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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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객을 취급하지 않는 역입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철도역현재 여객열차를 취급하지 않는 철도역으로, 화물열차만 취급하는 화물역, 신호장신호소, 부정기 전세열차 전용역, 또는 현재 열차 운행이 중단된 구간에 속한 역일 수 있습니다. 이 철도역에서는 여객열차 승·하차가 불가능하니 이점 상기하시기 바라며, 이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발생하는 피해는 우만위키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또한 폐역 · 미개통 또는 정기 관광열차만 정차하는 철도역에는 이 틀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경부선
서울 방면
동대구

5.5 km
고 모
1.6 km
부산 방면
가 천

顧母驛 / Gomo Station

고모역

다국어 표기
영어Gomo
한자顧母
중국어顾母
일본어コモ
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로 208
(고모동 384-1)
일반 철도
운영기관코레일 대구본부
경부선 개업일1925년 11월 1일
역등급무배치간이역(가천역 관리)

480px

1 개요

경부선철도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로 208(고모동 384-1번지)에 위치해 있다.

2 역사

1925년에 영업을 시작해서 1931년에 보통역으로 승격했으나 1949년 11월 고모역에 화재가 발생했던 흑역사가 있다. 그 이후 잠시 소화물차를 역사 대신 쓰다가 1957년 현재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다 2004년 여객영업 중지 크리를 먹었다.

원래 고모역 구내는 경부선에서 흔히 볼수있는 형태의 아주 지극히 일반적인 구조였으나 2005년 11월에 가천역이 생기고 KTX를 위한 선로 개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자 지금처럼 다소 괴상한 형태로 바뀌었다. 본래 동대구에서 고모까지는 상하행선이 나란히 달렸으나 기존 경부선 하행은 대구선이 되고 경부선 상행선이 하행선이 되었으며 새로운 경부상행선을 직선으로 뚫어 신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경부 하행선과 상행선이 멀어지게 되고 지금과 같은 구조의 고모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모역과 연결되지 않지만 고모역에 설치되어 있는 선로와 나란히 경부고속선이 놓여 있다.[1]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에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바로 다음해인 2004년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고 까이고 있다. 참고로 고모역 육교를 만든 이유는 고모역 주변의 철로도 많고, 옆의 도로도 넓기 때문이다. 즉 역은 콩알만한데...철로와 도로가 대문짝만하게 넓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2008년 1월 1일에 똑같은 일이 대구선 금강역에서 일어난다.

2006년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됐다. 서울역 기점 331.8km

2014년부터 역사건물을 '고모역 가요박물관'이란 이름의 향토문화 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출입금지를 위해 역사를 빙둘러놓던 철망이 일부 철거됐지만 중간에 계획이 틀어지면서 역사 건물은 문이 굳게 잠겨있다. 대구권 철도역사마다 시를 남긴 박해수시인의 시비가 여기에도 있다.

여객영업은 대구권 광역철도 계획에도 빠져 있는 역이라 부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변 인구가 너무 적어서[2] 기대할 만한 여객수요가 없기 때문.

3 역명

고모(顧母)라는 역명을 한자로 풀어쓰면 어머니가 돌아본다 라는 뜻이 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문화원형백과

첫째 이야기는 옛날에 현 고모역 위치 근처에 살던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의 이야기이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을 보고 전생에 덕을 쌓지 못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가족이 모두 덕을 쌓고자 산을 쌓았는데, 이것이 근처에 있는 모봉과 형봉, 제봉이다.[3]그런데 두 남매가 산을 쌓으며 덕을 쌓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더 높이 쌓겠다고 다투고 시샘하였는데, 이를 본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마음과 실망감에 집을 나왔다. 그렇게 걷던 어머니가 언덕 위에 올라서서 집을 향해 뒤돌아보았는데, 그곳이 바로 고모령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때 이 역을 통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던 아들을 어머니가 배웅하며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기원한다. 당시에 증기기관차가 고모령을 지나가는 데에 큰 어려움이 많아서 천천히 다녔는데, 이때 징병가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에 관하여 현인이 부른 "비내리는 고모령" 이라는 유명한 옛날 노래[4]가 있고.[5] 또한 6.25전쟁 당시에는 상시적으로 부상병을 호송하던 병원열차가 정차했다고 하니...여러모로 사연이 많은 역이다.

다음은 해당 곡의 가사 전문.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 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구비드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그린 하소 적어가면서
오늘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이 노래를 기리기 위한 시비가 이 역에 세워져 있다. 다음은 해당 시의 전문.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가던 역이다
고모역에 가면
어머니의 손재봉털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화물열차만
꽁지 빠진 새처럼
검은 물새떼처럼
허기지게 날아가는
그 옛날 고모역 선로 위에서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아 이즈러진 저 달이
어머니의 눈물처럼 그렁그렁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구나
옛 달처럼 덩그라니 걸려 있는
슬픔처럼 비껴 서 있는
그 옛날 고모역에서

4 사건사고

두 건의 대형 철도 사고가 이 역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경산 열차 추돌사고, 다른 하나는 대구 열차 추돌사고. 두 사건의 지명이 서로 다르나 이는 사고 당시의 해당 지역의 지명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고[6] 실제로 두 사건이 일어난 지점의 거리는 1km정도에 불과하다.
  1. 경춘선 전동열차 중 망우선으로 들어오는 열차가 석계역에 정차하거나 석계역 승강장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2. 마을이 있고 주변에는 녹지가 많지만 전부 그린벨트에 군부대까지 존재한다.
  3. 실제로 현재도 남아 있는 지명이며 동대구역에서 고모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오른편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네이버 지도 링크
  4. 말이 그렇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 발표된 곡이다.
  5. 가사가 일제징용과 관련된다.
  6. 해당 지역은 경산 열차 추돌사고 당시인 1981년에는 경산군 고산면이었고 대구 열차 추돌사고 당시인 2003년에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