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黃聖秀
1917년 02월 22일 ~ 1997년 03월 05일
1917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마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 교외생으로 공부를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중앙총본부 재정부장, 남양인쇄소 사장, 조선인쇄문화건설협회 이사장, 대한청년단 용산구 단장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민주당 김동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김동원 후보에 설욕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여 중앙본부 훈련부장에 임명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엄상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월 3.15 부정선거 등의 혐의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건 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제3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1965년 서민호가 한일기본조약 반발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국독립당 김두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