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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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 9월 5일에 발생한 체사피크 만 해전의 모습: 왼편이 프랑스 해군, 오른편이 영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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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0월 21일에 발생한 트라팔가르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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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8월 14일에 발생한 한산도 대첩

1 개요

海戰. 말 그대로 바다에서의 전투, 전쟁 행위를 지칭한다. 극단적인 상황일 경우 그냥 맨몸으로 치고 받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육상전에 비해, 해전은 기본적으로 선박 위에 탑승하여 치러야 하기 때문에 육상전 보다는 다소 늦게 출현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최초로 추정되는 해전의 기록이 있고 기원전 5세기에 이미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 해군과 싸우는 등, 해상활동이 본격화되고 이를 통한 군사력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발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는 도시가 없고 당연히 바다 그 자체의 가치는 해양자원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해군을 조직하고 해전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1. 바다에서는 특수한 운송수단이나 대형구조물이 없는 이상에야 육군의 배치•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러한 특수한 수단은 해군력으로 쉽게 파괴가 가능하기 때문에 해전으로 적의 해군력을 약화시키면 비교적 안전한 보급로,길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육지와 마찬가지로 바다에도 인문환경이나 해류, 육지의 형태등으로 생겨나는 몇몇 요충지가 있고 그 요충지를 장악할 경우 얻는 이익은 막대하다 그런 요충지의 대표격이 스프래틀리 군도수에즈 운하.

2.바다에는 부력이 작용한다. 부력을 이용해 육지에서는 운용 못 할 크고 아름다운 무기를 쉽게 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물자와 인력을 운송할 때 육지에 비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운송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비행기가 뜨고 제트기가 날아다니는 시대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에야 바닷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 .

3. 과거에는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사실인데 국제법에 의해 섬이 많으면 영해가 넓어지고 국토 방위에 유리해 지는데다 대륙붕과 섬에는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매장된 자원이 가져다 주는 이득은 막대하다. 이런 가치가 큰 섬과 대륙붕을 방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군력이 필요하다

위 세가지 이유 때문에 해전은 인류가 배를 발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당분간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잠수함 같이 적군의 바닷길 이용을 방해하는 무기들이나 상륙용 헬기같은 것이 개발되곤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무기들 조차도 해군의 보조를 하는 수준이고 해군 운용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너무나도 크다.강력한 해군력의 여부가 제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했고 해전 한번으로 전쟁의 판도가 뒤집히는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진왜란이다 자세한 것은 임진왜란 문서 참조.

전투방식자체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해 왔다.

그리스부터 로마까지 벌어진 고대 해전의 경우에는 원거리 전투가 근본적으로 어려웠기때문에[1] 대부분이 근접하여 갑판전을 벌이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와 맞춰 발전한 것은 충각 전술이다. 지중해를 예로 든다면 이당시 운용하던 함선들의 대부분은 다량의 노를 가지고 흘수가 얕고 길이가 긴 갤리선 계열이었고 바람의 영향보다는 속도나 조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대편 함선에 올라타기전 충각을 이용한 충격으로 적 함선에 피해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상대 함선에 큰 피해를 줄수 있고 있었고 충격시 요동으로 탑승 전투원을 줄이는 부수효과도 얻을수 있었다. 대표적인 해전은 살라미스 해전이 있다.

로마 서부 붕괴 이후의 중세의 경우에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의 불 등 특기할만한 무기체계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전의 전투방식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약이 전해지고 함포가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해전 역시 변화하기 시작한다. 함포의 사용이 서서히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확실하게 가른 것은 레판토 해전이다. 오스만 제국과 기독교 연합함대가 붙은 해전으로 이때 서양에서 처음으로 대량의 함포가 사용되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게 된다. 다만 특기할 점은 이때에도 여전히 갤리선으로 대표되는 충각과 백병전위주의 함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갤리어스로 대표되는 과도적인 포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갤리선에 일부 함포를 올린형태에 지나지 않았기때문에 포문수나 명중율 화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일예로 기독함대의 승리는 상대편 기함에 쳐들어가서 육박전끝에 승리를 거둠으로서 최종적으로 결정지어졌다. 하지만 기독교연합함대가 최종적으로 해당 해전을 승리하였고 여러요인중에 하나가 함포를 이용해서 함선에 피해를 가하고 갑판에 있던 수병들을 쓸어버리면서 전체적으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끈점이 크게 주목받게 된다.

대항해시대의 해전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해전 양상을 보인다. 먼저 주력함선이 갤리선에서 범선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속도와 조함을 바탕으로 하는 충각전술은 대규모해전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2] 또 이와 맞물려 측면에 배치된 대량의 화포가 전투의 중심이 되면서 이전까지는 육전과 거의 같이 전면을 서로 바라보는 횡대진형이 주류였으나 이제는 종대진형으로 서로 나란히 측면을 바라보며 서서 화력을 극대화 하여 전투를 벌이는 형식이 나타난다. 이러한 대량의 화포를 이용한 전열전투가 발전하였고 이를 위한 전열함이라는 유래없는 중무장한 전투함까지 등장하면서 전투방식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렇게 대량의 화포와 대규모 화력이 동원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편 전함으로 건너가서 근접전으로 상대함선을 제압하는 형식의 전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화포는 원거리 전투에서 함선에 큰 피해를 입힐정도로 파괴력이 강하지도 않았고 명중율 역시 형편 없었기때문에 화력효과를 높이기는 위해서는 서로 접근을 해야 했고 이때 상대편의 갑판을 점거할수 있다면 화력을 급감시키고 함선을 탈취까지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전투방식중 하나였다. 단 1급 전열함이 다수 동원된 대규모 해전에서는 순수 화력만으로 배를 박살내는 상황[3]

2 해전 목록

3 관련 문서

4 관련 항목

  1. 캐터펄트나 화살등을 이용해서 불가능 하지는 않았는데 정확도나 위력 그리고 함선 배치등의 문제로 인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붙기전에 쏴주는 정도.
  2. 충각 자체는 부상한 적 잠수함이나 소형 함선들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무렵까지도 남아있었다.
  3. 침수와 함께 돛과 키의 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