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 임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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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국민의 정부
(김대중)
참여정부
(노무현)
고건 권한대행 체제
이명박 정부박근혜정부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1 개요

국민의정부 또는 김대중 정부는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었던 정부이며,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선거로 인해 여, 야간의 평화적 정권교체로 출범한 정부다. 제6공화국 3번째 정부로 1998년 2월 25일 출범해 2003년 2월 24일까지 존속했다.


2 외교/국방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외정책은 바로 햇볕정책이다. 광복 이후 분단되고,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으로 가속화된 북한과의 관계를 녹이는 정책이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과의 직접적 외교로 분단의 전쟁고조를 낮추고 인도적인 지원 및 경제적 교류를 통해 두 나라가 관계를 호전 시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를 통한 외교정책은 일본과의 전면적 문화 개방등을 고려할 때, 국민의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북정책 유화책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3 정치/사회

책임총리제를 약속하여 DJP연합김종필과 같이 이끌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실제로 김종필을 국무총리에 내정, 임명하였다. 워낙 반대가 심해서 서리로 약 5개월정도 있었다. 다만 김종필은 총리가 중심이 된 내각책임제를 원했으나 김대중이 그 정도까지는 허용해주지 않아 그들의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만, 이들 연합은 상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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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제

추가바람

간단하게 말하자면 외환위기에서 시작해 외환위기로 끝났다 할 정도로 빚만 겁나 열심히 갚았다 국민의 힘을 빌려~~~

지금 정부의 주요 경제가치인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정권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부, 문민정부 임기말에 터진 IMF 사태 혹은 외환위기로 인해서 국민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채택해야만 했다. IMF의 원조 조건이었던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 Programmes)의 핵심 내용은 당시 다음과 같았다.

1) 시장의 자유 강화
2) 규제완화 및 철폐
3) 국유화 된 사업체에 대한 민영화
4) 정부지출(보건복지등) 축소
5) 고금리

이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유지되어온 국가주도의 경제정책 노선을 많이 상실했으며, 이후 나오는 FTA, 비정규직 문제 등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이 이미 박정희 시절부터 IMF 사태 직전까지 유지되었던 대한민국 경제의 기반으로 인한 일이었으며, 국민의 정부가 원해서 진행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IMF에서 최대 피해자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다.

5 비판/논란

신용카드 활성화로 인해 개인의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하면서 신용등급에 맞지 않게 사람들이 과잉 소비를 하였고 이것이 신용불량자를 아주 많이 양성하는 문제점이 생겼다. 또한, 이는 가계 파탄의 주된 이유가 되었고 많은 국민들이 빚쟁이가 되었다.


5.1 연평해전

제 1차 연평해전의 경우는 해군의 대응으로 승리하긴 하였으나 제 2차 연평해전발발 직후 일본으로 축구를 관람하러 간 행동 등이 큰 비판을 받고있다. 피해자 합동장례식에는 전두환전 대통령만이 참석했다.


5.2 여성부 창설

여성가족부를 창설했다.


6 주요 사건

6.1 1998년

[추가바람]


6.2 1999년

제1연평해전
국민연금 강제 가입

6.3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6.4 2001년

여성부 출범


6.5 2002년

2002 한일 월드컵
제2연평해전


6.6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