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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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판 표지


아옌데를 넣은 표지. 한얼판 뒷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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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표지.

The Iron Heel

미국의 작가 잭 런던이 쓴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과학소설. 1908년작.

배경은 사회주의락원 혁명이 완결된 2600년대 '인류 형제애 시대(B.O.M)' 419년[1]에 살고 있는 미래인이 1910년대부터 1932년의 가상의 "제2봉기"를 주도한 어니스트 에버하드(Honest Everhard[2])의 아내가 쓴 남편에 대한 기록을 숲속의 어느 나무 구멍 안에 숨겨놓은 것을 발견하여 이 기록을 재출판하고, 이 기록에 쓰여진 사건 이후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 대한 주석을 달고 있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사실 원본이 되는 기록 자체가 어니스트의 아내가 잡혀가기 전[3]에 끝낸 거라서 문장도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으로 심지어 그 긴박성을 상징하기 위해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는 1920년시카고 코뮌 학살사건에서 이야기를 자른다.

제목의 강철군화는 자본가 트러스트의 수족이 되면서 사실상 지배계층으로 탈바꿈하는 초법적 권력기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 경찰, 언론 등의 발가벗은 권력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강철군화'가 하는 일은 백골단, SS와 같이 실제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벌어졌던 백색테러 및 언론통제 등이다.

일명 '소설 자본론'이라고 불리며, 운동권 계열 출판사인 한울에서 잭 런던 전집의 일환으로[4] 80년대 말에 최초로 번역되었다.

소설 내에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 사실과 가상현실이 혼동되고 있으나, 1900년대 초반 거대한 물결처럼 미국 사회를 덮쳤던 사회주의 공화국 운동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 시절의 미국은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미국일 것이다" 라는 말이 나왔을 만큼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이때 유진 V. 뎁스 같은 사회주의 운동가가 활동하기도 했다.

예언적 소설인 만큼, 실제로 이루어진 예언도 많다. 작가가 내다본 독일영국, 미국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 독일의 혁명에 의한 붕괴(강화 즈음 제2제국이 붕괴된 것[5]), 파쇼의 등장[6], 태평양 전쟁(인디아를 노린 일본영국 간의 갈등) 등이 있다[7].
'파업진압단(Mercenaries)', 즉 백골단은 80년대 번역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매우 공감이 되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내의 예언은 대부분이 사실과 달랐다. 언론 재벌 월리엄 루돌프 허스트와 민주당의 몰락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현실의 미국은 뉴딜정책 등으로 강철군화가 지배하는 파쇼국가가 아닌 민주국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음모론적 트러스트들의 연대, 결탁이 실제로 없었던..것은 아닌데, 실제로 1933년, 일부 보수인사와 자산가들이 만든 "아메리카 자유 연맹"들이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를 끌어내리고 파쇼국가를 세우려 했으나, 그들이 내세운 바지사장 스메들리 버틀러(미 해병대 예비역 소장)가 폭로하면서 실패하였다.# 솔직히 애들 장난 급이긴 했지만.

좌파적 입장에서 이 소설의 예측이 빗나간 사례와, 그에 대한 분석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파적 입장에서야 이 소설의 전제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테니, 굳이 분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작중에서는 기존의 정당들이 몰락하고 재벌들이 직접 권력과 정부를 사유화 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21세기까지도 재벌들은 열심히 정당에 로비하고 있다. 사실 재벌의 전횡을 막는 각종 사회적 안전망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직접 정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것 보다는 기존의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자본에게 유리한 입장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이게 바로 아웃소싱.
  • 그래서, 1930년대 실제로 발현된 파시즘은 대중과 중산층을 동원하는 쁘띠 부르주아적 요소가 더 많았지, 강철군화가 예언한 상층계급의 강압적 체제(과두정치)와는 전혀 다른 체제였다고 본다.
  • 20세기 내내 임금인상 등 각종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기업측이 이런 요구에 강철군화와 같은 무조건 폭력적인 억압으로 대한 것은 아니며, 일정 수준 노동자측의 요구를 수용한 경우도 많았다. 이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회유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탄압이란게 실은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탄압조직의 구성원에게는 보통의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줘야 할 텐데, 이는 곧 탄압요원 1명을 고용할 돈이면 노동자 십여명, 또는 수십명의 봉급을 10%씩 올려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노동운동 탄압 조직 역시 자본에 고용된 입장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들 역시 불만을 품을 수 있다. 그러면 탄압 조직에 대한 탄압조직을 또 만들던지, 불만을 안 품을 정도로 후한 처우를 해 줘야 한다는 의미이니, 이 탄압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임금을 인상해 주는 게 훨씬 싸고 깔끔하게 끝나는 것.[8]
  • 작중에서 주인공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활동을 지지한 장인(소설 화자인 아내의 아버지)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장인의 은행 계좌에 든 돈을 빼앗는 장면(자기 재산을 맡겨둔 은행에 가 보니 '무슨 헛소리심? 님은 이 은행에 계좌 없는데요?' 라고 반응했다)이 나오는데,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독재정권은 반대자를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기는 했을지언정 재산을 몰수하는데는 소극적이었고, 특히 이런 식으로 재산권을 부정하는 탄압 방법을 쓴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사유재산의 절대적인 보호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원칙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니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입장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수단이었던 것. 이 점에서 작중의 '강철군화'는 단순히 악의 독재권력으로 형상화되었을 뿐 그 성격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이 비판을 좀 더 발전시켜서 자본주의를 주도이념으로 삼은 미국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작가가 상상한 강철 군화의 악행이란 결국 자본가가 저지를법한 악행이라기 보다는 자본가가 두려워하는 악행일 뿐이라는 점에서 작가적 상상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 이는 예측이 빗나간 사례라기 보다는 작가의 관점이 통상적인 좌파적 관점과 다른 것이지만, 작중에서는 권력화된 자본과 노동자들의 비밀 투쟁조직이 대를 이어가며 수백년에 이르는 지하 항쟁을 벌임으로써 자본과 "노동귀족", "파업억제단" 간의 궁정쿠데타와 역쿠데타 끝에 최종적으로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는데... 사실 어떤 좌파 이론도 이처럼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유리된 지하조직에 의한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9]. 이런 지하조직은 실질적인 필요보다는 감정적인 요인을 근거로 삼게 되고, 따라서 조직의 지속가능성이 몹시 낮다.
  • 위와 마찬가지로, 사실 작가인 잭 런던은 전혀 민중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영웅주의자나 엘리트주의자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강철군화의 내용을 보더라도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제 2 봉기에 대해 '대세를 읽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들이 일으킨 봉기' 로써 어니스트 에버하드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지금은 봉기의 적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봉기가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을 배반할 수 없어서' 봉기를 이끈 것 처럼 묘사된다. 이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민중에 대한 지지와 존경을 전제로 삼는 20세기 좌파의 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성공한 혁명들 중에서 '지도부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철저한 계획'에 의해 성공한 혁명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도 없는 셈.
  • 사실 잭 런던의 작품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은 영웅주의이다. 특히 강철군화에서 제시된 어니스트 에버하드라는 인물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1.건강하고 건장한 신체, 강한 근력 등 뛰어난 신체적 능력, 2.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쌓았고, 이를 통해 '정체되고 판에 박힌'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뛰어넘음, 3.성격이나 외모 등이 '소년같다'고 묘사됨, 4. 청교도적인 도덕적 결벽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미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던 영웅상과 거의 일치한다[10]. 어니스트라는 이름 자체가, 미국인들이 그러한 영웅적 인물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위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이 책 자체가 정치적 우화라기보다는 '잭 런던이 그려내는 이상적 영웅상'이 악의 자본가를 물리치는 일종의 영웅담이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이라는 것. 따라서, 정격화된 영웅의 적인 정격화된 악인 작중의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악 자체를 실천하는 일종의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행동 양상이 정확히 예측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 사실, 잭 런던을 좌파 작가로 분류할 것인지 자체가 이론의 여지가 꽤 크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착취와 억압 아래 고통받고 있고, 이를 혁명으로 극복하자고 주장하기는 했는데, 20세기 초의 시대상에서 이런 주장은 좌파의 독점적인 입장은 아니었고, 극우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한 경우가 많았다. 즉, 당시 노동자의 상황은 비참했고, 좌우파를 막론한 모든 급진주의자들이 노동자를 혁명의 원동력으로 삼고 싶어 했던 것. 뭐, 나치당 역시 명칭은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이고, 파울 요제프 괴벨스 같은 인물도 처음에는 사회주의자였으며, 베니토 무솔리니 역시 사회주의자 출신이고, 반대로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기 권력기반의 상당부분을 극우적 민족주의에 두고 있었다거나, 국가의 탄생을 만든 그리피스도 다른 영화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을 고발했다. 요컨데, 잭 런던이 작가로써 활동하던 극좌와 극우의 거리가 무척 가까웠던 셈. 오히려 잭 런던의 작품들, 특히 한국에는 '밑바닥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people of the abyss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육체적 강함에 대한 자부심은 극우적 특성에 더 가깝기까지 하다. 여기서 참고할만한 점이, 위에서 소개한 장인에 대한 탄압 사례에서도 보듯 잭 런던은 금융자본이 결국 정치권력화된 자본에 복속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상에서 금융자본은 정치권력이 가진 국가의 틀을 벗어나 발전하여 별개의 영역을 확립했다. 문제는, 경제적 갈등을 주된 관심사로 삼는 좌파가 금융의 범국가적 성장을 비교적 초기부터 예측한 데 비해 정치적 갈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던 우파는 금융이 국가에 종속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
  • 초기에는 사회주의자로써 활동하던 잭 런던은 특정한 시점 부터 사회주의자로써의 정체성보다는 노력에 의한 성공과 소규모 공동체를 중시하는 미국적 자유주의자로써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잭 런던이 작가로써 성공해서 돈을 번 시점' 이기도 하지만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소련이 건국된 시점' 이기도 하다는 것. 물론, 둘 중 어느쪽이 잭 런던의 행적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끼친건지는 알 수 없다.

엄연히 말하면 Iron Heel은 무쇠 뒷굽이 정역이고[11], '강철군화'라는 번역명은 오역이다. 그런데 한울사의 번역명인 '강철군화'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뒤의 출판사도 그대로 답습했다. 여하간 제목 자체가 오역/소설, 혹은 초월번역 항목에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문맥 번역에서는 오히려 한울사가 낫다는 평이 있다. 굳이 '발꿈치'를 '군화'라고 번역한 것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당시의 군사독재에 대한 투쟁심을 고취시키겠다는 생각인듯.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디스토피아 소설 1984도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형제단"에서.
  1. 인류 형제애 시대는 2237년이 원년이다. 그러니까 B.O.M 419년은 서기 2632년이 된다. '강철군화'는 권력을 장악하면서, 과학자, 주요 산업기술자 등의 중간계층과 사실상의 군부로 노동자들의 파업 시위를 분쇄하는 파업진압단을 협력층으로 동원하게 되는데, 작품에서 정확히는 안 나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중간계층 격인 어용노동자들과 강철군화가 파업진압단을 근위병으로 활용해 내분하여 계급갈등(쿠데타와 카운터 쿠데타)을 벌이게 되고, 그 와중에 어부지리로 밑바닥 노동자들이 일으킨 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 시대의 종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 진짜 이름으로 쓰이는 어니스트Ernest가 아닌 정직한(Honest)과 영원히 힘든(Everhard)라는 성은 마치 러시아 직업 혁명가의 가명(ex.스탈린;강철의 사나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3. 그녀는 기록을 숨긴 뒤 '강철군화'의 하수인들에게 잡혀가 총살당했다.
  4. 잭 런던이 노골적으로 조선을 "야만적""구경거리만 찾아 다니는 덩치만 큰 게으름뱅이들" 이라고 디스하는 내용의 <러일전쟁 종군기>도 번역했다!
  5. 과정과 원인은 동일하나 소설에서처럼 공산혁명은 아니었다. 자세한 설명은 독일 11월 혁명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6. 흥미롭게도 파쇼의 본고장 이탈리아는 소설에서 사회주의 협동사회체제가 등장한 것으로 나온다.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도 함께. 하지만 제2봉기 이후 이러한 유럽의 사회주의 체제는 전멸한다. 거꾸로 11년 후 최초의 공산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는 소설 내내 언급도 없다.
  7. 그런데 사실, 이런 '실제로 이루어진 예언' 같은 경우는 딱히 잭 런던의 독창적인 예측이 아니라는 게 함정. 예를 들어, 제국주의 국가들이 결국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거나, 그 와중에서 파시즘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마르크스도 한 적이 있다.
  8. 철도, 기계, 철강, 기술자 노조의 월급이 인상되고, 노동시간도 줄어든다는 내용은 있다. 그러나 그 것은 노동자의 분열을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 함정.
  9. 19세기 중후반에 아나키즘의 한 분파로써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계파가 나타나긴 했는데, 워낙 현실성이 없어서 금방 망했다.
  10. 펄 벅의 저서인 '현대의 영웅'을 보면 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있다... 근데 한국어로 번역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함.
  11. 무쇠 뒤축이나 무쇠 발굽도 적절한 번역이고, 무쇠 구둣발도 가능하려나... 여하간, Iron은 강철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