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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元(일본식 이름: 金岡東元 가네오카 히가시모토)
1884년 2월 1일 ~ 1951년 3월 20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었다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전 정치인이다.
1884년 평안도 평양부(현 북한 평양직할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했고, 1900년 평양외국어학교 일본어학과에 들어가 1903년 졸업했다. 졸업 후, 평양외국어학교 일본어학과 조교수로 있었다. 1905년 일본에 유학해 도쿄 세이소쿠 예비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1906년 메이지 대학 법과 전문부에 입학했으나 1907년 중퇴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13년 석방되었다. 이후 1920년대 조만식 등과 물산장려운동을 추진하였다. 이후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투옥되었다. 투옥 후 친일 행각에 앞장서게 되었고, 석방 후 태평양 전쟁을 위한 항공기 헌납 운동 및 학병 권유 논설 작성 등의 친일 활동을 하였다.
8.15 광복 후에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조만식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평안남도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북한에 입성하자 월남하였다. 이후 미군정 장관의 행정고문에,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위원, 한국민주당 상임위원을 및 기획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남송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로 변절한 행적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제 부문과 지역유력자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