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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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 「하전여주종리전(賀全呂周鍾離傳)」
하제전종여대주방#s-2종리목


賀齊
(? ~ 227)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하달, 하경의 아버지. 하소의 조부. 는 공묘(公苗). 회계군 산음 사람.

다른 장수들이 국가적 전투에 참여하고 있을 동안 대부분의 생애에서 반란군과 도적을 토벌했다.

2 생애

2.1 토벌의 시작

젊었을 때부터 군의 관리를 지내고 섬현의 장을 대행했는데, 사종이라는 자를 하제가 벌하려고 하자 하제의 밑에 있던 주부가 사종이 산월족과 친한 호족이기 때문에 함부로 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하제는 오히려 그 말에 그대로 빡쳐서 사종을 죽인다(…). 주부가 경고했던데로 큰 세력을 이루고 있던 사종의 종족과 무리들이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현을 공격하지만 하제는 관리와 백성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돌격해 이들을 크게 격파했다.

이후 태말현과 풍포현의 백성이 모반을 일으키자 태말현의 장으로 전임되어 그들을 한 달 안에 평정한다.

2.2 손책 밑에서도 토벌

196년에 손책이 회계군을 정복할 때 등용되어 효렴이 된다. 왕랑이 손책에게 패배했을 때 후관의 상승우번의 설득으로 왕랑에 호응해 반란을 일으키자 손책은 영녕현의 장 한안을 파견해 상승을 공격하게 하고 하제를 영녕현의 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한안이 상승에게 패배한 후 하제는 도위의 일까지 겸하게 되자 상승은 하제의 명성을 두려워해 맹약을 맺기를 청한다. 하제는 이 기회에 상승을 설득하여 인수를 보내 항복하게 한다.

이 때 상승의 부하 장아와 첨강이 상승의 항복에 불만을 품고 상승을 죽인 뒤 반기를 드나 하제는 자신의 미약한 세력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때를 기다리는데, 과연 장아의 사위 하웅이 세력 다툼으로 인해 싸움을 벌이자 하제는 산월족까지 끼어들게 해 삼파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쯤되되면 서로 힘을 합쳐 산월 족에 대항하고 하제의 공격에 대비할 만도 하건만 둘은 둘은 오히려 서로 상대방에게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이이제이를 적절히 활용해서 상대방의 세력이 크게 약해진 뒤에야 하제는 군사를 이끌고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장아의 세력을 토벌하고 첨강의 항복을 받아낸다.

2.3 손권 밑에서도 토벌

203년에 건안, 한흥, 남평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하제는 건안으로 진군해 도위부를 세웠으며, 도적 홍명, 홍진, 원어, 오면, 화당이 각기 1만여호를 통솔해 한흥으로 오고 오오의 6천호는 대담, 추림의 6천호는 개죽에 주둔하면서 이들이 공동으로 여간을 공격했다. 하제는 한흥으로 가면서 여간을 지나게 되면서 깊숙이 들어갔다가 후방 원호 부대가 없게 된다면 적에게 퇴로를 끊길 것이라 생각해 송양현의 장 정번에 여간에 남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정번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자 정번을 참수해 군기를 세운 뒤 진지에서 홍명을 참수해 오면, 화당, 홍진, 어원이 항복했으며, 이어서 개죽과 대담을 공격하자 오오와 추림 또한 항복한다. 이 싸움으로 6천여 수급을 얻고 유명한 도적들이 모두 토벌되었으나 하제가 이끈 군사는 1만에 불과했으니 하제는 이 공으로 평동교위로 임명된다. 205년에는 상요를 토벌하고 그곳을 분할해 건평현을 만들었다.

208년에는 위무중랑장으로 승진해 이현과 습현의 도적을 토벌하게 되는데, 당시 습현에는 김기의 1만 호가 안륵산, 모감의 1만 호가 오료산, 이현의 도적 우두머리 진복과 조산 등의 2만 호가 임력산에 있을 정도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이 임력산이라는 곳은 큰 절벽이 있고 길도 너무 좁아 칼이나 방패가 사용이 불가능하고 위에서 돌을 굴러오면 함락시킬 방법이 없는 천하의 요지.

하지만 하제는 지형을 관찰한 뒤에 허를 찔러 철제주살을 만들어 절벽을 타고 올라간 뒤 삼배 끈을 밑으로 내려 사람을 올리는 방법으로 1백여 명을 산위로 올려놓으며,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북을 치고 피리를 부니 험한 곳을 지키던 자들이 이미 산이 함락되었다고 여겨 모두 달아났다. 이 틈에 하제는 군사를 이끌고 진복과 조산의 무리를 격파하고 나머지 도적의 무리도 장흠과 함께 격파해 이 공으로 새로 만든 신도군의 태수가 되고 편장군에 봉해진다.[1]

2.4 계속해서 토벌만

211년에 이번에는 오군 여향현의 백성 낭치가 반란을 일으켜 수 천명의 세력이 된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하제는 그들을 토벌한다. 이때 하제는 손권을 만났는데, 손권은 나와서 전행을 하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도록 했다. 그리고 하제에게 병거와 준마를 하사했으며, 송별연이 끝나 수레에 앉으면서 하제에게도 수레를 타도록 했다.

하제는 사양하고 감히 하지 못했으나 손권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제를 부축해 수레에 오르게 하고, 길을 여는 관리와 군사에게 군에서의 의식과 똑같이 하도록 명령했다. 손권은 하제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마땅히 노력해야만 한다. 덕행을 쌓고 공을 쌓지 않았다면 이런 대우는 얻을 수 없다.

라며 하제의 수레가 백여 보 떠난 뒤에야 손권은 돌아갔다.

213년에 예장 동부의 백성 팽재, 이옥, 왕해 등이 1만여 명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하제는 이들을 토벌해 평정하면서 그 우두머리를 주살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하니 이들 중에서 건장한 자들을 선발해 병사로 만들었으며, 그 다음 사람들은 현의 민호로 만들었다. 이 공으로 하제는 분무장군으로 승진했다.[2]

2.5 메이저 데뷔 첫번째 기회

215년에 드디어 하제는 오나라의 대규모 전투에 참가했는데, 문제는 이 전투가 2차 합비 공방전이라는 것. 오나라 군사들이 신나게 깨지고는 와중에 하제는 손권을 호위해 배까지 인솔하고 서성이 전투 도중 창을 잃자 병사를 이끌고 대항해 서성의 창을 되찾아 오고 퇴각하는 손권을 3천의 군사로 맞이하는 등 맹활약한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손권이 잔치를 벌이자 하제는 자리에서 내려와 울면서 이를 훈계로 삼으라고 말하니 이 말에 손권은 몸소 앞으로 나와 눈물을 닦아 주면서 챙겨준다. 전투가 끝난 후 하제는 다시 본래의 생활터인 반란군 토벌로 돌아간다.

216년에 조조의 인수를 받고 반란을 일으킨 우돌 등을 육손과 함께 힘을 합쳐 무찔러 수천 명의 머리를 베니 나머지 무리들이 투항해 병사 8천 명까지 얻게 된다. 이 공으로 산음후에 봉해지고 안동장군으로 승진하며 부주 상류 지역에서 환 지역까지 다스리게 된다.

2.6 메이저 데뷔 두번째 기회

222년[3]조비가 동구, 강릉, 유수 세 방향을 공격하는 군사를 일으키자 주력군으로 참전해 동구 방면의 조휴를 공격하게 되는데, 당시 오군은 폭풍을 만나 수천 명이 익사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이때 길이 멀어서 늦게 도착한 하제의 군대가 도착한다.

하지만 이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는데, 하제는 사치스러워서 호화로운 복장을 좋아했다.[4]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하제의 군대를 보고 조휴의 군대가 겁을 먹고 싸우기도 전에 도망간 것. 이렇게 하제는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주력 전투 참전의 기회를 싸우지도 못하고 끝내게 되었으며, 그래도 적을 물러가게 했으니 후장군으로 승진해 부절을 받고 서주목을 겸하게 되었다.

223년에는 진종이라는 위나라에 배반한 자가 오나라를 약탈하자 하제는 호종, 유소, 미방, 선우단과 함께 진종을 급습해 사로잡았으며, 227년 하제는 세상을 떠난다. 아들 하달과 하경은 모두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으며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고 한다.

3 기타

이렇게 손권이 하제에게 잘 대해주면서도 메이저 데뷔에 대해선 까다로웠던 이유로 하제를 맘에 안들어했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이건 추측일 뿐으로 하제만큼 토벌에 특화된 장수가 적었고 반란이 잦던 오나라 특성상 믿을만한 장수를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메이저 전투만이 전공은 아니며 대규모 전투는 참전해봐야 부지기수로 적군 네임드를 만나 관광당하지 않으면 다행히고 전투 규모에 비해 전공 올리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에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또한 단순히 대규모 전투에 편성하지 않았단 이유로 하제를 맘에 들지 않았단건 너무 성급한 일축이다. 정말로 맘에 들지 않았다면 아예 좌천시켰을 테고, 실제로는 조비의 남정때 대규모 수비전에 참여한 만큼 기회가 안왔을 뿐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손권이 되도록이면 주려고 애 쓴 흔적이 보인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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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정사에서만 등장하는 것 치고는 일단 나오면 능력치는 좋은 편이다. 그러나 그 호화스럽다는 갑옷은 절대로 일러스트에서 구현되지 않는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7/71/68/70. 분투, 연사, 연사, 고무를 가지고 있으니 B+급은 된다. 보통 영웅집결에서 하드코어 플레이를 한다면 형남4군이나 교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제는 제법 준수한 능력치에 깡시골 '교지'의 재야장수이기 때문에 쓸모가 많다.

삼국지 10에서는 83/73/72/59/66의 고만고만한 무관의 능력치. 통솔이 준수하고 지력도 낮지 않아 전투에선 인재가 풍부한 손권군임을 감안하더라도 쓸만하며 치안특기가 있기 때문에 내정요원으로도 쓸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83/78/72/64/73으로 좀 더 상향되었다. 다만 특기가 앙양으로 좀 잉여이고, 손책-손권군 소속인지라 하제보다 좋은 장수가 많기때문에 능력치 자체로는 많이 묻힌다. 그러나 유저가 형주, 양주의 약소군주로 하다 보면 대단히 유용하다. 일단 유저에게 자주 쳐들어오고(...), 포로로 사로잡아서 푹 고아내면 매우 높은 확률로 부하장수가 된다. 수군S에 창병A, 극병A, 노병A, 병기A라는 보기드문 훌륭한 병종적성과 통무지매가 모두 70을 넘는 준수한 스탯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삼국지 12에선 PK에서 추가. 전법은 복병 능력치는 얼굴과 무력만 조금 너프가 되었다. 대신 지력이 많이 상승되었다. 83/70/82/64 병종은 궁병.

삼국지 13에서의 전법은 궁병공격진으로 좋지 않으므로 전법 포인트는 다른 장수에게 투자하자. 병종은 창병과 궁병 A, 기병 C이다. 이번작에서는 전체적으로 특기도 부실한 편이라 왕랑군의 희망이었던 전작보다는 많이 하향이 되었다.

왠지 삼국지 7에서는 유엽유화로 오역된 것처럼 가제로 오역됐는데 둘 다 파워업키트에서 바르게 수정되었다. 그래도 이쪽은 자치통감 등에 가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변명할 말이라도 있으니 유엽보다는 나은가?

호화로운 복장을 좋아하고 자신의 군대를 꾸몄다는 말 때문인지 삼국전투기에서는 토니 스타크로 나왔다. 역시 여기서도 메이저 데뷔는 못하고 반란군만 토벌하면서 큰 전투에는 참가를 못한 장수로 나온다. 삼국전투기 외전에서도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일러스트 참전. 등급은 노멀레어이다. 군단 편성시 대장편성을 하면 클론 모델로 참전하며, 무기는 선곤으로 손책의 무기를 들고 등장한다. 나르시스트 얼굴을 가졌지만 묘하게 야만인스런 복장을 하고 있다. 토벌왕 설정과 화려한 치장을 절묘하게 섞은 듯 싶다.
  1. 이 때 다른 오나라 주력군은 황조 토벌, 적벽대전 중 이었다.
  2. 이 당시 주력군은 유수구 전투 중이었다.
  3. 이릉대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4. 강표전에 따르면 밑에 있던 사람이 여범과 하제는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고 고자질했을 정도지만 손권은 관중환공의 예를 들며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