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을 호령하던 두산의 불펜진을 일컫는 말로 멤버는 고창성(Ko Chang-seong), 임태훈(Im Tae-hoon), 이재우(Lee Jae-woo), 이용찬(Lee Yong-Chan)이 있다.
목차
1 개요
2009년 두산의 불펜 야구를 이끌던 두산의 핵심 불펜진 그러나 이 사진이
멤버들의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용어로 상대 타선을 KILL해버린다는 의미로 주요 사용됐다. 사실 김경문이 KILL해버린 3명+α의 투수라 카더라
2 멤버
2.1 고창성(Ko Chang-seong)
파일:/image/076/2012/07/25/2012072501001968800165071.jpg
2009년 일구회 선정 신인왕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두산 불펜진에 거의 없다시피 했던 잠수함 투수였다. 2009년도에는 6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1.95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며 신인왕에 등극해도 부족함이 없었던 성적이었지만 달랑 9표로 3위에 오르면서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중간계투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야구인들이 주는 일구회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2 임태훈(Im Tae-hoon)
07년도부터 두산의 불펜을 지탱해온 필승조
이 당시만 하더라도 빠른 볼을 바탕으로 좋은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가장 믿을 만한 두산의 불펜 투수 중 하나였다. 2009년 성적은 58경기에 나와서 11승 4패 5세이브 13홀드 ERA 3.06을 기록했다. 고졸 신인이 신인왕을 받은 마지막 사례이기도 하다.
2.3 이재우(Lee Jae-woo)
파일:/image/014/2013/10/17/20131017181237722 59 20131017181303.jpg
두산 불펜진의 핵
최대 148km까지 나오는 강속구에 뛰어난 포크볼을 구사하던 불펜 투수였다. 직전 해였던 2008년도에는 구원승만으로 11승을 달성하는 등 선발이 무너진 상황에서 두산 투수진을 지탱하던 기둥이었다. 다만 분식회계라고 까이기도 했다. 2009년도에는 선발로도 몇 경기 등판하기도 하였다. 2009년 성적은 54경기에 등판하여 5승 2패 12홀드 ERA 3.88을 기록했다.
2.4 이용찬(Lee Yong-Chan)
파일:/image/311/2010/09/29/1285767405946.jpg
2009년 세이브 1위
2009년 신인왕
묵직한 직구 구위를 통해 두산의 새로운 마무리로 자리잡았으며 롯데의 애킨스와 함께 세이브 공동 1위를 기록하였고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만 양아세이브[1]의 비중이 많았다는 점이랑 소화 이닝이 40 1/3이닝밖에 안 됐다는 점에서 팀 동료인 고창성이 수상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2009년 성적은 51경기에 나와 0승 2패 26세이브 ERA 4.20을 기록했다.
3 운용 그리고 혹사
김경문의 살려조
김경문 재임 시기에 이 선수들 뿐 아니라 투수 유망주의 포텐이 보인다 싶으면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어서 2016년 현재까지도 두산의 불펜진은 불안불안하다. 비단 굴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팀 투수들의 특성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해서 장기적인 선발감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었던 임태훈[2], 이용찬[3]을 내일이 없는 듯 불펜에다 죽어라 갈아넣었고, 투수들을 전부 불펜에다 갈아넣는 와중에 정작 김진욱 체제에서 불펜으로 포텐이 터지면서 불펜 체질이었던 것이 드러난 홍상삼은 선발로 썼었다(...).
이후 김진욱 전 감독이 선발야구의 기틀을 다져놓았고, 김태형 현 감독이 그걸 받아 탄탄하게 선발진을 구축하면서 불펜을 커버하고 있다. 물론 김진욱 체제에서는 정명원 투수코치, 김태형 체제에서는 한용덕 투수코치의 공이 크다. 이렇게 선발야구에 공을 들인 결과 2016년 시즌 현재 선발 자원만 8명[4]이라는, 김경문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이 중에 좌완이 4명씩이나 된다는 게 더더욱. 김경문 시절 좌완 부재로 고생했던걸 감안하면...
3.1 고창성
2010년 두산의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10경기를 등판하는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했다. 아무리 단기전에서는 4선발 체제가 돌아가고 총력전을 해야 한다고 쳐도 계투를 저따위로 굴리는 막장짓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할 짓이 못 된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의 조상우가 있다. 와일드카드~준플레이오프 기간 6일동안 120구를 던진 조상우는 결국 김태형의 예언대로 준PO의 마지막 경기에서 탈탈 털린 것도 모자라서 다음 시즌은 부상으로 아예 날리게 되었다. 이것 역시 감독의 큰 잘못이다.
고창성은 대학 시절 이미 엄청난 혹사를 당했기 때문에 입단 1년차 시기를 통째로 재활하며 보냈고, 그로 인해 더더욱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였음에도 그딴 거 없이 막 굴렸다. 그리고 이 여파로 인해 이후 전성기의 폼을 되찾지 못했고, 김경문 감독이 런을 시전하면서 해방된 이후 김진욱 감독 시절 열심히 재활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2012년 시즌 이후 시행된 2차 드래프트 때 김경문 감독이 NC 다이노스에서 픽했으나, 끝내 과거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 정말 전도가 유망한 선수였는데, 이래저래 두산 팬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3.2 임태훈
파일:51DUUYp.png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록을 보자.[5] 그 3시즌동안 약 4600구 가량을 던졌다. 대충 평균내도 한 시즌당 공 1500개를 넘게 던졌다는 건데 이건 미친 짓을 넘어선 백정짓이다. 선발도 아니고 100% 순수 불펜이. 아마추어 팀 감독이 저렇게 등판시켜도 뒷목 잡을 마당에 프로 팀 감독이 저 지랄을 떨었다. 2007년 시즌의 기록은 프로 입단 1년차의 기록인데 순수 계투로만 100이닝을 돌파했다. 그리고 같은 해의 한국시리즈에서 김경문은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을 먹은 투수를 올라갈 선발 투수가 없다는 이유로 6차전 선발로 등판시켰다. 그 살려조도 이렇게 굴려지진 않았다. 아니, KBO 리그를 통틀어 이 정도로 굴려진 계투는 없다. 김성근 체제에서 그렇게 굴렀던 권혁도 2015년 78경기에 나와 112이닝을 먹었는데 경기당 이닝 수를 보면 임태훈이 더 높고 또한 2007년에 비교해서 2015년의 경기수가 10경기 이상 많다. 임태훈은 신인드래프트 당시 1차 지명자였고, 1차 지명자라면 고교 무대에서 날리던 에이스였을 것이다. 고교 시절 팀의 에이스였다면 죽어라 굴려진다는 건 야구계에 발 좀 담가봤으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프로 무대 경험까지 부족한 신인 투수들에게는 더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데 역시 그딴 거 없었다. 오죽하면 김경문 당시 두산 감독더러 임태훈에게 싸대기 맞아도 할 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까(...).
3.3 이재우
2009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4경기 97.1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했다. 결국 다음 시즌에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고, 2011년 수술받은 부위가 다시 끊어지면서 재수술을 받게 되었다. 같은 수술만 두 번을 받으며 선수로서의 복귀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12시즌 후반기에 다시 복귀하는 데에 성공하며 인간승리를 알렸다. 사실상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수준이다.
3.4 이용찬
그나마 마무리였기에 소화이닝이 적어서[6] 저 셋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호받은 편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미래의 선발감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었던 선수였음에도 마무리로 썼다. 물론 2009년 세이브 1위를 차지하면서 신인왕을 타내며 성적상으로는 마무리로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지만 양아세이브의 비중이 많았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떠먹여준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받아먹은 것도 선수의 능력이 맞지만 문제는 이용찬이 팀의 장기적인 클로저로 뛸 수 있을 만큼 강심장까지는 아니었다는 것. 멘탈 한 번 흔들리면 개털리는 경우도 많았다.[7] 또한 마무리로 뛸 때 직구는 쓸만하지만 변화구는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 말인 즉슨 변화구가 불안하다고 그걸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변화구를 제대로 장착해야 뛸 수 있는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만 썼다는 얘기다. 당시 투수코치로 김진욱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써먹질 못했다.[8]
4 이후의 행적
4.1 고창성
2시즌 동안 70이닝을 넘게 먹고 전해 포스트시즌 전 경기에 출장한 후유증으로 2011년 문자 그대로 퍼졌다. 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크게 떨어졌고[9] 2012년 시즌에는 ERA 8점대를 찍으면서 그야말로 멸망했다.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NC로 이적했지만 끌려갔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4.2 임태훈
3시즌동안 불펜에서 신나게 굴려진 결과 2010년에 혹사의 후유증이 나타났고 선발로 전향했지만 후반기에 홈런공장장이 되며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다. 그리고 2011년 역대급 사건을 일으키며 완전히 몰락했다. 그 후로도 허리 부상등으로 부진한데다 2015년 임의탈퇴 되면서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후로도 사생활 관련 구설수를 일으키자 이름만 거론해도 모든 팬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존재가 되었다.
4.3 이재우
2010년 팔꿈치 부상으로 2시즌을 날려 먹은 뒤 2012시즌에야 겨우 복귀했지만 그 뒤로도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2015년 시즌 종료 후 한화로 이적했다. 그나마 2013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5이닝을 막아내 1승을 거뒀던 것이 위안이랄까...그러나 한화 이글스 이적 후 보직 구분없이 선발 중계 마무리로 모두 던지며 1, 2군을 왔다갔다하는 중. 평균자책점은 6점대로 매우 부진한 편이며 9월 14일 이승엽에게 한일통산 600호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4.4 이용찬
그나마 저 셋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라 2011년 선발로 전향하며 2시즌동안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2014년에 다시 마무리로 전향했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심치 않게 까이고 상무 입대. 단 이와는 별개로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켜 구설수에 오른 게 문제였지만. 김경문의 장기간 불펜 혹사로 인해 전반적으로 불펜이 약해졌고 2016년 현재까지도 이것이 고질적인 약점이 된 상황이라 이용찬이 어서 전역해서 1군에 합류하길 바라는 두산팬들이 많다. 특히 마무리 투수인 이현승이 전반기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6월부터 나올 때마다 실점을 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어 더더욱 그렇다. 홍상삼이 9월 초 제대 이후 마무리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이용찬에 대한 기대치도 점점 상승하고 있다.
5 새로운 KILL라인의 가능성(?)
2014년도부터 HOLY라인이 만들어졌지만 당시에는 시원치 않았고 2015년에도 두산의 불팬진이 아직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은줄 알았으나 새로운 불펜들이 그 자리를 매꿔주기 시작했고, 2016년에 정재훈이 돌아오면서 조금 더 안정적이게 된다.
특히 그중에서 이현승의 등장과 동시에 좌완 마무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김강률 역시 2015년에 셋업맨으로 잠시나마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6년에도- ↑ 1이닝보다 적은 이닝을 소화하고 세이브
- ↑ 2010년 선발로 뛰면서 홈런공장장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시즌 전반기에만 해도 10승은 그냥 찍을 기세였다. 후반기에 혹사의 여파로 무너지면서 불명예를 쓴 것. 실제로 당해 성적을 보면 9승은 찍었다. 참고로 당시 선발로 전향했던 이유도 혹사로 인해 체력이 후달리자 휴식일이 보장되는 선발로 돌린 것이었다.
- ↑ 2011년 팀 사정상 제대로 된 선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선발로 뛰게 되었음에도 꽤 좋은 모습을 보였고, 2012년 각성하면서 2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에 10승을 찍었다.
- ↑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마이클 보우덴, 토종 좌완 듀오 유희관, 장원준에 5선발 및 대체서발로 사용 가능한 허준혁, 고원준, 이현호, 안규영.
- ↑ 2010년엔 선발로 전향.
- ↑ 2009년 51경기 40⅔이닝, 2010년 47경기 41⅔이닝.
- ↑ 2014년에 이 사실이 다시금 입증되었다.
- ↑ 이 분이 감독이 된 후 성공적으로 이용찬을 선발로 키워냈다. 노경은과 유희관도 이 때 선발로 터졌다.
- ↑ 평균자책점만 해도 2010년에 3점대였지만 2011년에는 4점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