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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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1대2대3대4대5대6대7대8대9대
이승만윤보선박정희
10대11대12대13대14대15대16대17대18대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 대법원의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박탈된 인물
* 헌법재판소의 2016헌나1 판결로 탄핵된 인물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제1공화국제2공화국
허정곽상훈허정백낙준박정희
제4공화국제6공화국
최규하박충훈고건황교안-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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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김종필12대 최규하13대 신현확[1]
공식 초상화[2][3]
이름최규하(崔圭夏 / Choi Kyu-hah)
출생지일제강점기 강원도 원주군 원주면 봉산리
(현 원주시 봉산동)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강릉 최씨
출신정당무소속
종교유교
부모아버지 최양오, 어머니 이응선
형제자매남동생 최명하, 최중하
영부인홍기
자녀슬하 2남 1녀
생몰년도1919년 7월 16일 ~ 2006년 10월 22일(향년 만87세)
재임기간1976년 3월 13일 ~ 1979년 12월 5일(국무총리)
1979년 12월 21일 ~ 1980년 8월 16일(대통령)
서명

1 개요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제12대 국무총리.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역임하였다.

호는 현석(玄石), 자는 서옥(瑞玉)이다. 강원도 원주군 출신.


2 생애

2.1 10.26 사건 이전

가문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며,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현재 경기고)와 일본 동경고등사범 영문과, 만주국 대동학원 정치행정반을 졸업하였다. 대동학원이 당시 만주국 관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졸업 후 만주국 관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처럼 친일의혹이 있지만, 딱히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직하던 중 1946년 미군정 중앙식량계획처의 기획과장으로 발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유엔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FAO) 국제회의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과 국제적 활동력을 인정받아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어,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고 1959년에는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외무부 차관이 되었다.

박정희는 최규하가 이승만 정권 시절의 외무차관이란 이유로 싫어했으나 외무장관 이동원의 강력한 추천으로 1964년 주 말레이시아 대사로 기용하였다가, 그 후 1967년 외무부 장관, 1971년에는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1975년 국무총리로 중용하였다. 전임자인 김종필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하자[4] 박정희가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는 관료출신 최규하를 후임자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몇년간 대독국무총리로 재임하다 공직생활을 마감할 운명이었는데...


2.2 10.26 사건 이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사망함으로써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고,[5] 같은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6] 다만 아무도 최규하가 6년의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민주적 헌법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선거를 치러 다음 정부에 무사히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역할.

그러나 그 직후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5.17 내란으로 권력을 모두 장악한 후 5.18 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무력 진압하기까지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였다. 말 그대로 허수아비였던 것. 만약 그에 맞서서 뭔가 해보려고 했다면 태평양 건너의 어느 대통령 꼴이 났을지도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의 영웅으로 남았을 것이다.

결국 1980년 8월 16일 사임함으로써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 되었다.[7] 그 직후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한번 더 열어 대통령에 취임한 뒤 바로 헌법을 바꿔서 5공화국 유일무이의 대통령이 되었다.


2.3 사임 이후

사임 뒤에는 1981년 4월부터 1988년까지 국정자문회의 의장,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신군부 일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게 되자 법원에서 수차례 증언 요청을 받지만, 법정 증언을 끝까지 거부하였다.

2006년 10월 22일 오전 6시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7시 37분에 사망했다. 당시 향년 88세.

많은 사람들이 재임 당시 신군부에 관련된 일을 기록으로라도 남겨놓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끝내 무덤까지 비밀을 가져갔다... 비망록을 남겨 놓을 테니 참고하면 될 것이라고 했던걸 보면 기록이 일기로 있긴 있던 모양이지만 끝내 공개되지는 않았다.[8]


3 묘소

현석(玄石) 최규하 전 대통령과 전 영부인 홍기 여사의[9] 묘소.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내 국가원수 묘역.[10]

사후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통령이 안장된 경우는 1985년 설립 이래 최초이다.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은 홀로[11] 묘역을 지킬듯 하다.[12]


4 여담

  • 윤보선과 함께 존재감 없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하지만 윤보선은 의원내각제 대통령으로서 명목상의 국가원수일 뿐이었고, 퇴임 후에도 박정희와 선거에서 두 번이나 맞짱을 뜨는 등 정치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최규하는 막강한 유신헌법 하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권이 신군부에게 있었고, 퇴임 후에도 조용히 살다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존재감 없는 대통령.chlrbgk
  • 대통령 중에 가장 처음으로 생전에 살던 가옥이 문화재[13]로 지정되어 개방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가보는 것도 좋을 듯, 위치는 홍대에서 매우 가까우며 합정역 2번 출구에 안내 표지가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467-5)
  •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안습한 대통령(...). 퇴임 이후 상당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 광부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평생 연탄을 때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도 노년까지 창고에서 손수 연탄을 집게로 날라 때운 연탄 보일러로 방을 덥혔다. 냉방 기계인 선풍기 또한 딸이 태어날 때 사들인 옛날 물건이었고, 에어컨 역시 장남이 미국서 사용하던 것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다. 메모지도 달력을 잘라 제작했으며 그 달력에 빽빽히 매일매일의 일정을 기입했다. 볼펜 또한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당시 한미회담에서 썼던 볼펜을 쓰고 있었다. 심지어 맷돌과 돌절구도 썼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검소한 삶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느 하루는 꽃동네의 신부가 우연히 산삼을 얻어 최규하에게 선물했는데, 그 산삼을 돌려보내며 다른 불우한 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때문에 최규하를 비웃는 사람들일지언정 그의 개인적인 면모는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
  • 영부인 홍기 여사와는 무려 69년을 함께 살았으며, 부인이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자 8년 동안 직접 간호한 애처가.[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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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 최재민이 조선시대에 성균관 박사를 지낸 이름 높은 한학자였기에 3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선비로서의 훈도와 한학, 예절을 배웠으며, 특히 한자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과 고문학에도 실력이 뛰어났다. 원주보통학교(지금의 원주초등학교) 출신이어서 이 학교에 몇 점의 휘호와 자필 서신을 남겼으며 전통적인 한문 필체로 평가받는다.
  • 협박에 의해 긴급조치를 묵인한 것 외에는 특별히 악한 행동을 하진 않았고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국민장을 치뤘지만, 정작 국민장을 치뤘는지 안 치뤘는지, 심지어 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국민장 당일에는 2,000여 명만 참여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사람들이 존재감이 굉장히 커서..[16]
  • 대통령에 취임해서 뭔가 좀 해보려고 하는데 뭘 시작도 하기 전에 쫓겨난 탓에 역사적 평가에서 동정심을 많이 받는다. 삼국지로 따지면 헌제 또는 유장과 비교가 된다.
  • 키 180의 장신[17]이고 역대 대통령 중에서 김영삼과 같이 세번째로 장수했다. 첫번째는 윤보선, 두번째는 이승만.
  • 최규하 대통령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는 주로 김성겸씨가 연기를 한다. 두 분은 특히외모, 체격 등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제4공화국에서는 점잖은 분위기로 연기했지만, 제5공화국에서는 약간 코믹함을 가미해서 연기했다는 게 차이점.
  • 구스위키에서는 대단히 웃기게 서술되어 있다. 청와대 밥 맛있다: 냠냠 이렇게만 서술되어 있다.
  • 긍정적 수식어로 많이 붙는 표현이 '선비'. 언론에서나 다른 정치인들이 최규하를 수식하는 단어로 '선비 대통령', '선비 정신을 갖춘 대통령' 이런 식으로 간간히 쓰였고, 장례 때도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에서 "선비의 표상"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했었다. 이는 사실 그가 한학을 배우기도 했었고, 절제와 검소한 삶을 살았던 걸 가리키는 수식어로 많이 쓰였지만, 정작 현대 한국에서는 '선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한 경향이 있고, 검소함이나 절제와 함께 진정한 선비의 표상이라고 할 부분인 '절개'나 '기개'라는 부분에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행적을 생각하면 묘한 느낌이 드는 표현.
  • 최규하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권영민 전 독일대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최규하의 우유부단함이나 신중함을 비꼬는 의미로 국민들이 "최 주사"라고 부르기도 했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 본인은 당연히 매우 불쾌해 했는데, 권 전 대사는 평소에 온화하던 최 전 대통령이 그 말을 듣고는 그렇게 불같이 화를 냈었다고 회고했다.[18]
  • 2016년 응답하라 1988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유동룡의 집으로 나오고 있다.[관련기사]


4.1 각종 타이틀

  • 최초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한 대통령
  • 역대 최단임 대통령
  • 역대 최장신 대통령

재임 기간 및 정부명칭은 대한민국 대통령 일람을 참조.
  1. 경제관료 출신으로 원래는 경제 부총리였다가 전임자 최규하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무총리가 되었다.
  2. 박득순 화백이 그린 초상화다.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 걸려있다.
  3. 원본 사진 pastPresident04.jpg
  4. 이미 4년 넘게 국무총리에 재임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지칠 만도 하다.
  5. 이럴 줄 알았다면 김종필이 국무총리에서 사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6. 이때 민주공화당에서는 김종필의 대통령 출마를 준비했으나, 김종필 본인이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7. 대한민국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 장군이 오랜 친구로써 설득했다고 한다. 훗날 김정렬은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의 마지막 방패막이국무총리로 발탁된다.
  8. 정확히는 비망록이라고 이름지어진 문건은 없었지만 여러가지 메모들이 잔뜩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채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984년 폭우로 지하실에 물이 들이치면서 젖어버리는 바람에 쓸모없게 되었다고 한다.
  9. 2006년 원주에서 이장돼 [합장되었다.]
  10. [사진 블로그 발췌]
  11. 무덤이 1기이긴 하지만 영부인 홍기 여사와 함께 합장되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홀로는 아니긴하다.
  12. 김대중의 경우 최규하보다 나중에 사망했음에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김영삼 또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전두환노태우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되어 국립묘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미지수.
  13.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413호
  14. 어느 정도냐면 홍기 여사가 와병하던 안방에 온도계를 달고 매일마다 실내 온도를 체크했으며, 화장실 출입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안방과 통하는 곳을 화장실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15. 미국에서는 반대로 전직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를 앓았고, 영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그를 돌봤다.
  16. 국회 앞 영결식에서만 7천명 넘게 참석했는데도 예상보다 적다는 소리 듣는 김영삼 대통령을 생각하면... 하지만 그것은 김영삼이 저지른...
  17. 지금 이 키는 현대에서도 상당히 장신이지만 저 당시로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의 오늘날의 190 가까이 되는 키다.
  18. 권영민, <자네 출세했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