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푸

한푸를 입은 중국 여인
한푸를 입은 중국 남성

일부는 사극 복장 같은데 과연 고증이...?

1 개요

정체 : 漢服간체 : 汉服hànfú
다른 명칭漢裝華服

한국식 한문 독음으로는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처럼 둘 다 한복이지만, 한자가 漢服과 韓服으로 다르다. 때문에 중국식 한문 독음에 따라 '한푸(han-fu)'라고 구분에서 일컫는다. 또한 전통의상은 대게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부르고 표기하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한푸라 일컫는 것이 맞다. 우리가 일본의 전통의상을 한국식 한문 독음대로 '착물(着物)'이 아닌 기모노라 하고, 만주족의 전통의상을 '기포(旗袍)'가 아닌 치파오[1]라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 전통 의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치파오(旗袍)는 조 이후 전래된 만주족의 전통복장에서 비롯된 복식으로, 이전 한족의 복식과는 차이가 크다. 한푸(漢服)의 경우 본래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복(韓服)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북방계 호복을 들여오면서 바지를 도입하게 된다. 중국의 한푸는 여러 모로 한국의 한복과 깊은 연관을 맺어 왔는데, 중국식 관복제와 문물을 수입하면서 한푸도 함께 들어왔기 때문. 특히 곤룡포 같은 어의나 관복은 전부 중국식이다.[2] 본래 북방계 복식의 특징이던 좁은 소매를 지니고 있던 한복(韓服)은 한푸(漢服)의 영향을 받아 소매가 넓어졌고, 중국도 마찬가지로 몽골쪽[3]에서 유래한 호복의 영향을 받아 당송시기이후부턴 북방계 호복양식인 바지와 저고리를 한푸의 일부로 받아들였고,주로 거란족.선비족같은 몽골계 유목민이 입던 호복인 단령을 수당시기부터 받아들이기도 했다.수나라와 당나라자체가 황실지도층이 한족에 동화된 선비족계통이어서 선비족의 호복문화가 당대 중국의복문화에 매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원래 위아래 한 벌인 통옷에서 발전했으며, 기모노와 마찬가지로 마름질(천을 자르는 일)하지 않고 바느질한다.[4] 더 쉽게 말하자면 각 부분을 조각조각 잘라서 잇지 않고 천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든다.

최근 대장금의 인기와 한류의 영향에 의한 한복의 인지도 상승으로 중국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6년 베이징대 역사학과 학생들이 복원한 한푸를 홍보하기 위해 입고 시민들과 만났으나 한복 또는 대장금 옷이라는 반응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링크)[5]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한족들의 민족주의 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한족의 한푸를 입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근데 전국 시대부터 이민족들의 옷(호복)이 유입(참조 링크)되어 중국 역사가 흘러가면 갈수록 이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유야 당연히 활동이 편해서. 실제로 호복 유입 전의 한푸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진심으로 한족의 한푸를 입자고 할 거면 한국의 심의 비슷한 옷을 입어야 한다.

즉, 치파오 인민복 외 모든 중국 시대의 복식을 한푸라 할 수 있다.

사실 같은 시대라도 의복은 천차만별이라, 가령 조복식의 예복, 단령 같은 공복, 평상복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해 여기에 나와있는 옷들은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한 의복들은 관련 링크의 "연관복차"를 클릭하여 왕과 귀족들 의복을 확인하면 볼 수 있다. 일단 고려 때의 의복이지만 상위층은 중국의 의복을 채용하였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조복, 면복, 구장복, 칠장복, 공복 등을 참고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그 의복에 대한 상세한 출처가 있어 어느 시대 중국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다.(사실 본 링크의 의복들 대다수가 복원 사료로 중국의 의복에 근거하여 복원)

1.1 호복이란?


이것이 바로 호복.

한푸보다 오히려 한복과 비슷하지 않은가? 모자에 깃털이 있는 등,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복식과도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한복 자체가 북방계인 알타이계 복식이 근간이다. 호복이란 게 이런 북방계 복식을 받아들인 것이니 비슷한 것은 당연지사. 소매가 좁은 것이 바로 정통 한푸의 통소매와 대비되는 활동성이 높은 호복의 특징이다.

자세한 것은 호복 문서 참조.

2 시대별 한푸의 모습

2.1 한나라 이전

상(은)나라 시대 한푸.오스프리에서 그린 주나라 시대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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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복식 계통인 호복 스타일과 달리 바지가 없고 남녀 모두 치마가 발달했으며, 몹에 겹겹이 둘둘 감는 형식이다. 조선시대 한국의 선비들이 주로 입은 심의는 이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2 선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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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한나라, 삼국시대

사진은 한나라, 삼국시대(위, 촉, 오 등) 여성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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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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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대 여성 한푸. 당은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의 교류도 많고 문화와 경제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였다. 중국 고유의 문화에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융합하여 많은 발전을 보였다. 의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러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유교적인 관습에 제한받던 여성들의 의복은 굉장히 개방적으로 변해갔다. 옷깃이 내려가고 소매가 넓고 크며 치마를 허리 높이 묶어 가슴을 강조했으며, 투명한 얇은 비단으로 몸만 가리는 대담한 형태의 복식이었다. 한국은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 왕족, 귀족 등 고위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당나라풍 복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했고 일본기모노는 당나라 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일부 무식한 한/중/일 네티즌들이 기모노의 근간이 당나라 한푸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가를 자청하는 이들마저 진지하게 그런 주장을 펴는 경우가 있으나, 기모노의 근간은 한복과 마찬가지로 호복이다. 동시기 한복과 기모노 모두 당나라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이지 아예 당나라 복식이 한복과 기모노의 근간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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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성행해 화장술이 발달했다.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짙은 눈썹, 펭귄같은 입술, 과한 볼터치로 포인트를 주는게 특징이다.

2.5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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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때 의복은 당나라의 의복에 송나라만의 특징을 더했다. 당나라와 달리 정세가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대담하고 화려함보다는 보수적이고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당나라 때의 대담함은 어디로 가고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맸다

두번째 그림에서 6번째 장면을 보면 기본적으로 상류층 여자들은 긴 치마 위에 짧은 치마를 둘렀고 그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배자를 입었다. 이 배자의 소매와 옷깃에 자수를 넣어 장식했다.

2.6 명나라

여러 모로 고려조선시대 한복과 많이 닮았는데, 이는 원나라 말기 당시 갔던 환관, 공녀들에 의해 고려의 풍속의 영향을 받은 고려양(高麗樣)이라고 하여 한복 형태의 복장이 유행하게 되고 명나라 초기 복식에 그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링크 참조

명나라 초기의 여성 고려양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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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푸는 누가 봐도 고려, 조선의 한복과 지나치게 닮았는데 이건 중국의 전통 한푸가 아니라 <고려양 한푸(高丽样 汉服)>라고 원말명초에 북경을 중심으로 한 북중국 일대에 유행했던 복장이다. 이후에도 영락제의 북경 천도로 계속 유행하다가 홍치제 때 고려양 복식을 금지하여 짦은 시간에 명확한 투피스 형태의 고려양 복식에서, 길고 가느다란 실루엣을 가진 형태의 한푸로 돌아갔다.[6]

일부 무식한 국까환빠들이 위와 같은 그림을 대면서 해당 복식 형태는 송나라 고유의 전통복식이라고 주장하며 한복은 중국 복식의 짝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근본적으로 원나라 말기에 유행했던 고려양이나 북방계 호복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으로, 중국에서도 원나라 말기로부터 명나라 초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고려양이 유행했다는 것을 모르고 이 한푸가 조선 한복의 원형이 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명 시대의 한푸가 "고려양"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것도 포함). ]

명나라 중~후기의 여성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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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명나라 여성들은 흔히 위 그림과 같은 실루엣의 의복을 입었다. 전체적인 실루엣이 1자 형태로 직선적으로 떨어지는 이 의복은, 앞 뒤를 남기고 양옆으로 밑단까지 주름을 끝까지 잡은 긴 치마(마면군馬面裙)에 길게 내려오는 저고리(아오)를 입고 그 위에 소매와 옷깃에 자수가 들어간 겉옷(평상시에는 소매가 좁은 착수 배자)이나 조끼(배심,비갑)를 입었다. 겉옷의 네모난 깃(방령)에 주로 장식이 들어갔다.
명 여성들은 조선 여성들과 다르게 평상시에도 치마와 저고리만 입기보다는 위에 다양한 형태의 겉옷을 입는 것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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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복식인 도포(道袍,dao-pao)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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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복을 입은 모습.

참고로 남성의 복장이 한국에서도 전통 혼례복으로 사용되는 조선시대 관복과 비슷한 것은 단령 자체가 중국에서 들어온 옷이기 때문이다.[7] 그래서 청나라 때는 조선 사람들이 사신으로 오거나 중국 유학자들이 조선에 갔을때 조선 사람들의 옷과 상투를 보고 '이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명나라의 옷이다!' 라면서 통곡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심의, 관복인 단령은 모두 한푸가 넘어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반면, 조선인들은 청나라에 가서 변발 치파오 오랑캐[8]이 가득한 것을 보고 통곡했다고 한다. 아아, 중원의 세계에 오랑캐가 가득해

이들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고, 승려와 도사라는 특정 신분은 여전히 한푸를 입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사들은 청나라 때에도 변발을 하지 않았다.

2.7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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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전기와 후기의 대표적인 여성 의상과, 청 초기의 한족 여성 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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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중후기~ 근대로 넘어가는 때의 여성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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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후궁견환전>에서, 입궁 전 한족의 평상복 차림을 한 주인공 견환. 견환은 한군기 출신이다.

청 시대 한족 여성들은 치파오를 입는 만주족 여성과 달리, 치마(췬)와 저고리(아오)로 구성된 복장을 계속 입었다. 더불어 전족 풍습도 유지했다. 남자들의 복식은 만주족 의상에 동화되었으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한족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깥 활동이 적은 여자들의 풍습은 청나라 정부에서[9]그냥 내버려둔 측면이 크다.
명나라 시대에 존재했던 <하피>는 원래는 긴 띠의 형태였으나 청 시대에 와서는 조끼 형태의 겉옷으로 변화했고, 한족 명부(귀부인)는 길일이 되면 <망포>라는 한족의 의복을 입고, 조끼로 변한 하피를 덧입고 그 위에 <운견>이라는, 역시 명 시대부터 이어온 부속 장식을 걸쳤다. 머리에는 명 시대부터 내려왔던 봉관을 썼다.

청 시대에는 이질적으로 정주민족인 한족들이 이부식으로 나뉜 복장을 하고 만주족이 긴 치파오를 입었는데, 이것은 원-명을 거치면서 한족 문화에 이부식 옷차림이 정착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만주족의 의복 역시 완벽한 원피스 형태 복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만주족의 옷은 이부식 복장 위에 포를 덧입는 것으로 봐야 맞다. 만주족의 치파오는 긴 겉옷(포)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안쪽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저고리와 바지의 이부식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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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시대의 아오와 마면군.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만주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상의의 경우에는 옷의 형태와 여밈이 치파오와 비슷한 단추 여밈으로 바뀌었다.
반면 치마는 명나라 시대부터 입었던 마면군을 계속해서 입었는데, 청대에는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변했다. 난간 모양처럼 치마폭에 선을 두르거나, 무수히 많은 주름을 잡고 그 위에 자수를 놓는 등 사치스럽게 장식한 치마가 많았다.
청 시대에는 하의로 바지만을 입기도 했는데, 이것은 만주족 식 문화로,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만 입는 것은 초중기에는 주로 하급 계층의 여성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청 말이 되면 신분과 종족을 막론하고 한족 여성도 저고리와 바지만 입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한족 여성들은 이부식 의상을 고수했지만 정작 한족 국가인 중화민국수립 이후에는.오히려 만주족이 입었던 치파오를 입기 시작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 이미지는 1920~30년도 중화민국시기에 한족들이 개량한 의상으로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알고보면 100년도 채 되지않은 전통의상[11]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청 시대의 한푸는 중국식 전통 혼례 복장으로 많이 쓰인다. 요새 들어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세지면서 명 시대의 한푸나 그 이전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많은 화교 집단과 한족 집단이 청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식으로 쓴다[12]. 청 시대에도 한족 새색시는 만주족 새색시와 다른 차림으로 성장하였으므로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3 종류

  • 여기에 표기된 한자는 모두 정체자이며, 중국에서 쓰는 것은 간체자다.
  • 기모노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 전통복식은 대게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부른다. 반대로 외국에서는 한복을 한국 발음대로 표기하고 부른다. 한국식 한문 독음이 아닌 중국어 발음대로 적어야 한다.
  • 중국어 독음이 잘못되었을 경우 수정 바람.
  • 샹이시아샹(上衣下裳/shàngyīxiàshāng) : 상의와 치마를 입은 복식을 뜻하는 말로, 중국 복식을 대표하는 말로 통용된다.[13] 말 그대로 상의와 치마를 입은 것을 상의하상이라 한다.
  • 샨(衫/shān)
  • 르우(襦/rú) : 짧은 상의
  • 췬(裙/qún) :치마
  • 츠앙(裳/cháng)
  • 아오(袄/ǎo) : 상의
  • 시아페이(霞帔/xiápèi) : 목부터 앞가슴을 덮는 어깨 덧옷.
  • 페이(帔/pèi) : 덧옷
  • 미앤푸(冕服/miǎnfú)
  • 후푸(胡服/húfú)
  • 창샨(長衫/chángshān)
  • 자오샨(罩衫/zhàoshān)
  • 차오푸(朝服/cháofú)
  • 챵푸(長服/chángfú)
  • 파오샨(袍衫/páoshān)
  • 삐지아(比甲/bǐjiǎ)
  • 롱파오(龙袍/lóngpáo) : 용포
  • 망파오(蟒袍/mǎngpáo)
  • 르우췬(襦裙/rúqún) : 짦은 저고리 위에 가슴까지 치켜올린 치마를 입는 것으로, 일반적인 여자의 복식이었다.
  • 푸토우(幞頭/fútóu)
  • 잉쟈오푸토우(硬脚幞頭/yìngjiǎofútóu)
  • 리꾸안(禮冠/lǐguān)
  • 펑꾸안(鳳冠/fèngguān)
  •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
  • 후아꾸안(花冠/huāguān)
  • 우샤마오(烏沙帽/wūshāmào)
  • 뿌쯔(補字/bǔzì)
  • 따시우샨(大袖衫/dàxiùshān)
  • 띠이(翟衣/díyī)
  • 빤삐(半臂/bànbì) : 소매가 짧거나 없고 맞깃이며 허리 기장의 상의. 가슴 앞에 띠를 맸다. 배자(褙子)라고도 한다.
  • 즈뚜어(直裰/zhíduō)
  • 챵아오(長襖/chángǎo)
  • 피뿨(披帛/pībó) : 가볍고 앏은 일종의 숄. 폭이 넓고 길이는 일반적으로 2m 이상이었다.
  • 피짜(披杂/pīzá) : 명나라 대의 피백. 여러 무늬를 수놓기도 했다.
  • 쉬류췬(石榴裙/shíliuqún) : 붉은 치마. 외래 문물이 도입된 것이라 한다.
  • 쉔이(深衣/shēnyī)
  • 따오파오(道袍/dàopáo)
  • 란샨(襴衫/lánshān)
  • 미리(冪罹/mìlí)
  • 펑마오(烽帽/fēngmào)
  • 챠오터우뤼(翘頭履/qiàotóulǚ)
  • 유안링샨(圓領衫/yuánlǐngshān)
  • 따란샨(大蘭衫/dàlánshān)
  • 고려양 한푸(아오췬/袄裙/ǎoqún) : 중국에서는 '아오췬(오군)'이라는 중국의 복식을 속국인 한국에서 가져가 전승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위의 명나라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헛소리다.

당나라 한푸 관련[14]
송, 명 한푸 관련

추가 바람
  1. 중문 위키에는 만주어로 sijigiyan(시지갼)이라고 나와있다. 만주 문자 표기는 ᠰᡳᠵᡳᡤᡳᠶᠠᠨ를 오른쪽으로 세운 것으로 나온다.
  2. 엄밀히 말해 중국화된 호복식이다. 곤룡포 같은 스타일도 본래 중국 고유의 것이 아니라, 호복의 모양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삼국지처럼 당나라 이전의 사극만 봐도 황제와 신하가 모두 그런 식의 옷은 입지 않는다.
  3. 원나라,명나라시기 잠깐동안은 한반도계통 복식을,청나라때는 만주식 복식도 받아들였다.
  4. 이는 기모노가 한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5. 게다가 기모노 아니냐며 보기 꺼려했던 중국인들도 예전엔 상당히 많았었다(...). 하지만 2016년 지금은 한푸를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이 옷이 중국 전통옷임을 알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고대 복식을 기모노로 착각하는 경우가 잦은데, 한국과 중국 모두 고대 복식과의 단절과 기모노의 이미지 잠식이 일어나고 있던 셈.
  6. 이전의 문서에서는 "원피스"형태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으나, 지속적인 호복의 유입으로 한족들도 투피스(이부식二剖式) 형태의 옷을 받아들여서 입어 왔다. 물론 원조는 상의와 치마가 붙어 있는 원피스 형태의 긴 포이다. 앞선 당나라와 송나라의 한푸 역시 상의와 하의가 나누어진 이부식의 옷이다. 다만 한족들 특유의 미의식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어서, 투피스 형태의 복장도 옛날 한나라 시대의 원조 한푸처럼 몸에 착 감기는 "가늘고 긴 실루엣"을 추구하였다. 명복의 경우 명나라 중후기부터 입은 의상을 보면, 이질적이기까지 한 초기의 명나라 복장보다 송나라 시대의 가녀린 느낌과 비슷해진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때도 전기와 마찬가지로 치마(췬裙)와 저고리(아오?)로 구성된 투피스이기는 했다. 느낌과 착장법이 이전 한족식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7. 단령 자체도 중국 전통 복식은 아니고 당나라 때 들어온 서역 계통 호복의 일종이다. 다만 유목민 계통 출신으로 이민족 왕조가 아닌 정통 한족 왕조를 자칭한 수나라 당나라의 영향으로 중국화 되어버렸다.
  8. 청나라의 다수민족이 한족인 관계로 이들 중 대부분이 한족이었다! 청나라는 유목민 정부였고.한족들의 문화에 동화되는것을 막기 위해 유목민 풍속이었던 변발과 치파오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저 오랑캐들이 한족이라니!
  9. 만약에 한족 남성들이 한푸를 입다가 청나라 정부에게 발각당할 경우 아마 바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유교도나 도사들은 속발을 하고 한푸를 입었지만.
  10. 고대 한국의 기본 복장 역시 바지-저고리 위에 포를 덧입는 것이었다. 유목 문화가 남아 있는 기마민족의 공통적인 복식문화라 할 수 있다.
  11. 여기서 말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기존 치파오를 개량하여 타이트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디자인을 한 근세의 물건이다. 물론, 현대에 개량된 치파오도 엄연히 그 원본으로 만주족의 치파오가 있기에,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의상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근세에 들어, 한족-만주족 가리지 않고 중국인 여성이면 치파오를 전통 의상으로 입게 된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2. 동남아시아로 간 화교 집단인 "페라나칸" 집단의 전통 혼례 복식은 청 시대의 아오췬과 매우 비슷하다
  13. 한복은 반대로 위에 저고리, 밑에 바지를 입는다 하여 상유하고(上襦下袴)라 한다.
  14. 중국 방송이라 그런지 기모노한복의 원류가 중국이라는 식으로 말하니 참고하고 걸러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한복과 기모노 모두 호복이 근간이다. 기모노는 8세기 경 한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지만 한푸가 원류는 아니며, 한복 역시 문물 교류 과정에서 활수(闊袖)형 복식이 등장하는 등의 영향을 받고 관복 등에서 일부 복식을 도입했을 뿐, 원류는 엄연히 다른 복식이다. 한복은 속옷을 여러 겹으로 입어 하의를 부풀리기 때문에 풍성한 실루엣을 가지는데다 초기 한푸가 통옷인 것과 달리 초기부터 상의와 하의가 분리되었으며, 한푸는 기본적으로 하의는 치마를 입지만 한복은 바지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