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

1 중국 전설상의 군주 유소씨(有巢氏)

중국의 왕(삼황오제)
(신설)1대 여와 / 유소2대 수인

중국 신화인 삼황오제의 한명이다. 대소씨(大巢氏)라고도 불리며 사람들에게 나무 위에 집을 지어 맹수와 벌레 등의 위협을 피해 생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劉劭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 자는 공재(孔才).

광평군 한단현 출신으로 처음에는 건안 연간[1]에 계리가 되어 상서령 순욱의 수하가 되었는데, 태사가 글을 올려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니 당시 순욱의 관부에 있던 수십 명이 새해에 지내는 조묘 제사를 폐지해야 한다고 하거나 조회를 뒤로 물려야 된다고 했지만 오직 유소만이 이를 반대한다. 숙욱이 유소의 말에 찬성해 조회를 옛날처럼 하도록 하니 과연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사대부 치려가 그를 초빙하려고 했는데, 마침 치려가 면직되어 없던 일이 되지만 유소는 태자태인에 임명되고 후에 비서랑으로 승진한다. 황초 연간[2]에 상서랑, 산기시랑이 되어 오경에 관한 여러가지 서적을 모아 황람을 만들었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진류태수로 임명되어 지방에서 일하면서 교화를 존중해 백성들에게 칭찬받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기도위가 되었으며, 유애, 순선과 함께 법률을 제정해 신률 18편을 만들고 율락론을 지어 산기상시로 승진했다. 228년에 환현에서 시의에게 회유되어 조휴가 석정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233년에 손권이 합비로 침공해 만총이 원군을 요청하자 유소는 소수의 군대를 대군으로 위장해서 공격하게 하니 손권은 장제한테 속은 것도 잊고 이번에도 또 속아서 군대가 도착하자 퇴각했으며, 이후 조예가 인재를 추천하라고 할 당시에 하후혜에게 추천을 받는다.

233년에 손권공손연을 연왕에 봉한 사실이 234년에야 알려지자 다른 신하들이 공손연의 계리를 억류하고 그를 토벌하자고 주장할 때 유소는 원상의 예를 상기시키며 가만히 있으라고 권하는데 과연 공손연은 손권의 사자 장미 등의 목을 베어 보냈다. 하지만 이 때 유소는 법률을 제정하라는 조서를 받았으나 완성하지 못해 노육에게 충고를 받는다(…)

경초 연간[3]에 조서를 받아 도관도과를 짓고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리니 조예가 유소의 고과론에 토론하도록 하지만 부하최림이 열렬히 이 말에 반대했으며, 유소는 또 예악제도를 제정해 풍속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해 악론 14편을 지어 완성을 했다. 그러나 아직 조예에게 바치지는 않았다가 239년에 조예가 죽으면서 시행하지 못했다.

정시 연간[4] 연간에 경학을 손에 들고 강의했으며, 관내후로 봉해졌다. 그가 죽은 후에는 광록훈으로 봉해지고 아들 유림이 후사를 잇는다.

법론, 인물지 류 등 백여 편의 저술이 있으니 진수는 문체와 품행이 모두 우수했다고 평했다.

2.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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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며 능력치는 정치가 가장 높은 문관형인데 통솔이 바닥까진 아니다. 그렇다고 전장에서 굴릴 수 있다는건 아니지만...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1/62/72/86의 만능형 장수. 제사, 누선, 혼란,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6/51/73/82/65에 특기는 농업,반목,반목,논파 4개. 통솔 66이면 못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반목 하나 들고 전장에 내보내긴 무리가 있고, 정치 82를 살린 농업셔틀이 무난하며 공적좀 오르면 후방에 태수로 박아놓는 쪽을 추천. 일러스트는 왠지 실실 웃고있다.

삼국지 11편의 특기는 시상.

3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劉邵

생몰년도 미상

223년 5월에 오나라의 장수인 진종이 병사를 이끌고 모반해 위나라로 귀순했다가 장강으로부터 수백 리 떨어진 곳을 근거지로 두고 변방 지역을 여러 차례 침범해 해를 끼쳤는데, 손권은 이 보고를 듣고 그 행동이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해 무척 분노를 느꼈다.

223년 6월에 종휴가 군사를 되돌리고 삼로 전투가 끝났으므로 결국 손권은 호종하제에게 진종을 급습하도록 명령하면서 하제는 호종과 함께 오나라의 장수였다가 위나라로 투항한 기춘태수 진종을 토벌하게 되었는데, 유소도 종군해서 미방, 선우단과 함께 하제의 지휘를 받아 기춘을 습격해 진종을 생포했다.

진종을 토벌할 때 종군해 사로잡은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이라 어떤 벼슬을 했는지 알 수 없다.

4 육조시대 유송의 황족

항목 참조.

5 고려의 대신

柳韶
생년미상 ~ 1038

고려 현종, 덕종때의 대신으로서 천리장성을 축조했다.
정주 류씨의 시조라고도 전한다.

현종 때 등용된 후 중앙의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1029년 왕명으로 흥화진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을 수리하는 일을 맡으며 변방에서 근무하기 시작한다. 이후 현종이 승하하고 덕종이 즉위하자 중앙으로 돌아와 평장사 벼슬을 지내게 되는데 이 벼슬은 종2품으로서 당시 수상격이었던 문하시중 다음가는 고위직이었다. 1033년(덕종 2년) 고려는 국경방어를 위한 장성의 축조를 기획하게 되었고 변방경험이 많은 유소가 이 일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리장성이다. 조정의 No. 2 대신이 직접 담당할 정도였으니 정말 국운을 건 사업이었던듯..

유소는 일단 옛 석성(石城)을 수리하고 위원진, 정융진을 두어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수리한 석성들을 바탕으로 축성 계획을 세웠고, 국경 각 지에 산재해 있던 성들을 연결하고 새로 축조하거나 보수하였다.
유소는 그 공으로 1034년 장성축조의 공으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상주국 대위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上柱國大尉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다만 장성의 완성은 1044년(정종 10년)에 이루었는데 1038년에 죽어 그 완성을 보진 못하였다.

6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올렸던 상소

유소(상소) 항목 참조.
  1. 196 ~ 220년이다.
  2. 220 ~ 226년이다.
  3. 237 ~ 239년이다.
  4. 240 ~ 249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