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기업은 죽어서 아파트(...)를 남긴다 한일합섬은 죽어서 사립학교도 몇개 남겼다
김한수가 창업한 회사로 1973년 한국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에 성공하여 당시 새로 만들어진 억불탑의 최초 수상회사였다. 2세 김중원 대에 몰락하였다.
한때 새마을운동으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 ~ 1970년대를 풍미한 대규모 섬유업체. 합성섬유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1964년 부산 전포동에서 창업한 이래 1967년 마산시 양덕동 222번지[1]로 이전한 후 줄곧 그 자리를 지켰다.
옛 마산에서는 봉암공단의 마산수출자유지역[2]과 함께 향토 기업의 대명사로[3],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작업을 앞두고 전주의 미원&쌍방울 컨소시엄과 야구단 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 적도 있었다. 결국 미원&쌍방울 컨소시엄이 승리함으로서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 프로야구 팀을 창단하는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2011년에야 간신히 마창 지역을 연고지로 NC 다이노스가 창단을 맞이하게 된다.
2 몰락
1990년대 초반부터 연이은 노동 인력 감축이 이어지고, 수원공장은 진작에 문을 닫았다. 특히 본사인 마산공장마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게 되면서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김중원 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맞이한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해 정부로부터 기업퇴출명령을 받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4]
특히 공장 폐쇄로 인한 여파는 결과적으로 1990년 50만을 훌쩍 넘었던 마산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특히나 마산 내에서도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대기업이었던지라 타격은 실로 컸다. 마산이 주력했던 섬유 산업이 몰락해가니, 1995년 도농통합 직전의 마산 인구는 35만명 수준까지 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15만명(!)'이라는 인구가 5년 새에 다 빠져나간 것이다![5] 그야말로 향토기업이 몰락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교훈 사례.
당시 운영 중이었던 여자배구 팀도 결국 해체되는 비운을 맞이했다.[6]
그 뒤로는 해외 생산에 주력해 오다가, 2007년에 동양그룹으로 인수되었다.
3 아파트 한일타운
수원시 조원동 한일타운.
마산 한일타운.
한편 한일합섬은 업체 직원의 숙소 마련 겸 지역사회의 공헌 목적으로 한일타운이라는 브랜드로 아파트를 대규모 신축하였다. 특이한 점은 부지가 모두 과거 한일합섬의 소유였던 곳으로, 공장이 있었던 마산과 수원에 각각 건설하였다. 마산은 옛 한일합섬 본사 부지를 둘러싸고 1~4차(!)까지 건설되었으며, 수원은 현재의 장안구청(조원동) 북쪽에 조성하였다. 이 한일타운은 경기도 내 단일 아파트 단지로는 최대인 5282세대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 아파트가 지어진지 꽤 됐지만 여러모로 인기있는 아파트.[7]
마지막으로 한일합섬 마산 본사 부지에는 폐건물이 2000년대 중반까지 방치되어 오다가 태영건설의 메트로시티 1,2단지가 들어섰다. 특히 이 부지를 놓고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던 시기[8]에 주거용지로 전환한 것을 놓고 온갖 비판이 끊이질 않았었다.[9] 그 덕에 주거단지는 2010년대를 훌쩍 넘긴 이후에야 간신히 1단지가, 2015년에야 2단지가 조성되었다.
지역 연구가 허정도 교수는 마산시의 졸속행정과 기업의 판단미스로 낳은 합작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4 학교법인 한효학원
한일합섬은 육영사업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기업이었다. 이미 1963년에 김한수 사장은 부산 소재 학교법인 명지학원(부산 경일중고등학교)의 이사장을 지내고 있었고, 1970년대에는 산업체 부설학교를 설립하면서 그 의중을 확고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1974년에 학교법인 한효학원을 설립하면서 마산 한일합섬 공장 부설 산업체 부설학교인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지금의 마산한일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하였는데 국내 최초의 산업체 부설학교이자 국내 최대의 산업체 부설학교로 정말 유명하였다. 많은 산업체 부설학교들이 기업의 생색내기용이던 시절 여기만큼은 정말 제대로 된 산업체 부설학교였다. 모기업에서 자금 지원도 많았고 학교 시설도 상당히 훌륭해서[10]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극소수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색내기용 산업체 부설학교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1979년에 김해 공장 부설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1980년에 수원과 대구 공장 부설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만들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자 대한민국의 생활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산업체 부설학교의 수요는 급감하게 되었고 한일합섬 측에서는 이들 학교를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하였으나, 예외적으로 대구에 있던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의 경우는 한효학원 산하 산업체 부설학교 중에서는 가장 약체였던 탓인지는 몰라도 유일하게 폐교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일합섬 한효학원 계열 학교들은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된 마산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현 한일여자고등학교), 김해 한일여자고등학교,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로 남게 되었나 한효학원이 2010년 들면서 경영난을 겪게 되자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는 계열분리되어서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게 되었고, 2016년 현재는 마산 한일여자고등학교와 김해 한일여자고등학교 2개교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학교의 운영주체는 2016년 현재도 옛 한일합섬 계열로써 사실상 한일합섬의 현존하는 마지막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옛 한일합섬 계열은 현재로써는 학교법인 형태로만 남아있는 상황. [11]
5 관련 문서
- ↑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했다. 지금의 메트로시티 단지 자리.
- ↑ 현재의 마산자유무역지역
- ↑ 무학이나 몽고식품도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규모 면에서는 한일합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 이 때 같이 퇴출된 곳이 동남은행이다.
- ↑ 마산시는 이 때의 인구 감소 여파로 도농통합 때 내서읍, 삼진면, 구산면을 흡수했음에도 45만명이 채 되지 않았었다. 그마저도 2010년 통합 창원시 출범 직전엔 40만 8천명 수준으로 간신히 40만명에 턱걸이했을 정도. 이중 7만 3천명 정도가 내서읍 인구, 3만명 정도가 구산면+삼진면 인구 임을 고려할 때, 마산 시내지역엔 30만명도 채 되지 않는 인구가 남아있었다는 소리다.
- ↑ 대표적인 선수가 최광희, 김남순(한국전력 김철수 수석코치의 부인), 이수정(現 흥국생명 세터코치), 박미경 등이 있다.
- ↑ 우연의 일치인지, 수원의 한일타운과 마산의 한일타운 근처에 홈플러스와 야구장이 있다.
- ↑ 사실 공장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으나, 기업이 멀쩡하진 않았던 시기였다. 앞서 서술한 무리한 사업 확장때문에...
- ↑ 물론 이때는 전자제품이나 반도체를 만들던 회사나 과자 만들던 회사 까지도 건설사업부를 만들어서 아파트 건설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아파트 열풍이 어마어마하던 시기였다.
- ↑ 마산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는 시설 면에서는 산업체 부설학교 중에서는 가장 최고급이었으며, 당시의 어지간한 일반 정규 고등학교 보다도 훨씬 크고 우수한 시설을 자랑했다. # 21세기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훌륭한 시설로, 그 덕분에 정규 고등학교로 전환할때도 별다른 시설의 증축 없이 그대로 정규 학교로 전환하였다.
- ↑ 과거 한국 최대의 자동차 재벌이었던 신진자동차 역시도 현재는 학교법인 신진학원(신진자동차고등학교)으로만 현존하고 있어서 한일합섬과 비슷한 말로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