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 Christian Andersen
1805년 4월 2일 ~ 1875년 8월 4일
초상화 | 사진 |
1 개요
자기 작품이 혹평 받으면 들판에서 뒹굴며 우셨던분
덴마크가 낳은 세계 최고의 동화 작가 중 한 명. 키는 185cm. 안데르센의 이름은 어릴때 루터교회에서 세례를 받을때 대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다.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연극배우를 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상경했으나,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까닭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결국 정규 교육 부족은, 배우로서의 필요한 자질인 문법이나 발음을 부족하게 만들었고, 안데르센은 연극배우로 성공하지 못했다.
자살까지도 생각했으나, 그의 글솜씨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안 국회의원 요나스 콜린의 충고로 라틴어 학교에 입학, 문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생활도 학교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이 학교장은 훗날 안데르센이 60세가 넘어서도 악몽에 등장하는 등 그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교장은 그에게 모든 창작 활동을 금지하며 하찮게 여기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에게 악담을 내뱉었고, 이는 나중에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 영향을 주었다.
의외로 처음에는 주로 소설을 집필했다.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상당해 거의 첫 소설이었던 '즉흥시인'의 경우 문단과 대중 양쪽의 호평을 받으며 바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이외에도 어느 정도 소설을 집필했고 생전에는 모두 호평을 받고 많이 읽혔다. 다만 '즉흥시인'을 제외하고는 요즘은 거의 잊혀졌다. 사실 이제 즉흥시인도 그다지 많이 읽히는 편은 아니고.
30살인 1835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어린이를 속이는 동화를 쓴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은 모양. 다만 명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앞에는 "'즉흥시인'을 집필한 뛰어난 소설가"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843년에 발표한 미운 오리 새끼가 대성공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사람들이 안데르센의 동화에 빠져들었다. 안데르센의 유명세는 워낙 대단해서 그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고, 말년에는 특별 연금까지 수령하는 등 국내외적인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안데르센을 애호하던 유명인사 가운데서 찰스 디킨스는 그와 여러번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 1875년 8월 4일, 병마에 시달리던 안데르센은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8월 11일에 거행된 장례식에는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와 루이세 왕비까지 참석했다.
동화가 유치하지 않고, 어른이 읽어도 이야기에 깊숙이 몰입해 가슴 속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 또한 안데르센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불우한 추억들과 주변 환경을 상당량 투영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읽기엔 이야기가 너무 암울하고 심지어 배드 엔딩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들도 많다. 자신의 동화에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인물들을 캐릭터화 시켜서 등장시키는 작품도 많다.
어째서인지 그의 동화들 중에는 분명 작가가 있는데도 발단이나 결말 등에서 판본이 여러 가지인 작품이 제법 있다. 눈의 여왕, 빨간구두, 인어공주 항목 참조. 이것이 안데르센 스스로 작품에 수정을 자주 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번역자나 편집자들이 아동용으로 눈높이를 맞추느라 내용을 수정하거나 해서인지는 추가바람.
그의 작품은 영화, 애니메이션, 발레 등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각색되었다.
동화로 유명하지만 다수의 시와 희곡을 집필한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다. 동화를 제외하고 잘 알려진 안데르센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즉흥 시인(Improvisatoren)"이 있다.
2 독신
양성애자였던 안데르센은 평생 어떤 사람과도 결혼하거나 사귀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독신으로 살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릴 때쓴 그의 일기에는 평생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다짐이 적혀있다고 한다.[1] 한편 젊은 시절 짝사랑 했던 리보르그 보이트(Riborg voigt)에게 차인 것이 충격이 되었기 때문에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놀림을 당해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안데르센이 난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상당히 긴 편지로 그 여자에게 고백을 했건만, 겨우 두 줄밖에 안 되는 답장으로 무참하게 차였다. 대신 그 여자는 그의 용기를 사서 그가 쓴 동화의 애독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독신으로 살겠다던 초년의 맹세가 아주 굳건했다고 볼 수는 없는게 그 이후에도 그는 소피 외르스테드(Sophie Ørsted), 후원자의 딸인 루이스 콜린(Louise Collin)등에 관심을 표한 바가 있다. 하지만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데는 실패했고, 동화 나이팅게일을 쓰는데 영감을 준 스웨덴의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에게도 고백했으나 린드는 안데르센을 친오빠처럼 생각했기에 거절했다고 했다.
한편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는 연하의 남성 에드워드 콜린(Edvard collin)과의 관계를 반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친구사이었지만 내심 콜린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안데르센은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며 절절한 편지로 고백을 감행했으나 또 거절당했다. 콜린은 이성애자였기 때문. 고백을 거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린다. 이 일 때문에 안데르센은 굉장히 상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안데르센이 쓴 작품이 인어공주로 그의 연구자들은 왕자가 콜린을,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상징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래도 콜린은 말년에 쓴 회고록에서 이 때의 일을 언급하며 자신이 안데르센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를 잘 몰랐고 그 때문에 그가 더 많이 상처 입었던 것이라고 썼다. 못내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었던 모양.
그 외에 그가 사랑했던 남자로는 덴마크의 댄서 해럴드 샤르프(Harald Scharff),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알렉산더가 있지만 역시 사귀는 데는 실패했다.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종교적 신조에 반하는 일이었던 만큼 남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일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안데르센은 늘 짝사랑 상대에게 집착에 가까운 편지와 관심을 보여줬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안데르센의 짝이 되어 주지는 않았다. 그가 훗날 쓴 편지에서 말하기를, 자신에게 행복은 가정의 형태로 찾아올 수도 있었지만 대신 뮤즈가 되어 찾아와 주었다고.
3 평가
전기 작가 재키 울슐라거 曰,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다. ‘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이다. 우울한 ‘전나무'이기도 하고,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다. |
은하영웅전설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자신의 추리 모험소설 월식도의 마물에 찰스 디킨스와 함께 안데르센을 등장시켰는데, 상당히 소심하고 정서불안의 어린애 같은 인물로 묘사했다. 작가의 말로는, 안데르센에 대해 조사하니 실제로 그런 성격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소설에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는 대화들은 실제로 이 둘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처음 안데르센 동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이런 비교육적인 이야기를 애들 보는 동화라고 쓰다니!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물론 안데르센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혹평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갔다. 그런데 안데르센 동화 중 몇몇 편은 지금 시점에서 봐도 애들 보라고 쓴 게 아닌 것 같은 수위를 자랑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호지 급의 막장도를 자랑하는 부시통 이라던가... 아예 그것이 알고싶다 와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섞어놓은듯한 개막장의 큰 크라우스 작은 크라우스 이야기는 대략 충격과 공포..
안데르센이 동화에 끼친 영향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창작동화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동화는 그림형제처럼 민담을 재구성하거나, 저자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축약, 왜곡,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동화의 전부였었다. 안데르센도 초창기에는 그림형제처럼 민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썼으나, 점차 자신이 직접 창작한 이야기의 비중을 늘려나갔다. 그의 동화는 자칫 교훈적이고 도구적인 의미로만 흐를 수 있는 동화라는 장르에 예술성을 불어넣어, 동화가 민담의 하위장르가 아니라, 동화 스스로가 문학적으로 훌륭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동화라는 장르의 예술적 자율성을 불어넣은 셈. 당장 우리가 알고 있는 창작 동화의 규격과, 틀, 이야기 구조, 문체 등과 같은 바운더리는 전부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어찌보면 그의 동화는 이러한 근대 동화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이 괜히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의 창작 동화가 없었다면, <피터팬>도 <앨리스>도, 로알드 달의 동화도, 미하엘 엔데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심지어 호빗이나 해리 포터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4 안데르센의 대표 작품
5 대중문화 속의 안데르센
- 게임 《Fate/EXTRA CCC》에서 캐스터로 등장한다.
성장하면 절도 있고 올바른 성인이 되기 때문에 천재였던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소환된 것인지, 자신의 인생을 싫어해서인지, 마스터의 취향인지(...) 쇼타로 소환되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코야스
6 관련 항목
- ↑ Lepage, Robert (18 January 2006). "Bedtime stories". The Guardian. Retrieved 19 July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