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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의 작품 |
Atilla/Attila the Hun (영어)
Atle, Atli (고 노르드어)
Etzel (독일어)
Attila hun király (헝가리어, 어틸러 훈 키라이)
406~453
재위 443~453년
신의 징벌 (Scourge Of God)
훈족(Huns)의 왕.
훈족 최후의 왕이라 일컬어진다. 서양인들은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이라고 통칭한다.
1 일생
초기에는 그의 형인 블레다(Bleda)와 함께 훈족을 통치하였다. 이때도 아틸라가 정치상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으나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아틸라의 위상을 높이 봐서 나온 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는 그냥 형 밑에서 상당히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2인자 정도로 간주해야 옳을 것이다.[1]
형인 블레다가 죽고서는 마침내 훈족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블레다의 사망에 대해서는 사냥 중에 사고로 죽었다는 설과 이것을 가장해 아틸라가 암살했다는 설로 나뉜다. 실제로 블레다가 죽기 전에도 아틸라와 대립 구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자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향이 있다. 당시 훈족의 위세는 최절정기로 중부 유럽의 게르만족 제국(諸國)이 훈족에게 멸망당했고 동서 로마는 훈족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조공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조약 위반 등으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하자 아틸라는 1차로 동로마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동로마는 베오그라드가 함락되고 발칸 반도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었다. 2차 원정에서는 마침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어 겁에 질린 동로마가 영토 할양과 공물을 배로 바치기로 하고 협약한다. 하지만 동로마가 훈족보다 약했다고 볼 수는 없다. 동로마는 언제나 사산 왕조를 상대하는 동부 전선에 최소 절반의 군사력을 유지하게 해야만 했기 때문. 당시 동로마군의 배치는 여기를 참조.
이후 공물 받으면서 소견세월하다가 동로마가 본격으로 협약을 파기하고 영토 수복에 나선다. 때마침 서로마의 황녀인 호노리아와 일이 터진다. 황제 발렌타아누스의 누이 호노리아가 시종의 아이를 임신하여 그 시종은 즉시 처형되고 호노리아는 정략혼을 할 궁지에 몰리자 독신 생활에 싫증이 난다는 이유로 아틸라에게 구혼하는 편지를 몰래 보냈다. 이때 지참금으로 서로마의 절반을 약속. 참으로 국가 전체에 걸친 민폐가 아닐 수 없다.[2]
이와 같은 제안은 아틸라에게도 매우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비록 아틸라가 동로마로부터 공물을 받으면서 세를 과시하긴 했지만 실상 동로마의 국력은 여전히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틸라는 동로마와는 달리 그 세력이 크게 쇠퇴한 서로마를 상대로는 원하는 만큼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훈족은 동로마의 공세를 거의 무시하는 방향으로 일관하면서 서로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마침 갈리아 북부의 프랑크족까지 세력 분쟁으로 아틸라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훈족과 복속시킨 여러 이민족의 전사 10만 명 이상을 결합해 이끌고 라인강을 넘는다. 여기에 서로마의 군사령관이었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서고트족의 테오도리크 1세는 손을 잡고 갈리아 내에 있는 약소한 여러 부족을 포섭해 연합군을 편성, 카탈루니아 평원(現, 오를레앙)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후에 카탈라우눔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에서 아틸라는 진영 함락 시 진영을 불태우고 자결하려고 장작까지 쌓아놓았을 정도의 대패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서로마 주변의 기타 이민족들을 견제하려던 아에티우스는 훈족의 소멸을 원치 않았고, 덕분에 아틸라는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아틸라는 다시 군세를 정비하여 서로마 침공을 재개하였다. 이 때의 2차 원정에서 아틸라는 호노리아와의 혼인과 그 지참금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탈리아까지 쳐들어왔다. 서로마의 군사력으로 이를 막기엔 무리였던데다가, 지난번의 전투에서 아틸라를 막아냈던 아에티우스도 마침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훈족은 거침없이 밀고들어와 결국 라벤나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교황이었던 성 레오 1세가 로마까지 초토화될 것을 우려해 아틸라에게 강화를 제안했고, 아틸라는 이를 받아들였다.[3]
아틸라는 세계 정복을 꿈꿨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공격을 계획했다는 설이 있다. 동로마 사절단이 아틸라를 섬기는 옛 로마인과 연회를 벌였는데, 옛 로마인들은 아틸라가 이제 사산 왕조를 치리라는 추측성 발언을 한다. 실제로 아틸라가 사산 왕조의 아르메니아 합병을 막고자 파병한 적이 있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 군대일 뿐 아틸라는 본대를 이끌고 갈리아를 쳤기에 정말로 페르시아 정벌을 생각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게르만족을 대상으로 한 지배권 확대와 로마에서의 공납에 더 관심을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453년 아틸라는 게르만 제후의 딸인 일디코(Ildico)와 결혼했는데, 혼인식을 차린 날 밤에 급사하면서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사후 훈족의 위세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버렸다.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인한 복상사, 만취 상태에서의 질식사, 독살 등 그의 사인을 놓고 추측이 무성하다. 정식 한글판 AOE2의 훈족 캠페인에서는 코피를 너무 많이 쏟아 죽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2 평가
동서 로마와 게르만족에게 아틸라와 그가 이끄는 훈족은 가히 공포이자 신의 심판이었다. 이전의 유럽에서는 그토록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약탈했던 족속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틸라와 그의 군대를 신의 심판이 현실화라고 묘사하였으며 아틸라를 공포의 대왕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세상을 멸망하게 하고자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후 몽골 제국도 동유럽 침공 당시 비슷한 악명을 듣게 된다.
아틸라와 훈족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유럽의 여러 전설에도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게르만 계열 전설에는 위엄 있고 강대한 군주로 묘사되나[4], 바이킹 계열 전설에선 술고래 정도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에서는 거의 현세에 도래한 악마들의 군주 정도로 묘사되며 교황 성 레오 1세가 신의 기적과 위엄을 설파하자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고도 한다.위엄 쩌는 교황 성하의 업적 당연히 이는 기독교 세계의 프로파간다로 실제로는 위에서 봤듯이 강화 협상으로 물러난 것이다.
한편, 아틸라의 공포성이 유럽권에 널리 각인되어 아틸라를 통칭하는 말인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는 대체로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사람을 이르는 은어나 수식어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서양권에서 아틸라의 악명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후대의 정복자들인 청나라의 누르하치나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 그리고 먼치킨 칭기즈 칸과 비교해 저평가하는 견해가 많다. 이는 이룬 업적의 단순한 비교가 아닌, 이러한 통치 과정을 놓고 하는 평가이나 훈족을 다룬 온전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니 섣부른 평가절하는 위험할 수 있다.
2.1 헝가리에서의 평가
(부다페스트에 세워진 아틸라 동상.)
이상은 일반적인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의 평가고 헝가리에서는 좀 다르다. 아틸라는 사실상 헝가리의 국가적 영웅이다. 12세기부터 이미 헝가리 왕족들은 아틸라의 후예라고 자칭했고, Atlakviða, Atlamál 같은 헝가리의 전설에서는 아틸라를 훌륭하고도 고귀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드디어 아틸라의 무덤을 찾았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올라온적 있고 가장 최근은 2014년 이었다.# 물론 저 중에 진짜 아틸라의 무덤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사실 헝가리인인 마자르족과 훈족은 혈통상 전혀 연관이 없다고 보는게 일반적인 학자들의 의견이고, 따라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걸 어이없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 페니키아와 혈통상 전혀 상관없는 튀니지에서도 한니발 바르카를 영웅시하고 있으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애초에 '헝가리'라는 이름 자체가 훈족에서 유래했고(라틴어로 Hungaria. 훈족의 땅이라는 뜻) 심지어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 역시 아틸라의 형이 블레다에서 유래했으니 영웅시하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른 유럽 나라에서는 헝가리의 이런 주장을 기이하게 보는 편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헝가리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왜곡하든 아틸라는 위대한 왕이며 헝가리의 조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
한편 헝가리에서는 지금도 아틸라(Attila, 어틸러)라는 이름은 지금도 상당히 많이 쓰이는 이름이다. 2014년 출생자 기준으로는 남자 이름 중 아틸라는 26위. 기독교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요한의 헝가리어인 야노시(János)보다도 많다! 한국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흔했던 이름들이 현대에는 사장되는 추세인 국가가 많다.
2.2 생김새와 인종 논란
로마인 역사가가 남긴 기록을 보면, 아틸라는 "작은 키, 넓은 어깨; 그의 수염은 가늘고 희끗희끗했다; 그리고 그는 출신을 짐작케 하는 편평한 코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다"라고 전한다. 이런 기록만 보면 투르크계나 몽골계 중간쯤의 유목민 같아 보이지만 다른 유럽 지역의 여러 기록을 보면 오히려 아리아계나 이란계처럼 묘사한 기록도 있다.
훈족을 다룬 서양 측의 기록에는 동양인으로 추측되는 묘사가 많다. 그러나 동양 측에서는 서양인처럼 붉은 머리에 큰 코로 묘사하기도 한다. 훈족이 게르만족이나 로마인들과 싸울 당시 아틸라가 이끌던 훈족 기병들 중에는 훈족에 복속된 게르만족 전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아틸라를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슬라브 계열의 혼혈로 추측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딱히 아틸라를 혼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 공동체에 여러 민족이 뒤섞이는 과정에서도 지배계급 사이에서 교류가 생기는 일은 드물고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보통은 폐쇄성을 띈다.
3 창작물에서의 양상
아틸라의 외모를 다룬 기록이 부족해서인지 2차 창작물에선 그 생김새가 다양하게 묘사된다. 아틸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인 <훈족의 아틸라>에서는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여 아예 백인과 같은 외모로 묘사된다. 코미디 영화인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등장하는 훈족들은 몽골족과 더 비슷한 면도 있다.
어떻게 보면 훈족은 유목민족이니 만큼 다른 민족이 다 섞여서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을지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에다' 언역에서는 브륜힐트의 오빠로 나온다.
주세페 베르디는 아틸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틀란티카에서는 아틸라를 모델로 용병을 만들었는데 용병 성별 균형을 맞추려는 이유 때문인지 여체화해 등장했다. 다만 용맹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부각된 탓에 이건 여캐가 아니고 남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임페리얼 가드의 스페셜 캐릭터 모굴 카미르는 아틸라의 패러디다. 아예 그가 살던 행성 이름 자체가 아틸라다.
문명 5 확장 팩에서 등장하는 아틸라는 중앙아시아 계열의 유목민 모습으로 표현되며, 시도 때도 없이 전쟁할 정도로 전쟁을 좋아하는 성향의 지도자이면서 도시를 다른 지도자들보다 빠른 속도로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훈족 문명에 관련된 음악은 모두 흉노에 관련된 '이릉사한'의 멜로디에 기초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선 캠페인 미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션 제1편과 제6편에서 직접 조종 가능한 영웅 유닛으로도 나온다. 근데 훈족의 특수 유닛인 타칸이 아니고 비잔틴의 카타프락토이로 나온다. 어라? 능력치도 센데다가, 카타프락토이이라서 창병에게 보너스 데미지가 안 박힌다. 심지어 같은 카타프락토이 영웅인 벨리사리우스조차도 창병에게 죽는데!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 워: 아틸라에서 주역이라기보다는 지옥에서 기어나온 대마왕으로 등장. 다만 시대적 문제로 초기 지도자는 아틸라가 아니다. 모델링으로나, OST로나, 게임 전반적으로 훈족을 흉노족에 기반하여 흑발 직모에 누런 피부, 째진 눈과 커다란 광대를 지닌 중앙아시아 계통의 유목민족으로 그리고 있으나, 어째서인지 아틸라만큼은 곱슬머리 타타르인의 외모에 유럽식 갑주와 왕관을 갖추고 있다.[5]
Fate/Grand Order에 세이버 클래스로 TS되어 등장했다. 또 다시 누군가 특정부위를 떼였다. 인게임 성능은 해당 항목을, 캐릭터 자체에 대해서는 알테라 항목 참조.
- ↑ 유명인이 권좌에 오르기 전에도 실권을 쥐고 있었으리란 가설은 후세 사람들에게는 꽤나 매력이 있어서인지 람세스 2세도 파라오가 되기 전 아버지와 공동으로 통치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 ↑ 아니 민폐 수준이 아니라 매국노다.
- ↑ 기독교에 관련된 전승에서는 레오 1세가 아틸라에게 신의 권능을 보여주며 겁을 주어 강화를 맺도록 한 것처럼 전하고 있으나, 실상은 막대한 재물을 싸들고가서 협상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레오 1세의 결단력과 외교술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며, 레오 1세는 이후 반달족의 침략 당시에도 협상으로 로마를 구했다. 그 업적으로 레오 1세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 ↑ 대표적으로 니벨룽의 노래, 에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 ↑ 북유럽 전설에도 등장하는 만큼 유럽인들에겐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화되고 대중화된 캐릭터다 보니, 아무래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타인종의 외모로 묘사하기를 꺼린 듯. 예수 그리스도가 수많은 성화에서 셈족 계통의 중동인이 아닌 북이탈리아인의 외모로 그려지는 이유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