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히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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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만 54세 당시 사진. 상당한 동안이다.

郷ひろみ(1955년 10월 18일 ~ ) 히로미가 아니다...

일본가수로 본명은 하라타케 히로미(原武裕美). 1972년 '男の子女の子'[1]로 데뷔, 7~80년대를 풍미했으며 50대인 지금도 신세대 못지않은 감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설의 아이돌 스타.
동년배인 사이조 히데키, 노구치 고로 등과 더불어 신고산케(新御三家)라 불리우며 인기를 얻었다.

초창기에는 쟈니스 소속이었으나, 70년대 말부터 그 악명 높은 바닝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쟈니스에서는 쟈니스 주니어 시스템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고 히로미가 쟈니스 주니어 6명을 함께 이끌고 바닝으로 옮겨버리면서 70년대 말 잠시 쟈니스의 암흑기가 찾아왔었다. 고 히로미는 이후에도 바닝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을 잘 했지만, 고와 함께 이적한 쟈니스 주니어 6명은 'METZ'라는 그룹으로 데뷔했음에도 이렇다할 활동을 못 하고 자연소멸했다.

주요 히트곡은 'お嫁サンバ(신부 삼바)'(1981), '2億4千万の瞳(2억 4천만의 눈동자)'(1984)[2][3], ' GOLDFINGER'99 '(1999)[4] 등이 있다.

마츠다 세이코와의 연애시절이 있었으며, 당시 결별 스캔들은 꽤나 컸었다. 자세한 내용은 마츠다 세이코 항목 참조.

다소 비음이 강한 독특한 음색이광조? 어느정도 벤치마킹했다고 봐야... 때문에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이다. 또한 위의 마츠다 세이코는 물론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소라 히바리, 야마구치 모모에, 사쿠라다 준코, 나카모리 아키나, 쿠도 시즈카를 비롯하여 오늘날의 코다 쿠미, AKB48 등등 웬만한 유명 여가수들과 최소 한번 이상 함께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해 본 가수이기도 하다.

제자리 턴을 일본에서 가장 멋지게 하는 남자로 손꼽힌다. 특유의 추임새(?)는 자신의 이름을 딴 GO! 누군가가 생각나면 기분 탓이다

1973년 제 24회~1985년 제 36회, 1990년 제 41회, 1994년 제 45회~2001년 제 52회, 2010년 제 61회~2015년 제 66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하였다.
  1. 1972년 8월 1일 발매.
  2. 그 당시 일본 인구는 약 1억 2천만 명이었다.
  3. 추억은 억천만의 가사에 나오는 '억천만'이라는 표현이 이 노래에서 나왔다.
  4.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 번안곡. 참고로 본 곡의 일본어 가사는 초전자 바이오맨의 주제가를 쓴 재일교포 2세 작사가 강진화가 맡았다. 원곡이 리키 마틴이다보니 유튜브에 이 곡이 올라오면 "이 사람은 일본의 게이입니까?"라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