말것.
  3. 삼국유사, 미륵사 사리함기, 고려시대에 편찬된 한방집, 고려사 등 여러 고서와 비문에서 그 증거가 나온다.
  4. 충렬왕 이후부터는 묘호도 사용하지 못했다. 묘호를 다시 사용하는 건 조선때에 가능했다.
  5. 본래 전하는 황태자나 직계 왕족에게 붙는 존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