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중국/행정구역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파일이 없음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행정 약칭] | |
화베이 지방 | 베이징 시 [京] · 톈진 시 [津] · 산시 성(山西省) [晋] · 허베이 성 [冀] · 내몽골 자치구 [内蒙古] |
화둥 지방 | 상하이 시 [沪] · 산둥 성 [鲁] · 안후이 성 [皖] · 장쑤 성 [苏] · 장시 성 [赣] · 저장 성 [浙] · |
중난 지방 | 광둥 성 [粤] · 하이난 성 [琼] · 허난 성 [豫] · 후난 성 [湘] · 후베이 성 [鄂] · 광시 좡 족 자치구 [桂] · 마카오 특별행정구 [澳] · 홍콩 특별행정구 [港] |
둥베이 지방 | 랴오닝 성 [辽] · 지린 성 [吉] · 헤이룽장 성 [黑] |
시베이 지방 | 간쑤 성 [甘/陇] · 산시 성(陕西省) [陕/秦] · 칭하이 성 [青] · 닝샤 후이 족 자치구 [宁] · 신장 위구르 자치구 [新] |
시난 지방 | 충칭 시 [渝] · 구이저우 성 [贵/黔] · 쓰촨 성 [川/蜀] · 윈난 성 [云/滇] · 티베트 자치구 [藏] |
허베이 성/하북성
河北省
Hebei Province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성도는 스자좡(石家庄)시. 약칭은 지(Ji, 冀)로 한자로는 기라고 읽으며 기주에서 유래했다. 그 외에 과거 연나라가 있던 지역이라 연(燕)이라고 하기도 한다. 성의 인구는 약 7,100만명. 북쪽으로 내몽골 자치구, 동쪽으로 랴오닝 성, 서쪽으로 산시 성(山西), 남쪽으로 허난 성, 산둥 성과 접한다. 화북 지방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성. 이름의 유래는 황하(河)의 북쪽(北)에 있다고 해서.심플하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 직할시와 톈진 직할시를 둘러싸고 있는,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경기도와 비슷한 포지션에 해당한다. 물론 크기는 넘사벽급. 월경지도 일부 있다. 하지만 경기도가 한국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에 비해 허베이 성의 존재감은 중국 전체에서 보면 상당히 낮다. 일단 중국 정치의 핵심부인 베이징에 가까워 남쪽의 상하이 등 경제특구들보다 아직 개방이 덜 되었고, 베이징 시의 면적이 거의 강원도만해서 허베이 성까지 베이징 도시지역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지형과 기후
북부는 산지를 이루고 남쪽은 광활한 화북평야가 펼쳐져 있다. 때문에 대도시는 당연히 남쪽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인 도시는 성도인 스자좡을 비롯해 한단, 다퉁이 있으며 1976년의 탕산 대지진으로 유명한 탕산도 이 곳에 위치한다.
기후는 한랭 건조하여 우리나라의 중부지방과 얼추... 아니, 많이 비슷하다. 다만 이 곳이 좀 더 건조하다는 차이점은 있으며, 북쪽의 내몽골 자치구와 접한 지역은 아예 건조기후가 나타난다.
3 산업과 교통
위에서 말했듯이 수도와 인접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국 개방 정책의 특성상 다른 성보다 산업 자체는 비교적 낙후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제조업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농업은 거의 전적으로 밀농사를 짓는다. 이는 화북 지방의 대체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수도를 둘러싼 지역이니만큼 교통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당연히 북쪽은 거의 듣보잡 취급을 받는다(...).[1] 만주지역과 남쪽의 광활한 중원지대를 잇는 교통 인프라가 이 곳을 지나간다.
4 역사
지금이야 중국의 수도를 둘러싼 지역이라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하지만 명나라 이전까지는 변방 취급을 받는 동네였다. 일단 황하 문명의 태동기에 이 곳은 동이족의 땅이었고 한족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강력한 문화 파급력으로 동주 시대에 이르면 이 곳이 중국 문화권에 편입된다.
춘추 전국 시대부터는 지금의 북경 지방이 '계'라는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해 연나라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전한대에는 '유주'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어 그 이름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에는 공손찬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2]
이후 삼국을 통일한 서진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 허베이 지역을 빼앗기게 된다. 이 때 이 곳에 전연, 후연 등의 나라들이 들어선다. 이후 수, 당 시대에는 한족의 문화권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이 곳은 변방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북쪽인 점도 있고, 타 민족의 침입이 상당히 잦았던지라(...)
5대 10국 시대의 마지막에 이 지역을 연운 16주라는 이름으로 거란에게 뺏긴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이후 통일 왕조인 글로벌호구 송이 몇 번이고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송의 안습한 군사력으로는 거란(요)을 쓰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진(금)과 연합해 거란을 뭉개고 이 지역을 탈환했으나 곧바로 금에게 뒷통수를 털리고 이번엔 화북 전체를 먹혀버린다(...).
그리고 금이 멸망하고 원이 들어서자 마침내 이 지역은 제국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명[3]과 청 역시 이 지역을 수도로 삼으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떠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에는 수도가 위치해 있다고 해서 즈리(直隸; 직예)라고 불렀고, 중화민국이 된 뒤에도 북양정부의 수도가 북경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 직예성으로 불리다가, 국민정부의 수도를 남경에 두게 되면서 1928년 지금의 이름인 하북성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다시 북경에 두어졌지만, 다시 직예성으로 이름이 바뀌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