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 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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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행정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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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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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자치구/내몽고자치구
간화자 : 内蒙古自治区
정체자 : 內蒙古自治區 / 内蒙古自治區[2]
(영어)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몽골어)ᠦᠪᠦᠷ ᠮᠤᠩᠭᠤᠯ[3], Өвөр монгол[4] (우브르 멍걸)

1 개요

약칭하여 내몽골(内蒙古, 중국어 발음으로는 네이멍구이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몽(蒙). 수도는 후흐호트(ᠬᠥᠬᠡᠬᠣᠲᠠ, Хөх хот, 呼和浩特, 중국어 발음으로는 후허하오터)이다. 북쪽 국경지대에 독립국 몽골(외몽골),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국경선이 무려 4,220㎞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몽골과 접경선이 3,192㎞, 러시아와 접경선은 약 1,000㎞이다. 내몽골자치구 중 다싱안링 산맥(大興安嶺山脈/大兴安岭山脉, 대흥안령 산맥)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5]은 넓은 의미의 둥베이(동북) 지방에 포함되기도 한다.

몽골은 고비 사막 내외부에 따라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뉘며 독립국인 몽골국(구 몽골인민공화국)은 외몽골이고[6], 중국에 속해있는 몽골은 내몽골자치구라 명명한다. 내외몽골은 역사적으로 마찰이 심해서 같은 몽골인이라지만 서로를 상당히 적대시한다. 몽골의 사서를 보면 울란바토르 피바다 서로 노예로 삼겠다는 소리를 할 정도니.

현재 내몽골에서는 고대 몽골 문자와 몽골어를 사용하고 있다. 외몽골에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권에서 주로 쓰는 키릴 문자를 몽골어 표기에 사용한다. 물론 고대 몽골문자도 사용하지만 그 사용 빈도는 높지 않다. 아직 몽골인의 모어는 엄연히 몽골어라서 몽골인 사이에서는 몽골어로 의사소통하며 중국어는 한족과 섞여 사는 특성상 공용어로 사용한다. 몽골문 자체가 몽골어를 보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수도 있는데 몽골문으로 중국어를 표기하지 않고 한자로 중국어를 표기하기 때문이다. 조선족 자치구인 연변에서 한국어는 한글, 중국어는 한문을 쓰거나 신강 위구르자치구에서 터키어는 아랍문자, 중국어는 한문으로 표기하는 것을 생각하면 편하다. 내몽골 몽골어는 차하르어로 할하어인 외몽골과는 방언 정도 차이가 있다.

내몽골인들은 외몽골을 소련식민지로 간주해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자부한다. 외몽골은 1921년 몽골의 장군인 담딘 수흐바타르에 의해 독립국 지위를 얻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외몽골, 즉 현 몽골국에서도 내몽골쪽을 중국에 굴복한 식민지인이라고 쳐서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다. 사실 외몽골은 할하 족, 내몽골은 차하르 족이며 내몽골 쪽이 예전부터 중국의 침략을 많이 받아서 항복을 자주 했던 역사가 있어서 외몽골인은 내몽골인들을 열등하게 여긴 반면 내몽골은 일단 칭기즈칸 혈통 부심이 있고 외몽골인들을 중국의 침략은 방관이나 하면서 통수나 치는 족속들로 여기는 터라 사이가 좋지 않다.물론 과거의 시선으로 생각하면 통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 내몽골에선 중국어가 더 많이 쓰이는데, 이는 인구의 80%가 한족 이주민으로 채워져 본진에서조차 소수민족으로 전락해버린 탓이 크다. 그래도 내몽골의 몽골인은 외몽골 인구보다 더 많다.(...)

2012년에 내몽골에서 한족과 몽골족 간 마찰이 벌어지는 등 이쪽도 한족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하르 몽골족은 친중 반몽으로 유명해서 독립 같은 것들은 거의 가능성이 없다. 진짜 독립했다간 외려 내외몽골간 전쟁날 기세

원래 북만주에 살던 원시 몽골족인 몽올실위족이 초원으로 진출 한 후, 그들 중 한 씨족인 보르지긴 씨족에서 칭기즈 칸이라는 걸출한 전략가가 나와 몽골 부족을 통일하면서 몽골족이 생겼다. 이 몽골족은 나중에 북중국에서 금나라서하를 멸망시키고 몽골 제국을 세웠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 사후 후손들에 의해 나뉘어 지게 되고 그 중 하나인 원나라는 몽골과 중국을 가로 지르는 대제국을 이루었다. 원나라는 100년 조금 못 가서 한족에게 밀려 몽골 고원으로 물러나 북원이라 칭했다. 한동안 내몽골 일대에는 북원과 몽골 칸국들이 일어나 명과 대치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시금 몽골부족을 통일한 다얀 칸과 어느 정도 부흥기를 성립시킨 알탄 칸이 있다. 이후 계속하여 이들 차하르 부족이 다스리다가 만주족이 세운 후금에 릭단 칸의 아들 에제이가 항복해 이후 만주와 함께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청나라는 18세기에 건륭제 시기에 외몽골과 신강, 티베트에 걸쳐있던 준가르 제국을 없애버리고 이 지역들까지 정복해 버린다. 외몽골은 러시아 적백내전 직후인 1921년 소련의 후원으로 사실상 위성국화되어 독립에 성공해 세계 두 번쨰 공산국가가 되었고 내몽골은 약간의 저항의 기미가 있었으나 외몽골이 사실상 외면하는 바람에 중국의 병합에 복종해서 현재에 이른다. 물론 인구 수는 몽골국보다 내몽골이 훨씬 더 많아 몽골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중국이며 그 다음이 몽골국, 러시아(부랴티아) 순이다.

2 역사

(漢)나라 때는 흉노(匈奴)의 땅이었으며, 흉노의 후예로 추정되는 돌궐 역시 내몽골과 외몽골, 남시베리아, 북중국, 신강에 걸친 영역을 확보했다. (唐) 왕조에 들어서 태종의 북방 원정으로 중국에 귀속되어 기미주가 되었었으나 돌궐의 부활로 빼앗겨서 돌궐이 다시 차지했고, 다시 돌궐을 멸망시킨 위구르 제국이 차지했다. (宋)나라 때는 서하(西夏), (遼), (金)이 있었다. 특히 요나라는 내몽골 전체를 지배했으나 서하와 금나라는 일부를 지배하는 데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르도스 일대는 서하가, 내몽골의 동부 흥안성 일대(만주로도 간주)는 금나라가 가졌고 내몽골고원은 칭기즈 칸의 등장 이전까진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는 내분 상태였으나 칭기즈 칸의 등장으로 각 부족이 통일되어 "몽골"이라는 정체성이 드디어 생겼다. 칭기즈 칸 등장 이전의 몽골은 그저 수많은 부족 중 하나의 이름에 불과했으나 칭기즈 칸은 최초로 모든 유목민에게 몽골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고 이것은 몽골대제국, 그리고 현대의 몽골로 이어진다.

이후 (元)나라 시대를 거쳐 (明) 대에는 지역 전체가 독립된 몽골족의 땅이었으나 (清)나라가 아직 중국 본토를 장악하기도 전인 1635년 청나라가 차하르를 제압하고 원의 옥새를 얻어 내몽골은 청의 일부가 된다. 이후 청은 만주족과 몽골족 연합제국의 형태로 가며 건륭제 때는 외몽골까지 평정한다.

신해혁명 후 청나라가 망하고 들어선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1928년 러허성(熱河省)과 차하얼성(察哈爾省)과 쑤이위안성(綏遠省) 등의 행정구역을 두어 내몽골을 분리해 관리하였고 외몽골까지 포함하여 중화민국의 영토라 주장하였다. 중화민국/미수복지구 참조.1945년 8월, 공산주의 몽골군과 소련군의 합동작전인 8월의 폭풍 작전으로 인해 소련군 플리예프 기병-기계화 집단이 내몽골 사막을 건너 쳐들어와 일본이 세운 위성국 몽강국은 멸망하였다. 소련은 아예 내몽고를 몽골에 병합시키려하였으나 미국의 반대로 철회하였고 이후 마오쩌둥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외몽골은 소련에 의해 독립되었고, 내몽골은 1947년 5월 1일 중국 공산당의 행정개혁으로 내몽골자치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행정

면적은 약 122만㎢로 중국 국토면적의 약 12%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시린궈러멍, 싱안멍, 아라산멍, 등 3개의 멍(盟)과 후허하오터를 비롯하여 바오터우, 우하이, 츠펑, 퉁랴오, 후룬베이얼, 오르도스, 우란차부, 바옌나오얼 등 9개 지급시(地級市), 11개 현급시(縣級市), 17개 현(縣), 49개 기(旗), 3개 자치기(自治旗)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3분의 1 정도가 대외적으로 개방되고 있으며, 얼롄하오터와 만저우리 등에 국경사무소가 있다. 개혁개방 정책을 전개한 뒤로 전세계 60여개 국가 및 지역과 무역거래를 하고 자매결연을 맺었다.

인구 구성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을 비롯하여 몽골인즉 몽고족, 다우르족[7], 에벤키족, 오로촌족, 시버족, 회족, 러시아족, 조선족 등 49개 민족이 있다. 소수민족의 비중은 자치구 전체 인구의 약 20%이며, 몽골족은 약 400만 명에 이른다. 몽골 자체가 인구가 워낙 적어서 대부분의 주민이 결국 원나라와 북원, 차하르 통치시기에 이주한 한족으로 채워졌다. 오히려 몽골족은 원 지배기에 대거 중원으로 이주해 버렸고, 오늘날 베이징산시 성한족들에게 진하게 몽골족의 피가 섞였다.[8] 베이징의 지명 대부분이 몽골어에서 유래할 정도로 많은 몽골인이 살기 좋은 중국으로 빠져 나가 거의 빈 땅이 되다시피한 곳이 몽골인지라 한족 이주민이 빈자리를 채우는 게 당연하다.[9]

이곳의 몽골족은 몽골보다도 더 머릿수가 훨신 많지만[10], 몽골어는 다수 언어가 아니다. 현지를 답사한 위키러의 증언에 의하면, 게르에 사는 유목민들 조차도 대부분 한어(중국어)를 말하며, 몽골어를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한다. 하지만 내몽골의 게르는 대부분 관광지이고 오늘날 대부분의 몽골인은 도시에서 정착 생활하기 때문에[11] 중국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단 것은 감안해야 하며 여전히 몽골인의 모어는 차하르 몽골어이다. 연변 조선족자치구 역시 비슷하게 공용어는 중국어이고 조선족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중국어를 쓰지만 모어는 엄연히 한국어[12]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국가인 카자흐스탄도 공식적 언어는 러시아어지만 카자흐인끼리는 터키어와 같은 어족인 카자흐어를 쓴다.

4 문화

몽골인의 특성은 열정적이고 손님을 좋아하며, 복장은 도포에 장화를 신고 허리띠를 즐겨 찬다. 유목민으로 쇠고기와 양고기를 즐겨 먹으며, 분해와 조립이 간편한 천막 모양의 이동식 주택 게르에서 산다. 오늘날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파트나 현대식 가옥, 또는 게르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고대 몽골족은 샤머니즘을 신봉하였으나, 원나라 이후 티베트 불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해마다 7월 중순에는 몽골인이 모여있는 곳에서 나담(Наадам) 축제를 열어 물품을 교환하고 기마·사격·씨름 경기 등을 거행한다. 외몽골에서는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되며 타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도 이 축제를 즐긴다.

5 인물

몽골인들 중에서 유명한 인물로는 몽골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 칸과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있다. 쿠빌라이 칸의 경우 몽골의 전통을 벗어나 원나라를 세워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였다. 참고로, 칭기즈 칸은 오늘날 외몽골에 해당하는 빈데르 솜 출신이다.[13]

내몽골 출신의 역사적 인물로는 18세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명안도(明安圖)가 있다.[14]

6 지명

그외에도 황사나 미세먼지 근원을 이야기할때 중국의 지명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미분양 부동산대륙의 기상급으로 지나치게 많아서 이렇게 유령도시화 되어버린 곳이 있다. 오르도스 참조.

7 사건

8 관련 항목

  • 만주 - 몽골과는 변발, 호복 등 풍습과 언어 면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 신장(위구르) - 위구르는 동부 튀르크인이고 인도유럽계의 토하르인과 스키타이계 유목민이 섞여서 외모는 백인과 황인을 섞어 놓은 인상이다. 우즈벡보다는 몽골 형질이 강하고 카자흐나 키르기즈보다는 백인 같은 수준. 그리고 신강 동부는 오이라트인의 땅이어서 몽골 자치현이 지금도 여럿 있다. 이들은 오이라트인으로 이들이 쓰는 몽골어는 오이라트 몽골어이며 내몽골의 차하르어와는 방언 정도 차이가 있다.
  • 티벳 - 인종적으로는 시노티벳인으로 한족과 더 가깝지만 종교적으로는 몽골인과 가깝다. 몽골인이 티벳불교를 받아들인건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 때부터다.
  • 튀르크 - 몽골인과는 거의 근친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가깝다. 애초 내몽골은 돌궐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1. 중남 지방을 허난 성, 후베이 성, 후난 성의 화중 지방(华中地方)과 광둥 성, 하이난 성, 광시 좡족 자치구, 홍콩 특별행정구,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화난 지방(华南地方)으로 나누는 분류도 많다.
  2. 대만(중화민국)의 표준 정체자인 국자표준자체나, 대한민국에서 주로 쓰는 강희자전체의 경우 內(冂 안에 入[들 입{{{]}}})의 형태가 표준이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필요 시 사용하는 번체자로는 간화자와 동일하게 内(冂 안에 人[사람 인{{{]}}})의 형태로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이 그렇다는 거지 꼭 이것을 칼같이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손으로 필기를 할 때는 국가·지역을 막론하고 内(冂 안에 人[사람 인{{{]}}})의 형태로 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3. Öbür Mongghul. 전통 몽골 문자 표기.
  4. 내몽골을 지칭하는 몽골식(외몽골) 표기법. 하지만 내몽골 현지에서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5. 이 일대를 동4맹(東四盟/东四盟)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속하는 행정구역은 치펑시(赤峰市, 구 자오우다맹[昭烏達盟/昭乌达盟]), 퉁랴오시(通遼市/通辽市, 구 저리무맹[哲里木盟]),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呼伦贝尔市, 구 후룬베이얼맹), 싱안맹(興安盟/兴安盟)이다. 여기서 '맹'은 내몽골 자치구에만 있는 행정구역 단위인데, 현재 행정구역 개편이 되어 본래의 동4맹 중 3개가 시로 승격되었다. 현재도 이 네 곳을 묶을 땐 예전 행정구역을 따서 동4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바뀐 행정구역에 맞춰 3시 1맹(三市一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 1992년 공산주의 폐기 후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7. 거란의 후예 민족으로 자기들 조상을 요나라 태조로 본다.
  8. 아이언맨 시리즈 악당인 만다린도 베이징 출신의 칭기즈 칸의 후예다.
  9. 인구의 80%가 한족이라는 현실 때문에, 티베트와 달리 내몽골에서는 분리독립 움직임이 매우 미약하다. 이것을 후원할 수 있는 나라인 몽골국의 힘이 티벳의 지원국인 인도와 천양지차인 것도 크지만(...)
  10. 중국 전체의 몽골족 수는 600만, 몽골공화국은 300만에 불과하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중국 조선족이 남북한 인구보다 많은셈(...) 게다가 경제적으론 당연히 내몽골이 더 앞서서 외몽골인이 일하러 오는 판이다. 대한민국이나 터키와는 반대인 셈.
  11. 우리가 갖고있는 오랜 오해 중 하나가 몽골인은 아직도 전원 초원에서 유목 생활한다는 건데 기후변화와 중국-몽골-러시아의 확실한 국경선 설정 등으로 유목은 요즘은 불가능하고 99%가 도시에 정착 생활한다. 게르 등 유목민 거주지는 관광객을 위한 쇼일 뿐이다.
  12. 남북한과는 다른 연변식 한국어로 언뜻 들으면 동남 방언 같다. 이는 초창기 이주자 중 삼남지방 출신과 함경도 출신이 섞여서다. 한국전쟁 때문에 함경도 말은 동남 방언에도, 특히 부산에 영향을 끼쳤다.
  13. 출신에 대한 표기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내몽골을 갖고있는 중국은 자치구 내에 칭기즈 칸 무덤을 조성하고 중화민족의 자랑스런 위인이라 주장한다. 중국의 논리대로면 러시아의 부랴트 몽골도 중국땅이 되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준 동맹이었다고는 해도 과거 소련시절 국경분쟁이 있었던 역사를 되새기면 이와 같은 주장은 무리수일뿐이다.
  14. 몽골족이 아닌 한족이다. 북원 시절부터 한족들은 내몽골지역으로 꾸준히 이주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