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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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泰珍
1917년 5월 18일 ~ 2006년 4월 12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917년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항일 비밀결사인 호의단을 조직해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45년 초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이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한국민주당에서 경상북도당 청년부장 겸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고령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족통일본부 김상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상덕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국민당 중앙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홍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통합야당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상무위원을 지냈다. 계보상으로는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정남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당 정남택 후보에 설욕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성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상조와 신민당 복수공천으로 경상북도 달성군-고령군-경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박준규 후보와 친여 무소속 박주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신민당 지도위원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권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4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민권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