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한문혼용체

(국한혼용체에서 넘어옴)
한국어 문체의 종류
존댓말하소서체하오체하십시오체해요체
반말하게체해라체해체#s-2
구어체음성적 잉여표현반언어적 표현비언어적 표현
문어체간결체강건체건조체만연체우유체화려체
비표준어국한문혼용체국한문병용체한영혼용체개조식발음대로 쓰기읍니다
문법로마자 표기법외래어 표기법국문법맞춤법모아쓰기띄어쓰기가로쓰기
문체: 일반 문체 / 신조어 문체

1 개요

槪要(개요)

나무위키 暗默(암묵)
의 룰
에 따라 國漢文混用體(국한문혼용체)

로 적혀 있습니다.

漢字와 國文(注: 한글)을 混用하여 使用하는 文體.

簡單히 現在 日本에서 使用하고 있는 文體를 떠올리면 된다. 日本을 例로 드는 理由는, 우리가 國漢文混用을 施行할 境遇 現代 日本語 文章과 類似해지기 때문이다. 國漢文混用體를 들고서 韓國人 百名과 日本人 百名에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묻는다면, 日本人對照群이 理解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1.1 해석

이 개요는 나무위키 암묵의 룰에 따라 국한문혼용체로 적혀 있습니다.

한자한글을 섞어 쓰는 문체.

간단히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체를 떠올리면 된다. 일본을 예로 드는 이유는, 우리가 국한문혼용을 시행할 경우 현대 일본어 문장과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국한문혼용체를 들고서 한국인 100명과 일본인 100명에게 무슨뜻인지 알겠냐고 묻는다면 일본인대조군이 이해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2 상세

조선시대에는 이런 문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훈민정음 언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더라도 한자 옆에 음을 달거나 아예 음 옆에 한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일본의 요미가나(読み仮名)와 비슷한 용법이다. 현대에도 혼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괄호를 사용하는 대신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

원래 한글로 쓴 문서는 '독자가 한자를 모르는 사람'일 때 쓰는 거니까 당연한 거다. 예를 들어 한문과 한글을 모두 아는 선비가 다른 선비에게 글을 보낼 때는 둘다 한문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한문으로 글을 쓸 것이고, 한문을 모르지만 한글은 아는 아내나 아랫사람에게 글을 쓸때는 상대방이 글을 못 알아먹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한글로 쓸 것이다.[1] 당장 정조 항목에 있는 '언문 편지'만 봐도, 한자도 알고 한글도 아는 세손이 한자를 섞어쓰지 않고 순 한글만 적었음을 통해 한자와 한글을 섞어쓰는 관행은 조선시대에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글과 한문의 용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몇백년 동안 국한문혼용체 같은 문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유길준이 겪었던 일처럼, 제대로 된 한문이야말로 격조 높은 문장으로 여겨졌던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한말쯤이 되면 신문이나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완전히 정착되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현재의 10, 20대 위키러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쓰였다. 불과 반 세대 이전인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학생 이상의 식자층은 일상생활에서도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고 이해했으며, 대부분의 국내 주요 신문들은 세로쓰기, 국한문혼용으로 발행되었다. 신문이 가로쓰기, 한글 전용으로 바뀐 것은 한겨레신문을 제외하면 1990년대 중반 들어서다. 국한문혼용체 가독률이 급속히 떨어지는 최근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민주화 이후 한글전용이 급속도로 이뤄졌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으나, 사실 한글전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은 박정희 정부 시대였다. 1968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은 갑자기 내각에 1973년을 목표로 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고, 10월에는 목표년도를 1970년으로 3년 앞당기게 하는 등, 7개항의 강력한 한글전용 지시를 다시 내렸다. 거기에 한자교육을 일시적으로 폐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청난 반발로 인해 중·고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재개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자교육의 비중이 이때 크게 축소된거 자체는 사실인지라 그 때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의 중역이 되기까지 대략 25년 정도의 복선이 있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90년대를 전후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전산화,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한문혼용체 사용은 더욱 위축되었다.

유독 법전 같은 문서에서 이러한 국한문혼용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동음이의어에 의한 의미 해석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도 일반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례의 한자를 남발하고, 그 뜻을 일반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는 고유어가 있으면 고유어로,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한자어로 바꾸고 한글을 전용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추세이며, 따라서 최근 제정 또는 개정된 법들은 한글로만 적혀 있다.

중간과정으로 잠시 '한문(漢字)'식으로 괄호를 사용해 한자를 같이 병기하던 시기가 있다. 게다가 법령은 원문 그대로 적어야 하는 원칙이 있어, 시중에 나온 법전을 보면 한자만 적힌 법, 한자를 병기한 법, 한글만 적힌 법이 전부 실려 있다. 참고로 최초로 한글화된 법은 다름아닌 민사소송법이다. 일본의 화한(和漢)혼용문을 그대로 가져와 국한문혼용체로 쓸 경우에 오히려 이런 혼란이 더 심화되는데, 순 일본어의 뜻만 따와서 한자로 쓰고 훈독하는 단어를 한국 한자음으로 고쳐 읽는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비슷한 예로 근래에는 한글과 로마자를 섞어 쓰는 국영문혼용체도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나, 한글 전용이 확산되면서 국영문혼용체의 사용 빈도 역시 국한문혼용체 못지않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공계 쪽은 당장 사용되는 개념이나 장치들에 마땅한 한국어 번역이 없어서 현재도 국영문혼용체가 빈번하게 쓰이는 편이다. 사실 한국인 교수가 한국말로 강의를 해도 영어 교재 영어 PPT에 하는 말도 조사만 빼면 전부 영어인 판국이다.

당장 도서관에 가서 80년대 이전에 출판된 대학 교재들이나 각종 논문들을 보면 국문, 한자, 영문이 뒤범벅된 환상적인 문장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독자가 영문을 읽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주로 대학생 이상의 고학력층을 대상으로 한 서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북한의 경우, 해방 후 1946년 사이에 간행된 로동신문세로쓰기에 국한문혼용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에는 아직 국한문혼용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한글 전용이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은 로동신문이 가로쓰기로 발행되기 시작한 1948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남한 역시 동년 한글날에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한글 전용을 법제화한 바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한글 전용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에 비해, 북한에서는 한글 전용이 별다른 논란이나 마찰 없이 비교적 빠르게 보급되었다. 물론 이는 당의 방침에 대한 저항이나 이의가 원천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북한 체제의 성격이 한몫했다.

한편 연변에서는 북한의 영향으로 국한문혼용체는 잘쓰이지 않고 국한문병용체가 주로 쓰인다. 그래도 남북한과는 다르게 한자를 쓰는 비중이 높은데 이는 당연할수밖에 없는게 연변자치주의 공용어가 조선어(한국어)라지만 엄연히 중국에 속하고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쓰이는 공용어가 표준중국어이기 때문인지라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배우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체자를 쓰는 남한과는 다르게 간체자를 쓰기는 한다.

3 혼용하는 정도

섞어 쓰는 정도는 글에 따라 다르다. 대표적으로 1980~90년대 신문에서 쓰인 고유명사, 약어만 한자로 표기하는 정도의 국한문혼용으로부터 심한 경우 기미독립선언서 원문같이 조사만 빼놓고 모두 한자로 범벅해놓기도 한다. 이렇게 쓴 글에서 조사만 일본어로 바꾸면 얼추 일본어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쓴 글은 명사 투성이라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한자를 음과 훈으로 읽어 한자를 써도 토박이말을 살리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한문독법에서 훈독이 사라져 한자를 음으로만 읽기 때문에, 기미독립선언문 같은 심각한 국한문혼용체는 토씨 외에는 고유어의 씨가 말라버린다. 개화기 이후의 과도기 문체에서, 얻다를 '得하다', 열다를 '開하다' 따위로 적는 등 명사뿐 아니라 동사까지 외자 한자에 '하다'만 붙여 쓰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으로 요즘에는 영어에서 나타나는 'get하다', 'open하다'처럼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좋지만 모르는 사람은 꽤나 답답한 문체이다. 1895년에 나온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최초의 근대적 국한문혼용체로 여겨지고 있다. 유길준 자신은 최대한 국문(한글)을 살려 쓰려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그가 지은 책을 본 사람들은 언문을 섞어 쓴 것은 문장이 아니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4 극한 국한문혼용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여러 단어를 한자나 한자어로 표기한 매우 극한 국한문혼용체다. 즉, 조사 혹은 어미와 몇 종의 예외를 뺀 나머지는 전부 한자로 쓴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쓸 경우, 문장의 형태는 훨씬 현대 일본어의 문장과 비슷할 것이다. 왜냐면, 가나·한자 혼용문을 사용하는 일본어에서는 한자어는 물론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고유어도 역시 대부분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한자와 대응시켜 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식 극한 국한문혼용의 글과 가나·한자 혼용문 사이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첫째는 현대 일본어에서는 실질형태소라도 보통 한자로 표기하지 않는 단어가 있다는 거다. '이', '그'와 같은 비인칭 지시대명사는 일반적으로 「これ」、「それ」라고 쓰지 「此れ」、「其れ」라고 쓰진 않는다. 둘째로는 한국인은 한자를 읽을 때 무조건 음으로 읽지만, 일본인은 한자를 읽을 때 음독과 훈독이라는 두 가지의 읽는 법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기미독립선언서는 이러한 문체를 택하고 있다. 단, '것'을 '事'로 쓴 것은 선언문과 다르다. 이로 인해 선언문을 직접 소리내어 읽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반 동아일보도 이러한 문체를 사용했다. 예시 1:동아일보 창간호 예시 2: 동아일보 1922년 신년호

5 기타

  • 국한문혼용체에서는 띄어쓰기가 간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한문혼용체는 어디까지나 한국 어문의 일부이므로, 완전히 고대 한문 느낌 나게 할 거 아니면 한국 어문 규정에 맞게 띄어쓰기를 제대로 해 주자.
  • 새나루 입력기는 일본어 입력기처럼 단어단위로 한자를 변환하므로, 컴퓨터에서 한자입력이 상당히 쉬워진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기 바란다.여기
  • 조갑제가 아니더라도 교육적 측면에서 한자를 혼용해야 한다는 일부 교육계 인사들의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런 주장 중에 자세한 건 여기
  • 한국어판 위키백과의 일부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별도로 신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위키백과의 형태로 개설하는 것은 실패하였다.
그 대신, 국한문혼용체 위키백과를 추진했던 이들이 국한문혼용체 방식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한자위키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자어를 모두 한자로 변환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글전용체와 다르지 않으나 어쨌든 국한문혼용체로 읽을 수는 있다. 바로가기
  • 구글 번역기에서, 국한문혼용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붙여넣은 다음, 중국어 ▶ 중국어 간체로 번역하면, 한자 부분만 간체자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중국어 번체에 포함된 한자만 변환되므로, 일부 한국식 한자(眞) 등이나, 일본식 신자체(楽) 등은 무시된다. 주의할 점은, 중국어는 띄어쓰기가 없는 언어이므로 띄어쓰기도 모두 제거되니 주의하자. 이것은 버그가 아니다.

6 국한문혼용체 옹호론과 반대론

  1.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의 왕실에서는 하도 궁이 넓은지라 아침문안을 제하면 왕이나 왕족들끼리 전할 것이 있을 시 글로 적어 보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라고 해도 여자에게 한문을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받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여성이면 한글을 쓰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